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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언니전지현과 나, 온라인게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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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 업데이트가 없을 정도로 개발진에게 버림받은 게임. 개발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캐릭터, NPC와 오늘도 씨름 중인 넥슨 클래식 RPG '일랜시아' 이용자들. 여러 불법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그저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에 만족하던 그들에게 대위기가 찾아온다.

'팅버그' 프로그램이 만연하면서 해당 프로그램을 쓰는 이용자의 캐릭터와 마주치기만 하면 게임이 종료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 처음에는 다른 캐릭터와의 만남을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게임을 이어가던 이용자들은 버그 캐릭터가 늘어나면서 제대로 게임을 즐길 수 없는 상황에 좌절한다.

중대 버그가 발생한 상황에서도 '일랜시아' 이용자들은 불만을 표출할 대상도, 해결책 마련을 요청할 대상도 없다. 10년 이상 업데이트도 없이 방치된 게임에 전담 운영자가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 게다가 '일랜시아' 이용자들은 운영자가 없는 틈을 타(?) 자동 사냥 프로그램을 비롯한 각종 비인가 외부 프로그램을 일상적으로 사용 중인 상황. '팅버그'를 없애려다 자동사냥까지 금지될까 걱정하는 이용자들은 '일랜시아' 서비스사 넥슨에 '팅버그' 수정을 요청하는 일조차 조심스럽기만 하다. 12월 전국 극장가를 강타(?)한 다큐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감독 박윤진)'는 이처럼 자타공인 '망겜'인 '일랜시아'를 오랜 세월 즐기고 있는 이용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랜시아'의 출시일은 2000년이 오기도 전, 지구가 멸망할 것을 걱정하던 시절인 1999년 7월1일. 자유도 높은 시스템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테일한 그래픽으로 주목받았으나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여타 중소 개발사라면 진작에 접었거나, 더욱 리소스를 투입해 부활을 노리는 시도를 해보고 접었을 가능성이 높겠지만 라인업이 다양하기로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넥슨은 '일랜시아'를 접지 않았고, 게임에 이렇다 할 변화를 주지도 않았다.

개발사의 방치 속에서도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비롯한 '마님은돌쇠만쌀줘' 길드원들은 망겜 친구 '아스가르드'에 대규모 업데이트가 단행되고, 비슷한 시기 출시된 '바람의나라'가 여전히 잘 나가는 상황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오프라인 길드 정모를 여는 등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랜시아' 접속을 이어갔다. 여전히 '일랜시아'에서 큰 의미를 찾는 이들을 위해 '내언니전지현'은 '팅버그'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

좌충우돌 노력을 이어간 끝에 '내언니전지현'은 넥슨 고위 관계자를 만나고, 넥슨 노조 방문에도 성공한다. 그 후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일랜시아' 개발자와 조우하기까지 한다. 비록 개발자는 자신의 젊음을 바쳐 만든 '일랜시아'에 대해 속속들이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내언니전지현'의 노력 끝에 십여년 만에 '일랜시아' 업데이트가 진행됐다. 많은 이들을 힘들게 했던 '팅버그'가 수정됐고, 감격의 이용자 간담회까지 열렸다.

"'일랜시아' 왜 하세요?"라는 질문은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오늘도 '망겜'에 접속 중이다. 모두가 같은 이유로 게임을 즐기고 같은 기준으로 게임을 고른다면 '일랜시아'는 진작에 사라졌을 것이다. 박윤진 감독은 자신이 게임을 즐기는 이유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게임 왜 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일랜시아'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더없이 재미있게 즐기 수 있는 작품이지만, '일랜시아'를 모르더라도 저마다 자신이 즐기는, 혹은 과거에 플레이했던 게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영화를 보고 '일랜시아'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 관객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인디영화제에 출품해 주목을 받더니 결국 전국 극장 개봉까지 이끌어낸 18년차 '일랜시아' 게이머 박윤진 감독. '미션 임파서블'처럼 불가능할 것만 같은 '망겜 살리기' 임무 수행에 성공한 박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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