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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3화

비전 아이(Vision Eye).

비전이라는 말 그대로 자색 눈동자에는 예지력이 심어졌다.

비전 아이가 발동된 왼눈은 지금부터 오른쪽의 디텍트 아이와는 다른 임무를 수행한다.

예지력이라고는 해도 머나먼 미래에 벌어질 사건을 예측하거나 하는 거창한 능력은 아니다.

단기 예지일 뿐.

그가 알아낼 수 있는 고작 몇 초 뒤의 미래였다. 고작 몇 초라곤 해도 우습게 봐선 곤란하다.

전쟁터에서는 ‘고작’ 몇 초 사이에 목이 날아가기도 하니까.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몇 초 후를 헤아릴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다.

정확히는 신비로운 예지력이라기보다는 현재까지 벌어진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하여 산출해 낸 과학적 결과물에 가깝다.

그럼에도 정확도는 백 퍼센트에 육박한다.

뿌드득.

창을 쥔 손에 힘이 실렸다. 불거진 핏줄들이 피부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의 팔목이 미묘하게 뒤틀렸다. 던지는 창에 회전력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근육이 저릿저릿해 왔다.

무리한 동작에 팔 근육이 서서히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더는 힘들겠는데.’

회전력은 즉 파괴력.

정석대로라면 좀 더 팔목을 비틀어야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지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전혀 훈련되지 않은 이 몸으로 제대로 된 기술을 사용했다간 한동안 팔을 쓰지 못할지도.

저런 녀석을 상대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할 필요는 없겠지.’

준비는 끝났다.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가 날뛰는 괴물을 응시했다.

시야에 닿는 모든 것을 그대로 꿰뚫기라도 할 듯한 강렬한 시선.

팟.

자색으로 물든 각막 너머로 괴물에게서 흐릿한 잔상이 드리워졌다.

안개를 보듯 뿌옇기는 해도 알아보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다.

탓. 탓. 탓.

재희는 서서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처음엔 워밍업을 하듯 가벼웠으나 점차 속도가 붙었다. 전신을 지탱하는 두 다리에는 굳건한 힘이 실렸다.

“이거나 먹어라!”

재희는 창을 힘껏 던졌다.

쐐액.

창이 바람을 가르며 괴물을 향해 날아갔다. 정확히는 비전 아이가 알려 준 놈의 흐릿한 잔상을 향해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적은 아닌 것 같군요.”

“머슬을 맞추려는 건가?”

날아가는 창을 올려다보며 카일이 중얼거렸다. 방랑자의 시선은 분명 머슬에게 머물러 있었다.

바람을 가르는 창끝은 정확히 놈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었다.

“무모한데요.”

그렇게 중얼거리는 라미로는 의구심 어린 시선이었다. 방랑자와 머슬과의 거리는 족히 백 미터가 넘는다.

단순히 백 미터 이상, 창을 날려 보내는 행위 자체는 어렵지 않다. 일정 수준의 힘과 던지는 요령만 갖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라미로조차도 저 거리에서 머슬과 근접하게 창을 날려 보낼 정도의 근력은 갖추고 있다.

비록 명중률은 보장할 수 없겠지만.

중요한 건 저 창이 정확히 머슬을 꿰뚫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일반인치곤 힘이 굉장하군.”

심드렁한 라미로와는 달리, 카일은 솔직한 감탄사를 내놓았다.

“창이 일직선으로 날아가고 있다.”

“아. 그러고 보니…….”

그제야 라미로도 조금은 시선을 달리했다.

보통 물건을 멀리 던질 땐 각도를 높게 잡고 포물선을 그리게끔 날려 보낸다.

그래야 더욱 멀리 날려 보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방랑자의 창은 그렇지 않았다.

카일의 말대로 창의 궤도는 직선이었다.

던지는 요령을 모르거나, 더욱 큰 파괴력을 싣고자 의도적으로 저렇게 던졌거나. 둘 중 하나다.

‘적어도 요령을 모르진 않는다.’

카일은 방랑자의 투창 자세를 상기했다.

몸의 균형이 안정적으로 바로 잡혀 있었고, 그 균형은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창을 던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힘이 제대로 실렸다.

‘맞출 자신이 있다는 건가?’

카일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라미로가 탄성을 질렀다.

“어어? 정말 맞추겠는데요?”

“설령 저걸 명중시킨다 해도 머리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머슬의 취약점은 머리. 정확히 머리를 관통시켜야 놈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

“물론 저 거리에서 목표물을 명중시켰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칭찬받을 일…….”

카일이 말문을 흐렸다. 창의 궤도를 추적하던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작정하고 노렸다는 건가?”

거리가 벌어져 있었을 땐 미처 몰랐다.

창이 목표물에 거의 근접한 지금에서야 비로소 카일은 깨달았다. 그것이 머슬의 머리를 향해 쇄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카일이 눈을 흐렸다.

“근소한 차로 빗나갈 것 같군.”

그럼에도 방랑자를 향한 카일의 시선에는 감탄이 어려 있었다.

몇 번 더 시도하면 정말로 저 거리에서 머슬을 끝장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창이 아슬아슬하게 머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려는 그 순간, 놈이 앞으로 이동했다.

제 간격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난 병사들을 뒤쫓기 위함이었다.

“……어?”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머슬이 나아간 방향은 창이 날아가던 궤도와 정확히 일치했다.

퍽.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던 창은 머슬의 머리통을 보기 좋게 꿰뚫어 버리고 말았다.

아니, 정확히는 수박처럼 머리가 무참히 으깨졌다.

충분한 회전이 실린 창의 파괴력은 화살보다는 차라리 대포에 가까웠다.

“……!”

머슬은 그 좋아하던 괴성 한번 지르지 못했다.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버둥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힘없이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 다들 피해!”

머슬의 거대한 몸뚱이가 기울어지자 지상에 커다란 그늘이 드리워졌다.

쿵.

근처에 있던 대다수 병사는 영문도 몰랐다. 저 괴물이 별안간 쓰러지는 이유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깔려 죽지 않기 위해 부랴부랴 물러나야만 했다.

“……운이 좋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겠군요. 머슬이 제 발로 걸어가 창에 맞아 줄 줄이야.”

“글쎄…….”

그런 라미로와는 달리, 카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창을 던지는 방랑자에게선 일말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원하는 위치에 창을 꽂아 넣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있지 않고선 그렇게 던질 순 없다.

“과연 우연이었을까?”

“네?”

우두머리 격인 머슬이 허무하게 쓰러지자, 나머지 졸개들의 행동도 잠시 주춤했다.

놈들의 저능한 머리로도 전황이 뒤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크륵?”

크게 동요하던 그들은 병사들로부터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추격하지 마라!”

카일은 전장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울링 떼를 쫓으려던 병사들을 제지했다.

지금 놈들을 쫓을 때가 아니다.

그나마 평원이어서 정상적인 대열을 갖춰 싸울 수 있었지만, 울창한 숲속에서는 그럴 수 없다.

가뜩이나 시야가 흐릿한 궂은 날씨다.

그런 날씨 속에서 숲속 깊숙이놈들을 따라 들어갔다간 되려 봉변을 당하고 말 거다.

유난히도 푸르렀던 평원은 검붉은 피와 널브러진 시체들로 가득했다.

평화로웠던 대지가 한순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질하고 말았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지, 그 참혹한 광경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은 한시름 놓았군요.”

라미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게도 궂은 날씨에 때 아닌 하울링 떼의 습격을 받아 이대로 괴멸하는가 싶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라미로. 서둘러 부대를 재정비하게.”

“알겠습니다.”

“저 망할 녀석들이 언제 또 몰려들지 모르니 마땅히 대비해 놓아야겠지. 아니, 그전에.”

마일의 시선이 방랑자에게 머물렀다. 약간의 경계심과 경외감이 뒤섞인 복잡한 눈빛이었다.

“저자를 내 앞으로 데려오게. 지금 당장.”

[스피어 마스터리 습득!]

[스킬 대성공!]

[수련도 : 10% (F랭크)]

[창으로 공격 시, 10% 추가 피해.]

[보너스 : 힘 +5 민첩 +5]

괴물의 머리가 박살이 나는 순간, 디텍트 아이가 재희의 성장을 알려왔다.

‘습득할 것도 많지.’

한동안은 새로운 스킬 습득을 알리는 창이 쉴 새 없이 떠오를 거다.

그의 영혼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담겨 있지만, 초기화된 그의 육체는 백지와도 같은 상태였으니까.

손에서 창을 떠나보냈던 그 순간부터 괴물의 죽음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단숨에 20레벨을 돌파했다.

전신을 휘감는 활력.

온몸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일깨워지는 느낌.

이 행성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폭발적인 레벨업의 기운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감각이다.

지금처럼 초보 여행자일 때나 가능한 일.

성장을 거듭할 때마다 필요 경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그럴 수밖에.

나중엔 도니골 같은 강자를 제거하고도 레벨업에 실패했다.

‘하긴. 성장에 페널티가 없었더라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 불렸겠지.’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어떤 만화에서처럼 손짓 한 번으로 행성을 파괴하는 그로테스크한 일이 현실이 되었을지도.

하긴. 미래를 예측하고 다른 차원을 넘나들 수 있다는 대목에서 그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어 버린 건지.’

뜻밖의 사고로 낯선 차원에 내던져지게 된 이후론 쭉 이런 꼴이다. 시간조차 닿지 않는 머나먼 차원의 틈새에 갇혀 버리기라도 한 건지.

포인트를 찍는 행위만으로도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부터 난센스다.

숲속으로 달아난 그 시체 같은 녀석들이 괴물인지,

아니면 자신이 괴물인 건지. 이젠 그 경계가 모호하기만 하다.

‘진짜 괴물은 나인지도 모르겠군.’

그는 어쩐지 씁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무튼.’

재희는 상념을 털어내듯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지금은 이런 사소한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그는 제 상반신을 훑었다.

부랑자 같던 빈약한 몸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뼈와 살가죽뿐이었던 깡마른 육체는 적당한 근육이 붙어 팽팽해졌다.

적당히 보기 좋을 정도.

힘만으로는 벌써 일반인 수준을 뛰어넘었다.

초반엔 레벨이 낮은 만큼 성장도 비약적이다.

포인트를 투자할 때마다 육안으로 신체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정도.

‘지금이 좋을 때지.’

일정 수치 이상에 다다르면 외형적인 변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이를테면 힘을 상승시킬수록 방금 쓰러뜨린 괴물 마냥 근육 거인이 되어 버린다면 생활할 때나 미관상으로나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러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힘을 제외한 다른 수치에 새로 획득한 포인트를 골고루 투자했다.

힘만 비정상적으로 높으니 밸런스가 맞지 않아 사소한 걸음걸이조차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획득한 포인트가 부족하여 여전히 힘이 남아도는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다.

딱히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아직 초반이니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균형은 금방 맞출 수 있을 터.

재희는 전방을 응시했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뒤, 한바탕 재정비에 들어간 병사들의 모습이 시야에 보였다.

그들은 주인 잃은 무기를 회수하는 중이었다.

동료들의 시체를 수습하는 자들도 더러 보였다.

부상자들도 적지 않아서 고통을 이기지 못한 신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정민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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