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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13화

이 괴상한 능력을 갖춘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깊은 고심에 사로잡힌 듯하다.

‘놈에게 당할 염려는 없고…….’

비전 아이를 기본으로 적당히 스톤 스킨을 활용한다면 러너가 재희에게 상해를 가할 방법은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건데.’

오러를 좀 더 극대화한 검으로 베어 버린다면 어찌어찌 가능할 듯도 하다.

실제로 이 세계의 기사들도 그런 방법을 애용하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 카일도 오러를 입혔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보유한 마나가 놈을 절단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는 거지.’

마나를 축적하기 시작한 게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빠른 속도였다.

현재의 마나로는 오러를 입힌다고 해도 놈에게 치명상을 입히긴 어렵다.

더군다나 조금 전 카일을 구해 줬을 때 이미 절반의 마나를 소모해 버렸다.

그럼에도 칼날이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다. 나머지 절반을 쏟아붓는다고 해 봐야 결과는 뻔하다.

그간 차원을 돌아다니면서 축적된 그의 지식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장점은 단연 경험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러너라는 놈도 사실 따지고 보면 특이한 축에도 못 끼는 녀석이었다. 녀석의 장단점은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더 강한 상대들도 쓰러뜨려 왔던 그가 고작 이런 놈 하나 꺾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일단 저 망할 다리부터 어떻게 해야겠는데.’

저 부산스러운 두 다리를 부러뜨려 놔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이 정도의 마력이라면…….’

마력을 다루는 방법이라면 모조리 꿰고 있다.

아까 전처럼 오러로 전환할 수도 있고, 아니면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게 좋겠군.’

가만히 머리를 굴리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모든 설계는 끝났다.

이제는 저놈을 쓰러뜨릴 일만 남았다. 그는 신체 내부의 마력을 이끌어 냈다.

단전을 맴돌고 있던 마력이 바깥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곧 그의 오른손에 주먹만 한 마력 덩어리가 푸른빛을 발산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겐 주문을 외울 필요도 없었다.

머릿속으로 시전할 마법을 생각한다.

기잉!

[매직 마스터리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주문력 10% 추가, 주문 속도 10% 감소.]

[보너스 : 마력 +5, 마법 저항 +5%]

그에 해당하는 수식이 그려진 마법진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며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법진의 정중앙에 꺼내 들었던 마력 덩어리를 때려 박았다.

그 모든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보통 마법사의 단점이라 함은 나약한 신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마법을 시전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주문이었다.

단순히 주문만 외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 그 주문의 공식을 완전히 이해하면서 주문을 읊조려야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를 테면 복잡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때문에 전장에 투입하는 마법사들은 마법을 준비하는 사이, 자신을 보호할 호위들을 곁에 두곤 했다.

하지만 재희에게 그런 호위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스스로 몸을 지킬 힘도 충분했으며, 애초에 마법을 캐스팅하는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

심지어는 그렇게나 빨랐던 러너조차 펼쳐진 그의 마법에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보통 마법사를 적으로 뒀을 때 가장 보편적인 대응 방식은 마법사에게 바짝 달라붙어 주문을 외울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재희는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았다. 생각만으로 마법 시전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끝내 버렸으니까.

그때까지 러너가 딛고 있었던 지면이 돌연 다른 형태로 변질되었다. 단단했던 동굴의 바닥이 끈적끈적한 늪이 되었다.

“크억?”

러너가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땐 이미 늦었다. 발목이 완전히 늪에 잠긴 뒤였으니까.

“캬악!”

당황한 러너가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거렸다.

“소용없을 거야.”

반면 재희는 여유 있는 얼굴로 천천히 러너를 향해 다가갔다.

“네가 그렇게 발버둥 칠수록 늪은 점점 너를 집어삼킬 테니까.”

물론 러너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더 미친 듯이 발악을 하는 중이었다. 생성된 늪은 느긋하게 영역 안에 들어온 사냥감을 집어삼켰다.

재희가 러너의 코앞까지 접근했을 때, 놈은 머리를 제외한 모든 신체를 잠식당한 상태였다.

“크르륵……!”

지금껏 살의만이 가득했던 놈의 얼굴에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먹잇감이라고 생각했던 인간이 오히려 무자비한 사냥꾼이었을 줄이야.

스왐(Swamp) 마법은 넓은 범위에 늪지대를 생성하는 고차원 마법이다.

지형을 불문하고 불특정 다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법. 그런 치명적인 강점을 가진 만큼 수식이 복잡했고 상당한 마력을 요구로 했다.

물론 재희에게 스왐 마법 정도는 우습다. 다른 행성에선 대마법사의 삶을 영위하기도 했던 그였으니까.

다만 지금은 보유한 마력이 적었기에 제대로 된 스왐을 펼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늪의 범위를 대폭 좁히는 차선책을 택했다.

1미터 너비 정도라면 지금의 마력으로도 충분하다.

본래 완성되어 있던 마법을 입맛에 맞게 변형시켜서 사용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이미 완성된 마법수식을 멋대로 뜯어고쳤다간 수식이 엉망으로 뒤엉키게 되니까.

수식의 구조형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원하는 부분만을 수정할 수 있는 정밀함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런 까다로운 작업을 재희는 간단하게 해냈다.

“어디 보자.”

스왐 마법을 사용한 지금, 그의 마력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재희는 남은 마력을 끌어 올렸다.

손톱만 한 크기의 마력이 희미한 빛을 자아내며 그의 손바닥 위로 부유했다.

“남은 마력은 이 정도. 이걸로 네놈의 단단한 외피를 부수는 건 무리겠지.”

재희는 러너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캬아악!”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했던 걸까?

놈은 불에 데기라도 한 듯 필사적으로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렇지만 머리통만 달랑 남은 놈의 입장에서 그의 손길을 뿌리칠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네 머릿속도 네 살가죽만큼 단단할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놈의 가죽은 외부로의 타격을 모조리 튕겨 낼 만큼 단단하다. 하지만 그 내부는?

팟.

“끄어억!”

그는 러너의 머리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그 이질적인 느낌에 놀란 러너가 괴성을 연발했다.

“잘 가라.”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콰앙.

굉음과 함께, 러너의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었다.

놈의 살갗에 흠집조차 내지 못할 가벼운 폭발 마법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폭발점은 마력이 주입된 놈의 머릿속이었으니까.

찬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러너의 머리채를 집어든 그가 큰 소리로 선포했다.

“러너를 제거했다!”

“…….”

러너의 머리통을 들어 올린 재희를 보며, 브록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실 그는 이 싸움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러너가 제거당한 지금,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건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보다 재희를 향한 경외감이었다.

3등급 하울링은 골드 등급의 기사가 달라붙어야 제거가 가능한 개체다.

기사의 등급은 아이언, 브론즈, 실버, 골드, 로열. 그리고 마스터로 분류된다.

클로버 보병대에서 가장 강한 카일이 이제 막 실버 나이트의 경지에 도달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참조하면 대강 윤곽이 잡힌다.

그런 괴물을 막 부대에 들어온 녀석이 혼자서 제거했다. 그것도 손쉽게.

오한이 들었다.

저런 괴물 같은 녀석을 상대로 시비를 걸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재희가 그런 자신을 얼마나 같잖게 여겼을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재희의 손에 들린 러너의 머리를 발견하고 놀란 이는 브록 뿐만이 아니었다.

동굴에 일순 정적이 찾아왔다.

클로버 보병대의 모든 이들은 방금 전까지 노멀들과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고 재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카일이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그의 외침에 병사들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눈앞의 노멀들을 몰아세웠다.

놈들의 구심점이었던 러너가 허망하게 제거 당하자, 노멀들은 일제히 혼란에 빠졌다.

아무리 저능하다고 해도 러너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물며 늑대들도 우두머리라는 개념이 있는데 놈들은 오죽했으랴.

러너를 제거한 뒤로는 일방적인 전투가 되었다.

카일은 전열을 둥근 형태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그 안에 노멀들을 서서히 몰아넣기 시작했다.

클로버 보병대에게 완전히 포위당하는 그 순간부터 놈들의 최후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꾸억!”

사방을 빈 틈 없이 포위한 방패벽 사이로 긴 창이 사정없이 노멀들을 찔러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방패벽은 점차 하울링들을 좁혀 들어오기 시작했다.

“꾸억!”

하울링들은 그물망에 걸린 생선마냥 옴짝달싹 못한 채 하나둘씩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협곡에서의 전투는 그렇게 종결되었다. 클로버 보병대의 압승이었다.

“우, 우리가 이겼어!”

“맙소사. 이 빌어먹을 동굴이 내 무덤이 될 줄 알았는데…….”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병사들은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곳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제이!”

“네가 우리 모두를 살렸어!”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맙다!”

병사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승리의 주역인 재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 대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제는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군.”

재희를 바라보는 카일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너, 굉장히 유명한 기사였던 거 아냐? 거참 이상하네. 너 정도로 강한 기사가 정말 있었다면 분명 이름이 알려졌을 텐데. 제이라는 이름은 정말 처음 들어 본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라미로 역시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설마 저 같은 녀석이 귀족이었을 리가요.”

재희는 난처하게 웃었다. 그러다 문득 저만치에 서 이쪽을 바라보는 멘델 부관이 보였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멘델은 흠칫했다.

‘적어도 앞으로 딴죽을 거는 일은 없겠군.’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멘델을 바라보며 재희는 생각했다.

전투가 끝난 뒤, 카일은 부대를 재정비했다.

클로버 보병대의 사상자는 지극히 적었다.

여덟 명이 목숨을 잃고 열 명이 조금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하울링 무리 중에 3등급 하울링 러너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다.

“16조의 현황은 어떤가?”

보병대는 조별로 사상자를 점검하던 카일이 이윽고 재희가 소속된 16조를 향해 물었다.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16조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였다.

“다들 무사합니다만, 한켈 조장이 전사했습니다.”

재희가 답했다.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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