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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퍼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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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불길 속의 각성
[데일리게임]

“아이딘!”

“고생 많았어, 아이딘!”

두 덩치가 가장 신이 났다.

“하하, 다들 잘 있었어?”

아이딘이 예상치 못한 두 덩치의 환대를 받으며 예리엘을 바라보았다. 예리엘 역시 환영의 반가운 미소로 화답한다.

“모두 고마워. 덕분에 금방 풀려났어.”

“다 페이 덕분이야.”

참견쟁이 잭슨이 말한다.

“헤헤. 나 페이 덕분에 졸지에 경비대장의 동생이 돼 버렸어.”

“네, 그래요.”

레이나가 활짝 웃는다.

“암튼 다행이야.”

예리엘이 아이딘의 손을 잡아 쥔다. 아이딘도 씩 웃으며 예리엘의 손을 정겹게 잡아 쥔다.

아이딘 일행은 신나는 발걸음으로 원샷을 향해 걸어갔다. 도적떼를 막기 위해 쌓아진 북쪽 외벽에서부터 원샷이 있는 상업지구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해도 약 2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상업지구와 조금 떨어진 주거지역에서 미쉘을 걱정하는 레이나와 이별하고 나머지 넷은 계속 원샷을 향해 걸어갔다. 오늘밤은 퍼플 하스피탈에서 요란스러운 파티를 벌여 볼 생각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나게 걸어가던 중 주거지역을 막 벗어나기 직전에 아이딘이 갑자기 멈추어 섰다.

“아이딘, 왜 그래?”

호퍼가 바로 아이딘에게 물었다. 아이딘의 시선은 주거지역 맨 끝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 공사 중인 커다란 저택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제는 지표면이 안정화되어 서서히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는 하지만 저택으로서 저 정도의 건물은 아이딘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이전에도 보긴 했지만 막상 건물이 많이 올라가자 궁금증이 생겨났다.

“저 저택 말이야. 누가 사는 거야?”

“아,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인데 꽤나 높은 지위에다가 돈도 많은 사람이래.”

“그렇겠네. 저런 건물을 지으려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 거 같아.”

“중앙정부 의원이었다는데 아픈 딸을 위해 모든 직위를 버리고 이곳으로 왔다는데.”

잭슨이 참견한다.

“정말 딸을 끔찍이 사랑하나 보네. 모든 걸 다 버리고 이곳까지 왔으면 말이야.”

아이딘이 다시 걸음을 옮긴다. 두 덩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바삐 따른다.

* * *

어느덧 새벽 두 시. 마을의 명망 있는 경비대장의 동생으로 새롭게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된 아이딘을 위해 시작된 퍼플 하스피탈에서의 파티도 어느덧 마무리 단계였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비웠고 아이딘만이 맥주를 홀짝이며 술과 싸우다 기절해 버린 다른 세 사람을 안주 삼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모두에게 기분 좋은 날이었던 것 같다. 예리엘도, 호퍼와 잭슨 그리고 주인인 페이까지 모처럼 기분 좋게 어울릴 수 있었다. 아이딘은 드디어 자신도 이 마을의 진정한 구성원이 된 기분이었다.

오늘은 먹고 죽자며 호기롭게 외치던 두 덩치 녀석들은 제일 먼저 테이블 위로 고꾸라졌다. 호퍼야 맥주 한 잔에 취하는 녀석이지만 술고래인 잭슨까지 뻗어 버린 모습을 보니 술을 많이 마시긴 마셨나 보다. 예리엘 역시 좀 전에 슬며시 잠들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과 수십 잔의 술을 비운 아이딘은 전혀 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 제법 술이 세구나.’

아이딘이 원샷에 머물고 나서 제대로 마음 놓고 술을 마셔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벌써 수십 잔을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취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대화 상대들 모두가 곯아떨어지니 아이딘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사흘 전, 자신과 싸웠던 괴물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검은 십자가.’

왠지 낯설지 않은 그 문양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싸움을 마친 이후 삼 일 동안 이리저리 정신없이 끌려 다니다가 모처럼의 여유가 생기자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검은 십자가는 분명 자신의 잊힌 과거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미 과거의 기억을 찾으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한 아이딘이지만 과거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단서의 등장은 그의 마음을 또다시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검은 십자가라는 단서 하나로 과거를 풀어 나가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다.

아이딘은 검은 십자가의 문신을 가진 괴물로 추리의 영역을 보다 확장시켰다. 그러자 문득 자신의 몸에도 새겨진 검은 십자가가 떠오르며 자신도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나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크고 작은 흉터들은 그저 평범하게 얻을 수 있는 그런 상처만은 아니었다. 순간 또다시 두통이 몰려왔다.

여기까지다. 문득 과거는 의미 없는 기억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딘에게 있어 원샷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그의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최고로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이 아이딘의 흔들리는 심정을 잘 지탱해 주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아이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하려 했다. 우선 두 덩치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이딘이 잭슨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그런데 의자 위에 엉덩이 한쪽만 걸치고 앉아 위태롭게 잠들어 있던 잭슨이 그 작은 흔들림에 테이블과 함께 옆으로 고꾸라졌다.

콰당! 와장창!

테이블 위에 있던 술병과 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면서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뭐, 뭐야!”

옆에 앉아 있다 요란한 소리에 놀라서 벌떡 일어난 호퍼가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유리 파편이 가득한 바닥으로 쓰러지려 한다. 그와 동시에 아이딘이 호퍼를 끌어안으며 비교적 유리 조각이 덜 뿌려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다행이었다. 아이딘이 아니었다면 호퍼는 유리에 베여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 잭슨과 호퍼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런, 괜히 나 때문에…….”

호퍼가 미안한 감정에 말을 못 잇는다.

“괜찮아…….”

“아니, 아이딘. 팔뚝에 피가…….”

잭슨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한 대로 주변에 있는 냅킨을 건네준다.

“이런…….”

아이딘의 왼쪽 팔뚝이 깨진 유리병에 찢겨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거 어떡하지. 아이딘, 어서 페이한테…….”

그러나 아이딘은 아무렇지 않은 듯 팔을 꽉 눌러 쥔 채 두 덩치에게 괜찮다고 한다.

“예리엘 깨지 않게 소란 떨지 말고 어서 집에 가. 큰 상처 아니야.”

“안 되는데…… 어떡하지?”

두 덩치들이 전전긍긍하면서도 아이딘의 눈빛에 눌려 결국은 문밖을 나서고 만다.

두 덩치가 떠나고 나서야 아이딘은 상처를 살펴보았다. 한 뼘 이상이 찢겨져 피부가 벌어졌다. 꽤나 깊은 상처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통증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헥터와 싸울 때도 그랬고 얼마 전 괴물과 싸울 때도 그랬고 적지 않은 상처가 생겼지만 전혀 통증이 없었다. 순간 괴물과의 격투 때 멍들었던 손가락들도 통증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는 기억이 들었다.

‘이런…….’

문득 자신의 손가락을 펼쳐보았다. 괴물과 싸웠을 때의 멍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딘은 깊게 찢어진 자신의 팔뚝을 보았다.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할 것같이 깊이 찢어진 상처가 양쪽 끝부터 서서히 아물어 가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상처가 아물 것 같았다.

“흐음.”

아이딘은 자신의 알 수 없는 치유능력에 저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자신의 예상치 못한 운동신경도 그랬지만 이런 상처의 재생능력에 의구심이 깊어 갔다. 그와 더불어 남들과 다른 자신의 능력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또한 ‘자신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곧 그 궁금증을 이었다.

또다시 두통이 밀려온다. 아이러니했다. 팔이 찢어진 통증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자신이 이렇게 두통에 시달리다니.

머리를 싸매며 잠깐 신음하던 중 이 난리통 속에서 한편에 아무것도 모르는 듯 깊게 잠든 예리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예리엘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두통이 사라지는 듯싶었다. 아이딘은 잠든 예리엘을 살며시 안아 들고는 페이의 방으로 향했다. 페이가 아무래도 한 번쯤은 더 고생해야만 할 것 같다.

* * *

루체 왕국의 왕성.

왕성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어색한 고층 빌딩. 지금의 현실에서 대재앙 이전에 화려하고 고풍 어린 왕궁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6개월 이상 지속된 크고 작은 지진들이 수백 년을 버텨 온 건물에 예외일 수 없다. 지금 대부분의 건물들은 지진을 버텨 냈거나 대재앙 이후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왕성으로 쓰이는 이 건물 역시 수없이 많은 지진을 이겨 낸 몇 안 되는 고층 건물 중 하나이다.

그 건물 상층부의 베란다에 한 여인이 오롯이 서 있었다. 그녀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여인의 자태는 감히 세상의 그 무엇도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미의 여신이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일까? 그녀는 마치 세상 모든 아름다움이 내게 있다고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아름다움은 우아하고 품격 있어 보였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 그녀는 바로 루체 왕국의 국왕 루체였다.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던 그녀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때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루체의 국방장관 빅터 엘더슨이 나직이 말했다.

“여왕님, 바람이 찹니다. 그만 내려가시죠.”

“빅터.”

“말씀하십시오.”

“이제는 한가하신가 봐요. 저까지 다 걱정해 주시고.”

“아, 아니…… 한가하지 않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는 중입니다.”

자신의 어설픈 농담에 빅터가 당황해하자 루체는 마치 소녀 같은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빅터의 나이는 올해로 쉰둘이다. 이제 서른 중반의 루체에게 있어 빅터는 큰오빠와 같은 존재. 루체 여왕은 이렇게라도 어설픈 농담으로 왕과 신하의 넓은 간격을 좁히고 싶었다. 격식이 없고 거리감 없는 여왕. 누군가의 언니이자 누나.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 같은 존재. 루체 왕국의 모든 사람들은 그리 느끼고 있었다. 빅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체가 몸을 빙글 돌렸다. 얼굴에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름다운 루체의 그 웃음을 보고 있자니 빅터의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졌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그런 미소가 여기 있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빅터가 넌지시 물었다. 루체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빅터. 그 아이가…… 그 아이가 살아 있어요.”

“그 아이라 함은…….”

빅터가 모르겠다는 듯 되묻다가 일순 얼굴을 굳혔다.

“전하, 이제 그 아이의 일은 잊으십시오.”

빅터는 빨리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루체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제 닉스 연방에 그 아이가 살아 있을 거라는 정보가 보고되었어요.”

빅터는 오전에 루체의 직속 친위부대인 스펙트럼의 이토 대령이 바삐 왕궁을 향하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왕실 친위부대 스펙트럼은 왕실 경호 임무가 주된 업무이기도 하지만 닉스와의 전쟁 발발 이후 닉스 연방의 정보수집 업무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여왕님.”

불만 가득한 빅터의 목소리다.

“빅터. 그 아이를 미워해서는 안 돼요.”

“저는 아직도 그 아이 때문에 죽어 간 수천 명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저는 그 아이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빅터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흥분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끝마친 채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내실로 들어갔다. 의족을 했음에도 두 다리가 있었을 때와 다름없을 정도의 빠른 몸놀림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는 세월이 흘러도 좌절을 모르는 불굴의 남자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빅터. 불굴의 남자.’

루체는 그런 빅터의 뒷모습을 아무런 말도 없이 막연히 바라보다가 또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반가움 가득한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그래, 살아 있었구나.”

그녀의 가냘프고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거친 바람소리에 산산이 흩어져 갔다.

주택지구 끝. 주변 건물과 영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저택. 그 저택의 정원에 한 소녀와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반면, 왜소한 소녀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에 생기라고는 전혀 없는 어김없는 병자의 모습이다.

중년의 아버지 루드 랑베르가 애써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 여기가 우리가 새롭게 살 집이다.”

“…….”

“이자벨. 너는 새집이 좋지 않니?”

“…….”

루드는 자신의 딸 이자벨의 병색이 완연한 모습에 가슴이 저려 왔다.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바칠 수 있는 루드였지만 엄마를 잃은 이자벨의 슬픔 앞에서는 루드의 뜨거운 부성애도 못 미치는 듯싶었다.

거식증에 걸려 앙상해진 이자벨의 몸은 이미 인간의 몸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만 남아 있는 앙상한 몰골에 루드는 찢어질 듯이 가슴이 아팠다.

강성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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