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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0. 이건희의 추억 ⓸ 스포츠 말말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는 누굴까요”

어느 날 삼성 임원회의 석상에서 이건희 회장이 불쑥 물었다. 회장의 의중을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 누구는 투수라고 했고 어떤 이는 4번 타자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설마 그런 뻔한 대답은 아닐 것이라고 봤다.

“포수입니다. 포수는 경기 내내 쭈그리고 앉아있는 가장 힘든 보직인데 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투수를 리드해야 하고 상대 타자들을 분석해야 하고 자기 팀 수비수들을 보며 컨디션을 파악해야 하죠. 그래서 안방마님이라고 하는 건데 야구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션이 포수입니다. 고생은 다하면서도 티 내지 않는 그런 포수정신, 캐처정신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0. 이건희의 추억 ⓸ 스포츠 말말


“일본은 이겨야죠. 일본을 이기려면 일본보다 더 잘하는 나라에게 배워야 합니다.”

이건희씨가 레슬링협회장에 취임한 것은 1982년. 그는 우리 선수들이 일본선수만 만나면 주눅이 들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정적일 때 패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많은 메달을 따자면 ‘일본 무섬증’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 회장은 일본을 잡으려면 일본보다 강한 나라로부터 레슬링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대표선수들을 동구권 국가로 전지훈련을 보내는 한편 유럽 등지의 세계적인 코치를 초빙, 우리 선수들을 가르치게 했다.

우리 선수들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금메달 10-7로 누르고 처음으로 레슬링종합우승을 차지했다.

“레슬링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1982년 레슬링협회장이 된 후 첫 이사회에서 이회장은 흔히 말하는 ‘근력’ 대신 ‘레슬링 근육’이라는 말을 사용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단지 힘을 키우는 게 아니고 굳이 레슬링 근육을 키우자면 조금은 다른 운동이 필요했다. 코칭스탭은 어찌 되었든 레슬링에 최적화된 몸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요즘은 운동마다 특성이 다르고 그래서 그 운동만의 근육 필요성에 대해 당연히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야구근육이니 골프근육이니 하는 그런 말 자체가 없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르지.”

1984년 져주기로 선택한 한국시리즈 파트너 롯데에게 패한 후. 이겼더라면 처음부터 다시 그 많은 욕을 다 먹어야 할 텐데 져서 그 말이 쑥 들어가 버렸으니 다행이라며.

“돈 많이 쓴다고 비난하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투자하죠.”

1987년 쯤의 레슬링기자 간담회에서. 기자들이 레슬링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고 하자 ‘돈은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이 쓰면 많이 쓴다고 기사를 쓰곤 하던데 그런 비난을 하지 않으면 서울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딸 수 있도록 투자하겠다’면서.

“골프는 룰과 에티켓과 자율”

골프는 심판이 없다. 선수가 알아서 다 한다. 룰과 양심의 스포츠다. 그런 정신을 골프에서 배워야 한다. 임원회의석상에서.

"그 어떤 승리에도 결코 우연은 없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을 설명하며 스포츠의 참된 의미를 강조했다. 1997년 출간한 자작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메달리스트답게 단정한 복장을 하고 책을 많이 사서 보도록 하기 위해서야.”

서울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레슬링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체육회에서 주는 경기력향상연금과 똑같은 금액을 협회에서 별도로 지급하겠다고 했다. 레슬링 메달리스트는 그래서 연금이 2배인데 그저 당근책인줄만 알고들 있었으나 자기 나름의 뜻이 있었음을 뒤늦게 밝혔다.

“럭비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럭비는 눈이 오고 비가 쏟아져도 결코 그만두지 않는다. 투지, 단결력, 순간적인 판단력을 요구하는 럭비에서 강인한 정신력을 배워야 한다. 이회장은 평소 이 말을 자주 한 편이다. ‘이건희 개혁 10년’ 중에도 소개되었다.

“드라이버로 180야드를 보내는 건 쉽다. 조금만 노력하면 200야드도 가능하다. 코치를 받으면 230야드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250야드 이상 보내려면 다 바꿔야 한다. 스탠스, 그립, 자세등 모든 것을 다 바꿔야 가능하다"

삼성의 개혁을 골프에 빗대며 한 말.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말과 통하는 일면이 있다.

“열심히 관찰하면 다 재미있어요.”

레슬링경기장에서 두어시간 이상 그렇게 꼼짝 않고 앉아있으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찬찬히 지켜보면 재미있고 재미있으니까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 지도 모른다며. 이 회장은 뭐든지 시작하면 철저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임을 여기서도 보여 주었다.

“한 10년은 내다봐야죠. 그리고 정면승부하세요.”

이건희 회장은 1970년대 초 운동삼아, 취미삼아 탁구를 배운 적이 있다. 당시 그에게 탁구를 가르치고 공을 받아 준 사람은 한일은행 탁구코치로 있던 박성인씨였다. 박성인씨는 이 인연으로 1978년 삼성 탁구단의 초대 감독을 맡았고 후일 최초의 스포츠계 출신 임원이 되면서 전체 삼성 스포츠단 단장에 올랐다.

탁구는 중국의 아성. 이 회장은 중국탁구를 꺾으려면 끈기와 승부욕이 필요하다며 강조한 말이다. 공교롭게도 10년이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탁구는 만리장성을 뛰어넘었다. 양영자-현정화의 여자복식조가 결승에서 중국의 자오즈민 조를 누르고 우승했고 유남규가 남자단식 금메달을 획득했다.

“잘 될 겁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결정하는 2011년 더반 총회 하루 전날 이건희 회장은 유치를 자신하는듯한 대답을 했다. 평소 조심스러운 그의 언행으로 보면 이례적이었다.

평창은 앞선 두 차례의 유치경쟁에서 1차 투표에서 이기고도 과반에 실패, 2차에서 미끌어졌다. 이번 유치전 역시 유럽의 두 나라, 독일의 뮌헨과 프랑스의 안시를 상대하고 있어 무조건 1차 과반이어야 했다.

예상한 95표중 48표는 얻어야 하는 상황을 일깨우며 기자들이 질문했음에도 이 회장은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회장은 그동안의 접촉을 통해 그때 이미 50표가 아니라 60표가 넘으리라는 것을 예상했다.

투표결과는 평창 63표, 뮌헨 25표, 안시 7표.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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