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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10화

‘……다들 살아남았을까?’

아버지, 어머니. 하나뿐인 동생. 친구들까지.

냉정하게 따지면 방공호에 있던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그 밀폐된 공간에서 수천 마리의 기생충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내려왔으니까. 그럼에도 만약에, 혹시나 그들이 운 좋게 살아남진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떨쳐낼 순 없었다.

적어도 직접 그들의 최후를 목격하진 못했으니까.

‘설령 다들 살아남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어.’

차원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소환물.

차원문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만 알게 된다면 재앙이 벌어지기 전의 지구로 돌아갈 수도 있으리라.

‘반드시, 반드시 돌아가 주마.’

클로버 보병대의 행선지는 타바린이라는 지역이었다. 타바린은 클로버 보병대가 속한 8군단이 주둔 중인 곳이다.

“날이 갈수록 하울링들의 난리가 심해져서, 왕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놈들의 대대적인 소탕에 들어갔거든.”

라미로의 말에 의하면, 하울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대륙 전역에 출몰하는 하울링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튀어나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하울링들의 주된 서식지는 대륙의 중심부였다.

가장 막강한 국력을 가진 세 왕국의 영토가 서로 맞닿는 지역.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왕국 간의 전쟁이 가장 잦았던 바로 그곳.

전쟁이 잦았다는 건 그곳에서 죽어간 시체들이 수도 없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시체들은 기생충들의 좋은 먹잇감이기도 했다. 일단 시체들은 반항할 수 없었으니까.

그곳에 하울링들이 얼마나 득실거릴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들도 괴물이 되는 판국에, 이미 죽은 시체까지 무덤 속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없잖아. 게다가 사람만 보면 미친 듯이 잡아먹으려 드니 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어떠한 방법으로 하울링들이 이 행성에 나타나기 시작했느냐는 거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사소한 단서조차도 그에겐 너무나도 소중했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괴물들이 세상에 출몰하게 된 겁니까?”

재희는 짐짓 모르는 채로 물었다.

“제이. 넌 정말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 게 확실한 모양이구나. 그 끔찍했던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니 말이야.”

라미로는 안쓰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반년 전쯤이었지 아마.”

재희의 질문에, 라미로는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라미로가 들려준 이야기는 지구에서 벌어진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이 밤처럼 어두워지더니 생성된 차원문 속에서 빨간 벌레들이 물밀 듯 쏟아져 나왔다.

그 뒤로 기생충에게 신체를 장악당한 인간, 즉 하울링이 활개를 치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

‘지구에서 벌어진 일들과 똑같군.’

재희는 쓴 침을 삼켰다.

아쉽지만, 라미로의 이야기에서 별 다른 소득을 얻진 못했다.

모두 그가 지구에서 앞서 겪어 왔던 사건들이었다.

그가 차원문에 휘말렸던 건 기생충들의 출몰 이후로 5년이 지날 무렵이었다.

그 당시의 하울링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이미 인간의 군사력으로는 놈들을 당해 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머슬? 그런 놈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머슬이 2등급 하울링이라면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하울링은 7등급쯤 될 거다.

누군가가 만들어 낸 가공의 생명체는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 만큼 하울링은 상식적으로 자연의 섭리와 한참이나 동떨어진 존재다.

‘아직 막을 수 있다.’

분명 라미로는 이 행성에서 차원문이 열린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말인즉슨 하울링들의 진화가 아직 미흡하다는 소리다.

재희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해가 밝은 정오를 틈타, 클로버 보병대는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 중간중간 하울링들을 만나긴 했으나 다행히 개체가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인지라 놈들은 평소보다 힘을 쓰지 못했다.

‘확실히 어제보다 훨씬 굼뜨다.’

달아나는 노멀의 목을 베어 내며 재희는 생각했다.

하울링의 특성만 놓고 보면 좀비와 뱀파이어를 합쳐 놓은 것만 같았다.

빛에 노출된 하울링은 평소보다 약하다.

디텍트 아이에 인식된 괴물의 스텟은 무려 절반 가까이 떨어진 상태였다.

타바린까지는 앞으로 닷새.

지금의 속도를 유지한다면 내일 중으로 린데일이라는 도시에 닿을 수 있다고 했다.

클로버 보병대는 린데일에 들러 물자를 보급하고 하루 정도 쉬어갈 계획이었다.

린데일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에, 병사들도 제법 기운이 나는 모양이었다.

김빠진 맥주 대신 달콤한 벌꿀술를, 날벌레들이 득실대는 막사 대신 아늑한 방 안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병사들의 행군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그들에게 있어, 린데일은 사막 속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으리라.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숲을 통과한 뒤로 보병대는 막힘없이 수월하게 전진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황금으로 수놓은 것만 같은 노을이 산 너머로 서서히 침몰하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오늘 안에 린데일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병사들의 행렬 속에서 걷고 있는데 곁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보니 라미로와 카일이 군마에 올라탄 채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야영보다는 좀 더 병사들을 독려해 보는 편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라미로가 조심스레 제 의견을 내놓았다. 린데일을 코앞에 두고 진을 세우기도 좀 그렇다.

위험한 숲을 벗어난 데다가 하울링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행여 놈들이 나타난다 해도 시야가 탁 트이는 평지를 행군 중이었으니, 충분히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곧 놈들이 활개 치는 밤이 찾아올 테지만, 이 속도라면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도시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윗선의 대화라 굳이 끼어들지는 않았으나, 재희도 내심 라미로의 의견에 동의하던 터였다.

“음.”

신중한 카일도 당장은 수락하지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라미로의 의견에 동조하는 기색이었다.

조금은 무리한 행군이긴 하나, 오늘 안에 린데일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병사들도 군말 없이 따를 테고.

오히려 제발 행군을 하게 해달라며 간청할지도 모를 일이다.

‘음?’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던 재희의 눈동자가 불현듯 깊어졌다. 그의 표정이 한없이 진중해졌다.

‘느낌이 이상한데.’

클로버 보병대는 남쪽에서 린데일이 있는 북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남쪽에서 린데일로 입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크고 긴 클라인 협곡을 통과해야만 했다.

급경사를 이루는 양쪽의 곡벽은 무척이나 좁고 깊었다.

저 멀리 부유하는 태양이 아득하게 멀리 보일 정도로.

한두 명쯤이야 무리 없이 협곡을 통과할 수 있을 테지만, 300명에 달하는 클로버 보병대에겐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협곡을 올려다보는 카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협곡은 굉장히 깊었다. 자연의 위대함에 새삼 경탄하게 된다고나 할까.

만일 린데일이 적국의 도시이고, 그들이 침입자의 입장이었다면 카일은 절대로 이 경로를 택하지 않았을 거다.

‘어쩔 수 없군.’

좁고 울퉁불퉁한 경로였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큰 장점이 있었다.

지름길.

이 협곡을 빙 돌아서 가게 된다면 사흘 이상 시간이 지체된다.

반면 이 길만 통과한다면 오늘 안에 린데일에 도착할 수 있다.

무려 나흘이라는 기간을 단축하게 되는 거다.

“1조부터 천천히 진입한다.”

카일의 지시에 따라, 보병대는 본격적으로 협곡 안으로 들어섰다.

적국이 아니니 매복의 우려는 없을 테지만, 카일은 양쪽의 곡벽으로 각각 1개조의 척후병을 보냈다.

긴 그늘이 드리워진 협곡은 무척이나 어둡다.

그 말인즉슨 빛을 싫어하는 하울링들이 이 근방을 어슬렁거릴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순 없다는 뜻이다.

하울링이 아니더라도 전 병력이 비좁은 협곡의 중앙로를 통과한다면 복잡할뿐더러 제 속도를 낼 수 없을 테니, 카일의 판단은 여러모로 옳았다.

“린데일에 도착하기만 해 봐라. 내가 거기 있는 술이란 술은 모조리 거덜내 줄 테니까.”

“허이구. 얼마 전에 맥주 다섯 잔에 뻗은 녀석이 누구였더라?”

“그, 그땐 피곤해서 잠들었던 것뿐이라고!”

병사들은 잡담을 나누며 행군하는 중이었다. 도시가 지척이다 보니, 피로에 지쳐 있던 그들도 점차 고양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직 재희만이 동떨어진 채로 심각한 얼굴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봐. 제이. 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이야?”

동료 하나가 그런 그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 어제 잠을 좀 설쳐서.”

“그래?”

대강 그리 둘러대긴 했으나,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분명 뭔가 있어.’

협곡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랬다. 그의 오감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위기를 겪어 왔던 탓에, 그의 감각은 자연히 타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보병대가 이동하는 협곡의 통행로는 이곳에서 가장 낮은 지대다. 자연히 그의 경계심은 양측의 곡벽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디텍트 아이를 발동한 두 눈으로도 협곡의 주위에서는 어떠한 위험 요소도 보이지 않았다.

‘기분 탓이려나.’

그의 예민한 감각이 틀렸던 적은 드물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봐도 경계할 만한 점은 없으니, 슬슬 자신의 감각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클로버 보병대는 협곡의 중간지점을 통과했다.

확실히 빠르긴 하다.

다소 경사가 심하고 길이 구불구불하긴 했어도, 중간중간에 뚫린 터널 덕분에 돌아가는 일 없이 죽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짙은 그늘 탓에 어두웠던 지면이 형형한 빛으로 밝아지기 시작했다.

‘음?’

뭔가 싶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푸른색의 야생화들이 보였다. 꽃들은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각막으로 꽃의 정보가 나열되었다.

[야광화]

클라인 협곡에서만 서식하는 희귀한 식물.

희귀하게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데다가 꽃 자체도 아름다워서 조경용으로도 널리 쓰인다.

야광화들이 서식하는 동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꽃들이 발하는 은은한 푸른빛이 반사된 동굴 정경에 재희는 감탄했다. 눈앞에 오로라가 펼쳐진 듯하다.

그것도 잠시.

꽃들을 관찰하느라 지면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던 그의 눈이 심각해졌다.

‘이제야 알겠군.’

어째서 본능적인 감각이 위험을 경고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까지 위험요소를 찾아낼 수 없었던 건지.

‘하울링들의 습성을 잠시 잊고 있었다.’

재희는 동료들을 제치고 앞으로 뛰쳐나왔다.

저 멀리 선두에서 말을 몰고 나아가는 카일과 부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카일 부대장님!”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불쑥 튀어나온 재희 때문에 놀란 부관 하나가 역정을 냈다.

멘델 하급 부관. 카일을 보좌하는 부관 중 하나였다.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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