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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문학개론] 게임 뇌의 공포

2020년 새해를 맞아 데일리게임에서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인문학도의 눈으로 게임과 게임 세상 이야기를 해보는 코너입니다.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온 '찐 게이머' 필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된 게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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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면 뇌가 썩는다고(사진 출처=웹툰 '우리들은 푸르다')?
[글=신진섭 게임칼럼니스트] 게임중독자의 뇌파는 치매환자와 비슷하고 뇌 단층촬영 사진은 알코올 중독자와 닮았다. 청소년기 게임을 많이 접하면 뇌가 중독되기 쉬운 뇌로 바뀐다. 과도하게 게임을 하면 게임 주인공처럼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비디오게임에서 나오는 전파가 뇌에 악영향을 준다. 게임 때문에 얼굴은 사람인데 뇌는 짐승인 아이들이 늘고 또 죽어가고 있다.

일명 게임뇌 이론에 바탕을 둔 주장들입니다. 일본의 뇌 과학자 모리 아키오 교수의 '게임 뇌의 공포'란 책에서 나온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죠. 아시다시피 실상은 다릅니다. 이미 일본 내에서도 근거 없다고 판명이 났고, 심지어 게임을 하면 폭력적이 된다는 내용은 책에도 담겨 있지 않은, 한국에 와서 살이 붙은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뇌의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각설이도 아닌데 잊을 만하면 죽지도 않고 또 와서 아수라장을 만들곤 합니다. '4대악' 법이 있었고,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이, 얼마 전에는 혈액 시료, 즉 피를 통해 게임중독을 검사할 수 있다는 정부산업에 12억 원 가량이 투여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기도 했죠.

아쉬운 건 매번 논란이 반복되지만 게임은 문화라거나, 우리 게임이 그럴 리 없다 보다 더 나은 반박을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게임뇌 진영에 대항하기 위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들기가 애매하다는 거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중독 논란의 시초가 되는 게임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식된 게임, 사회주의 국가가 만들어 전 세계에 유행시킨 게임, 닌텐도가 사지 못해 안달이 났던 바로 그 게임. 바로 '테트리스'입니다.

◆'테트리스'를 하는 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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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 게임즈 버전 '테트리스'.


'테트리스'가 중독 물질이라니. 지금 와서 들으면 깜도 안 된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만큼 '테트리스'는 간단한 게임입니다. 7개의 색깔 퍼즐이 위에서 순서대로 아래로 떨어지고, 한 줄을 꽉 채우면 사라지고, 이를 반복해 가장 많이 블록을 쌓으면 되는 퍼즐게임입니다. 게임뇌 이론 신봉자에게 '테트리스'도 중독물질에 포함 되냐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저을지도 모릅니다. '테트리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90년대에는 '테트리스'는 중독적인 게임성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여서 문제라는 거죠. '테트리스'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에서 미국으로 수출됐는데요. 미국에선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을 망치려고 '테트리스'를 뿌렸다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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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를 하는 뇌의 모습에 관한 기사.
게임중독론에 대한 기념비적인 기사가 있으니, 1994년 5월 미국 IT 전문매체 와이어드의 '테트리스를 하는 뇌의 모습(This Is Your Brain on Tetris)'입니다. 기사를 작성한 제프리 골드 스미스는 우연히 '테트리스'를 접하고 두문불출 한 채 끝판을 깰 때까지 6주 동안 요즘말로 폐인이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생애 처음 겪는 강렬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테트리스'의 중독성을 취재해 기사로 내기로 결심했죠. 부제는 '알렉세이 파지트노프('테트리스' 제작자)가 퍼머트로닉(전자마약)을 발명했는가?'였습니다. 당시 '테트리스'를 이용한 인지 연구 실험을 진행하던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리처드 하이어 박사와 연락이 닿았죠.

리처드 하이어 박사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테트리스'를 하면 뇌가 실제로 변한다는 결과에 다다랐습니다. 물론 뇌가 썩는다는 게임뇌 이론은 아닙니다. 뇌는 자극을 받아도 변하지 않는다는 기존 상식에 반하는 결과가 도출된 거죠. '테트리스' 고수가 될수록 뇌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줄고 블록을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변화했습니다. 말하자면 차의 연비가 좋아지는 거죠.

골드 스미스는 이 현상에 '테트리스 이펙트(Tetris effect)'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금의 뇌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뇌의 가소성'을 발견한 겁니다. 이 기사는 현재까지 가장 많이 인용된 게임기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이밖에도 '테트리스'의 유익함에 대한 여러 논문이 나와 있습니다. 2015년에는 '테트리스'를 3개월 동안 매일 1시간 반 동안 플레이한 사람들의 대뇌 피질이 두꺼워지고 더 적은 포도당(에너지)으로 작업을 수행하게 됐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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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를 통해 PTSD 증상을 완화시킨 조사 결과.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임상신경과학과 에밀리 홈즈 교수는 2015년부터 난민과 함께 '테트리스'를 이용하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반복된 연구를 통해 효과를 입증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PTSD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이 자꾸 떠오르는 심리적 장애인데요, 이런 고통스러운 기억은 사고 발생 6시간 내에 강하게 뇌에 저장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건 발생 초에 '테트리스'를 플레이하면 게임을 하느라 뇌에 나쁜 기억이 저장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논리입니다. 대조군 실험을 해본 결과 '테트리스'를 플레이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기억 재현률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테트리스'가 죄가 아니면, '마인크래프'도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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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매일매일 DS 트레이닝'.
물론 게임뇌 이론의 도마에 오르는 건 '테트리스'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떤 게임도 아니라 게임 그 자체입니다. 게임뇌 이론을 믿는 사람 중에 정확히 어떤 게임의 어떤 부분이 중독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긴 힘듭니다. 게임을 하면 뇌의 어떤 부분이 파괴되고 변해서 문제라는 식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죠.

일본에서 게임뇌 이론을 격침시킨 건 이론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였습니다. 닌텐도의 '매일매일 DS 트레이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게임뇌 이론이 정면으로 반박 당한거죠. 누가 봐도 이 게임은 뇌를 망칠래야 망칠 수가 없던 '게임'이었습니다.

그럼 누군가는 또 폭력적인 게임이 문제라고 할 겁니다. 그럼 미국 청소년들이 종일 달고 사는 '캔디 크러쉬 사가'는 논의에서 빗겨나가게 됩니다. 또 다시 게임의 중독성이 문제라고 순환논리에 빠져들게 됩니다. 애초에 게임뇌 이론 및 게임 중독물질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게 있습니다. 게임이란 카테고리에 모든 게임을 집어넣기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사람마다 게임을 하는 동기도 제각각입니다.

공전의 히트를 친 샌드박스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떠올려 봅시다. 건축학도가 자신이 꿈꾸는 드림 하우스를 짓기 위해 밤을 새서 흙을 나르고 벽돌을 올립니다. 빨리 대작을 완성하고 싶어 조바심이 납니다. 현재 나와 있는 대부분의 게임 중독 척도에 따르면 이 사람은 명백한 게임 중독자입니다. 게임이란 매개를 통해서 건축이란 행동을 했지만 측정되는 건 껍데기일 뿐입니다.

방안에서 아버지가 인터넷 바둑을 네 시간 째 두고 계십니다. 2급에서 1급으로 올라가는 승급전입니다. 어머니는 거실에 앉아서 온라인 고스톱에 열중입니다. 옆방에선 아들이 2시간 반 째 '리그오브레전드'를 플레이 중입니다. 골드 승급전 패패승승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어머니의 불꽃 스매시가 작열하는 건 아들의 등입니다. 셋 다 분명 게임을 하고 있지만 게임중독자라는 시선에 시달려야 하는 건 아들 뿐입니다. 게임중독이 증상이 아니라 나이란 변수가 개입될 수 있다는 걸 시사합니다. 성인이 되면 게임중독이 자연스럽게 치료된다는 논문 하나 나온 적 없는 데 신기한 일입니다.

분명 지나친 게임이용, 과몰입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어떤 식의 게임이용이 문제적인지에 대한 기초연구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장르별, 플랫폼별, 연령별, 성별에 따라 게임이용 패턴이 제각기 다르지만 사례연구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도박, 음주와 싸잡아 '게임' 그 자체를 문제화 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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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직접 받은 게임중독 테스트. 12번 문항부터는 함정이나 다름없다.
하도 답답해서 직접 게임중독 테스트를 받아 봤습니다. 성인이 스스로 왔다니 놀라는 기색이 분명합니다. 환자 중 대부분은 부모님 손에 이끌려오는 청소년이랍니다. 척도는 인터넷 이용장애 척도를 복사 붙여 넣기(Ctrl+C, Ctrl+V)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마저도 기준이 너무 낮게 잡혀있어 지인들 대다수는 중증 게임중독으로 나타났습니다. 게임회사 종사자들은 즉시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떤 척도는 수능처럼 표준점수를 기준으로 해 일정 인원은 반드시 게임중독 위험군인 것처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누가 중독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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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더 이상 오프라인에서만 살 수 없다.
세상의 축은 점점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평가하는 이들의 문화지체 현상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스마트폰을 매일 붙잡고 산다고 자녀가 인터넷 중독이 아닌가 걱정하시는 학부모들이 많습니다. '애들이 폰으로 뭘 하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스마트폰을 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도 과도하게 주위의 관심을 원하는 '관심종자'들은 존재했습니다. 그때에는 인스타그램이 없었을 뿐입니다. 부모 몰래 밤새워 통화하던 경험이 이제 개인단말과 카카오톡으로 대체된 것 뿐 입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놀지 않고 혼자 모니터만 쳐다본다고 걱정이 될 수 있습니다. 기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몽 어스'나 '브롤스타즈'에서 친구들과 전우애를 쌓고 있는 중입니다.

스마트폰을 못하게 하면 짜증을 내는 자녀가 중독이 아닐까 걱정이라고요? 자녀가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혹시 알고 계신가요? 공부는 안 하고 PC방으로만 도는 아이가 걱정이시라고요? 십분 동감하지만 그게 게임 때문만은 아닙니다. 옛날엔 당구장, 영화관으로 도는 학생들이 왜 없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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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도 없는데 내려치고 싶어 안달이 난 건 아닐까. 그저 망치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나 해결방식을 일률적으로 모든 분야에 적용하려고 하는 증상을 말하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자주 보이는 망치 증후군입니다. 망치 대신 숟가락을 들고, 여의도를 배회하는 유령 같은 집단의 소식을 자주 건네 듣습니다.

미국 정신의학회(APA)의 정신질환 진단 매뉴얼 DSM-5은 정신적 중독을 내성, 금단, 조절실패, 집착 등의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안 하면 하고 싶고, 안 하면 못 참겠고, 하지 말라고 해도 집착하는 게 중독이라는 얘긴데요. 게임을 중독물질로 만들고 싶은 어른들에게 들어맞는다 싶습니다. 게임하는 아이들의 뇌와 게임중독에 중독된 어른들의 뇌. 더 공포스러운 건 어느 쪽일까요?

정리=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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