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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게임과 마약, 그리고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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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류 담배를 피우고 있는 베트남 소년의 모습. 동남아시아 지역은 청소년 마약 문제가 심각한 상황으로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이 마약을 멀리하기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게임은 아이들이 마약에서 멀어지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난 4월 데일리게임 10주년 기획 기사 취재를 위해 동남아시아를 방문한 기자는 인도네시아 현지 관계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위와 같은 대답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어떤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인데요. 게임을 마약과 같은 중독 대상으로 규제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는 게임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달랐습니다.

동남아시아는 청소년 마약 문제에 오랜 기간 시달리고 있습니다.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의 국경이 만나는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의 경우 마약 재배와 밀수로 악명이 높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불법적인 마약 재배와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청소년들도 마약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에는 태국 청소년의 90%가 '크라톰'이라는 이름의 신종 마약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청소년들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마약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길거리에서 마약 성분이 함유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약의 폐해는 추가적인 언급이 불필요할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아이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일이 마약에서 멀어지게 해준다는 이유만으로 반기는 현지 부모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마약을 끊을 수만 있다면 게임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을 부모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한국에서 마약에 준하는 규제를 게임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국내 마약 문제가 다른 국가에 비해 심각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마약사범은 늘어나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마약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 상황은 아닌데요. 만약 국내에서도 청소년 마약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면 '게임=마약'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동남아시아 현지 관계자들도 최근 게임업계에 만연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한 현지 관계자는 낮은 확률의 뽑기 아이템은 도박과도 같다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서구권 국가 정치권 움직임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는데요. 동남아시아 소비자들도 확률 기반 과금 시스템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보고 있다고 합니다.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는 FPS와 AOS인데요. 애초에 확률형 과금 모델이 들어갈 여지가 적은 장르의 게임들이 뽑기 아이템 판매 위주의 RPG보다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배틀그라운드' 외에는 이렇다 할 FPS나 AOS 신작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업체들의 동남아시아 시장 지배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도 한국산 RPG의 과도한 확률형 과금 시스템과 궤를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마약을 멀리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과도한 확률형 과금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임에 몰입하는 것 자체는 크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지만 사행성 요소가 가미된 게임까지 인정하고 이해할 생각은 없다는 이야기인데요. 한국인인 기자 앞에서 순화시킨 표현을 사용한 이들이 많았지만 결국 "과도한 확률형 과금이 적용된 한국산 RPG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본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은 꼭 현지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해도 국내 게임업계 관계자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대목일 것 같습니다. 한국이 유독 게임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은 맞지만, 게임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은 지역에서도 한국산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면 문제는 사회적 인식이 아닌 한국산 게임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원희 기자 (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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