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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 이계정복기] 14화

달천 이계정복기 표지
달천 이계정복기 표지
[데일리게임]

이러한 영지의 위상을 높이는 데는 어린 나이에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아 끊임없이 노력해온 현재의 영주인 발라하 드 카운티 공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목조를 소재로 온갖 조각과 장식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있는 실내. 커튼의 색상은 그린에 가까운 파스텔 톤이어서 목조 장식들과 조화를 잘 이루며, 고풍스러움을 강조하고 있었다. 또한 벽에 걸려있는 각종 훈장과 오랜 세월을 거쳐 온 듯한 비범한 그림들이 이방 의 주인이 결코 평범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주님, 제1왕자님과 일행들이 거의 다 오셨답니다.”

매부리코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사십대 남자가 카운티 공작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알겠네, 모르자크. 내 직접 나가보겠네.”

아담한 체구에 사람 좋은 인상을 지닌 이 사람이 바로 슬리버 왕국을 해양대국으로 끌어올린 카운티 공작이다.

“알겠습니다.”

그가 간결한 대답과 함께 나가자 카운티 공작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대체 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1왕자님께서 직접 오셨을까?’

공작은 최근 국왕을 배알하기 위해 궁에 갔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조금 더 오래 사셔야 할 텐데 건강이 점점 악화되어 가시니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는구나. 더욱이, 그날 본 타솔 공작의 표정이 마음에 걸려.’

대대로 슬리버 왕국에 충성을 바쳐온 가문으로서 그의 자긍심은 대단히 높았다. 그런 그에게 국왕의 건강 악화는 큰 근심거리였다.

‘게다가 최근엔 우리 영지 내에서도 흉악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으니…… 휴우, 나도 이제 늙었는가. 어째 걱정만 자꾸 앞서는구나.’

머리를 흔들며 공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사를 증명하듯 거대하고 육중하지만 고전적으로 보이는 성문 앞에 카운티 공작을 비롯해서 수많은 기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먼 길에 고초가 많으셨습니다, 왕자마마.”

“충성!”

통일된 자세로 예를 표하는 기사들의 동작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는 이들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오오, 카운티 공작님. 이렇게 손수 나오셔서 환영해주시니 감격스럽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이곳에 와서 공작의 진심 어린 환대를 받자 왕자는 감회가 새로웠다.

“신하로서 당연한 예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아무튼 잘 오셨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이스턴 경, 자네도 어서 들어오시게.”

“네, 공작각하.”

호위대장이면 공작과 비교할 때 신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스턴까지 세세히 챙기는 것을 보면 공작의 평소 인격이 어떠한지 그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침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저녁 만찬을 하고, 카운티 공작의 배려로 하루를 푹 쉬고 다음 날 공식적인 회의를 하기로 하고 모두들 휴식을 위해 각자 자신들의 거처로 옮겨 갔다.

집사에게 왕자 일행의 시중을 잘 들어주라고 지시하고 나서 공작은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 왕자가 자신을 방문한 목적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보았다.

“공작님. 모르자크입니다.”

“들어오게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망설이듯 말하는 그의 태도에 공작은 의구심이 들었다. 평소의 그라면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는가? 자네 어째 불안해 보이네그려.”

“네, 실은 조금 전에 또다시 아크리 시내에 있는 돌프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아크리 시는 카운티 영지내의 작은 도시였다.

“뭣이라고! 그새 또 당했단 말이냐.”

평소 침착한 카운티 공작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네, 죄송합니다. 너무도 예측 불허하게 사방에서 같은 종류의 사건이 일어나는지라 저희들이 대처가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으음…… 생존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난번처럼 모든 주민들이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말라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아, 이럴 수가. 나의 영지민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다니. 대체 어째서 이런 재앙이 우리 영지에서 일어난단 말이냐.”

카운티 공작은 다시 자리에 털썩 앉으며 괴로워했다.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공작이 괴로워하자 모르자크는 이를 꽉 물었다.

“공작님, 제가 기필코 흉수를 찾아내어 처단하겠습니다. 그러니 몸을 생각하셔서 심려를 놓으십시오.”

“이 상황에서 어찌 내가 맘을 놓는단 말이냐. 아…… 이를 어찌할꼬…….”

언제나 영지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영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영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공작은 최근 수차례 발생한 사건들로 영지민들이 죽자 마치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나간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간 그들의 영혼이 영주가 지켜주지 않아서 죽었다고 원망하고 있을 것 같았다.

“모르자크, 그대는 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 병력을 제외하고 오늘부터 모든 병사들을 풀어서 이번 사건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도록하게. 인원이 부족하면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용병이라도 고용해서 움직이게.”

“넵, 알겠습니다. 이번엔 반드시 이 사건의 진모를 밝혀내어 공작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겠습니다.”

“꼭 그렇게 해주게나.”

모르자크가 나가고 홀로 남은 공작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럴 때 그분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분이라면 이번 사건도 시원하게 해결하실 텐데.’

누군가를 떠올리며 안타깝게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처량해 보이는 밤이었다.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은 누군가가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가. 왕자의 방문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 때문에 잠 한숨 못 자던 공작은 새벽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항상 이시간이면 일어나서 명상에 잠기곤 했던 것이다.

그가 고요하게 명상에 잠기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공작님, 칼슨 산맥에서 오신 여성 엘프분과 여행자 두 분이 공작님을 뵈러 왔다며 성안에 들어오길 청합니다.”

“오, 칼슨 산맥에서 오신 엘프시라면 얼른 모시어라.”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공작은 반가운 마음에 개의치 않고 그들을 접견실로 불렀다.

“공작님, 안녕하세요. 저는 칼슨 산맥에 있는 엘프 마을에서 온 아이미라 합니다.”

다소곳한 인사에 공작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오 그래, 먼 길에 고생하시었소. 고귀하신 엘프님께서 이 먼 곳까지 찾아주시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오. 그래, 그곳 마을의 대모님은 여전히 잘 계시오?”

“네, 어머님은 여전하십니다. 실은 어머님께서 공작각하를 만나뵙고 이 편지를 전해드리라고 하셔서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말을 하면서 아이미는 종이봉투 한 장을 공작에게 전했다.

“아, 그분의 따님이셨군요. 이거 너무 반갑습니다. 그분이 보내신 편지라면 무척 중요한 일이겠구려.”

편지를 펼쳐보려던 손이 멈칫하더니 옆에 있던 달천과 아스마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옆에 이분들은 누구신지?”

달천은 아무 말 안 하고 있다가 공작이 자신들이 있는 앞에서 편지를 펼쳐보기가 꺼려진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살며시 부아가 났다.

이를 눈치 챈 아이미가 얼른 달천의 손을 잡았다.

“이분들은 저의 오빠들이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스마엘이라고 하고 옆에 계신 분은 달튼이라 합니다.”

엘프의 오빠들이 사람들이라니, 공작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사실은 어머님께서 저 혼자 세상에 나가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여기 계신 분께 같이 동행해줄 것을 부탁하셨거든요. 그런데 같이 다니다 보니 저에게 너무 자상하게 대해주셔서 제가 오빠가 되어달라고 떼를 썼던 것이죠.”

부연 설명을 하면서 아이미는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이미의 눈앞에 다시 나타난 아스마엘은 말 그대로 처참지경이었다. 아이미가 어리다 하지만 그래도 3백 년이란 세월을 살아왔는데 드래곤이 고작 몇 대 얻어맞았다고 저런 몰골이 나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타날 때만 해도 반듯했던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옷은 걸레를 걸친 듯했으며 매끄럽게 움직이던 입술은 터지다 못해 두 배는 부풀어 있었다. 아마도 입술을 집중 가격당한 듯했다. 오죽하면 아이미는 그가 드래곤이라는 사실도 잊고 마치 다치고 돌아온 아들이라도 보살피듯이 온갖 약초를 구해다 먹이고 붙여주며 정성껏 간호를 해주었을까.

“훌쩍. 엘프 여아야, 너무 고마워.”

“요상한 소리 내면 나랑 숲속의 데이트 한 번 더 한다.”

뚝!

“당장 통신구슬 연결해봐. 플래너와 바로 대화할 수 있도록.”

“넵.”

언제 아팠냐는 듯 잽싸게 움직이는 아스마엘 덕에 순식간에 플래너와의 대화가 가능해졌다.

“자네, 지금 당장 이리로 날아오게.”

“아니, 갑자기 왜 그러나?”

“지금 몰라서 묻나? 자네 같으면 누가 뒤에다 꼬리를 매달아놓으면 기분이 좋겠나?”

플래너는 아스마엘에게 그렇게 주의를 주었건만 달천의 실력을 믿지 못하고 덜렁거리다가 결국 그에게 미행을 들켰다는 걸 직감했다.

“이보게, 너무 화내지 말게. 사실은 자네가 걱정되어서 비서 겸 조수로 그를 보냈던 것이네.”

순간, 아스마엘의 몸이 움찔했다.

‘아, 저런 무식한 인간의 조수를 하라니…….’

“그 말 진짜인가?”

“그러엄! 당연하지. 자네같이 귀한 몸이 조수 하나 없어서 되겠는가.”

플래너는 아스마엘이 안됐긴 하지만 자신이라도 면피를 해보려고 무조건 우기기 작전으로 밀고 나갔다.

“흠, 그러니까 조수로 보내진 녀석이 감히 숨어서 내 동태만 살폈다 이거지?”

귀여운 반달눈에 살짝 살벌한 기운이 흘렀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플래너 님이…….”

“아스마엘.”

“넵, 플래너 님.”

“자네가 잘못한 게 있구만그래.”

한마디 하고 시치미 떼는 플래너.

“프, 플래너 니임. 저, 저 죽어요. 살려주세요.”

아스마엘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달천.

“감히 존장의 명을 어기고 거기다가 나를 시험해보려고 했겠다? 일단 교육 좀 받자.”

“어이, 달천. 다음에 보세.”

그 모습을 어슴푸레 보고 잽싸게 통신을 끊는 플래너였다. 야비한 드래곤 같으니.

이때 아이미는 놀라서 그만 호흡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 위대하신 플래너 님과 친구라니…….

잠시 후 다시 나타난 달천과 아스마엘.

“내가 누구냐?”

“넵, 저의 영원한 우상이신 위대한 달튼 님이십니다.”

“그냥 종으로 부리고 싶지만 너의 사회적 지위와 나이를 고려해 앞으로 나를 형님으로 부를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

“넵, 알겠습니다. 혀, 형님.”

속으로는 별별 욕설을 다 해대는 아스마엘이지만 표현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미가 비록 엘프지만 앞으로 친동생처럼 보살핀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전의 신세도 있고, 이 무시무시한 분위기 탓도 있어서 아스마엘은 아이미가 남 같지 않은 심정이었기에 바로 대답했다.

“제 친동생 이상으로 아껴주겠습니다.”

“좋아, 앞으로 우리는 한 형제다. 형은 하늘과 동급이니 절대 까불지 말도록. 이상.”

이리하여 인간과 드래곤과 엘프로 구성된 삼남매가 탄생했던 것이니, 이 괴상한 삼남매로 인해 라켄 대륙은 심한 몸살을 앓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자 웃음이 나오려는 아이미였다. 대륙 역사 이래로 자신처럼 막강한 오빠들을 둔 여성이 있을까?

“비록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저에게는 목숨 같으신 분들이시니 편하게 여기셔도 좋아요.”

진실의 종족 엘프가 일종의 보증을 선 것이라 그때서야 편지를 펼쳐보는 공작이었다.

“으음, 결국 최근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이 있는 듯하구나.”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던 공작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달튼 씨, 혹시 기사이십니까?”

“아니, 제가 어딜 봐서 기사로 보이십니까?”

기분 나쁘다는 듯 정색을 하며 말하는 달천을 보고 공작은 어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사라는 신분이 대부분 청년들에게는 꿈에서도 바라는 영광된 자리 아니던가.

“그러면 혹시 마법사?”

그가 자꾸 물어보는 것은 바로 대모의 편지 때문이었는데, 그 속에는 동행한 달천을 필히 끌어들여야 카운티 영지에 몰려드는 무서운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리 없는 달천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영감님, 전 기사나 마법사 따위하곤 아무런 연관이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이런 건방진 놈이!”

영감님 소리에 얼빠진 공작을 뒤로하고 옆에 시립해 있던 모르자크가 소리치며 검을 들이댔다.

“모르자크, 멀리서 오신 손님에게 무슨 짓인가.”

“하지만 공작님, 저 버릇없는 녀석이 말하는 것 좀 보십시오. 감히 공작님을 희롱하지 않습니까. 저런 놈은 버릇을 고쳐줘야 합니다.”

매서운 눈으로 잔뜩 달천을 노려보며 모르자크가 말했다.

“젊은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게야. 우선 참게나.”

자신도 속으로는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지만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미도 있고 자신의 체면도 있고 해서 그냥 넘어가려는 공작이었다.

한데 우리의 눈치코치 없는 달천이 하는 말이…….

“모르자크라 하셨나요? 아무 곳에나 검을 들이밀면 큰일 납니다. 내가 워낙 참을성이 많아 그렇지 안 그랬으면 당신은 맞았을 겁니다.”

달천의 유들유들한 말에 모르자크는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공작님, 저자는 기사인 저를 모욕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자와 정식으로 결투할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아이미 양, 일이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군요. 하지만 기사가 모욕을 당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전통 때문입니다. 모르자크, 결투를 허락한다.”

아이미의 안타까운 눈빛을 보며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는 공작이었다. 설마 그 눈빛의 의미가 모르자크를 불쌍히 여겨서임을 그가 어찌 알았겠는가.

아침 댓바람부터 기사훈련장은 북적거렸다. 그새 소문이 퍼져서 성에 온 손님과 자신들의 대장이 결투를 벌인다니 검술대결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그들이 모른 척 지나칠 리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공작님의 손님인 것을 감안해서 죽이지는 않겠다.”

눈에 진한 살기를 띠며 모르자크가 말했다.

“아따, 전에도 그러더니만 기사란 사람들 성격 참 이상하네. 싸우려고 나와서 뭔 말이 그렇게 많은 거야?”

단체로 모욕당한 기분이 든 기사들이 한결같이 외쳤다.

“대장님,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냥 죽여 버리십시오.”

“옳소! 저런 인간은 그냥 두시면 안 됩니다. 우우!”

그런데 이때.

“멈추시오.”

어제 저녁에 도착했던 카라얀 왕자가 아침부터 훈련장에서 발생한 소란스러움에 놀라 일행들과 함께 기사훈련장으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홀로선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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