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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역사위원회] 24화

행성역사위원회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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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24화
대해인

연개소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 아들을 생각할수록 걱정이 앞섰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없는 동안에 고구려를 잘 지키고 있어야 할 터인데 그들의 성품을 생각하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기가 고구려에 계속 남아 있을 수도 없었다.
자기의 원대한 꿈을 실현하려면 바다 건너 왜로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연개소문은 말 배를 발로 차 속도를 높였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어지러운 생각들을 씻어 주었다.
그래, 운명이다. 고구려가 흥하고 망하는 것도 다 운명이니 나는 예정대로 하자.
겨우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멈추었다. 달리다 보니 집에서 꽤 먼 데까지 와 있었다. 연개소문은 말고삐를 잡아끌어 방향을 돌렸다.
“날…… 좀 도와……주시오…….”
그때 숲속에서 가느다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개소문은 말에서 뛰어내려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온몸에 피범벅이 된 사내 하나가 나무에 기대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사내의 앞에는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사지를 늘어뜨리고 죽어있었다.
“도와……주시오…….”
사내는 연개소문을 보고 겨우 목소리를 짜내어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앞으로 꺾으며 숨만 할딱거렸다.
연개소문은 사내를 번쩍 들어 말 등에 걸쳤다. 그리고 자기도 말에 올라탔다.
호랑이 가죽을 생각하면 호랑이도 가져가고 싶었지만 말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이것도 운명이다.
“이랴!”
연개소문은 말을 달려 집으로 향했다.

***

“제 목숨을 살려 주신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요. 제 평생 대막리지님의 수하가 되어 보은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내는 건장한 편이어서 며칠 만에 바로 원기를 회복했다.
연개소문은 사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무술을 익힌 것 같은 건장한 체격에 눈빛에는 지혜와 충성심도 담겨져 있는 것 같았다.
“자네 이름이 뭔가?”
“대광이라 하옵니다.”
“그렇군, 대광.”
“예, 대막리지님.”
“지금 나이가 몇인가?”
“올해 스물셋이옵니다.”
“무술을 익혔나?”
“예. 검술과 활쏘기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대막리지님이 쓰신 김해병서도 읽어 보았사옵니다.”
“호오, 그래?”
“예, 그러니 수하로 두고 쓰셔도 답답하지는 않으실 것이옵니다.”
“그럼 자네, 나랑 같이 바다 건너 왜로 갈 생각이 있나?”
대광이 고개를 들어 연개소문을 쳐다봤다.
“왜로 가시든 어디로 가시든 제가 그림자처럼 모시겠사옵니다.”
“그래, 좋아. 며칠 내로 출발할 터이니 그리 알고 몸조리나 좀 더 하고 있게나.”
연개소문은 인사를 하고 나가는 대광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마음을 굳힌 이상 망설이지 말고 가자. 저렇게 좋은 사람도 얻었으니.

***

연개소문은 신라의 법민 왕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므로 당은 결코 고구려를 그대로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무슨 수를 쓰든지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치려고 할 터인즉, 고구려의 상황을 알아보시고 도무지 이대로 지켜 낼 수가 없겠다고 판단하시면 차라리 왕께서 당보다 먼저 고구려를 쳐서 차지하시기를 바라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계획에 부합하는 것이니 마음을 담대히 하여 고구려를 접수해주시기 바라오.
이제 나는 왜로 건너가려 하오. 거기서 자리를 잡고 왜를 장악할 터이니 함께 힘을 길러 훗날을 도모하도록 합시다.
동봉한 옥 노리개 반쪽은 내가 왕께 드리는 표식이오. 훗날 이 옥 노리개 반쪽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내가 보낸 사람이니 그렇게 아시길 바라오…….]

연개소문은 가지고 있던 옥 노리개를 반으로 쪼개어 한쪽을 서찰과 함께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대통에 넣고 밀봉을 했다.
“이것을 신라의 법민 왕께 전해 드리거라.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예,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대통을 든 무사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연개소문은 법민을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헌헌장부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던가. 게다가 생각하는 것도 자기와 비슷했다.
그런 법민과 이 계획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이슬휘와 앤지는 산길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 연개소문의 밀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슬휘의 손에는 작은 쇳조각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앤지가 쇳조각을 보며 말했다.
“이런 거죠. 지름 1센티미터짜리 원에서 1도를 벗어나면 그 거리가 1밀리미터도 안 되지만 그 원의 지름이 수백, 수천 킬로미터까지 확장되면 그 1도의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그렇군요. 그러고 보면 역사라는 것이 참 신기해요.”
앤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저만치서 밀사가 나타났다. 말 등에 납작 엎드려 바쁘게 말 배를 걷어차며 달려오고 있었다.
밀사가 이슬휘와 앤지의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임무 완수. 성공했네요.”
이슬휘가 앤지를 보며 웃었다.
앤지가 이슬휘의 손에 든 쇳조각을 받아 들어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이걸 밟고 안 밟고에 따라 역사가 그렇게 바뀌다니……. 근데 우리가 가끔은 예정에 없는 일들도 하곤 하잖아요? 윤심덕 김우진 때도 그랬고…….”
“그건 뭐냐면 그들에게서 역사가 단절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더 이상 파급이 없는 거예요. 그들이 그 이후로 다시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변화를 주지 못하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앤지가 초등학생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
“근데 연개소문이랑 문무왕이 저렇게 가까운 사이였나요?”
“사실은…… 문무왕이 연개소문의 아들이랍니다.”
“네? 그럴 리가요!”
앤지가 놀라며 소리쳤다.
“연개소문이 젊었을 때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상 물정도 보고 정탐도 하곤 했는데, 신라에서 김유신의 집에서 하인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수년간.”
앤지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슬휘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때 연개소문과 보희가 서로 좋아하게 된 거죠. 아시죠? 김유신의 여동생 보희, 문희.”
“그럼요, 알죠. 보희가 꾼 꿈을 문희가 사서 김춘추와 결혼하게 되잖아요?”
“네, 맞아요. 그때 김유신이 김춘추의 타진 옷고름을 꿰매 준다고 보희를 불러낸 이유가, 그때 이미 보희가 연개소문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이었어요.”
“우와, 그래요? 근데 어떻게 보희의 아들이 문무왕이 된 거죠?”
“문희가 언니를 위해서 연극을 한 거죠. 자기가 임신한 것처럼.”
“어머나 세상에. 근데 왜 역사책에는 그런 내용이 없죠?”
“당사자들의 입장이 다 그렇잖아요. 김유신도 김춘추도 연개소문도, 그리고 문무왕도……. 어느 누구도 드러내 놓고 그 사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 다들 숨긴 거죠.”
"그렇군요, 그래요. 그래서 연개소문이 문무왕에게 애틋한 마음이 있는 거군요.“

***

연개소문은 아들들을 불러들였다. 남생, 남건, 남산이 그들이었다.
“나는 이제 바다 건너 왜로 갈 것이니라.”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세 아들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연개소문은 현재의 주변 정세와 자기의 계획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하오나 아버님이 여기 안 계시면…….”
“그러니 너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느냐. 당분간은 왕과 대신들에게 내가 몸이 안 좋아 요양 차 산중으로 들어갔다고 일러라. 그러다 너희들이 자립할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내가 죽었다고 알리도록 해라.”
“예, 알겠사옵니다.”
“내가 다시 한 번 당부하노니, 부디 너희들은 물과 물고기처럼 서로 화합하여 벼슬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여라. 안 그러면 신라에서 너희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느냐.”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염려 마시옵소서.”
연개소문은 세 아들에게 몇 번이나 주의와 당부를 하고 내보냈다.
그리고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시위를 벗어난 활이 아니던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연개소문은 씁쓸한 표정으로 방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돌려 문밖을 보며 말했다.
“대광, 거기 있는가?”
“예. 여기 있사옵니다.”
대광이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연개소문이 서랍에서 금덩어리를 몇 개 꺼냈다.
“자, 이걸로 배를 하나 구하게. 그리고 왜로 가는 동안에 먹을 음식도 좀 장만하고.”
“알겠사옵니다. 그런데 몇 명 정도가 같이 가는지요?”
“이번에는 자네를 비롯해 가까이서 나를 도와줄 열 명 정도가 함께 갈 것이네.”
“알겠사옵니다. 그 정도 인원에 맞춰서 배와 양식을 준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대광이 인사를 하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자, 이제 준비는 다 된 것인가.
연개소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정원에 서니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연개소문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자기의 새로운 이름을 입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대해인. 큰 바다와 같은 사람. 큰 바다를 건너온 사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지은 이름이었다.
모처럼만에 연개소문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번졌다.
자, 가자. 큰 바다를 건너, 큰 바다 같은 사람이 되자.

***

이슬휘와 앤지는 역사가 바로잡힌 걸 확인하고 현재로 돌아왔다.
이슬휘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다.
행성연합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앤지는 반행성연합 사령부에 있으면서 이슬휘가 과거로 갈 때 반행성연합의 타임머신을 타고 같은 과거의 시공간으로 가서 이슬휘를 만났다.
둘은 그렇게 과거에서 만났다가 현재로 돌아올 때는 각자의 타임머신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반행성연합은 앤지에 대한 정보를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이슬휘는 사령부로 가서 양은모를 만났다.
“뭐 좀 알아낸 게 있습니까?”
양은모가 고개를 비틀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리 뒤져 봐도 나오는 게 없답니다. 기밀 문서 저장소는 지금 계속 출입 암호를 해킹 중인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하는군요.”
“네, 그렇군요. 근데 앤지 씨는 이대로 안전할까요?”
“행성연합에서는 앤지 씨가 소멸한 걸로 알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또 우리가 앤지 씨에 대한 저들의 음모를 알아내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근데 말입니다, 행성연합에서 앤지 씨의 DNA를 분석했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랬죠.”
“그때 다른 사람들의 DNA도 같이 분석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들 것과 앤지 씨 걸 같이 비교해 볼 수는 없을까요? 뭔가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면 좋으련만……. 우리가 찾은 자료에는 DNA를 분석했다는 기록만 있지 DNA 구조는 없었다던데요. 혹시 그 대상자들이 누군지 찾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그 사람 샘플을 채취해서 DNA를 분석할 수 있겠군요. 본부에 한번 알아보라고 연락하겠습니다.”
“네. 꼭 그렇게 해주십시오. 제 생각에는 틀림없이 어떤 공통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나비의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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