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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12화

2등급까지는 오러 유저가 아니더라도 잘 협력만 하면 어찌어찌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3등급부터는 차원이 달라진다.

극도로 경화된 놈들의 피부는 가히 중갑 수준이다.

보통의 쇠붙이로는 흠집조차 내지 못할 만큼 단단하다. 오러 유저가 아닌 이상 놈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클로버 보병대에서 오러 유저는 단 세 명.

카일과 라미로. 그리고 멘델뿐이다. 하급 부관 멘델에게선 뭔가를 기대하긴 어렵다.

라미로조차도 전투에 능한 부관은 아니다.

개인 전투 분야에서는 간신히 턱걸이로 기사 시험을 통과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결국, 나뿐인가.’

그나마 러너와 맞설 만한 자는 카일 자신뿐이다.

러너를 포착한 그는 마나를 불러일으켰다.

카일의 육체에서 붉은 오러가 모닥불처럼 활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점차 영역이 확장되던 오러는 곧 그의 무기에 전이되었다. 그의 검은 평소보다 훨씬 예리한 절삭력을 갖추게 되었다.

오러를 두른 신체는 모든 면에서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신속함, 그리고 견고함. 파괴력까지.

‘오러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약 10분.’

다시 말해, 희박하게나마 이쪽에 승산이 있는 건 10분뿐이라는 의미.

몸을 혹사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 10분 안에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만 했다.

그의 눈동자에 광채가 어렸다.

“라미로. 뒤를 부탁한다.”

“부, 부대장님?”

라미로가 뭐라 대꾸하기 전에, 카일은 지척에 있던 러너를 향해 뛰어들었다.

피칠갑을 한 얼굴로 막 살해한 병사의 살점을 질겅거리는 놈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했다.

카일은 러너의 후미로 돌아갔다.

놈의 관심이 다른 데에 기울어진 지금, 놈을 처단하기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지금!’

카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가 지면을 힘껏 박찼다.

오러로 증폭된 힘이 바닥을 찍는 순간, 폭발적인 추진력이 그의 육체를 탄환처럼 쏘아냈다.

카일은 자신이 이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이 일격에 실었다.

아마 며칠간은 오러 과잉사용으로 후유증에 시달리겠지만, 이렇게 해서 러너의 숨통을 끊을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었으리라.

카일은 쇄도한 상태에서 전신을 앞으로 기울여 힘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양손으로 단단히 고정한 검의 날 끝을 앞으로 찔러나갔다.

그의 육체와 검이 한 몸이 되어 목표물을 노렸다.

날아가는 화살처럼. 궤적을 그리며 나아가는 지금, 그의 시야엔 오로지 러너의 머리통만이 보였다.

검 끝이 러너의 머리를 꿰뚫기 직전.

‘허?’

조금 전까지 선명하게 보였던 러너의 뒷모습이 돌연 흐릿해졌다.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던 놈의 육체 주위로 잔상이 만들어졌다.

휘익!

카일 이놈의 지척까지 쇄도했을 무렵엔, 이미 놈은 그 자리에 없었다.

‘사라졌다?’

피한 것도 아니고, 땅 밑으로 꺼지기라도 한 듯 아예 자취를 감춰 버렸다.

기기긱.

카일은 급하게 제 속도를 줄였다. 울퉁불퉁한 지면에 쇠 구두가 끌리면서 요란하게 울었다.

‘어디냐?’

그는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러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뒤!”

어디선가 들려온 짤막한 한 마디에, 카일은 본능에 따라 등을 돌렸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바로 지척까지 달려온 러너가 그의 머리를 가격하기 위해 발을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으니까.

“큭!”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간격이 너무 좁다. 검을 들어 그것을 막아 낼 여유조차 없었다.

그 순간.

퍽.

둔중한 소리와 함께, 러너와 카일의 틈새로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러너의 발을 검으로 받아 낸 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제이……?”

카일은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였다. 그의 목숨을 구해 준 이는 다름 아닌 재희였다.

카일이 놀란 건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보다, 저 무시무시한 일격을 막아 냈던 재희에게 있었다.

설령 자신이 러너의 발차기를 막아 냈다고 해도, 무사하진 못했을 거다.

검이 부러지거나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저만치 날아가 버렸을 테니까.

어느 쪽으로든 심각한 중상을 입으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러너의 공격을 막아 낸 데다가 단 한 발자국조차도 밀려나가지 않았다.

‘오러?’

카일의 눈이 커졌다.

재희의 검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기체 형태의 기운. 그건 분명 기사들의 전유물인 오러였으니까.

“부대장님께선 병사들을 통솔해 주십시오.”

재희가 러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카일에게 말했다.

러너를 향한 그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워 보였다.

“이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오러 마스터리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오러 사용 시, 10% 추가 피해, 10% 피해 감소.]

[보너스 : 감각 +10]

카일을 보고 임시방편으로 따라 했던 건데, 다행히 옳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

오러 마스터리를 새로 습득하긴 했으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런.’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재희는 난색을 보였다.

거미줄을 두른 듯 칼날이 자글자글한 실금들로 가득했다. 단 한 번의 격돌만으로도 형편없이 상했다.

당장 부러지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무기에 둘러두었던 오러가 무기의 파괴를 막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러져나간 건 칼날뿐만이 아니었을 거다.

‘조금은 진지해져야겠는데.’

재희는 망가진 무기를 버리고, 바닥을 나뒹굴고 있던 누군가의 검을 집었다.

머슬을 상대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번엔 머슬이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던 데다가, 직접 뛰어들어 놈과 대적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스텟만 비교해 봐도 그렇다. 현재 그의 능력치는 러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이 러너라는 개체는 민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놈이다. 지금의 낮은 근력으로는 녀석의 민첩성을 압도할 만큼 빠르게 창을 던질 수 없다.

조금 전까진 병사들을 살육하는데 한창 재미를 보는 데 열중했던 러너의 관심 대상은 오로지 재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자신의 공격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었을까?

‘확실히 이 녀석은 다르군.’

눈앞의 사냥감을 향해 무작정 달려드는 짐승 같은 노멀들과는 차이점을 보였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자신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틈을 노리는 중이었으니까. 최소한 공격할 타이밍을 잴 지능 정도는 갖추고 있다는 거다.

‘더 높은 등급의 하울링이 나타난다면 정말 골치 아파지겠는데.’

상위개체일수록 단순히 전투력만 상승한다면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제아무리 강해 봐야 짐승만도 못한 지능을 가졌다면 결국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싸움이라고 해서 무작정 힘만 쓰는 건 아니니까.

싸움에도 지능이 필요하다.

상대의 패턴을 읽어 내고, 상대의 장단점을 최대한 빠르게 파악해 내야 한다.

그래야 가장 효율적인 파훼법을 골라내어 수 싸움에서 압도할 수 있을 테니까.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재희는 잡념을 접었다. 지금은 눈앞의 괴물을 쓰러뜨리는 데 전념해야 할 때다.

‘온다.’

러너의 다리 근육이 꿈틀거리더니 팽창했다. 도약을 위해 다리에 싣는 거다.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한 뒤 되감아 봐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지극히 찰나의 과정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똑똑히 감지했다.

“쿠아악!”

고막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대한 괴성과 함께, 러너가 그를 향해 돌진했다.

‘빠르긴 하네.’

놈의 형체가 안개처럼 흐려지더니 곧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카일의 공격을 피했을 때와 같은 광경이었다.

보다시피 보는 이로 하여금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할 만큼 몸놀림이 기민한 놈이다.

러너가 본격적으로 행동에 들어가는 순간, 재희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뛰어봐야 벼룩이지.’

시야를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잽싼 속도였으나, 몇 초 후의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어디냐?’

재희는 당황하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진 놈을 조용히 눈으로 추적했다.

머지않아 놈의 잔상이 포착되었다. 비전 아이가 러너의 동선을 예측하기 시작했다.

놈의 잔상은 정면으로 돌진해 오는가 싶더니, 급격하게 오른쪽 측면으로 방향을 틀어 재희의 다리를 친다.

‘제법인데?’

조금은 감탄했다.

역시나 어느 정도 지능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움직임이 나올 리가 없다.

재희는 정면으로 달려드는 러너를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왼편으로 물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휘잉.

바람을 통째로 분쇄하기라도 할 듯한 굉음과 함께, 오른쪽에서 날아온 놈의 발차기가 허공을 갈랐다.

‘아슬아슬하다.’

단기 예지를 했음에도 러너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낼 수 있었다.

보통은 공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오히려 드러난 허점을 향해 반격을 가했을 텐데, 지금은 공격을 피해 내는 것조차 빠듯했다.

워낙 신체적 격차가 컸던 탓이다.

머리는 어떻게 반격을 해야 할지 알고 있는데, 몸이 그것을 따라주지 못하는 거다.

러너의 공격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페인팅 동작을 하는 축구선수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혼선을 주던 놈이 연이어 발차기를 가했다.

머리를 노리는가 싶더니, 급격하게 궤도를 꺾어 옆구리로 휘어진다. 여간 까다로운 녀석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페인팅이 거듭되자, 비전 아이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겹겹이 뒤엉킨 미래의 잔상들을 읽어 내려가기 바빴다.

그렇게 공격을 회피하길 수차례, 요리조리 발차기를 피하던 재희의 머리를 향해 러너가 기습적으로 주먹을 꽂았다.

내질러오는 러너의 주먹이 재희의 시야를 뒤덮는 순간, 그의 왼쪽 눈동자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퍽.

러너의 주먹이 재희의 미간에 꽂혔다.

“칵?”

예상치 못했던 낯선 감촉에, 당황한 러너가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오히려 공격을 감행했던 러너의 팔목이 기이한 각도로 뒤틀려있었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냐?’

재희가 냉소를 지었다.

일전에 브록에게도 써먹었던 스톤 스킨이었다.

일시적으로 몸이 견고해지는 능력.

능력을 사용하는 동안은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처럼 찰나의 순간에 적절히 능력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단점은 무의미하다.

처음엔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무려 반나절 동안 석상 신세가 되었던 시절도 있었더랬다.

시험 삼아 무작정 능력을 발동했는데, 정작 그것을 해제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네.’

물론 지금은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능력을 온 오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말이 스톤이지, 그 강도는 능력을 사용하는 자의 역량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브록을 상대할 때는 다치지 않도록 적당히 강도를 조절했지만, 지금은 봐줄 이유가 없다.

강도를 최대한 단단하게 출력했던 데다가, 주먹이 쇄도하는 속도가 더해졌으니 그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덕분에 놈의 오른손은 불구 신세가 되었다.

시체이니 고통이야 못 느낀다고 쳐도, 완전히 부러져 버린 손을 쓸 수는 없으리라.

“크륵.”

일방적으로 달려들기만 하다가 오히려 큰코다친 놈의 입장에선 한결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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