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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석] 반복되는 규제 악몽

1997년 정부는 만화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산업을 옥죄었다. 당시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 대책의 하나로 폭력만화를 규제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만화산업만 고사시키고 학교폭력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방치했다. 이후 십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학교폭력은 여전히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동시에, 그 때보다 더욱 잔혹해지고 비범해졌다. 그리고 정부는 2013년 새로운 타깃을 찾았다. 바로 게임이다. 정부는 게임을 알콜, 마약, 도박 등과 함께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한편, 국가에서 이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게임 및 문화예술 관련 22개 단체 관계자들이 모였다.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게임규제개혁공대위)' 발족식을 갖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중독법 저지 및 문화콘텐츠 전반에 걸친 규제 개혁을 위한 활동을 하기 위헤서다. 이자리에서 이들은 "영화, 음악, 만화, 게임 등 문화 콘텐츠들을 청소년 보호 중심의 규제 대상으로 관리해 왔던 수준에서 더 나아가 중독물질로 취급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정부의 규제 정책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게임중독법에 반대하는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게임업계를 넘어 이젠 문화예술, 시민사회 단체들까지 들고 일어나 중독법에 강력 반대하는 분위기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문화 산업 전반에 걸쳐 파장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게임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비롯, 여러 규제에 시달리고 있는 게임산업에 중독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문화 연대가 힘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하는 이들의 처지가 너무 안타깝다.

정부의 규제 움직임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청소년들의 일탈, 탈선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을 찾기보다 이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를 찾는 것도 똑같다. 과거의 만화가 청소년들의 주요 관심사였다면, 지금은 게임이다. 타깃을 찾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 게임은 규제 대상에 제격이다. 이들에게 게임은 단순히 규제 대상에 불과하다. 수출 효자 산업이니, 문화니 하는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들의 논리대로 라면, 게임 규제만으로 청소년들은 물론이거니와 국민들의 정서도 바꿀 수 있다.

현재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과거 만화에서 지금의 게임 산업처럼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 문화 콘텐츠 산업은 언제든 규제 대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음악은 물론, 모든 문화 산업이 그 대상이 된다. 이러다 TV를 시청하는 것 조차 정부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 심히 걱정된다. 청소년들이 하루종일 TV를 봐서 시력이 나빠진다던가, 드러 누워서 TV를 본다는 이유로 허리가 나빠질 수 있다는 의학계 주장이 나오면 언제든 규제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을 바라보는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오히려 TV를 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왜 시청 제한이라던가 하는 규제가 없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문화 산업을 '중독'이라는 잣대에 올려 놓은 것 자체가 위험한 발상이다. 문화라는 용어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무수한 다양성과 창의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문화에 중독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게임은 문화다. 더 정확히 게임은 문화일 뿐이다. 규제를 정당화하려는 노력보다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먼저 아닐까.


[데일리게임 이재석 기자 jshero@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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