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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겜문학개론] 넌 이미 지르고 있다! 게임 과금의 심리학

2020년 새해를 맞아 데일리게임에서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준비했습니다. 인문학도의 눈으로 게임과 게임 세상 이야기를 해보는 코너입니다.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온 '찐 게이머' 필자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된 게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

[글=신진섭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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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과금 때문에 골치 아프신 분들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지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인은 소과금 이용자라고 생각했는데 월말이면 날아오는 수십만 원짜리 청구서에 놀란 경험이 있으십니까. 밤중에 홀린 듯이 기간제 상품을 결제한 뒤 후회하셨습니까. 이미 게임에 질렸는데 과금한 돈 때문에 삭제를 망설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글을 주목하세요. 게임사들은 쉬쉬하는 비밀, 당신의 돈과 시간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을 알려드립니다.

◆월정액 상품은 저렴하지 않다! '풋인더도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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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액 상품.
월정액 상품은 부분유료화 게임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상품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기본 상품과 비교하면 몇 배 이상의 가격 대비 성능비를 보장한다고 홍보하고 실제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게임사들이 큰 인심이라도 쓰는 걸까요. 그럴리가요.

월정액 상품은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게임사의 '빅픽쳐'에 빨려 들어가는 첫 걸음이죠. 월정액을 끊는 순간 여러분의 시간과 습관은 게임사의 것이 됩니다. 월정액을 끊는 순간 매일 접속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나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적어도 한 달 간은 게임을 접을 수 없는 몸이 돼 버리죠. 월정액은 미끼상품에 불과합니다. 한 번 지르기가 어렵지 두 번은 쉽고, 세 번은 더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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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고, 세 번은 프리패스다.
심리학에서 '풋인더도어(문간에 발 들여놓기)'라고 부르는 기술인데요, 사람들은 첫 번째 부탁을 들어주면 두 번째는 더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를 전도하려는 일명 '도쟁이'들이 애용하는 테크닉이죠. 처음엔 가벼운 질문이나 심리테스트를 던지고, 이후엔 카페에서 차 한 잔 사달라고 합니다. 여기까지 오면 벌써 두 번이나 상대방의 요청을 승낙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조상에게 제사를 차려야 한다'는 제안을 쉽게 뿌리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한 번 어떤 입장을 취하면 일관성 있게 이를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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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저렴한 한정 상품은 진정 저렴할까? 그렇게 저렴한 상품만 판매했으면 'AFK아레나'가 매출 5위일 리가 없다.
월정액이 첫 번째 부탁이라면, 두 번째는 한정 상품입니다. 스테이지를 어느 정도 깨다보면 시기적절하게도 고등급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몇천 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판다는 팝업(창)이 뜹니다. 이용자에겐 게임사가 설정해 놓은 막히는 장벽(허들)을 해결할 묘수처럼 보이죠.

여기까지 지르셨다면 과금의 심리적 장벽은 무너졌습니다. 또 한 번의 허들을 만난 당신은 아마 '초보자 패키지' 등 특가 아이템 구매를 고민하게 될 겁니다. 한 달 이상 플레이할 게임인데 몇천 원이 대수겠습니까. 여기까지 지른 돈은 많아봐야 몇만 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게임사의 심리 트릭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결핍 만들기! '질러라 그러면 뜰 것이다'

요즘 나오는 게임들은 대놓고 과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과금을 강요한다는 인상을 주면 이용자 이탈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용자가 원해서 과금했다고 믿게 만드는 데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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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에 쉴 새 없이 누군가 강화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왜 강화에 실패해서 게임 접었다는 메시지는 나오지 않을까. 지르면 될 것 같다는 착시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대표적인 것이 전광판 시스템입니다. 누가 SSR 등급 캐릭터를 뽑았는지, 고등급 강화에 성공했는지 쉴 새 없이 이용자에게 노출시킵니다. +12강의 영웅 등급 무기를 보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노강화 마법 등급 무기는 형편없이 느껴지죠. 심지어 스테이지 클리어에 아무 지장이 없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전광판을 통해 나도 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박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금을 합리화시킬 정보들을 수집하게 됩니다.

딜이 얼마나 잘 박히는지, 고등급 캐릭터가 결투장에서 얼마나 강력한지와 같은 것들 말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택적 지각'과 '확증 편향'이 발생합니다. 결과는 여러분들도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어느 야심한 밤 10만 원 넘게 지르고 한층 강력해진 모습에 뿌듯해 합니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월정액만 지르는 소과금으로 플레이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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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각종 편의성 상품은 어떤가요. 몇천 원이면 본진을 대신 관리해 주는 매니저를 고용하거나, 마을에 들리지 않고도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이고 그 시간에 캐릭터를 키워 남들보다 강해질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착한 과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길 원하지 않는 대부분의 이용자가 편의성 상품을 구매하게 되므로 당신의 우위는 사라져버립니다. 총 플레이 타임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마을 관리할 시간에 사냥터에 가 있기 때문이죠.

결핍 만들기에서 '아레나(결투장)' 시스템을 빼 놓을 수 없죠. 시나리오 중심의 게임 대부분이 왜 스토리와는 별 상관도 없는 결투장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을까요.

결투장은 이용자가 자신의 결핍을 체감하게 하는 핵심 콘텐츠입니다.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장비와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지 은연중에 보여줍니다. 시나리오를 다 클리어하고 과금을 중지해도 될 사람들이 결투장에 갔다 오면 홀린 듯이 지문을 대고 크리스탈을 결제합니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목표, 즉 없던 결핍이 생긴 겁니다. 결투장 플레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상도 꽤나 짭짤해 무시할 수 없게 설계돼 있죠.

◆크리스탈은 현금이 아니다? 이중재화가 유행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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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상점.
초기 모바일게임에선 상품에 현금가를 표시해 놓았지만 요즘엔 다릅니다. 크리스탈 등 인게임 재화를 현금으로 구입한 뒤, 상품을 크리스탈과 바꾸는 방식이 주로 사용됩니다. 여기에도 트릭이 숨어 있습니다.

게임 내 크리스탈은 카지노의 칩과 같은 역할입니다. 카지노에서 현금으로 100만 원의 베팅을 하기 어렵지만 100만 원짜리 '블랙 칩'을 내는 건 별 거 아니게 느껴집니다. 돈을 쓴다는 현실감각이 칩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크리스탈로 상품을 결제하다보니 실제 내가 얼마만큼의 돈을 지불했는지 착각하기 쉽습니다.

날이 갈수록 게임 내 재화의 가짓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혹시 눈치 채셨나요? 현금을 크리스탈로 바꾸고, 크리스탈을 블랙 크리스탈로 교환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이 상품에 내가 얼마를 지불하고 있는지 따져보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과금을 하기 전 크리스탈 숫자도 한 번 살펴보세요. 내가 구입하려는 상품과 정확히 동일한 개수의 크리스탈 상품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상점에서 '전설의 레전드 흑마'를 1000 크리스탈에 판매한다면 '1200 크리스탈' 상품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재화가 남았으니 좋은 거 아니냐구요? 재화가 남아있는 동안 여러분은 게임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 재화를 소모하기 위해 추가 과금을 고려하게 되겠죠.

주거니 받거니 소주 마시다 보면 꼭 마지막에 반 잔밖에 안 남와서 한 병을 더 시키지 않으십니까. 소주 한 병 양이 일곱 잔 반인 이유와 크리스탈이 항상 남는 이유는 같습니다.

◆'똥겜'이 '갓겜'이 되는 '기준점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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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규의 두 컷 만화 '조삼모사'. 뭐가 진짜 갓겜인지 구별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여기까지는 애교입니다. 진짜 승부수는 따로 있습니다.

여기 돈 먹는 하마로 소문이 난 A 게임이 있습니다. 한 달에 몇백은 우습게 깨진다고 이미 소문이 다 났습니다. 그런데 게임사가 최고급 장비를 초특급 가격 50만 원에 풀어버린 겁니다. 사람들은 지르는 게 남는 거라며 너 나 없이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B 게임은 달랐습니다. 오픈 초기부터 과금을 강요하지 않는 착한 과금으로 이용자에게 큰 사랑을 받았죠. 한 달에 1만 원이면 충분해 지를 게 없다면서 상품을 더 만들어달라는 이용자들의 피드백까지 있었습니다. 이 말을 철썩 같이 믿었던 B 게임은 무려 10만 원 짜리 과금 상품을 내놓게 됩니다. 커뮤니티는 폭발했습니다. '돈에 미친 게임'이라는 비판이 게시판을 뒤덮었습니다.

분명 A 게임이 이용자에게 더 많은 과금을 유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은 B 게임이 먹습니다. 이용자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준점이 달랐기 때문이죠. 이를 기준점 편향, 또는 닻을 내렸다는 의미에서 '앵커링 효과'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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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백.
명품들의 브랜딩 방식과 비슷합니다. 명품 가방은 면세점에서 할인 받아도 비싸지만 사람들은 불만은커녕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하죠. 10만 원짜리 보세 가방을 살 때는 만 원만 더 비싸게 팔아도 화를 내면서 말입니다.

크리스탈 상품에도 앵커링 효과가 녹아있습니다. 10개에 4000원, 300개에 12만 원하는 크리스탈을 별도 구매하려면 비싸게 느껴지죠. 애초에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걸 게임사도 압니다.

주력상품은 1+1 등 특가 묶음 판매입니다. 비싼 크리스탈은 특가형 상품을 더 매력적이게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더 싸다고 지르지만 따져보면 실제는 그렇지 않은거죠. 마트에 가서 원래는 살 생각이 없었던 1+1 과자를 무심결에 집는 행동과 마찬가지입니다.

◆덮어놓고 과금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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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게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짤. 자신이 개발자라고 주장했던 모씨는 "핵과금러가 아닌 이용자는 없어도 그만"이라며 일갈했다(출처=루리웹).
과금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게임사도 땅 파고 흙 퍼서 장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패키지게임 시장이 고사한 한국 상황을 고려하면 부분유료 과금모델은 게임사의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질러줘야 게임사도 재밌는 게임을 또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겁니다.

필요한 건 합리적 소비입니다. 과금 트릭에 넘어가는 소비자가 많을수록 게임 그 자체보다는 과금상품 개발에 집중하는 게임사가 더 늘어날 겁니다.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임이 잘 팔려야 이용자와 게임사가 모두 행복한 '윈-윈' 구조가 정착될 게 아니겠습니까.

앞에 소개한 과금 트릭은 모두 '매몰비용의 오류'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를수록 게임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는 얘기입니다. 경제학에선 매몰비용을 고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미 되돌려 받을 수 없다면 잊어버리고 다음부터 제대로 된 선택을 해야 합리적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한 달에 얼마만큼 게임에 투자할 건지 정해놓고 그 한도 안에서 소비하는 습관이 요구됩니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게임이 내게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고 느껴진다면 과감하게 삭제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미 투자한 비용이 아까워서 계속 하다보면 그 결말이 어떨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풀 세팅이 완료된 랭커 계정이 아까우시다구요?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지불한 비용의 곱절 이상이 들 겁니다. 허들은 끝도 없이 더 높아질 테니까요.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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