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e-sports

[게임의전설] 한국 호러 게임의 진수 '화이트데이'

게임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출발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 매김 했습니다. 게임은 문화 콘텐츠를 넘어 2010년 기준 한 해 60조 원이 오가는 문화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전 과정은 수 많은 게임 제작사와 완성도와 작품성, 예술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데일리게임은 게임을 문화 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한 유명 게임 시리즈의 못다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친숙해서 더 무서운 '화이트데이'

center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르 호러. 매년 여름 극장가에는 귀신과 심령현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줄을 잊고, '전설의고향'으로 대표되는 무서운 이야기들은 TV 방송국 편성의 한 축을 담당하는 단골 소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교적 사고의 영향으로 미신을 기피하는 조선시대 선비들 역시 무서운 이야기로 한 여름밤을 시원하게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호러 장르는 게임 업계가 주목하는 '핫'한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클락타워', '어둠속에나홀로', '사일런트힐' 등 완성도 높은 게임이 출시된 호러 장르. 하지만 한국은 호러 게임 장르에 있어서는 매우 뒤떨어진 후진국 이었습니다. 인간의 공포는 성장환경에 따라 차이가 나는 만큼 '대중적'인 공포를 위해서는 서양 문화를 묘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 게이머들에게 있어 호러 게임은 매력적이면서도 접근하기 힘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국 게이머들이 일본과 미국 귀신에 익숙해 질 무렵인 2001년 9월. 호러 게임을 즐기는 한국 게이머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게임이 출시됩니다. PC패키지 게임 업체 손노리의 걸작 '화이트데이'가 그 주인공입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토종 호러 게임의 출연은 당시 게임 업계와 이용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합니다.

center

◇화이트데이는 학교 경비 아저씨를 공포스런 존재로 탈바꿈 시켰다


'화이트데이'는 주인공이 평소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화이트데이 선물을 주기위해 심야의 학교에 침입한다는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배경인 학교와 심야라는 시간적 배경이 주는 기본 공포감에 더해, 다양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와 심리 묘사는 압도적인 공포감을 게이머에게 선사했습니다. 더불어 한국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연출을 곁들인 '화이트데이'는 한국 패키지 게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화이트데이’는 심야시간 동안 학교의 안전을 지키는 대머리 수위 아저씨를 귀신을 능가하는 무서운 존재로 변모시켰는데요. 이와 함께 '전설의고향'의 단골 손님인 애기귀신, 처녀귀신의 깜짝 출연(?)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손꼽힙니다.

◆'화이트데이'와 한국 패키지 시장의 종말

당시 한국 패키지 시장은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2', '레인보우6'의 활약으로 전세계 게임 업체가 주목하는 거대 소비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블리자드, 일본 팔콤을 비롯한 주요 PC 패키지 게임 업체들의 한국 진출이 줄을 이었지요. 양적으로 거대해진 만큼 다양한 게임이 쏟아졌고 한국 게이머들은 골라먹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사람의 입맛에 딱 맞춘 호러 게임 '화이트데이'의 성공은 당연한 듯이 받아 들여졌습니다.

개발 기간 3년, 개발 비용 6억 원. 한국 게임 역사상 가장 길고 많은 금액이 투자된 게임 '화이트데이'는 긴 개발과 많은 비용이 투자된 만큼 높은 완성도를 가진 채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시 손노리는 게임 품질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판매량 또한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런 기대는 곧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한 여름밤의 꿈'으로 그치고 맙니다.

당시 한국은 와레즈, P2P 등 불법 유통망을 통해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고, '화이트데이' 역시 이를 피할 순 없었습니다. 당시 5만 장이상의 판매량을 낙관했던 '화이트데이'의 성적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공식 추산 3000장, 비공개 추산 6000장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손노리는 충격에 빠집니다. 초라한 성적과는 달리 15만건에 달하는 패치 다운로드 수는 손노리를 분노케 했습니다.

당시 손노리 이원술 대표는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사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살 가치가 없다면 하지도 마십시오. 한국 PC 패키지 시장의 마지막 불씨를 꺼뜨리지 말아주세요"라며 게이머들에게 호소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울려 퍼질 뿐이었습니다.

◆손노리와 불법 공유, 승자없는 전쟁

'화이트데이'는 2001년 당시 암울했던 PC 패키지 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손 꼽힙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적은 판매량의 수십배가 넘는 패치 다운로드 횟수, 개발비용을 간신히 회수한 수익금 등 게임 업체가 우려하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center

◇손노리의 대표작 악튜러스. 화이트데이와 같은 불법 복제 피해를 입었다


손노리는 '화이트데이' 출시 전에도 이미 불법복제로 인해 막심한 손해를 본 상태였습니다. RPG게임 '악튜러스'가 와레즈를 통해 불법 유통돼 이미 수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기록 중이었습니다. 억울하지만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2001년 11월 손노리는 '화이트데이'를 불법 유통한 이용자 4명을 저작권 물의 불법 유통과 소프트웨어 불법 개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놓습니다.

이에 게이머들은 방귀뀐 놈이 성낸다는 식으로 손노리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고발 대상 중에 미성년자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일부 매체는 손노리가 아이들을 고발한 돈의 노예라는 식의 보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고소는 성과도 남기지 못한채 '악튜러스', '어스토니시아스토리' 등으로 쌓아온 손노리의 신뢰도에 금이 가는 결과만을 남기게 됩니다.

손노리의 대응을 본 PC 패키지 업체들 역시 입장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한국 게임 진출을 의욕적으로 준비하던 PC 패키지 업체들은 불법 복제 문제에 더해, 손노리가 당한 결과를 보고 한국 시장을 포기하게 됩니다. PC 패키지 시장이 축소된 것이지요.

정부는 PC 패키지 시장이 축소 되자 불법 복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관리가 쉬운 온라인 게임으로 눈을 돌렸고, 이용자들은 게임 업체가 상도에 어긋나는 짓을 한다며 비난했습니다.

결국 '화이트데이'로 시작된 불법 복제 문제는 한국 게임 시장에 깊은 상처 두가지를 남기게 되는데요. 첫 째는 한국 패키지 시장에 대한 해외 업체들의 인식 변화 입니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을 근거로 한국 시장 진출의 의욕적인 행보를 보였던 해외 업체들은 손노리의 사례를 통해 철수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해외 게임의 한국 현지화 작업 취소입니다. 한국은 고유 언어인 한글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만큼 해외 게임의 현지화 작업이 필수인 시장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수익성이 없는 한국 시장을 위해 현지화 작업을 해줄 '대인배' 업체는 드물었고, 결국 한글화된 게임의 수는 줄어만 갔습니다. 해외 인기 게임의 한글화가 취소되자 자연히 PC 패키지 시장은 더욱 작아지는 악순환을 겪게 됐고, 게임을 정품으로 구매하던 게이머들은 즐길 작품이 적어지는 된서리를 맞게 돼 승자없는 전쟁으로 한국 게임사에 기록되었습니다.

[데일리게임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


<Copyright ⓒ Dailygame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