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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게임산업 '살려는 드릴게'

"살려는 드릴게."

2013년 개봉한 누아르 영화 '신세계'서 조직의 보스가 되길 원하는 서열 3위 이중구(박성웅)가 자신을 지지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묻는 원로들에게 웃으면서 한 말이다. 당연한 권리(이득) 조차 주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협박은 이중구란 캐릭터가 얼마나 비정하며 냉혈한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으로 기억됐다.

2일 국회의원회관, 요즘 가장 '핫'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게임관련 정책토론회에 등장했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로 인해 성장동력을 잃은 한국 게임산업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속된 말로 '정부를 까는' 자리에 축사를 맡았다. 김 대표는 "게임과 게임산업에 대한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과 규제를 완화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간 두 가지 생각이 머릴 스쳤다. '게임산업이 힘들긴 힘들구나'와 '게임산업의 생사여탈권을 저들이 쥐고 있구나'는 게 그것이다. 여당 실세가 규제를 완화하고 게임산업을 진흥하겠다는데 두 손 벌려 환영해야 하고 박수칠 일이건만, 기자의 꼬인 심보에는 그 모습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2011년 셧다운제를 시작으로 이어진 각종 규제로 인해 2010년 2만658개던 국내 게임업체 수는 2014년 1만4440개로 4년 새 약 30% 급감했다. 게임종사자 수 역시 2012년 5만2466명에서 작년엔 3만9221명으로 줄었다. 이는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게임백서 자료니, 실제로 폐업한 업체와 게임업계를 떠난 사람은 이 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규제를 주도한 것이 김무성 대표가 있는 새누리당이다. 게임이 술, 마약, 도박과 같은 4대 악으로 치부했고, 게임이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는 프레임을 만든 당에서 이제 당 대표가 '규제가 지나치다' 말하니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물론 김무성 대표가 입법 당사자도 아니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입법기관이고 같은 당이라도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당론이라는 것이 있고, 당을 대표하는 어른이라면 사안이 어찌되었던 '우리당이 주도한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신 게임산업 종사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라는 식의 국회의원식 사과를 먼저 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더 믿음이 갔을 것이고 기대가 커졌을 것이다.

'힘드니까 이제 그만할게'란 의미는 다시 '좋아지면 다시 할게'로 해석될 수 있다. 앞에선 '게임산업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라 치켜세우다가도 다음날 각종 규제를 쏟아내는 정치권을 봐 온 게임업계에 '규제를 완화하고 진흥하겠다'는 말에 얼마나 공감을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공감이나 믿음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신들이 규제했고 이제 풀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신세계'의 이중구가 그랬던 것처럼 '살려는 드릴게' 라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총선을 앞두고 게임표를 집결해 호의적인 정책을 내는 후보를 지지하자'는 이익단체의 역할을 제안하는 사람도 있다만, '글쎄'다. 이미 이익단체가 있음에도 한 목소리 내지 못하는 게임업계 아닌가. 대관라인은 무너졌고 협회는 구심력이 없으며 업체들은 이익만을 생각하는데, 총대를 맬 사람은커녕 참가할 업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배알이 꼬일 대로 꼬인 기자의 생각이 부디 틀리기를 빌며, 마지막으로 무너진 대관 라인, 구심력 없는 협회, 이익만 생각하는 업체들 틈 사이에서 총선 대비 접대성 발언이라도 이끌어 낸 위정현 교수를 비롯한 게임학회 회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덧붙임. 그런데 지금에 와 규제를 완화 한다고 한국게임산업의 경쟁력이 되살아 날라나, '아몰랑'이다.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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