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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20화

“암만 봐도 직접 뭘 만들어 본 경험은 없는 것 같은데…….”

무어는 미심쩍은 눈빛이었다.

‘그 말이 틀리진 않았지. 이 행성에서 장비를 만들어본 경험은 없었으니까.’

재희는 빙긋 웃었다.

완전히 초기화된 이 몸으로는 망치 한번 두드려 본 적이 없으니, 무어의 눈썰미는 꽤 정확하다고 볼 수 있었다.

“뭐, 정 그렇다면 뜻대로 하시오.”

무어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은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강철망치 대장간까지 찾아와서 저들의 손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뭘 해 보겠다고 하니, 그로선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무어가 재희의 부탁을 받아들인 이유는 어디 뭘 얼마나 잘 만드는지 한 번 두고 보자, 라는 식의 심보였다.

렌은 아침 일찍 강철망치 대장간을 찾았다.

타바린으로의 임무를 마치고 린데일로 돌아오는 길에 적잖은 노멀들과 조우했고, 그것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창날이 많이 상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르신.”

먼저 무어를 발견한 렌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 자네는 일전에 대장간을 찾았던……?”

“예. 일전엔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이전에도 렌은 무어의 대장간을 들렀던 적이 있었다. 하울링들의 강화된 신체는 끔찍하리만큼 단단하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데 무기와 방어구가 남아날 턱이 없다. 일전에도 그는 장비수리를 맡기기 위해 강철망치 대장간을 찾았던 적이 있었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저번보다 한층 더 성숙해진 것 같구먼.”

비록 싸움에는 무지해도, 무어에게는 사람을 보는 눈썰미가 있었다.

그간 살아왔던 세월도 적지 않았고, 대장간 일을 하면서 수많은 무인들을 봐 왔던 덕분이었다.

“그렇습니까?”

무어의 말대로였다.

그는 긴 여정을 떠나는 과정에서 헤쳐 왔던 수많은 위기들을 떠올렸다.

‘그땐 정말 위험했었지.’

단신으로 하울링들을 쓰러뜨리며 타바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렌은 이전보다 성장했음을 느꼈다.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인가?”

“창을 수리하고자 합니다.”

렌은 들고 있던 창을 내보이며 말했다.

과연, 여기저기 흠집이 가고 부서진 것이 당장에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성 싶었다.

무어 정도의 유명한 장인이 일반 병사의 장비를 봐준다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그의 도움을 바라는 귀족들은 차고 넘쳤으니까.

지난번엔 운이 좋게도 일손이 남아서 렌의 장비를 직접 손봐주긴 했지만, 그런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무어는 예의 바른 눈앞의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거칠고 성미 급한 보통 병사들과는 달리, 렌이라는 청년은 확실히 달랐다.

사소한 말투나 행동에서도 알 수 없는 기품이 은연중에 드러나기도 했고.

그런 청년이 별 볼일 없는 병사라는 사실이 의아할 따름. 복장만 격식에 맞게 갖춘다면 귀족 자제로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지금은 병사 신세일지 모르나, 나중엔 큰 인물이 될 거라며 무어는 확신했다.

“그렇구만. 그런데 이걸 어쩌지? 오늘은 내가 중요한 작업이 있어서 자네 장비를 직접 손봐 줄 순 없을 것 같은데.”

무어는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바쁘신 몸인데 저 같은 것이 어르신을 번거롭게 할 순 없지요. 저 도제 분들이 손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전 만족합니다. 다들 어르신의 기술을 전수받은 분들이니까요.”

“흠.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다행이지만.”

무어는 도제 하나를 불러 렌의 장비를 점검하도록 했다. 이래봬도 꽤 손재주가 있어, 가까이 부리고 있는 실력 있는 제자였다.

무어로서도 렌에게 나름대로 신경을 써준 셈이다.

“참.”

제 할 일을 하러 가려던 무어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금 등을 돌렸다.

“자네는 클로버 보병대 소속이라고 했지?”

“예. 어제 린데일에 입성했던 그 보병대 소속이 맞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자네보다 조금 일찍 대장간을 찾아왔던 청년이 있었지. 그 친구도 클로버 보병대 소속이었어.”

“그렇습니까?”

“음. 지금쯤 빈 공방에서 혼자 망치를 두드리느라 한창 씨름을 하고 있겠군.”

“예?”

그리 되묻는 렌의 얼굴엔 의문이 떠올랐다. 보통 대장간은 장비 제작이나 수리를 맡기는 곳이다. 굳이 제 손으로 망치를 두들길 이유가 없다.

“하여간 이상한 친구야. 내 장비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나 뭐라나. 꽤 젊은 친구였는데 벌써 조장 직급을 달았다고 하더군. 겉보기에는 자네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는데 말이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조장.

렌은 자연스레 한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이가 어린 조장은 클로버 보병대에 단 한 명밖에 없으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렌이 입을 열었다.

“그 공방이 어딥니까?”

“좋아.”

빈 공방을 둘러보는 재희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이 행성에서 처음으로 그럴싸한 공방을 발견했다.

망치와 모루, 무기를 고정하는 집게와 거푸집까지. 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도구들이 한 가득이었다.

‘게다가 제법 질도 우수하다.’

왕국 최고의 대장간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공방에 배치된 도구들은 하나 같이 그럴싸한 것들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한쪽 벽에 설치된 커다란 화덕이 보였다. 불은 장비 제작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에겐 화덕이 필요 없었다.

‘뭐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곧 가장 이상적인 크기의 거푸집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형태와 조금 다르긴 하다만. 그건 나중에 수정작업을 거치면 될 일이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니그룸 주괴들이 그의 발아래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길 숨죽여 기다리는 중이었다.

화륵.

그는 손아귀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불꽃을 담은 손에 마나를 주입하자, 불꽃의 색상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폐광에서 선보였던 것과 같은 백색이다.

‘우선은 ‘희귀한’ 녀석들부터.’

누군가에게 호락호락 공격을 당할 일이 드문 그로선 아무래도 방어구보다 무기에 신경을 기울이는 편이었다.

때문에 11개의 희귀한 니그룸 주괴는 새로 만들 무기의 재료가 될 예정이었다.

재희는 희귀한 니그룸 주괴를 하나하나 불에 녹였다.

네모진 검은 금속이 타들어 가며 서서히 녹았다. 그것들은 오목한 거푸집 내부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촤악.

완전히 채워진 거푸집에 찬물을 부어 형태를 고정시킨다.

치이익.

물에 닿은 거푸집이 비명을 지르며 뿌연 연기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녹아내린 니그룸이 서서히 굳었다.

길이는 약 1미터. 칼몸은 곧은 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대략적인 형태는 완성되었지만, 아직 손봐야 될 것들이 많다. 그는 다시 한번 불꽃을 일으켰다.

이번엔 온도를 조금 낮춘 붉은 화염이 칼 전체를 뒤덮었다.

불길에 달궈진 칼이 잘 여문 과실처럼 벌겋게 농익어 가기 시작했다.

검을 제조하는 건 오랜만이다. 본래 그는 장비를 그냥 사서 쓰는 편이다. 그만큼 좋은 매물이 나온다는 전제하에.

그의 능력이라면 완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제 손으로 제조한다면 그보다 훨씬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명품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한 수고와 인내를 발휘해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뜨거운 열기 속에 온종일 틀어 박혀 있자면 정말이지 지옥이 따로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휴. 안 되겠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결국 참다못한 그는 제 몸에 얼음막을 둘렀다.

전신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그런 지옥 같은 작업이었다고는 해도 마냥 끔찍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굉장한 집중력과 인내를 감수하고서라도 비지땀을 흘려가며 재료를 두들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쾌감과 보람.

제 손에서 탄생한 걸작을 감상하고 있자면,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울링들의 진화가 거듭될수록 평범한 무기로는 어림도 없지.’

앞으로는 더욱 강한 개체들과 맞서게 될 것이다.

미래를 대비해서라도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춰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달아오른 칼날을 집게로 집어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단조 작업에 들어갈 차례다.

‘음.’

망치를 들어 올린 그는 제조하고자 하는 검의 형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단단하면서 예리한 칼.

칼에 휘임각을 넣어, 베기에 용이하게 만들되 과하진 않게. 휜 정도가 지나치면 베기엔 탁월해지지만 찌르기엔 부적합할 테니까.

‘균형을 무너뜨릴 필요는 없겠군.’

생각을 현실로 이끌어낼 차례다.

망치가 칼 위로 떨어졌다.

깡.

니그룸을 두들기는 소리가 공방을 아득하게 울렸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일깨우는 청명한 소리였다.

깡.

반딧불 같은 불똥이 튀었다.

망치에 얻어맞은 칼이 재희의 입맛대로 차차 형상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관찰해 온 결과, 이 세계의 검은 대체로 지나치게 넓고 크다.

적을 베어 넘긴다기보다는 송두리째 짓뭉개 버리는 쇠몽둥이에 가까웠다.

예기가 부족해 둔탁한 데다가 쓸데없이 무겁기만 하다. 적을 통째로 뭉개버릴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만이 극대화된 검이었다.

물론 그런 무거운 쇠몽둥이도 나름의 장점이 존재하긴 한다. 다만 그가 선호하는 부류가 아니었을 뿐.

‘자고로 검은 베는 맛이 있어야지.’

재희는 칼날의 잔여물들을 차분하게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필요 이상으로 두꺼운 부분은 깎아 내고, 경도를 극대화 해야할 부위에 잔여물을 덧대는 접쇠 작업을 거쳤다.

깡.

규칙적인 망치질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재희는 집게로 칼날의 위치를 바꿔가며 힘껏 망치를 놀렸다. 혼이 실렸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로지 제련에 몰두한 그의 눈동자엔 번득이는 칼날만이 투영되고 있었다.

오로지 한곳에 고정된 확고한 시선.

무언가에 저렇게까지 집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아일체.

사소한 잡념의 조각이 들어올 틈조차 없는, 온 신경이 완벽하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상태.

말이 쉽지, 이런 고도의 집중력은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깡.

그가 망치를 내려칠수록 칼날의 크기는 점차 작아짐과 동시에 섬세함을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유려하게 휘어진 칼날은 한 점의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무어는 그가 검을 제조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마치 홀린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저 녀석은 대체 뭐지?’

재희의 솜씨는 그의 기대를 아득히 초월했다. 보는 사람조차도 몰입하게 만들 정도.

‘이건 단순한 대장장이의 노동 수준이 아니야.’

과히 신화(神話)적인 광경. 마치 피조물을 손수 빚어 내는 창조자를 보는 듯하다.

‘하루 이틀 망치를 잡아 본 솜씨가 아니다.’

능숙한 재희의 망치질을 보며 무어는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수백, 아니 수천 개의 장비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개중에서는 세기의 역작이라 불릴 만한 것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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