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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문학개론] 용개형! MMORPG가 왜이래? 한국 MMORPG가 잃어버린 5가지

2020년 새해를 맞아 데일리게임에서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인문학도의 눈으로 게임과 게임 세상 이야기를 해보는 코너입니다.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온 '찐 게이머' 필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된 게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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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네임드 '용개(Drakedog)'. 그래도 그 땐 낭만이 있었다.
[글=신진섭 게임칼럼니스트] 압도적인 게임 볼륨, 수많은 사람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가는 이야기, 전우들과 힘겹게 몬스터를 사냥하며 쌓은 추억, 화려한 검과 마법의 대서사시. 분명 MMORPG(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에는 다른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긴 플레이타임과 높은 비용에도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대표 게임 장르로 살아남는 거겠죠.

한국 게임의 역사에서 MMORPG는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 이용자라면 누구나 가슴 한 편에 자신의 '최애' MMORPG가 있기 마련입니다.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첫사랑 같은 존재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한국 MMORPG를 둘러싼 평가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애호가 못지않게 많은 안티를 거느리는 장르가 됐습니다. 한국 MMORPG라면 덮어두고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확률형 아이템과 과금 유도정책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어떤 이는 가슴 뛰는 모험, 혹시나 득템을 하지 않을까하는 설렘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MMORPG는 매출 최상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이 괴리가 생기는 걸까요.

◆MMORPG는 왜 재미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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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해방전쟁'. '리니지2'를 전설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폭정에 반대하는 민초들의 저항정신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온라인게임이 재밌는 이유가 뭘까요. 혼자 즐기는 스탠드 얼론과는 다른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경우의 수도 다양해집니다. 이미 성격과 대사가 정해진 NPC와는 달리 플레이어는 자신의 성격과 성황에 따라 무한대의 맥락(콘텍스트)을 만들어냅니다.

대규모 이용자가 실시간으로 플레이하는 MMORPG는 이런 온라인게임의 요소를 극대화한 장르입니다. 개발자는 그저 주사위를 쥐어주고 판을 깔아줄 뿐 게임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이용자의 손에 달려 있죠. 집합 지능에 의해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가능합니다. 이야기가 선형적으로 흘러가는 CRPG, GM(게임 마스터)의 손에 결말이 결정되는 TRPG와 구별되는 MMORPG의 특장점입니다. 애초에 짜인 각본보다는 그때그때 이용자들이 대처하는 순발력으로 극을 끌고나가는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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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의 아버지' 리처드 게리엇. 개발자들의 '신'에서 '우주먹튀'로 격하됐다.
MMORPG는 점차적으로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 직업, 클래스입니다. 직업마다 특징이 달라서 솔로잉보다 파티 플레이 시 더 게임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탱커는 체력이 높지만 데미지가 낮으니 격수가 필요해지고, 힐러는 파티의 안정성을 높여주지만 단독 사냥이 어렵죠. 직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이용자 간의 인터랙션(상호작용)이 생겨납니다.

튜토리얼의 솔로잉에서 2~3인이 끼리끼리 뭉쳐 마을 근처 사냥을 끝내고 나면 성장이 정체되는 순간이 오게 되고 더 큰 마을을 찾아 이동하게 됩니다. 어두침침한 던전을 통과하고 배를 타고 도착한 성에는 더 나은 아이템과 한층 강력해진 몬스터들이 이용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초보 이용자들을 등쳐먹으려는 사기꾼들도 득실득실하죠.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용자들은 더 강한 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서로간의 무한한 이타성을 발휘하는 집단 길드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MMORPG에서의 성장은 단순히 무기와 레벨의 수치 증가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공간 이동과 사냥의 반복을 통해 구축한 집단의 힘이야말로 진정한 강력함입니다. 타인이 있기에 MMORPG는 작동합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있었기에 몇 달간의 노가다를, 수백 번의 레이드 보스 트라이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에스펜 아레 코펜하겐 IT대 게임학과 교수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스토리에서는 게임 개발자에 의해 만들어진 텍스트, 즉 텍스톤(texton)보다 게임 사용자에 의해 구현된 텍스트, 즉 스크립톤(scripton)이 스토리로서 훨씬 더 심오하고 감동적이며 가치가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대규모 RPG?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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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퀘스트'. PvE 협력 플레이의 토대를 닦은 게임이다.
그런데 최근의 한국 MMORPG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출시 첫날이면 서버는 사람이 몰려 접속조차 어렵지만 게임에 접속해보면 사람 냄새를 맡기가 어렵습니다. 접속자 수가 아니라 사람 간의 접촉 빈도가 줄어든 겁니다.

'어그로', '레이드' 개념을 정립시킨 '에버퀘스트'를 떠올려 봅니다. 동렙의 몬스터를 1대1로 사냥하는 것도 버겁습니다. 파티 플레이 없이는 성장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냥 후 물약을 퍼먹으면 파티가 바로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몇 마리를 잡으면 5분 정도는 쉬는 '캠핑'을 거쳐야 합니다. 캠핑은 수다로 이어지고 이것저것 묻고 질문하다 농담 따먹기도 하게 됩니다. 던전 하나만 클리어하고 나오면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서로 안부를 묻게 될 만큼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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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추가. 어차피 이름만 존재할 뿐 만날 일이 없다.
최근 한국 MMORPG는 어떻습니까. 초보는커녕 거의 만렙이 될 때까지 친구 하나 사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레이드야 때 되면 자동매칭으로 때려잡으면 되고, 몬스터는 솔로 플레이로 잡아도 충분할 만큼 약하게 설정돼 있습니다. 사냥터간의 이동은 텔레포트 등으로 생략합니다. 그저 클릭 한 번이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채팅을 할 시간적 여유도, 그럴 콘텐츠도 없습니다. 친구창엔 친구가 이미 가득 차 있지만 아무런 애정도 느끼지 못합니다. 푸시 보상을 받기 위해서 그저 머릿수만 채워놓았거든요. 일정 레벨을 넘기면 일단 가입하고 보는 모바일 MMORPG의 길드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픈필드를 자랑하는 게임이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타인이 난입할 수 있는 개방형 '존(ZONE)'은 찾기 어렵고 사냥터는 대부분 인스턴트 던전으로 채워집니다. 몬스터와 아이템을 독식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없다면 영웅전설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내 사냥감을 뺏어야, 아이템을 갖고 튀어야 갈등이 발생합니다. 싸움이 격해지다가 칼이 나갑니다. 1대1 PK는 길드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죠. 만남-전투-고난-승리라는 MMORPG 서사의 기승전결을 만들기 위해선 사냥터가 곧 전쟁터가 되는 개방성이 필수적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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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ORPG는 전통적으로 점차적으로 친화집단을 넓혀가도록 설계한다(사진=이인화 '디지털스토리텔링').
개인 간 거래도 대부분 거래소 시스템으로 대체됐습니다. 친한 길드원에게 아이템을 공짜로 넘겨주는 미덕도, 서로 간을 보기 위해 '제시 ㄱㄱ'하던 MMORPG의 풍경도 사라졌죠. MMOPRG에서, 매시브(Massive)는 빼야 하는 게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혼자서 무쌍 찍어? K-MMORPG는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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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직업을 바꿀 수 있으면 RPG라고 할 수 있나?
그래서 MOPRG쯤은 되냐 하면 이것도 좀 아리송합니다. RPG의 근간인 역할구분마저 애매한 게임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아처보다 원거리에 능하면 안 됩니다. 전사가 마법사보다 지능이 높아서는 RPG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RPG에서도 듀얼 클래스라는 게 존재하긴 했지만 범용성과 무력을 뒤바꾼 형태로 페널티가 분명했습니다. 한 이용자가 모든 이를 도륙내는 서사는 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그것으로 족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이 됐습니다. 이른바 클래스 체인지(변신) 시스템입니다. 과금만 하면 사냥터에 맞게 또 PK를 위해서 직업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게 지원하는 게임이 적지 않습니다. 역할놀이라는 RPG의 개념자체에 도전장을 던진 겁니다. 가위바위보 식의 상성이 사라지면서 개인이 집단의 힘을 압도하기 쉬운 구조로 게임이 변모해갑니다. 파티 플레이의 중요성 역시 줄어듭니다. 다양한 캐릭터를 체험하기 위해 여러 캐릭터를 키울 필요도 사라집니다. 이용자의 편리함을 극대화하다보니 고전적 의미의 역할놀이에서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투력이 모든 걸 말하는, 선택이 사라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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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작가도 이렇게 그리기 싫었는데 만화가 너무 잘나가는 바람에 그만...
선택할 필요가 없어진 건 캐릭터만이 아닙니다. MMORPG의 이야기 자체가 단 하나의 결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선형적 구조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경험을 한다는 MMORPG의 장점은 희석되고 모두가 천편일률적인 경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캐릭터를 만들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튜토리얼을 끝내면 무언가를 수집하라거나 몇 마리를 때려잡으라는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퀘스트 동선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새로운 스킬을 배우면 잠깐 즐거웠다가 무한의 탑이 열리고, 요일던전이 생기고, 레이드가 추가됩니다. 클리어를 위한 머리싸움을 요구하는 '기믹'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략적 상상도 필요 없어진 지 꽤 됐죠. 론칭 초기에나 몇 개 깔아둘까, 시간이 지나면 업데이트 쫓겨 허겁지겁 보스몹 만들기에 바쁩니다. 모바일과 PC 모두에게 적용되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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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전사.
그러다보니 K-MMOPRG 대다수에서 개인의 가치는 곧 전투력입니다. 장비, 스킬, 레벨의 총합이 캐릭터의 전부죠. 민감한 조작이 어려운 모바일 기기의 특성상 컨트롤이 게임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한으로 축소했습니다. 스토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쓸 필요도 없습니다. 애초부터 선택지라는 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동사냥까지 기본으로 들어가 있어서 이제는 사실상 방치형이나 클리커 게임의 모습을 띄게 됐습니다. 다르게 갈래야 갈 길이 없으니 이용자들은 경주마처럼 '더 빨리'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이게 모험이야 숙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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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간편하게', '어디서나' 즐길 수 있다면서 실제 해보면 '하드코어'하게 '언제나' 돌릴 것을 요구한다.
사람도 없고, 역할도 없고, 선택도 없습니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이건 더 이상 모험이라고 부르기 힘든 노동에 가까운 것이 돼 갑니다.

퇴근 후 7시부터 자기 전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일일과제와 레이드를 소화해야 합니다. 어차피 전투력 박치기라서 전략을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임 접속이 뒤처지지 않기 위한, 길드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남은 콘텐츠는 MMORPG의 꽃인 대규모 전쟁, RvR 뿐입니다. 이용자들이 무의미한 퀘스트를 졸린 눈으로 반복하는 이유입니다. 대규모 전쟁의 틀을 잡은 '다크에이지오브카멜롯(다옥)'을 생각해 봅니다. 3개 진형의 개성이 천차만별입니다. 배울 수 있는 스킬도 다르고 언어도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초보존부터 박투가 벌어지다보니 피아의 구분이 뚜렷합니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아이온', '다크에덴' 등 RvR로 성공한 초기 MMORPG들은 죄다 '다옥'의 영향력 아래에 있습니다.

현재 K-MMORPG는 왜 싸워야 하는가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백과 흑의 색깔만 붙여놓고 고렙 아이템을 얻으려면 RvR에 참여하라고 등을 떠미는 방식이 주를 이룹니다. 어쨌든 RvR이 콘텐츠 부족을 해결해 줄 거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사고죠. 랭커 자리를 노리는 소수의 인원들은 살아남지만 대부분은 이 단계에서 게임에서 이탈합니다. 그간의 서사가 이들에게 전쟁에 참여할 동기를 제공하기에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간 지른 게 아까워서, 매몰비용 때문에 게임을 떠나지 못하는 소수 외에는 새로 론칭 하는 좀 더 거대한 스케일의 게임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낭만 없는 판타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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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아메리카 윈터솔져'. 비밀과 역경이 영웅을 완성시킨다.
대부분의 영웅 서사는 이렇습니다. 평범한 세계에 머물던 주인공이 특별한 세계로 떠나게 되고(분리), 시련을 거쳐(통과의뢰) 다시 원래 세계로 복귀(회귀)하면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헤라클레스 신화부터 김용의 '영웅문', 현대의 '마블 유니버스'도 원초적인 구조는 동일합니다. 이야기의 결론보다는 과정에서 감동이 발생합니다.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의 모험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줬다면 어떨까요. 캡틴 아메리카가 말라깽이가 아니라 날 때부터 그냥 강한 무결점의 사나이였다면 이만큼 재미있는 서사는 완성되지 않았을 겁니다. 비밀과 역경이 있어야 모험, RPG의 세계는 살아 숨 쉬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 MMORPG는 출발선부터 다른 불공평한 사회라는 걸. 누군가는 나무갑옷과 초보자 단검을 들 때, 지갑전사는 초월변신과 전설급 무기로 시작합니다. 이 최초의 격차는 영구히 좁혀지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다년간의 누적된 경험으로 체득했습니다.

판타지 세계란 포장지를 쓰고 나오지만 '환상(Fantasy)'을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현실의 경제력이 가상 세계에 너무나 분명하게 영향을 끼칩니다.

2000년대, 정액제 시절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습니다. 노력은 분명 결실을 맺었습니다. 하루에 12시간을 게임에 바친다면 12시간만큼의 성장과 주변의 인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설령 게임 플레이 시간이 뒤처지더라도 친구를 불러 '다구리'를 놓으면 강자를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템 거래가 있다한들 게임 바깥에서 이뤄지는 특성상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계정비가 충분치 않은 청소년들은 아이템을 팔아 계정비를 마련하기도 해서 큰 불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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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은 게임사들이 직접 아이템을 판매합니다. 라인이 아니라 게임사가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죠. 고가의 아이템은 필드에서 드랍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일발역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습니다. 푸시로 넣어주는 사료나 받아먹으면서 연명하다가 바닥이 돼 플레이한들 언젠가 패배를 맞아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현실보다 더 잔인합니다. 개인 거래도 막아버렸으니 우리 자원을 몰아줄 수도 없습니다. 소 팔고 논 팔아서 장남에게 '올인'하는 사다리공략법도 막힌거죠.

계층이동은 막혔고 불평등은 고착화됐습니다. MMORPG는 더 이상 가상세계로서의 일탈을 제공하지 못하고, 현실의 부조리함을 투영하는 듯 보입니다. 제 아무리 숙제를 하고 노력해봤자 사회의 변두리로 고립돼 바닥으로 내려올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헬반도에서는 이게 MMORP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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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류의 뿌리는 사실 반독점 사상이었다.
세계 곳곳에 호텔과 건물을 짓고 통행세를 받아 상대편을 파산시키는 '모노폴리(독점)' 보드게임의 뿌리는 사실 독점을 반대하는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지주게임(Landlord’s game)'으로 토지 사유화에 반대한 미국의 개혁가 헨리 조지에게서 감명을 받은 엘리자베스 매기가 만들었습니다. 헨리 조지는 토지 독점 문제 때문에 주기적인 공황이 발생하므로, 토지로부터 나온 수익을 모두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주게임'에선 통행료는 상대편이 갖는 게 아니라 국고에 환수돼 플레이어들에게 공평하게 재분배됐죠.

하지만 이 게임은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이후 상대방을 파산시켜야만 승리하는 현재의 '모노폴리'로 바꾸면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초기에는 파산 직전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비용을 면제해주는 구빈제도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죠. 공평은 달콤하지만 독점은 자극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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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게임'.
한국이란 지형성을 통하면 앞서 말한 단점들은 모두 장점으로 뒤바뀝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얘기한 바로 그 단점 때문에 K-MMORPG가 좋다고 합니다. 현실과 닮아있기에 대리만족하기에 적격이라는 겁니다. 남과 협력하는 재미보다는 독점하는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몇천만 원을 써서 현실에서 불가능한 최강자가 될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 게임들의 흥망성쇠가 증명합니다. '울티마 온라인', '에버퀘스트', '다옥', '세컨드 라이프', '길드워' 등 외국에서 흥행한 MMORPG는 한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매출 뿐 아니라 접속자수에서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수다를 떨 시간에 몹 한 마리를 더 잡아야 하는, 서로 돕기보다는 상대를 망가뜨리고 재미를 독점하는 게임들이 지금까지 생존해왔습니다. 여기가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장 빠르게 결과에 도달하는 데에 지구상에서 가장 숙달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역으로 한국 MMORPG가 서구권에서 성공한 경우도 찾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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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경제가 성장해도 체감 만족도가 늘지 않는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은 한국은 경제적 선진국 반열에 든 지 꽤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위상도 꽤 올라갔죠. 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OECD 중하위권에 머뭅고 있습니다. 스스로 모국을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은 드뭅니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에 따른 상대적 발탁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경제적 자본은 늘어났지만 국민들의 실질적 만족도에 기여하는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지체된 모습입니다.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됐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바삐 움직입니다. 남는 시간에 투잡, 쓰리잡을 뛰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쉬라고, 놀라고 해도 그동안 살아 온 관성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기형적으로 변화해 온 K-MMORPG도 각박한 한국의 사회상황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함을 남깁니다.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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