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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센딩 블레이드 1화

어센딩 블레이드 1화
[데일리게임] 1. 죽은 자들의 전장

“야!!!”

귀를 찢을 것 같은 외침에 그제야 수현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매캐한 화약 냄새.

머리가 울릴 정도의 폭음.

지독한 피비린내까지.

이곳은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였다.

“제길!!”

황급히 고개를 숙이면서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미 무너진 중심 때문에 그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순간, 옆에 있던 헌터 힐페론의 창이 몬스터의 심장을 꿰뚫었다.

“정신을 어디다가 팔고 있는 거야? 죽고 싶어?”

“죄, 죄송합니다.”

“15층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야. 어떤 녀석들이 있는지 아직 모른다구. 정신 바짝 차려!!”

같은 파티원인 힐페론이 수현을 나무랐다.

붉은색의 머리카락만큼이나 다혈질인 이 남자. 그는 등에 메고 있던 창을 뽑아 바닥에 꽂으며 소리쳤다.

“다음 웨이브가 온다. 다음에도 이런 식이라면 같이 일 할 수 없어!”

“···네.”

“우린 네 보모가 아니라고. 애송아!”

"힐페론!!"

파티의 리더인 니파온이 신랄하게 비난하는 힐페론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그를 저지했다.

탄탄한 근육과 함께 거부하기 어려운 중저음이 내리깔리자 그제야 힐페론도 멈추었다.

"쳇···."

힐페론은 바닥에 침을 뱉고선 으르렁거리듯 수현을 노려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네가 그 능력만 없었어도 여기에 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영광으로 알아라.”

자신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파티원인 힐페론을 보며 수현은 생각했다.

‘이게 영광이라고?···미친. 누군 죽고 싶어서 이런 곳에 온 줄 알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론, 한눈을 팔 시간이 없다는 것엔 동의한다.

마지막 기회.

오늘이 지나면 현실로 괴물들이 또다시 쏟아질 것이다. 시간이 없다.

랭킹 3위인 니파온.

14층 보스인 드레노어를 잡고 얻은 열네 번째 마스터키의 발견자인 랭킹 8위 힐페론.

그리고 같은 클랜 소속인 랭킹 15위의 베네딕까지···.

앞으로 있을 수 없는 최강의 파티였다.

허나 자신은···?

4,287위.

그게 수현의 랭크였다.

수현은 자신이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왔다는 걸 잘 안다.

고작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방패막이일까?

그런 그가 이곳에 있는 이유?

간단하다.

모두 죽었으니까.

더 이상 싸울 사람이 없었다.

4,287위라도 써야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내게도 공평한 시간만이라도 주어졌더라면…’

수현은 고개를 저었다.

가장 늦게 헌터가 되어 양성센터에서 고작 1년도 채 훈련받지 못한 상황에서 징집된 것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불평일 뿐이다.

그가 훈련받던 양성센터는 이미 몬스터들에게 처참히 파괴돼 버렸으니까.

더 이상 훈련을 받고 싶어도 없다.

그가 마지막이자 유일한 살아있는 훈련병이었다.

“마스터키는?”

“걱정 마.”

힐페론은 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을 보여줬다.

마치 문신처럼 그의 팔엔 기묘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확실히 챙겼으니까.”

그가 힘을 주자 손목에서부터 어깨까지 그려져 있던 문양이 꿈틀대며 흘러내렸다.

츠으응······.

기묘하게 엉켜 있는 두 갈래의 문양이 나선으로 꼬이며 기다란 창이 되었다.

“스피어인가? 너에게 딱 어울리는군.”

“아아, 그렇지.”

힐페론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산양의 뿔처럼 양 갈래로 날이 솟은 창을 크게 한 바퀴 허공에서 원을 그리듯 휘둘렀다.

부우웅―!

공기마저 잘려나가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

그 모습을 본 수현은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힐페론은 지난 원정에서 14층 보스 드레노어를 잡고 마지막 마스터키의 주인이 되었다.

그 말은 곧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는 말.

‘제길······.’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수현이 그를 바라봤다.

마스터키(Master Key)

그건 파렐의 다음 층을 가기 위해 필요한 열쇠임과 동시에 소유자는 그 속에 담긴 고유한 능력을 쓸 수 있게 된다.

힐페론의 창이 바로 그런 것이다.

강력하고 압도적이며 가장 완벽한 무구.

“뭘 봐?”

“죄, 죄송합니다.”

힐페론이 노려보자 수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힐페론을 향해 수현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단 한 사람.

마스터키를 가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정대에 징집된 헌터.

그게 바로 최수현이다.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곤 우습게도 가장 마지막으로 각성한 라스트 헌터이자 가장 짧은 훈련기간을 거치고도 아직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일까?

그들에 비한다면 자신에겐 아무것도 없다.

“맡은 임무나 확실히 해. 운이 좋으면 이번에도 끈질기게 살 수도 있을지 알아?”

“······.”

수현은 자신의 팔을 들어 보였다.

여기저기 꿰맨 자국들이 아물지도 않은 채 선명하게 남아있다.

하나같이 일반적인 상처가 아니다.

보통의 사람이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를 치명상들.

사선을 건넌 전투들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헌터?

무의미하다.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해봤자 결국 자신은 총알받이다.

“부디 15층이 라스트 플로어이길 바랄 뿐이지.”

“알벤만 있었더라도···.”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금기시되는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만큼은 모두가 그의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 봐야 결국 13층에서 죽은 사람에 불과해. 우린 지금 그를 뛰어넘어 15층까지 왔다고.”

힐페론이 신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연 그럴까? 그는 1층에서 13층까지 혼자서 층을 열었어. 고작 1년 만에.”

“······흥.”

“그리고 우리가 고작 두 개의 층을 클리어하는 데만 9년이 걸렸고.”

그리고 수백 명이 죽었다.

초인의 힘을 가진 퍼스트 드림의 각성자.

헌터들이.

1층에서 시작해 13층에서 최초로 사망한 헌터 알벤 로스차일드 이후의 시간에서.

그를 따랐던 니파온은 존경심을 담아 그를 떠올리며 말했다.

최고위 랭커인 그의 말이었기에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 그만이 진정한 헌터지.”

알벤 로스차일드(Alben Rothschild).

10년 전,

퍼스트 드림(First Dream).

한날한시에 같은 꿈을 꾸게 된 사건.

그것은 헌터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선택의 꿈이었다.

새하얀 빛과 함께 나타난 그 꿈과 함께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거대한 등대, 파렐(Pharel)이 나타났다.

명칭도 없던 이 조형물에 파렐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그곳의 비밀을 밝혀낸 자가 바로 패스파인더(Pathfinder) 알벤 로스차일드였다.

전직 교황청 전속 결사대 L.O의 일원이었던 그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헌터이자 리더쉽을 가진 남자였다.

강인한 육체.

그리고 정신력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리더.

“내가 이끌겠다. 그러니 그대들은 따라오라."

그는 파렐의 공략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압도적인 그 말에 사람들은 매료되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는 파렐을 공략해나갔다.

1층, 2층, 3층······.

모든 이들은 언제부턴가 그가 새로운 층을 열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것이 최초의 헌터, 7인의 패스파인더.

알벤과 그를 따르는 여섯 명의 파티원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허나 모든 헌터들의 우상이었던,

알벤 로스차일드.

그가 13층에서 죽을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헌터들에게조차 절대적 정신적 지주였던 그가 그렇게 예고 없이 허무하게 전사할 줄이야.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죽음이 마치 인류의 종언을 예고하는 것처럼.

그 순간부터 파렐에선 끝없이 몬스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알벤 로스차일드의 죽음과 최초로 실패한 공략.

그 결과가 파렐이 몬스터들을 쏟아내는 것이란 걸 인류는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층을 오르는 것을 포기해도, 층의 공략을 실패해도 파렐은 인류를 시험하듯 몬스터를 뱉어냈다.

때로는 강력한 단 일기의 몬스터가 출현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만큼 쓰나미 같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전자든 후자든 선택의 여지는 없다.

싸우고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9년간의 전쟁.

“이제 패스파인더 중에 살아 있는 헌터는 니파온 당신뿐이로군.”

힐페론은 특수 제작한 톤파에 화약을 장전하는 그를 보며 말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꿈틀거렸다.

같은 결사대 출신이자 알벤을 도왔던 패스파인더 중 하나인 니파온은 알벤을 형처럼 따르던 남자였다.

“아니. 알벤은 살아있다. 그가 남긴 이것이 나에게 있으니.”

니파온은 마치 신념에 찬 기사처럼 결의를 다졌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어깨에서부터 타고 내려가는 정체불명의 힘을 따라 그의 주먹이 일순간 푸른빛을 띠었다가 사라졌다.

“······.”

수현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니파온은 알벤에게 전수받은 것을 포함해서 마스터키를 3개나 보유한 유일한 헌터였다.

“여기만 통과하면 정말로 끝일까?”

“알벤의 예상이 맞기만을 빌어야겠지. 그의 말이 틀린 적은 없었으니까.”

언제부턴가 인류는 알벤 로스차일드의 말을 마치 이 세상의 규율마냥 믿고 있었다.

“헌터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파렐을 공략하는 것. 예상컨대 헌터가 도달할 수 있는 층은 분명 15층이 한계일 것이다. 즉, 그 층이야말로 마지막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수단을 가리지 말고 15층까지 올라가야 한다.”

어쩌면 그 말이라도 믿지 않으면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무 걱정 말아요. 잘 될 거에요.”

떨고 있는 수현을 다독인 것은 파티 내의 유일한 여성 헌터인 가이스터(Geister), 미라클이었다.

“아, 네··· 가, 감사합니다.”

순간 수현은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얼굴이 붉어졌다.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

전장의 꽃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다니···. 최악인 이곳이라도 장점은 있는 걸까.

수현은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는 걸 들킬까 봐 황급히 몸을 돌렸다.

“여기다!!”

시간이 흐른 뒤, 마스터키의 보유자인 힐페론이 손을 들며 말했다. 그가 들고 있던 마스터키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층의 보스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빛이었다.

“끝이로군.”

니파온은 침착하게 말했다.

스산한 기운이 공간을 엄습했다.

가벼운 소름이 수현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이 조합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의 승리를 가져다줄 마지막 희망.

“그래. 끝이다.”

그 순간,

나직한 목소리가 수현을 짓눌렀다.

그그그그그긍······.

문이 열린다.

마지막 층이.

이형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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