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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영화 '1917'과 게임의 본질

*본 칼럼에는 영화 '1917'과 관련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들은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4관왕에 올라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생충'과 함께 작품상 경쟁을 벌인 영화들이 함께 주목을 받았는데요. 최근 국내 개봉한 샘 멘데스 감독의 전쟁영화 '1917'은 마지막까지 '기생충'과 작품상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것으로 알려진 바 있습니다.

사실 시상식 전까지는 '기생충'보다 '1917'의 작품상 수상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1917'이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기생충'과 경쟁을 벌인 것인지 궁금했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뒤숭숭한 가운데서도 마스크를 단단히 착용하고 극장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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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은 이전에 출시돼 많은 관람객들을 동원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전쟁영화들과는 궤를 달리 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제 1차 세계대전'을 다루지만 전쟁의 큰 틀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누가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제쳐 두고 오직 전쟁의 일원으로 참가한 주인공에 집중합니다. 장면 전환을 최소화하고 오직 주인공을 카메라가 따라가는 롱 테이크 기법으로 촬영됐는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같은 연출이 이어집니다. 지도를 잘 보는 것과 동시에 전쟁터 최전방에 장교인 형이 나가 있다는 이유로 명령서 전달을 명령 받은 친구 덕분에 특별한 임무에 차출된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임무를 완수하는 1박2일의 여정을 담고 있을 뿐입니다.

전쟁영화에서 흔한 대규모 전투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많은 단역 출연자들이 군인으로 등장하지만 카메라 한 번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주인공과 주인공 친구를 제외하면 비중 있는 조연이라고 해도 10마디 내외의 대사를 마치고 영화에서 사라져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시체들이 전쟁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중간중간에 배치된 주인공과 친구의 대화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전쟁이 일상이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간접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잘 알려진 전쟁에서의 대규모 전투에 전투에 집중해 그 과정이나 결과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아주 작은, 작지만 의미 있는 부분을 심플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1917'이 잘 만들어진 게임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 초반 장교로부터 임무를 부여받는 과정은 마치 게임에 처음 접속해 캐릭터를 만들고 퀘스트를 받는 과정과 같아 보였습니다.

주인공이 여정을 통해 만나는 조연 배우들은 게임 속 NPC 역할을 수행합니다. 게임과 마찬가지로 '1917'의 NPC들도 주인공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줍니다. 주인공을 해치려 하는 적도 속출하는데 게임 속 몬스터나 필드 보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주인공이 최전방에 도착하기 까지 여러 난관에 부딪힙니다. 부비트랩을 만나 죽을 위기를 맞기도 하고, 공중전을 벌이던 적군 비행기 추락으로 인해 친구를 허망하게 잃기도 합니다. 적군이 여전히 남아있는 지역을 지난는 과정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때로는 잠입 액션게임의 주인공처럼 적을 피해 움직이다가도, 적에게 발각되고 나서는 '배틀그라운드'에서 많이 보던 원거리 저격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주인공의 여정은 여러 장르가 복합된 게임 진행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임무를 부여 받고 수행을 위한 여정을 떠나는 과정에서 여러 선택을 하며 엔딩을 확인하는 일 말입니다. 영화에 여러 주인공이 등장하고 여러 사건을 다각적으로 다뤘다면 게임과 같은 느낌을 얻기 어려웠겠지만, 롱 테이크 기법이 시종일관 적용된 덕분에 마치 한 편의 게임을 엔딩까지 재미있게 즐긴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1917'을 보고 난 뒤 기자가 과거에 즐기던 게임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습니다. 온라인게임이 대세가 되기 전인 PC 패키지 게임 시절, 플레이 타임이 몇 시간이나 되느냐가 게임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했던 시절 말입니다. 올드 게이머라면 한 편의 타이틀을 엔딩을 보기까지 노력하고, 수 차례 반복 플레이로 모든 엔딩을 경험한 뒤 또 다른 게임을 찾곤 했던 경험을 다들 갖고 있을 것입니다. 한 편의 타이틀을 마치고 나면 영화를 비롯한 다른 문화 콘텐츠에서 느꼈던, 오히려 더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향수와 동시에 현재 국내 게임업계의 문제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와 달리 국내 개발사들은 양질의 완결된 신작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선보이기 보다는 기존 작품을 최대한 오래 서비스하는데 주력합니다. 새로운 업데이트를 이어가기는 하지만 이는 마치 인기를 끌자 원래 예정보다 연장 방영하는 드라마와도 같이 이용자들에게 지루함을 안겨줄 뿐입니다.

새로운 이야기와 배경, 인물들을 게임에 넣기보다는 단순히 숫자를 늘려나가는 식의 업데이트로 수명을 연장하는 경우도 많죠. 최대 레벨을 높이고 새로운 등급의 장비를 내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니면 새로운 뽑기 아이템을 추가하면서 콘텐츠로 포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게임이 주는 본질적인 재미보다 아이템 거래를 비롯한 외적인 가치가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한 편의 게임에 대한 플레잉 타임이 과도하게 길어지면서 과몰입이나 중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해외 개발사들은 이야기에 집중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주는 패키지 게임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왔던 덕분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해도 이렇다 할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죠. 반면 질병코드 이슈를 국내 게임업계에서는 큰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즉각 반발하며 '게임은 문화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왔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템 거래와 확률형 수익모델 중심의 게임 개발에 집중하는 지금의 구도가 이어진다면 이런 구호를 아무리 외쳐도 공염불에 불과할 것입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게임을, 좋은 문학작품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감동을 주는, 천편일률적인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게임이 지속적으로 나온다면 굳이 게임이 문화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이용자들이 먼저 느끼지 않을까요. 좋은 영화를 보고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아 아쉬웠습니다.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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