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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민의 유럽에서 게임 개발하기③] 일당백: 성과 중심의 작은 조직, 그리고 큰 효율

데일리게임이 2022년 하반기를 맞아 새롭게 준비한 '홍성민의 유럽에서 게임 개발하기'는 메카닉 액션게임 '어썰트', '레이크래쉬' 등을 개발한 개발사 코디넷 대표 출신의 홍성민 메타코어 게임즈 기술 총괄이 핀란드에서 개발자로 일하며 경험한 일과 느낀 점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한국, 혹은 아시아와는 다른 유럽의 개발 문화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편집자주 >

[글=홍성민 메타코어 게임즈 기술 총괄]필자는 2018년 핀란드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와서 사귀게 된 친구들이 1년만 일찍 왔으면 이 심심한 핀란드에 그래도 재미난 구경거리들이 좀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싱겁지도 않은 이 핀란드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싶었는데 2017년이 바로 핀란드 독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합니다.

유럽의 나라들을 보면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들끼리 엄청나게 싸워 온 것은 알았지만, 핀란드가 1917년 독립전까지 7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속국이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더욱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을 속국으로 살았음에도 언어와 문화를 유지해 왔다는 것도 신기하고, 국가적 정체성을 확고히 가지고 있음은 더욱 신기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겨우 40년도 안되는 일제 치하의 시기를 지냈음에도 여전히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핀란드 독립 과정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었고, 여러 번의 내전도 있었으며, 구 소련과의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을 겪기도 했습니다. 특히, 구 소련과의 전쟁은 막대한 전략과 병력 차이가 있었지만 소련에 완전 흡수되는 것을 막아낸 전쟁으로, 핀란드인들의 생존력과 단결력, 그리고 높은 실용성을 보여준 역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모든 전쟁의 역사에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핀란드 겨울전쟁 최대 영웅은 총사령관이자 국부로 추앙 받고 있는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Carl Gustaf Emil Mannerheim)이지만 핀란드 정규군의 10배가 넘는 구 소련의 병력의 진격을 막아낸 것은 통나무와 칵테일 화염병으로 탱크를 막아낸 최전선의 병사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시모 해위해(Simo Häyhä)와 같은 저격수들과 게릴라 스키부대의 성과는 핀란드의 독립을 지켜낼 수 있는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정규군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개인 역량과 집중력, 인내와 실용성으로 무장한 핀란드의 저격수들은 적에게는 사신(死神) 또는 백사병(白死病) 등의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성과를 만들었습니다.

넓은 영토와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적은 인구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생존을 위한 싸움을 계속해왔던 핀란드로서는 모든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역량이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형이나 규모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하게 되고 리스크에 대한 대비에 더욱 철저해지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헬싱키 시내 중심에 있는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 동상(왼쪽)과 필란드 역사상 최고 저격수로 꼽히는 시모 해위해(오른쪽).
헬싱키 시내 중심에 있는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 동상(왼쪽)과 필란드 역사상 최고 저격수로 꼽히는 시모 해위해(오른쪽).
현재 핀란드에서 가장 큰 게임 회사는 우리가 잘 아는 슈퍼셀(Supercell)입니다. 2021년 기준 매출이 18억9000만 유로, 한화로는 약 2조6000억 원에 이르는 회사입니다. 헬싱키 바닷가에 친환경과 자연 친화를 컨셉트로 하는 목재 중심의 대형 사옥 건물도 짓고, 핀란드 외에도 유럽 전역에 다양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런 슈퍼셀의 헬싱키 사무실 상주 정직원은 400명 남짓이라는 것입니다. '앵그리버드(Angry Birds)'로 유명한 로비오(Rovio)도 500명 남짓이고, '맥스 페인(Max Payne)'과 '컨트롤(Control)'을 만든 레메디(Remedy)도 250명을 넘은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직원 수가 수 1000명이 넘어가는 한국의 게임 회사들과 비교해 본다면 어마 어마하게 큰 외형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법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핀란드에서는 직원 100명을 넘어가면 사람들이 대기업 취급을 합니다.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많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게임을 한두 개만 만드느냐 하면 잘 아시다시피 그것도 아닙니다. 너무 짠돌이여서 사람을 안 뽑는거냐 하면 그것 역시 아닙니다. 게임 개발과 서비스는 이제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산업이 됐습니다. 특히 AAA 게임이나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적은 인력을 유지하고 있는, 혹은 할 수 있는 이유는 인구가 적은 핀란드의 특성상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직원 한 명 한 명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조직 문화와 더불어 아주 적극적으로 외부 협력 업체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20년 기준 핀란드 전체 게임산업 총 종사자 수는 약 3600명이며, 200개 정도의 회사가 활동 중이다. 2021년 핀란드 전체 게임 회사 매출 합계는 약 5조 원(추산)에 달한다(자료출처='FINNISH GAME INDUSTRY REPORT 2020', Neogames).
2020년 기준 핀란드 전체 게임산업 총 종사자 수는 약 3600명이며, 200개 정도의 회사가 활동 중이다. 2021년 핀란드 전체 게임 회사 매출 합계는 약 5조 원(추산)에 달한다(자료출처='FINNISH GAME INDUSTRY REPORT 2020', Neogames).


이런 적극적인 외부와의 협력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핀란드 회사들의 강점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외부의 전문가 또는 전문 회사와 같이 일을 하게 되면 회사 내에 모든 분야의 인력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 경우 회사 내에 팀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부담이 줄어들게 됩니다. 또한, 외부 회사와의 협력이 기본적인 방향성으로 이뤄지게 되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진행하는데 있어 모듈화와 조직화 및 시스템화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외부에서 제작된 리소스의 검수와 관리가 추가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품질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과정을 거치고 시스템을 구축하면 게임의 완성도를 유지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필자가 이전에 근무했던 유비소프트(Ubisoft)도 분산 개발에 아주 적극적인 회사입니다. 각 국가에 분산돼 있는 개발팀 또는 스튜디오들마다 각자의 강점과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메인으로 진행하는 리딩 스튜디오와 프로젝트에서 필요로 하는 각 부문의 전문성을 가진 지원 스튜디오로 팀을 구성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물론 나라도 다르고, 시간대도 다르고, 조직 구조와 문화도 다른 여러 조직과의 협업은 상당한 추가적인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생기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역할의 분담은 각 스튜디오들의 강점을 살리고, 조직의 역량을 집중할 수 있으며, 구성원들도 방향성을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자가 기술 총괄로 일하고 있는 메타코어 게임즈(Metacore Games)도 같은 결의 개발 철학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물론 회사가 충분히 성장하고 유명해지기 전에는 필요한 인력을 원하는 시점에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충분히 성장한 지금도 여전히 외부의 협력 대상을 찾는 것에 아주 적극적입니다.

회사의 주력 게임인 '머지 맨션(Merge Mansion)' 팀은 40여개 외주 업체들과 상시 또는 필요에 따라 같이 일을 하고 있고, 필자가 있는 기술팀에도 외부 계약에 의해 일을 하는 프로그래머들이 있습니다. 게임의 데이터 분석 시스템(Data Analyzing Pipeline)은 전체 시스템을 외부에서 구성했으며, 회사의 일반 관리나 행사 등의 진행도 외부의 도움을 받고 있고, 일부 개발 플랫폼들의 세팅과 관리, 보안 시스템과 관련된 컨설팅 등도 지속적으로 외부의 협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외부와의 협력은 분명 추가 비용이 더 들기도 하고, 협력을 위한 관리 노력이 필요하지만 게임 개발은 이제 한두 명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 협력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조직에도 여러 이점을 주지만 같이 협력을 하는 곳도 도움이 되며, 이것은 전체 산업 구조의 선순환과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핀란드처럼 작은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성공적인 게임 회사들이 나오고 성장해 나가는 것은 이런 산업 전체의 선순환 구조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기서는 모두 이야기 할 수 없지만 게임산업만이 아닌 다양한 최첨단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작은 거인 같은 회사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는 것은 이렇게 개인의 역량을 믿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전극적인 외부 협력을 통해 모두 다 같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환경과 철학이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국 게임산업의 허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와 성장해 올라오는 곳이 없고, 최상위 대형 업체들만 계속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새로운 스타트업을 만드는 것에 도움을 주고, 그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분명 필요하지만 앞에 서 있는 업체들이 주변을 돌아보며 모두가 다 같이 성장하고 협력을 통해 더 많이, 그리고 더 큰 성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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