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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문학개론] '모동숲'이 한국에서 흥행한 진짜 이유

2020년 새해를 맞아 데일리게임에서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인문학도의 눈으로 게임과 게임 세상 이야기를 해보는 코너입니다.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온 '찐 게이머' 필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된 게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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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라 동물의 숲'.


[글=신진섭 게임칼럼니스트] 코로나19로 전 세계 경제가 시름했지만 게임계는 선방했습니다.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언택트', 사회적 거리두기 기조가 이어지면서 '방콕' 취미인 게임이 반사이익을 얻었습니다. 그 중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각광받은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모동숲)'입니다.

'모둥숲' 열풍이야 두 말하면 입 아프죠. 닌텐도 스위치 콘솔을 구하려 '디아블로3' 왕십리 대란을 방불케 하는 장사진이 전국 방방곳곳에 펼쳐졌습니다. 감염 우려와 일본 불매 운동도 '모동숲'을 플레이하고자 하는 열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지난 3월 출시된 모동숲은 12일 만에 1177만 개 팔려나갔습니다. 닌텐도 영업이익은 9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죠.

다들 '모동숲', '모동숲' 하지만 남녀노소 하기 좋다, 집에만 있다 보니 잘 팔렸다 정도의 분석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모동숲'이 잘 팔린, 특히나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엔터, 여행의 붕괴… 우리는 무인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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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즐거움을 앗아갔다.


전염병은 건강만 위협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회의 즐거움을 담당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저녁 6시 이후의 삶은 진공상태가 됐습니다.

프로야구는 우여곡절 끝에 열렸지만 여전히 무관중으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해외는 사정이 더 심하지요. EPL, MLB, NBA 등 인기 프로스포츠가 모두 중단됐고, 열리는 대회를 찾기 힘듭니다. 운동, 각종 모임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마스크 끼고 러닝머신을 뛰고, 2m 간격을 두고 권투를 하고 싶을 리 없습니다.

가요는 어떤가요. 콘서트는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고, 가수들은 신곡 내기를 꺼려하는 분위기입니다. 쇼케이스도 제대로 치르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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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끝나도 아마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여행을 가긴 어려울 것 같다.


여행이야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때 되면 분기마다 반기마다, 하와이로 방콕으로 떠났던 해외여행은 언제 열릴지 기약도 없습니다. 오죽하면 대형 항공사들도 인력감축에 직원들을 무기한 휴직 보냈겠습니까.

영화도 신작을 본지 오래됐습니다. 영화관 폐쇄도 폐쇄지만, 신작이 도무지 나오질 않습니다. 넷플릭스, 와챠를 뒤져보지만 영화관에서 보는 블록버스터의 느낌은 살리기 어렵습니다.

놀랍게도 '모둥숲'은 코로나로 생긴 재미의 결핍을 골고루 채울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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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동숲'의 너굴여행사. 친절하게 맞아주는 밤톨이 덕에 초반부터 즐거워진다.


게임을 켜고 마주한 여행사 너구리들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보딩패스를 끊고 해외로 나가는 여행의 맛을 잠시나마 느끼게 합니다.

경치 좋은 무인도에선 갖가지 야외활동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매를 따고, 땅을 파고, 집을 짓다 보면 실제 야외활동을 하는 듯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케이케이(K.K)의 '나비보벳따우'는 올봄 가장 히트한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차트 역주행입니다. 2008년 '타운으로 놀라가요 동물의 숲'에서 처음 소개됐던 노래가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랐습니다. '벚꽃좀비' 뺨치는 생명력입니다.



'모동숲'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메워주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못 만나도 개성 있는 '귀요미' 주민들이 매일 저녁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뽀야미의 흐느적거리는 몸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코로나로 인한 긴장감이 조금은 녹아내립니다. 모임은 어렵지만, 닌텐도만 있다면 언제든지 친구의 무인도에 놀러갈 수 있습니다.

◆놀고자 하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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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하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라고 정의합니다.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유희가 문화의 하위영역이 아니라, 문화는 원래부터 유희에서 시작되고 유희로 발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나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보다 '논다'는 것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은 겁니다.

빌게이츠는 컴퓨터 용량이 플로피 디스크 몇 개 정도면 적당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죠. 컴퓨터 성능을 발전시킨 건 생산욕이 아니라 놀이었습니다. '우주전쟁(스페이스워)'이 그랬고 이후엔 '스타크래프트'가, 또 '배틀그라운드'가 그랬습니다. 소수의 천재들을 위한 기술은 시장성이 떨어졌고, 다수의 대중이 원하는 유희를 제공하기 위해 기술은 발전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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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프로틴바. 영양학적으로는 괜찮다지만 이것만 먹고 인간이 살 수는 없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본능이 인간에게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무채색 옷에 매일 프로틴 바를 먹고 초가집에서 저녁 7시면 불을 끄고 잠들지 않았을까요. 분명 인류는 지금의 모습은 아니었을 겁니다.

유난 떤다고, 몇 달이나 됐냐고, 그냥 참지 못 놀아서 안달이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놀이라는 건 참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욕망은 빚과 같아서 한 번 생기면 결코 잠들지 않습니다. 일주일은 괜찮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밖으로 분출하라고 꿈틀대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뇌는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게 설계됐습니다. 하던 대로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단 얘기죠. 한국인이 또 흥의 민족 아니겠습니까. 놀던 가락이 있다 보니 분출구를 찾게 되고, 그러다가 찾은 게 '모동숲'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염병 5년 주기설… 코로나 이후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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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세 전환의 대가 'LoL' 챔피언 '우디르'. 코로나19 사태에서 WHO는 '우디르' 못지 않은 현란한 태세변환을 시전했다.


세계의 석학들은 전염병 창궐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5년 주기설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까지. 온도가 내려가면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할 수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전 세계가 하나인 지구촌이 돼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사람과 동물이 같이 걸리는 '인수공통'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도 이유로 볼 수 있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지워지지 않는 집단적 공포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만약 다음 전염병이 온다면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두기가 반복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자연스레 유희의 입지도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간 게임은 특정 계층만 즐기는 하위문화(서브컬처)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모동숲' 신드롬은 이런 인식의 틀을 깨는 역사적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즐거움을 찾기에는 게임만 한 게 없다는 건 다름 아닌 세계보건기구(WGO)가 '우디르급 태세변환'으로 증명한 바 있습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4월에 '집에서 게임을 하라'고 독려했습니다. 불과 1년 전에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했던 바로 그 WHO가 말이죠. 사무총장도 '모동숲'에 빠진 걸까요. 게임을 질병화 하려 했던 WHO가 진짜 질병을 만나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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