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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전설] FPS 장르를 완성한 '둠'(2)

게임은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출발해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 매김했습니다. 게임은 문화 콘텐츠를 넘어 2010년 기준 한 해 60조 원이 오가는 문화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전 과정은 수 많은 게임 제작사와 완성도와 작품성, 예술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데일리게임은 게임을 문화 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한 유명 게임 시리즈의 못다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CO-OP 모드의 시작, 네트워크 연결과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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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의 네트워크 협동 모드는 원시적이지만 높은 완성도로 완성됐다


'둠'은 FPS 장르를 완성했다고 평가 받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멀티플레이로 즐기는 협동(Cooperation, 이하 협동)모드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핫이슈로 급부상 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현재까지 이어져 대부분의 FPS 게임이 '둠'이 완성한 협동 모드를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습니다.

'둠'이 출시된 1994년 초기 빈약한 네트워크 환경 속에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이 콘셉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명 SF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로빈 윌리엄스도 바쁜 일정 속에서 틈틈이 짬을 내 이 기능을 즐겼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였는데요.

특히 IT 친화도가 높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협동 모드가 대인기였습니다. 당시 사무업무를 전산으로 교체한 업체들의 경우 업무 시간을 쪼개 '둠'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하는데요. '둠' 멀티플레이 때문에 적은 대역폭을 가지고 있던 사내 네트워크 망이 마비돼 오히려 업무 효율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IT 인프라 담당자들은 개인 컴퓨터의 '둠'을 삭제하는 프로그램이나 접속 포트를 막는 방화벽을 설치해야 했는데요. 일부에서는 회사 지침상 어쩔 수 없이 게임 접속을 차단했지만, 네트워크 담당자들은 여전히 '둠' 협동 모드를 즐기며 지루한(?) 업무 시간을 활기차게 보냈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습니다.

◆'둠' 마니아 게이브 뉴웰, 벤처 열풍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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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브의 최고 경영자 게이브 뉴웰


'둠'과 함께 불어닥친 협동 모드 열풍은 게이브 뉴웰이 게임 사업을 시작하데 있어 방아쇠 역할을 했다는 것도 유명한 사실입니다.

'둠' 출시 초기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게이브 뉴웰은 이 게임의 열성적인 팬 중 한명으로 동료들과 협동 모드를 즐기면서 게임 산업에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게이브 뉴웰이 우연한 계기로 입수한 한 장의 업무 리포트였습니다. 내용은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있어 필수 소프트웨어인 운영체제보다 '둠'이 더 많이 팔렸다것 이었지요.

당시 게이브 뉴웰은 '둠'이 이룬 성과에 큰 충격을 받았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청춘과 열정을 바친 소프트웨어보다 파급력이 크고 젊은 세대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둠'이 겨우 6명 가량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소식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게이브 뉴웰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난 몇몇 개발자와 함께 차세대 '둠'을 목표로 게임 개발에 돌입하게 됩니다. 이때 태어난 것이 FPS의 고전 '하프라이프' 시리즈인데요. '둠'이 완성한 FPS 뼈대 위에 스토리 라는 살을 붙인 '하프라이프'는 당시 액션게임의 판도를 바꿔놓는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열풍은 IT 업계 관계자들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됐고, 이후 벤처 기업 붐을 일으키며 실리콘 밸르 초창기를 이끄는 선발 주자로 변신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둠, 게임과 폭력성 논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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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을 주제로한 영화 볼링포콜럼바인, 게임보다는 미국 사회에서 총기 구입과 사용이 지나치게 자유로운 점을 지적했다


FPS 장르를 완성이라는 영광을 얻은 '둠'이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는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둠'은 1인칭 시점에서 총기를 사용하는 게임 성 때문에 항상 폭력성 논란을 비켜 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논란 속에서 미국 게임 업계는 문제 해결을 위해 IDSA(현 ESA)를 발족합니다. 이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둠' 뿐만 아니라 여러 게임들이 폭력과 유아 교육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IDSA 발족이 후 미국 게임 업계는 영화 산업과 유사한 등급 분류 체계를 마련해 대중에게 자정 활동 노력을 보임으로서 사건을 일단락 짖게 됩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미국 사회 최악의 사건으로 꼽히는 사건 덕에 '둠'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됩니다. 1999년 콜럼바인 고교에서 일어난 학생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이 '둠'으로 알려져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지요.

당시 여론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유력 정치인이 합세한 비난은 '둠'의 몫이었습니다. 업계가 기울인 자정 노력은 물론 막대한 성과를 거뒀지만, 가정과 국가의 협력 부재로 최악의 사건이 발생 했으니 희생양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였습니다. 심리학자 제랄드 블록(Jerald Block)은 '둠'과 같은 폭력적 게임이 사건의 원흉이라며 화제의 중심인물로 우뚝 섰습니다.

콜럼바인 총기 사건을 일으킨 범인은 '둠'의 모드를 배포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등 여러가지 논쟁거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던 FBI와 미국 비밀 경찰국은 범인이 당시 심리적으로 우울한 상태였으며, 감정 억제를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조사 결과를 밝혀 '둠'은 무죄 방면 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소년의 부모님들은 이 결과에 만족할 수 없었고, 결국 게임 회사와 IDSA를 포함하는 광대한 피해보상 소송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이에 미국 사법부는 "비극적인 상황이나, 원인을 합리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방안은 아니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요.

이후 이 판결문은 게임의 면죄부처럼 사용되었지만, 최근 미국 사회가 불안정해 지면서 조 바이든과 미국총기 협회의 맹공으로 사문화될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데일리게임 서삼광 기자 seosk@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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