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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엔씨-넥슨, EA인수가 전부였을까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갈라섰다. 세기의 결혼식에 비견될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두 회사는 3년 반 만에 불편한 동거를 끝냈다. 이룬 성과도, 승자도, 패자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돌아갔다. 두 회사 모두 손실은 없었다만 마음에는 생채기가 남았다.

2012년 6월, 넥슨재팬이 김택진 대표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 그 자체가 큰 이슈였고, 앞으로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했다. 한국을 대표하고 온라인게임의 선두주자인 두 회사는 '글로벌'이란 공통된 목표로 힘을 합쳤다. 한쪽은 거금을 들였고, 다른쪽은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는 최대주주 자리를 내줄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당시 지스타에 등장한 김택진 대표는 '한국 게임시장 위기론'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누구나 알 법한 글로벌 회사를 M&A 하기 위해 힘을 합쳤다"고 했다.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두 회사가 세계적인 게임기업의 경영권을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지분을 사고 판 2개월 뒤인 8월에 M&A를 성사시켜 역사에 남은 일을 만들 예정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불발됐다.

뒤늦게 그 회사가 EA였고, 창업자 출신 이사의 반대로 M&A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택진 대표가 EA 대표를 맡고 김정주 대표가 엔씨 경영권을 가져가는 그런 그림이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어쨌던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이 도전은 결실을 맺지 못했고 두 김 창업자는 한동안 실의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지스타 이후 두 회사는 제대로 된 협업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보면, 합병의 목적 자체가 EA 인수였을 것이다. 8000억대 '빅딜'을 한 두 회사치고는 이후 자세가 너무나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1인 리더십 중심의 엔씨와 조화 중심의 넥슨 기업문화가 달라 섞이기가 힘들다는 얘기들도 나왔지만, 그것 때문에 이런 큰 거래 이후 두 회사가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였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두 창업자는 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하며, 결국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게임회사로 키웠다. 그 둘이었기에 이런 거래도 할 수 있었겠지만, EA만 보고 달린 것이 아닌가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인수가 실패할 것이란 최악의 수를 염두에 두지 못할 정도로 '최선'에 이은 '차선'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다. '협업'이란 화두는 계속 나왔지만 '마비노기2'를 만드는 시도 외엔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이마저도 실패하면서, 끝내 가족까지 문제로 삼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글로벌'이란 화두 앞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설령 최우선 목표가 실패하더라도 다음 목표를 설정해뒀으면 어땠을까. 서로의 DNA를 뒤섞어 장점을 흡수하거나, 양측이 보유한 IP를 각자가 잘 하는 방식으로 게임을 만드는 것 말이다. 글로벌 목표가 사라지니 이 좁은 국내서 다시 경쟁자로 보였는지 모르지만 무심할 정도로 아무 일이 없이 갈라섰다.

누구나 알듯이 두 회사는 정통 MMORPG와 캐주얼 게임의 강자다. 서로가 잘 알고 있었고, 2005년을 기점으로 서로의 영역에 도전장을 냈다. 엔씨는 캐주얼포털 '플레이엔씨'에 '스매쉬스타', '엑스틸' 등 캐주얼게임을 붙였고, 넥슨은 정통 MMORPG '제라'로 맞불을 지폈다. 결과는 두 회사 모두에게 참담한 패배를 안겼다. 두 회사의 협업은 이러한 실패를 줄이는 초석이 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김택진, 김정주 대표가 뜻을 같이 했던 '한국 게임 위기론'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다. 외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고, 모바일게임도 한국은 후발주자다. 수출은커녕 안방시장까지 내줬다. 두 회사는 엔저 덕분에 서로 큰 피해 없이 헤어졌다 안도할 수 있겠다만, 이를 바라보는 주변 시선은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난다. 3년 반이란 시간 동안 두 회사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말이다.


곽경배 기자 (nonny@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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