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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전설] 3D 격투의 시작 '버추어파이터'

게임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출발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 매김 했습니다. 게임은 문화 콘텐츠를 넘어 2010년 기준 한 해 60조 원이 오가는 문화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전 과정은 수 많은 게임 제작사와 완성도와 작품성, 예술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데일리게임은 게임을 문화 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한 유명 게임 시리즈의 못다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버추어파이터, 3D 격투 게임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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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최신작 '버추어파이터5:파이널쇼다운'


1대1 대결이 매력인 대전 격투 게임. '스트리트파이터2'로 일약 인기 게임으로 도약한 이 장르는 1990년도 당시 기술상의 문제로 3D로 만들기는 불가능 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수십 분의 일초를 다투는 게임의 특성 상 빠른 하드웨어 기술이 필수였기 때문인데요. 세가는 1993년 이런 세간의 평가를 깨고 최초의 3D 대전 액션 게임 '버추어파이터'를 세상에 내놓습니다.

'버추어파이터'는 지금 보면 매우 조잡한 수준의 폴리곤과 2D 배경, 텍스처를 사용했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경험을 사용자에게 제공했습니다.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과장되지 않은 타격감, 링 아웃이라는 개념을 넣은 덕분이었지요.

'버추어파이터'가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4년 여름이었습니다. 이 게임이 오락실에 등장하자 많은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2D게임으로 도배됐던 게임 시장에 3D 게임이 첫 발을 내디딘 것과, 한판에 100원이라는 상식을 깬 것이지요.

'버추어파이터'의 3D 고속 연산을 사용하기 위해 '모델1' 기판을 사용했습니다. ‘모델1’ 기판은 동시 발색 16000색과 초당 30프레임의 오브젝트 움직임을 표현하는 엄청난 괴물 기판이었습니다.

‘모델1’은 괴물 같은 성능만큼이나 고가로 판매되었는데요. 당시를 기억하는 업주의 말을 빌리면 “‘버추어파이터’를 들여놓기 위해 전용 게임기 구입을 고려했는데 이놈이 1000만원이 넘어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가격은 건슈팅이나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가격이었는데요. 때문에 대전 격투 게임으로는 매우 고가인 한판에 200원 이상의 가격이 책정됐습니다.

◆버추어파이터, 미비한 시작과 화려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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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격투 게임의 클리셰가 된 '듀랄', 모든 캐릭터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엄밀히 말해 '버추어파이터'는 한국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최초의 3D 게임이라는 명성과 화려한 그래픽은 당시 게이머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했지만 한판에 200원이라는 높은 가격이 걸림 돌 이었지요. ‘모델1’을 사용한 기판 가격 역시 오락실 보급에 악영향을 줘 찾아가서 몇 판하고 마는 게임으로 인식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게임 역시 시리즈 첫 번째 이자 3D게임이라는 약점 덕분에 완성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버추어파이터'가 3D 격투 게임 시장에 안착한 것은 시리즈 속편인 '버추어파이터2' 당시부터입니다. 기존의 '모델1' 기판을 업그레이드한 '모델2'를 사용한 속편은 단순한 배경을 벗어나 나무나 석상 등 환경 오브젝트를 설치해 더 현실적인 배경을 선보였고, 선택할 수 있는 캐릭터도 크게 늘어나면서 캐릭터 간의 상성과 공격 기술의 공방이라는 격투 게임의 요소를 완전히 구현하는데 성공한 덕분입니다.

'버추어파이터2'는 전작의 문제점으로 지적 받았던 단순함을 극복하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 받습니다. 상단과 하단, 중단, 잡기의 상관관계를 완벽히 정착시킨 공로 때문인데요. 특히 '버추어파이터2'는 1편보다 높은 60프레임(1초에 60번의 움직임을 표현한다)으로 제작돼 타격과 피격의 정밀도를 높여 한 차원 높은 격투 체험이 가능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버추어파이터2’가 사용한 ‘모델2’ 기판의 가격 하락 역시 인기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건슈팅 게임기 등 시뮬레이션 장치에서 사용하다 남은 기판을 재활용하는 덕분에 오락실 업주가 납득할 만한 가격으로 게임을 구비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천재 개발자 스즈키 유와 '버추어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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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유는 게임 업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미국 인터랙티브아츠앤사이언스 학회가 선정하는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사진 출처:영문 위키피디아)


'버추어파이터'를 말하는데 있어 세가 개발팀 'AM2'와 스즈키 유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거리입니다. 'AM2'팀은 '버추어파이터'를 만들기 전 레이싱 시뮬레이터 '아웃런'과 같은 아케이드 체감형 게임기를 만드는 개발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즈키 유가 실권을 담당하면서 'AM2' 팀의 평가는 확 달라지는 데요. 아케이드 게임 개발팀에서 최신 기술을 적용한 게임을 만드는 '천재'들이 모이는 곳으로 세간의 평가가 달라지게 되지요.

3D 격투 게임과 '버추어파이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즈키 유는 세가 입사 2년 만에 '행온'을 비롯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여럿 성공시키며 주가가 급상승한 개발자입니다. 그의 개발 철학은 시대를 앞서간 '이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상부로부터 약속 받은 개발비를 초과하기 일 수였지요.

덕분에 세가 상층부에서는 그를 은밀히 제거하려는 정치 공작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들려오곤 했습니다. 회사에서 짤리지 않은 건 그가 참여한 게임 프로젝트가 매번 메가 히트를 넘는 '대박' 작품이었고, 덕분에 세가는 일본 아케이드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입니다.

특히 그는 게임업계에서 알아주는 스피드 광이자 하드웨어 마니아로 유명한데요. 다방면에 박식한 지식이 있던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용자 경험'을 포함한 게임을 위해 미국 록히드 마틴사와 제휴를 맺고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열성을 보이곤 했습니다. '버추어파이터'가 구동하는데 필요한 '모델1' 기판이 이 당시 태어나게 되지요.

그의 천재적인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버추어파이터' 개발 당시 캐릭터의 움직임을 만들때의 에피소드 입니다. 지금이야 다양한 3D 제작툴과 모션 캡쳐 등을 사용해 간단히 개발할 수 있는 이 부분이 당시 게임 업계에서는 3D 게임을 만드는데 최고 난관으로 지목받는 부분이었습니다. 3D로 만들어진 캐릭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30분의 1초당 1번 이상의 3차원 계산이 필요했기 때문인데요. 당시 슈퍼 컴퓨터나 전문 시뮬레이터의 연산 영역이 없다면 이런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스즈키 유는 이런 난관을 넘기 위해 하드웨어 개발과 소프트웨어 적 단순함을 동시에 추구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당시 'AM2' 개발팀은 캐릭터가 펀치를 뻗는 간단한 모션에도 3초가 넘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느린 하드웨어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알고리즘이 투입됐지만 '버추어파이터'의 목표였던 30프레임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 '버추어파이터' 완성을 위한 첫 걸음인 움직임 조차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시간에 벌써 50%에 가까운 개발 기간이 투여된 것입니다.

이때 스즈키 유는 하루 밤 집에서 숙면을 취하며 꿈에서 얻은 영감으로 이 문제를 단숨에 처리하는 괴력을 보이게 되는데요. 이런 천재적인 발상과 실행력은 이후 스즈키 유를 향한 'AM2' 팀과 세가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발판이 됩니다.

[데일리게임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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