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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아만전사 카르고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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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주먹의 마디를 꺾으며 나서는 카르고를 본 세실리아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카르고는 강력한 몬스터인 리퍼조차도 맨손으로 때려잡은 전사이다. 현실적으로 질 나쁜 건달패거리들을 당해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세실리아는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혹시 저들을 죽일 생각은 아니겠죠?”

“마땅히 죽여야지. 다른 이의 재화를 노리는 것 자체가 죽을죄이지 않겠어?”

기가 막힌 세실리아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면 안 돼요!”

“어째서 안 된다는 거지?”

“인간에게는 인간 나름대로의 법이 있어요. 일단 발키온 연합의 일원이 된 이상 카르고 님도 법규를 지켜야 해요. 도시 안에서 살인을 하는 것은 명백히 법규 위반이에요. 살인죄로 경비대에 끌려갈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카르고가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에 곤혹스러움이 감돌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죽이지만 마세요. 그러실 수 있겠어요?”

세실리아의 얼굴을 쳐다보던 카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네 말대로 하마.”

골목을 틀어막은 건달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방들이 뭐라 부산하게 대화하긴 했지만 아만족의 언어라 그들이 알아들을 순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날려 버렸다. 세실리아의 미모를 눈여겨본 건달 하나가 슬쩍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잘되었어. 돈에 이어 부수입까지 챙길 수 있겠어.”

“덩치 큰 허풍선이는 걱정하지 마. 느려 터져서 두 명이 달라붙으면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거야.”

몽둥이로 손바닥을 툭툭 치며 다가오는 건달들을 카르고가 무심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움켜쥔 그의 주먹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골목에서 비명소리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아아악!”

“요, 용서를…… 크아악!”

이어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지직.

골목의 앞뒤를 막아선 건달의 수는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들 전부가 작살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초도 되지 않았다. 건달들이 널브러진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카르고의 돌주먹에 얼굴을 맞아 기절해 버린 사내들이 우수수 부러져 나간 이빨 사이로 게거품을 뿜어내고 있는가 하면 팔다리의 뼈다귀가 부러진 채 엉금엉금 신음하고 있는 녀석도 있었고, 기절한 채 담벼락에 걸쳐진 녀석이나 카르고가 집어던져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녀석도 있었다. 말 그대로 일인일격, 카르고는 건달 하나당 한 번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그 모습을 세실리아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지켜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서 있다가 달려드는 녀석들을 차례대로 박살내는 모습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카르고의 큼지막한 주먹에 얻어맞은 건달들이 마치 포탄처럼 펑펑 날아가고, 단검을 휘두르던 녀석들은 뼈마디가 통째로 뒤틀렸다.

“저, 정말 대단해요.”

별거 아니라는 듯 손바닥을 툭툭 턴 카르고가 몸을 돌렸다.

“날붙이를 든 녀석들은 좀 아프게 만져 주었다. 그나저나 인간의 뼈다귀는 상당히 약하군. 살짝살짝 건드렸는데도 부러져 나가다니 말이야.”

세실리아가 찡그린 얼굴로 작살이 난 건달들을 쳐다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붙잡아 경비대에 넘기려고 했는데 몰골을 보니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저 정도라면 충분히 적합한 응징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세실리아가 생긋 웃으며 카르고의 팔짱을 꼈다.

“내버려 두고 여관으로 가요. 그나저나 동료가 막강해서 정말 든든하군요.”

묘한 표정으로 세실리아를 쳐다본 카르고가 걸음을 옮겼다.

세실리아는 숙박료가 비싼 고급 여관의 방을 두 개 잡았다. 개인 욕실이 딸린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비교적 풍족했기 때문에 크게 마음먹은 것이다.

“쉬도록 하세요. 제 방은 바로 옆방이에요.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시고요.”

살짝 눈웃음을 친 세실리아가 날듯이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옷을 훌훌 벗고 욕탕의 물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이었다.

“알겠다. 너도 쉬어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카르고가 문을 닫았다. 욕탕 안에는 따듯한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관 점원이 미리 채워 놓은 모양이었다.

옷을 벗은 카르고가 느릿하게 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욕조의 크기가 상당히 컸지만 인간보다 덩치가 큰 카르고가 들어가자 꽉 채워졌다. 이곳까지 오며 사냥한 몬스터의 피가 비늘 사이에 말라붙어 있다가 서서히 풀려나갔다. 기분 좋은 감각에 카르고의 눈이 가늘어졌다.

“흠, 좋군. 마치 온천에 온 것 같아.”

유난히 예민한 카르고의 감각에 옆방의 세실리아가 욕조에서 부르는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눈을 감은 카르고가 생각에 잠겨 들어갔다.

파야곤을 보내고 난 뒤 몸을 만들기 시작한 카르고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특이하게도 몸에 깃든 신력이 봉인되기 전보다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봉인된 기간 동안 조금씩 소실되었어야 마땅한 신력이다. 수백 년의 세월을 감안하면 모두 소실되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카르고의 심장에 간직된 신력은 봉인되기 이전보다 몇 배나 많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카르고는 봉인된 장소로 돌아와 이유를 살펴보았다. 원인은 금세 드러났다.

욕조에 몸을 담근 카르고의 눈매가 돌연 부르르 떨렸다.

‘동료들이 신력을 모조리 나에게 주입하고 죽었어. 나에게 복수라는 큰 짐을 떠맡기고 자신들을 희생한 거지.’

파야곤의 말에 의하면 동료들의 육신은 봉인이 풀리기 무섭게 산산이 부스러졌다고 한다. 다시 말해 봉인되기 전에 이미 죽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동료들이 왜 죽었을까? 그 이유는 카르고의 심장에 충만한 신력이 알려 주었다.

아케니아의 전사들에게는 최후의 순간 사용할 수 있는 비술이 있다. 팔이나 다리가 잘려 나가 더 이상 싸우지 못하게 되었을 때 동료들에게 망설임 없이 신력을 전해 주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전해 준 신력을 받아들여 자신의 몫까지 싸우라는 의미였다.

십여 명 남짓 남은 아케니아의 전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카르고에게 신력을 주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유는 단 하나, 카르고가 그들 중에서 가장 강하고 노련한 전사였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카르고의 힘은 수백 년의 봉인기간 중에도 거의 소실되지 않았다. 신력이 곧 힘인 법, 카르고는 과거보다 몇 배나 강해진 것이다.

꼭 감은 눈으로 한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멍청한 선택을 했군, 친구들. 그냥 봉인당해 버렸다면 다시 만날 수 있었을 것을.”

그러나 동료들에겐 그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카르고의 어깨에는 막대한 짐이 지워졌다. 비록 얼음 거인에 대한 복수는 물 건너가 버렸지만 아케니아 혈족 전사의 혈통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는 숙명이 말이다. 게다가 동료들의 희생 덕으로 인해 카르고는 봉인되기 전보다 몇 배나 강해졌다. 몬스터를 상대하며 카르고는 넘쳐나는 힘을 똑똑히 느꼈다.

큼지막한 주먹을 들어 올려 눈물을 닦아 낸 카르고가 나지막이 다짐했다.

“친구들. 반드시 아케니아 전사의 혈통을 이어 나가겠네. 그리고 아케니아의 전사들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세상에 똑똑히 알리도록 하겠네.”

* * *

다음 날 세실리아는 모처럼 개운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거친 필드에서 노숙을 하다 오랜만에 접한 여관의 푹신한 침대는 편안한 숙면을 제공해 주었다. 방문을 두드려 카르고를 깨운 세실리아가 여관 1층으로 내려와 식사를 했다. 고급 여관답게 음식 맛은 훌륭했다. 카르고 역시 음식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훌륭한 아침이었다, 세실리아.”

“흠. 아만족의 입맛도 인간과 다르지 않군요. 카르고 님을 만나기 전에는 아만족이 벌레나 몬스터를 잡아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벌레는 즐겨 먹는 편이다.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지.”

“설마……. 농담이시겠죠?”

질린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세실리아가 카르고의 손을 잡았다.

“우리 나가요. 가장 먼저 카르고 님의 무기를 장만해야겠어요. 전사에게 무기가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비극이죠.”

세실리아는 카르고를 시장의 뒷골목에 있는 무기 좌판으로 데리고 갔다. 동료들이 사냥을 마치면 항상 이곳에 들러 무기를 수선하거나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좁은 골목에는 수백 명의 상인들이 좌판 위에 무기를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중간중간 가열로와 모루를 가져다 두고 망가진 무기를 수선하는 장인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한번 골라 보세요. 아마 쓸 만한 것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카르고는 심드렁하게 한 번 훑어본 뒤 고개를 내저었다.

“전부 쓰레기들이다. 쓸 만한 것은 하나도 없어.”

그 말에 세실리아가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만약 그 말을 무기 상인들이 알아들었다면 틀림없이 칼부림이 날 것이다. 그러나 카르고가 아만족의 언어로 말했기에 알아들은 상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눈이 높으시군요. 그럼 좀 비싸더라도 안쪽의 무기점으로 가 봐요.”

카르고는 세실리아가 이끄는 대로 골목 안쪽에 위치한 무기점으로 향했다. 조금 전의 좌판 시장과는 달리 무기점 앞은 한산한 편이었다. 그럴 것이 이곳은 주머니가 두둑한 귀족이나 기사 계급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였다. 진열장에 진열된 무기에는 모험가들이 감당하기 힘든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 그러나 진열된 무기를 본 카르고는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하나같이 쓸모없는 것들이야. 더 좋은 곳은 없나.”

입을 딱 벌린 세실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기점 주인이 카르고의 아만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곳보다 상위라면 명품 맞춤무기를 제작하는 곳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곳의 무기는 우리 주머니 사정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일단 가 보자.”

세실리아가 카르고를 데리고 간 곳은 골목길 가장 안쪽이었다. 그곳의 분위기는 더욱 한적했다. 개중에서 진열장을 갖춘 상점은 하나도 없었다. 좁은 문을 가진 나지막한 벽돌 건물 안에서 쇠 두들기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흘러나왔다.

“이곳이에요. 그런데 이곳의 무기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요.”

“아무리 비싸도 전사라면 제대로 된 무기를 써야 한다.”

카르고가 머뭇거림 없이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실내에는 수증기가 자욱했고 구석에는 대장장이들이 웃통을 벗어던진 채 열심히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손님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나마 벽에 몇 자루의 무기가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카르고는 제법 오랫동안 무기를 쳐다보았다. 보자마자 고개를 흔들던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종국에는 어김없이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렸다. 장인들은 그런 카르고와 세실리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세, 세상에! 도대체 어떤 무기를 고르시기에…….’

무심코 벽에 걸린 무기의 가격표를 쳐다본 세실리아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별로 특이해 보이지 않는 롱소드에 그녀가 가진 전 재산에 가까운 금액이 붙어 있었다.

‘저, 정말 비싸군.’

카르고를 따라다니는 세실리아의 얼굴에 조금씩 그늘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곳의 무기가 명품이란 소린 들어봤지만 이토록 비쌀 줄은 몰랐다. 아마 카르고의 무기를 사고 난다면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계속해서 공방을 기웃거리던 카르고의 발걸음이 마침내 멈췄다. 미동도 하지 않고 벽의 무기를 쳐다보던 카르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찾았군.”

그 말에 세실리아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가격표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벽에 걸린 무기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카르고가 망설임 없이 다가가서 벽에 걸린 대검을 풀어냈다. 순간 요란한 음향이 울려 퍼졌다.

따르르르릉.

아마도 도난 방지를 위한 알람 마법이 걸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런.”

세실리아가 화들짝 놀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르고는 유심히 검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기만 했다.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웃통을 걷어붙인 장인들이 망치를 들고 달려오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때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음성에 세실리아가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 놀랐다.

“포포리족?”

키가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마치 새끼곰과 너구리를 섞어 놓은 듯한 생김새의 포포리족이 느긋하게 담배를 피워 문 채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검을 사러 왔나?”

세실리아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요.”

“흠. 차림새를 보니 내 물건을 살 만한 형편이 못 되는 것 같은데.”

그 말에 카르고가 고개를 돌렸다. 포포리족을 보는 순간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포포리족은 아만족과 마찬가지로 외모만으로 나이를 짐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카르고의 예리한 눈은 포포리족의 눈동자에 담긴 연륜을 간파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이 틀림없었다.

“삶의 연륜이 느껴지시는 분이군요. 노인장께서 이 검을 만드셨소?”

담배를 피던 포포리족의 눈매가 꿈틀했다.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포포리족의 입에서 유창한 아만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김정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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