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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16화

정 그렇다면 굳이 더 말릴 생각은 없다. 후회는 자신의 몫이 아니니까.

“그럼 훈련을 시작해 볼까?”

의미심장하게 웃는 재희를 보며, 브록은 영문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있음을 느꼈다.

“더, 더는 못 하겠습니다!”

정확히 10분 뒤, 브록은 자신이 느꼈던 불길한 예감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찼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벌써 지쳤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악마다! 저 인간은 악마가 틀림없어!’

나무 둥치에 한가로이 앉은 재희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는 브록이었다.

“어서 일어나, 지금 쉬어버리면 지금까지 했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고.”

“크헉.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다른 건 몰라도 근성 하나는 끝내 준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윽!”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이제 와서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 훈련을 시작하자며 재촉한 건 재희가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결국, 브록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어기적어기적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브록]

레벨 : 29

소속 : 클로버 보병대

칭호 : 행동대장

명성 : 223

잠재력 : B

근력 : 51+5

민첩 : 21

체력 : 46+5

감각 : 24

훈련을 시작한 지 불과 30분 만에 브록의 레벨이 한 단계 올랐다.

더불어 근력과 체력도 소폭 상승했다.

워낙 미세한 차이라, 브록 장본인은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겠지만.

‘역시 빠르군.’

잠재력이 높은 편이라 성장 속도가 남다르다.

브록 같은 일반인은 재희처럼 레벨업을 거듭할 때마다 원하는 능력에 포인트를 투자할 수 없다.

애초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물론 나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놈이고.’

결국 브록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각 능력치에 알맞은 훈련을 따로따로 해야 한다는 소리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에 몰아붙일 때 사람은 비로소 성장한다. 조금 전에도 브록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었다.

“잠깐 쉬어도 좋아.”

바짝 죄어줬으니 이젠 풀어 줄 시간이다. 또 다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선 휴식이 필요할 테니까.

“후아!”

재희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브록이 대자로 바닥에 뻗었다.

일단은 능력치 상승을 기본으로 깔아 두고, 차근차근 실전 훈련을 도입할 계획이었다. 이래 봬도 다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훈련방식이다.

‘이 녀석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볼 수 있겠지.’

불필요한 군더더기 없이 완성된 훈련과정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조장님.”

“음?”

“사실 지난번일,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계신 거죠? 그래서 일부러 빡세게 굴리시는 거 아닙니까?”

“설마. 오히려 처음이라서 배려해 주고 있던 참이었는걸. 정말로 내가 앙금이 남아 있었다면, 과연 네가 지금처럼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까?”

“…….”

브록은 냉큼 입을 다물었다. 괜히 말 한 마디 잘못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았다.

“그럼 나도 슬슬 내 할 일을 해 볼까.”

무언가를 땅에 내려놓은 재희는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 ‘무언가’를 본 브록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죽은 놈을 갖다가 뭘 하시려고요?”

그도 그럴 것이, 재희가 땅에 내려놓은 것은 다름 아닌 러너의 시체였다.

머리와 몸통이 떨어진 놈의 시신은 이미 절명했음에도 오금이 저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연구해야지.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 못 들어봤어?”

말을 마친 재희는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는 가차 없이 러너의 머리를 갈랐다.

기생충은 이 머릿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는 의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뉴스를 통해 들어본 적은 있어도, 지금처럼 제 손으로 직접 놈들에 대해 분석했던 경험은 없었다.

그는 과학자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니까.

어쩌면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푹.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이미 숨이 끊어진지 꽤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 피가 굳었다. 덕분에 피가 철철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는 일은 없었다.

[해부학 습득!]

[스킬 대성공!]

[습득률 : 10% (F랭크)]

[해부한 종에 대한 추가 피해 5%, 낮은 확률로 고급 재료 획득 가능.]

[보너스 : 힘 +5 감각 +5]

[하울링의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1%)]

‘이것도 빼놓을 수 없는 스킬 중 하나지.’

보다 좋은 장비를 획득하기 위해선 그만큼 좋은 재료가 필요한 법이니까.

더군다나 동일한 종에 해부를 거듭할수록 추가 피해가 늘어나기도 하니 꽤 유용한 스킬이다.

“…….”

해부현장을 숨죽여 지켜보는 브록을 뒤로, 재희는 오로지 해부에 열중했다.

[하울링의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1.2%)]

[하울링의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1.4%)]

해부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울링에 관한 정보가 미세하게 상승하는 중이었다.

‘전부 시커멓군.’

좀비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놈의 두뇌는 온통 시커멨다.

본래 살아 숨 쉬었던 인간의 세포가 오래전에 죽었음을 의미한다.

‘분명 이쯤이었을 텐데.’

그는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뇌를 갈라서 보기 좋게 펼쳤다.

“우욱.”

한창 해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브록의 헛구역질 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안 봐도 돼. 같이 보라고 강요한 적 없어.”

“아닙니다. 실은 저도 이놈들의 정체가 궁금하던 차였으니까요.”

브록은 역겨운 악취와 끔찍한 광경에 괴로워하면서도 끝끝내 시선을 떼지 않았다.

놈의 뇌 속에서 나온 건 빨간 덩어리였다.

‘이놈이 모든 일의 원흉인 기생충이다.’

러너의 뇌에서 나온 덩어리는 주먹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는데, 그것으로부터 아주 가느다란 붉은 실들이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그 실들의 영역은 두뇌는 물론이고, 머리의 구석구석까지 정밀하게 닿은 채였다.

재희는 러너의 머리를 내려놓고 놈의 배를 갈랐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머리뿐만 아니라 전신이 붉은 실들로 가득했다.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군.”

팔다리와 가슴팍을 찔러도 끄떡도 하지 않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 미확인 덩어리만 파괴당하지 않는다면 녀석들은 죽지 않는다.

아예 골통을 부숴서 이 덩어리를 파괴시키거나, 머리를 잘라, 신체와의 연결을 끊어야만 비로소 하울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셈이다.

‘네놈의 정체를 밝혀주마.’

그는 디텍트 아이가 발동된 눈으로 붉은 덩어리를 응시했다.

“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인식 불가능. 정보가 차단되어 있음.]

‘어떻게 된 거지?’

재희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런 경우는 생전 처음이었으니까.

‘정보가 차단되어 있다니?’

수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글귀였다.

차단되어 있다.

‘지금까지 디텍트 아이의 정보망이 닿지 않았던 곳은 없었는데.’

분명 디텍트 아이를 통해, 지금까지 몰랐던 기생충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획득할 수 있으라며 그는 확신했었다.

‘누군가가 정보를 막아 놓기라도 했다는 건가?’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무슨 수를 써도 이 이례적인 현상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디텍트 아이가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로서도 별수 없었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수도 떠오르지 않았고.

“…….”

러너의 신체 부위가 썩은 내 나는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음에도, 그것만큼은 농익은 사과처럼 선명한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재희는 빨간 덩어리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키이익!”

손가락이 그것에 닿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덩어리의 격한 반응에 재희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불에 데기라도 한 듯, 덩어리가 한껏 몸을 움츠렸다.

그와 동시에 시체를 지배하고 있던 붉은 실들이 모두 회수되었다.

그 순간.

“음?”

꿈틀거리던 덩어리가 돌연 재희를 향해 몸을 튕겨 날아왔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반응조차 못했을 만큼 잽싼 속도였다.

“어딜!”

퍽.

재희는 반사적으로 덩어리를 손바닥으로 찍어 내렸다.

“끽!”

바닥에 짓눌린 덩어리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움직임을 멈췄다. 놈이 잠잠해지자 재희는 조심스레 바닥을 내려쳤던 손을 들어올렸다.

피가 터지기라도 한 듯, 붉은 액체가 그의 손바닥이며 바닥에 흥건했다.

“주, 죽은 건가요?”

브록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놀란 건 그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일단은 그런 것 같군.”

재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에 묻은 액체를 닦아 냈다.

“대체 뭐였을까요?”

“아무래도 기생충이 아닐까 싶은데. 하울링의 실체는 저놈이었군.”

디텍트 아이로도 감지되지 않는 괴생명체.

“문제는 이것들이 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거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재희는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이었다.

‘분명 저 녀석은 정확히 내 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능히 짐작이 되었다.

‘내 몸도 지배하려고 했던 건가?’

린데일은 레지스 왕국의 최북단에 세워진 도시다.

국경과 인접해 있어, 보통 여행자들이나 상단이 국경을 넘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식량이나 물자 등을 보급하곤 했다.

그리 큰 도시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소도시 쪽에 가까운 작은 규모다.

다만 한 가지, 린데일이 유명세를 날리는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대장장이 조합이었다.

린데일 산 무기와 방어구는 왕국에서도 최고로 쳐줄 만큼 우수했다. 특히 철검은 타지 제품 시세의 두 배를 뛰어넘을 정도였으니 이만하면 말 다했다.

명망 높은 기사들의 장비를 자세히 보면 죄다 린데일 제품이라는 소문이 들 정도.

클로버 보병대는 이튿날 아침, 린데일에 도착했다. 고된 여정 끝에 도착한 휴식처였다.

보병대가 안으로 입성하자, 부하들을 대동한 채 말에 오른 한 사내가 보였다.

제법 번지르르한 옷차림에 망토까지 두르고 있는 걸 보니 적어도 귀족인 모양이다.

“저분은 누구시지?”

재희의 물음에 브록이 냉큼 대꾸했다.

“린데일의 영주십니다. 우리 부대가 도착한다는 소문을 듣고 환영하기 위해 몸소 행차하신 것 같은데요.”

자연스레 서로 대화하는 두 사람을 본 조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브록. 네가 웬일이냐? 조장님하고 말도 다 섞고. 어제까지만 해도 혼자서 입 꽉 닫고 있더니.”

“내가 언제? 내가 우리 조장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따르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조장님?”

언제 서먹했느냐는 듯 능청을 떠는 브록이었다.

“뭐, 아무튼 16조의 골칫덩이였던 네가 마음을 바꿨다니 다행이네.”

조원 하나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누, 누가 골칫덩이라는 거야? 16조의 대들보라고 아부 떨 땐 언제고?”

“하하.”

투닥거리는 조원들을 보며 재희는 피식 웃고 말았다.

“린데일에 온 걸 환영하네! 카일 부대장. 재작년에 왕궁에서 봤던 이후로는 처음이로군.”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영주님.”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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