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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획] 포스트 '라챗&클랭크 리프트 어파트'

개발자이자 게임작가인 동시에 열혈 게이머인 필자 '소금불'의 개발자 칼럼 코너입니다. '소금불' 필자가 현업 경험을 살려 다양한 시각으로 게임과 관련된 주제를 풀어 독자 여러분께 알기 쉽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글='소금불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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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RPG의 추억

어렵살이 PS5를 구하고 온라인 숍에서 한 액션게임의 구매 버튼을 눌렀을 때, 문득 옛 추억이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세뱃돈과 몇 달치 버스비를 아껴 게임팩 하나를 샀던 필자는, 일본어는커녕 아무런 요령도 없이 그 게임을 섭렵한 반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게임을 진행했다. 그렇게 절실하게 플레이 했던 이유는 그 명성만큼 감동적인 시간여행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 게이머들의 심장을 뛰게 했던 20세기의 위대한 RPG '크로노 트리거'는 필자의 인생 첫 RPG이기도 했다. 발명품 사고로 '차원의 틈'이 열리면서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고, 원시-중세-미래의 친구들로 조직된 이 시간탐험대의 모험은 필자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색조차 맘껏 쓰지 못했던 16비트 콘솔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차원이동'이란 주제는 한 RPG 명가의 손에서 멋지게 구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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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의 아버지' 사카구치 히로노부,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 등 드림팀 결성으로도 유명했던 게임(스퀘어 에닉스).
◆초능력자에 얽힌 소망 하나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다닐 시기, 한 여자와 무난한 얘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극장 티켓 두 장을 끊었다. 영화 '점퍼'의 주인공은 오전엔 은행 금고털이, 정오엔 스핑크스 머리에서 일광욕, 저녁엔 파리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기 등, 일상의 비범한 행복들을 하루만에 압축시켜서 즐기는 순간이동술사였다. 특히 같은 재주를 지닌 동료와 여러 도시들을 휘저으며 벌인 추격신은 아직까지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극장을 나와 한 카페 테이블의 빈 커피잔을 앞에 앉아있는 그녀에 대한 생각대신 몇 가지 호기심들로 채웠다. 과연 그 영화가 게임으로 나올 수 있을까? 온갖 게임월드를 누비는 하이퍼 액션히어로를 직접 조종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지만 하드웨어 제약에 따른 스테이지 설계상, 이 바람들을 액션게임으로 구현하기엔 시기상조였다. 이후 그 테마를 멋지게 재현한 액션게임은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썸녀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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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게임화되긴 했지만 하드웨어의 한계 때문에 테마를 살리기엔 부족한 퀄리티였다(20세기 폭스).
◆'록맨'을 사랑한 개발자의 고민

30대에 들어선 필자는 '록맨'의 오마쥬를 담아 2D 횡스크롤 액션게임 제작에 몇 년간 몰두했다. 어떤날은 적과 배경(2D 타일)을 배치하다가 퍼포먼스(fps)가 나오지 않아서 큰 고민에 빠졌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작성한 맵(LEVEL)이 커서 테스트 기기(폰) 안에 담기 어려운 일이었다. 고심 끝에 맵을 반으로 나누는 결정을 했지만, 그렇게 되면 애초에 기획했던 진행구성을 갖출 수가 없었다. 하드웨어의 제약 때문에 재미가 발목 잡히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존경하는 게임의 연출을 힌트로 삼았다. 하나의 맵 가장자리에 닿았을 때 짧은 로딩신을 끼워 넣는 거였다. 지나간 맵 하나를 덜어내서(메모리상) 하드웨어의 부담을 덜고, 다음 진행할 새로운 맵 하나를 바로 로드(LOAD)해 플레이 템포의 단절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패미컴 시절 '록맨'을 해본 이용자라면 알만 한 연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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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하드웨어 성능(FC)을 위해, 두 개의 구역으로 맵을 분할. '구역1'의 오른쪽 벽에 닿으면 로딩 신이 연출되고,'구역1'의 적(펭귄)은 사라지며(UnLoad) '구역2'로 이동(캡콤).
◆라챗&클랭크,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세월이 흘러 이제 게임이라는 취미도 시들한 시기, 지난해 초 열린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PS5)의 발표는 필자에게 많은 자극을 줬다. 새로운 게임 무대로 이동할 때 길고 긴 좁은 통로와 엘리베이터 신 같은, 개발 트릭이 사라진다는 마크 서니 수석 설계자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하드웨어사양이 올라가도 고해상도와 고용량의 게임 에셋 처리를 위한 효율적인 관리는 필수다. 소니의 슬로건 'Play Has No Limits'처럼, PS5의 핵심은 맵(LEVEL) 디자인 한계의 극복이었다. '록맨'의 사례를 겪었던 필자에게 이런 점은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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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SSD를 중심으로 일체형 아키텍쳐가 특징인 PS5(playstation youtube).
드디어 발매된 '라쳇' 시리즈 최신작은 그렇게 내 숙원을 현실화시켰다. 픽사(Pixar)풍 비주얼, 무기와 촉감을 일치시킨 듀얼센스 등 많은 점에서 화제가 됐지만, 필자의 주 관심사는 '차원이동'을 활용한 게임 플레이와 연출 기법이었다. 스위치 하나로 거대한 환경을 조작하거나, 영화 '점퍼'처럼 여러 장소를 워프하며 보스와 싸우는 신은 가히 혁명적인 성취다.

이전까지 게이머들은 까만 정적이 흐르는 로딩 화면이나 때우기식 이벤트 영상을 강제로 봐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하드웨어의 저주에서 벗어나 좀 더 몰입감과 일체감 있는 게임 플레이를 즐기는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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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전' 스위치로 순식간에 환경이 전환될 때 필자는 희열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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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광활한 스테이지를 누비며 보스전을 치르는 장면.
◆포스트 '라쳇&클랭크 리프트 어파트'

개발사는 차원이동술(次元移動術)이란 테마와 게임 플레이를 완벽하게 일치시키며, 근본적인 게임 디자인의 혁신을 달성했다. 좋은 게임이란 CG 영상이나 VGA의 수치 따위로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라는 진리가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순간이다.

시간여행을 하는 고전 RPG의 감동, 영화 속 초능력자에 얽힌 한 가지 바람, 그리고 개발자로서 한 번의 큰 고민을 품었던 필자에게, 이 작품의 엔딩은 여러모로 특별한 감동을 줬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21세기 게이머들은 또 한 번, 게임의 역사가 바뀌는 것을 목격하게 됐다. 비로소 필자는 이렇게 당당히 선언하고 싶다. '라챗&클랭크 리프트 어파트' 이후의 시대가 왔다고.

'POST RATCHET & CLANK RIFT A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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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를 상징하는 차원건, 디멘션네이터이 쏘아올린 것은 여러모로 특별하다(인섬니악 게임즈).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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