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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어쩌다 여기까지… 셧다운제 사태를 돌아보다

[데일리게임 곽경배 기자]

“총대를 매려고 하는 의원이 없어요.”

‘셧다운제’로 한창 시끄러울 때 만난 문화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국회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만나보면 셧다운제의 부당함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을 가슴으로 이길 수 없어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셧다운제는 당연히 실시될 거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왔다. 이미 양 부처가 셧다운제에 대해 합의 했고, 여성가족부 주도로 여론조차 돌아선 마당에 이를 되돌릴 희망이 없다고도 했다. 단지 희망이 있다면 그 범위를 축소하는 것뿐.

결국 셧다운제는 현실이 됐다. 31일 모철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셧다운제 적용 대상에 대해 여성가족부와 합의를 마쳤다"며 "일단 PC온라인게임에 먼저 적용한 뒤 모바일게임에 대해서는 2년 뒤 게임 중독성 등 영향 평가를 거쳐 중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셧다운제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시작은 그린게임캠페인

[기획] 어쩌다 여기까지… 셧다운제 사태를 돌아보다

게임산업에 대해 관심도 없던 정부가 본격적으로 개입한 것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게임산업 규모가 수 조원에 달하고 작은 개발업체가 몇 천억원대 매출을 올렸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게임을 모르던 일반인들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문화부는 당시 한국콘텐츠진흥원을 움직여 게임산업협회에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캠페인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고포류 사행성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까지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그린게임캠페인’이다.

내용은 회장사였던 NHN을 비롯한 주요 게임포털 업체들이 비용을 갹출해 15억원을 조성, KBS와 MBC, SBS 등 방송 3사 공중파 광고비로 사용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대국민인식제고’란 핑계로 방송을 살찌우는데 기금이 사용된 것이다. 물론 고포류 게임에 셧다운제를 실시한다는 대안도 제기됐으나 실제로 이행한 곳은 NHN에 불과해 형식상 대안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에도 정부는 당시 게임산업협회장이던 김정호 협회장을 각종 행사에 얼굴마담으로 초청해 업계를 압박했다. 김 협회장은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정치 후원금 행사나 모임 뒷풀이에도 불러 다니면서 ‘지갑’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스트레스를 받은 김정호 협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협회장을 그만뒀다.

게임산업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게임산업협회가 저자세로 정부의 요청에 끌려 다니다 보니, 결국 게임산업 자체가 ‘숟가락’ 얹기 좋은 산업이 됐다. 돈은 잘 벌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 규제할 명분이 충분하고, 협의체 또한 사분오열 돼 제 목소리를 못 내니 ‘만만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 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이사사들, 일을 키웠다


이번 셧다운제와 관련한 여성가족부의 움직임을 보면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초반부터 잘 조직돼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륜 범죄의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면서 여론을 움직였고, 게임산업 규제안이 든 청소년보호법을 다시금 내놓았다. 이 법안은 과거에도 몇 번 좌절됐지만 여성부는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슈화에 성공했다.

이번 청보법개정안의 이면에는 예산이 부족해진 여성부가 새로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문화부와 16세를 기준으로 셧다운제 합의를 이끌어낸 여가부는 소속 국회의원들을 통해 재원마련을 위한 입법화를 추진하고 국회 토론회를 통해 이를 천명했다.

지난달 16일 열린 인터넷 중독 예방•치료 기금마련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서는, 게임과몰입을 막기 위해 게임업계로부터 매출 1% 원천징수를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언론을 통해 실체를 과장하고 이를 토대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제는 해결을 위해 기금을 걷겠다고 나선 것이다. 잘 짜여진 각본처럼 여가부는 꾸준하게 게임산업을 물고 늘어졌고 그 결실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막아야 하는 게임산업협회는 이사사들의 이해관계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그린게임캠페인은 고포류 서비스를 하는 회사들의 문제가 됐고, 이번 셧다운제는 넥슨과 같이 저연령층이 많은 회사들의 문제로만 인식됐다.

등 떠밀리다시피 협회장을 맡은 한빛소프트 김기영 대표는 제대로 된 협회장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이사사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지도 못했고 대정부 외교에도 실패했다. 실제로도 적자를 기록 중인 회사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 제대로 된 국회의원 로비도 펼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부 관계자도 이 점을 지적했다. 문화부가 나서서 산업을 챙기기 전에 이해당사자가 활발한 활동을 펼쳤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 관계자는 “김 협회장이 움직여 국회의원을 만나고 다녔어야 했는데 항상 사무실장에게 넘기니, 보좌관 만나기도 어렵지 않았겠느냐”며, “아군이 될 수 있는 사람까지 놓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 지금부터라도 한 목소리 내야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많은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청보법 개정안이 거론됐을 때부터 게임산업협회가 똘똘 뭉쳐 언론과 정부에 해당 법안의 문제를 지적하고 여론을 만들었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가부가 문화일보와 게임중독 예방 캠페인을 벌일 때, 게임산업협회는 게임산업의 전도유망한 가치와 과몰입 해소를 위한 자발적 노력을 유력 중앙지를 통해 여론몰이를 했어야 옳았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표를 의식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새롭게 조성되는 판교밸리와 게임인들의 기대를 어필하며 나서줄 것을 요구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쉽게 셧다운제가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실 앞으로가 더욱 문제다. 규제가 시작된 이상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특히 여성부가 규제를 통해 과몰입 예방기금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파악된 이상, 이를 막아내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게임산업협회가 중심을 잡아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박상우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는 “아무래도 회장사 중심이 현 협회체제는 대정부 외교에서 우위를 점하기 힘든 구조”라며 “나서는 사람이 없어 외부 영입을 고려하게 됐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협회 구조 변화를 모색해 보는 것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영향력 있는 외부 인사를 협회장으로 옹립하고 그를 중심으로 단결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특히 이번 여가부 기금모금건은 모든 게임업체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문제인 만큼 공동의 이익을 위해 나서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nonny@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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