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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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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티노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렸다. 이런 장치가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걸 자신에게 알려 준 것에 놀랐다. 티노의 힘으로는 이 비밀 작업실의 문을 열지 못한다. 그것은 시문에게 있어 또 하나의 안전장치이지 않았을까?

“이런 거 알려 줘도 되는 거예요?”

“안에만 있는 장치니까요. 그리고…….”

시문은 비밀 작업실 안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 끝에는 비밀 작업실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어스듐이 있었다.

“완성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

티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시문을 올려다봤지만 시문은 더 설명할 생각이 없는 듯 철판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조명을 켰다.

작업은 여느 때와 같았다.

티노는 어스듐을 세척기에 넣고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하나둘씩 최대치로 활성화되는 것이 생겨나자 건져서 옆의 원통에 부었다. 모두 건져 낸 뒤 뚜껑을 닫고, 세척기에 새로운 어스듐을 부었다. 그리곤 푸른빛이 꽉 찬 원통 안 어스듐의 씨드 상태를 지켜보았다.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았다. 시문만 빼고.

“그 통 안의 빛이 무슨 작용을 하는 거라 생각하십니까?”

“예?”

늘 자기 일에만 집중하던 시문이 웬일로 말을 거나 싶었다.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말없이 티노의 답을 기다렸다. 티노는 고민할 것 없이 평소에 생각해 보던 것을 말했다.

“씨드를 뽑아내는 거 아닌가요? 씨드 자체를 그대로 뽑아내는 것이니 코어를 축출하는 것과 다른 원리일 테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시문은 티노의 대답에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푸르스름한 빛 속에서 유유히 부유하는 어스듐을 바라보았다. 혹시 기계의 원리라든가 기능 등을 알려 주려는 게 아닌가, 조금 기대해 보았던 티노는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크게 기대했던 것은 아니라서 더 물으려 들지는 않았다.

원통 속 어스듐의 씨드가 삼분지 일 정도가 사라졌을 무렵 시문이 또다시 두서없이 입을 열었다.

“어스듐에는 여러 가지 힘이 있죠. 각종 생활동력에 쓰이기도 하고, 코어를 축출하여 각종 무기의 화력원으로 쓰이기도 하고, 오염된 환경을 정화시키거나 오염을 차단하는 기능도 있고…….”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되기도 하잖아요.”

시문의 말하는 의도는 모르겠지만 티노는 장단을 맞춰서 시문이 빼먹은 어스듐의 중요한 용도를 덧붙였다.

가공의 수준과 들어가는 양에 따라 급이 나뉘는 의약품들은 외상에 특히 효력을 발휘해서, 최상급 약의 경우엔 어지간한 상처는 순식간에 낫게 한다. 값이 무척 비싸서 보편적으로 보급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가공되지 않은 천연의 어스듐은 가공 전보다는 효과가 약한 편이지만 그래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회복 속도를 높여 준다. 두통이 날 때 구태여 약을 먹을 필요 없이 어스듐을 쥐고 있으면 천천히 가라앉는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자가 씨드가 있는 어스듐을 몇 년 동안 지니고 있다가 서서히 걸을 수 있게 된 경우도 있다. 때문에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노리개처럼 아기자기하게 조각된 어스듐을 선물하는 일이 흔하다.

시문은 천천히 원통 쪽으로 걸어와 섰다. 그러자 자연히 원통을 사이에 두고 시문과 티노가 마주본 형태가 되었다. 시문은 원통 안의 어스듐을, 티노는 그런 그를 보고 있어서 시선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그렇듯 어스듐에는 여러 가지 효능이 있습니다. 그럼 그중에서 단 하나의 효능만 특화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어스듐이 오직 생활동력에만 쓰이도록 만든다면? 오염을 정화하고 차단하는 것만 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치료만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티노는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눈으로 시문을 보았다. 지금 시문의 말이 바로 그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의 목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시문은 원통에 한 손을 얹었다. 그의 시선은 줄곧 원통 내부에 꽂혀 있었다.

“어스듐이 지닌 힘을 한 방향으로만 집중시킨다면……. 그렇다면 그 한 방향에서만큼은 보통의 어스듐보다 강한 효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10년 전에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건 어느 효능에 맞춘 건데요?”

어떻게 한 가지 효능에 특화를 시킬 수 있었는지, 그 특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 추측되는 오른쪽 집게발과 원통은 어떤 원리로 설계된 것인지, 누가 설계하고 만들었는지 등등. 궁금한 것은 잔뜩 있었지만 티노는 우선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는 질문, 더불어 시문이 답해 줄 가능성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

시문은 예의 색깔 없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치료입니다.”

그 순간, 씨드를 주입받고 있던 어스듐이 원뿔 위에서 떨리기 시작했다. 시문은 원통에 한 손을 짚은 채 계속 그 내부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 건드리기 껄끄러웠지만 떨림이 거세지고 빛의 경계막이 넓게 퍼지고 있었기에 별수 없이 그를 불렀다. 저대로 두면 폭파한다고 했으니까.

“시문 님?”

“벌써 차 버렸군요.”

딴 생각에 빠져 있는 듯 보였건만 부름에 바로 반응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똑같이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면서도 잠시 움직이지 않다가 문득 원통에 얹은 손을 꾹 쥐더니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작대로 걸어갔다.

“병원에는 환자를 위해서 병실마다 상당한 크기의 어스듐을 넣어 두지요. 저는 그것과 정화조에 설치된 어스듐을 비교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다른 효능 하나에만 사용되고 있는 어스듐들이 뿜어내는 파장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

티노는 경탄 어린 눈으로 새삼스럽게 기계를 쭉 훑어보았다. 마지막으로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는 원통에 시선이 멈췄다.

“그럼 이건 어스듐이 특정한 파장을 뿜어내도록 하는 건가요? 그 상태로 씨드를 뽑아내는 거고?”

“예. 처음에는 어스듐이 가지고 있는 치유력을 극대화시켜서 외상뿐만 아니라 내상과 중병에도 탁월한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 거라면 이렇게 비밀리에 진행하실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거기다…….”

티노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어스듐 위에서 서서히 오므라들기 시작하는 집게발을 돌아보았다. 단순히 치유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어째서 저런 작업을 계속 반복하는 것일까? 약품에 어스듐을 많이 넣으면 효과가 높아지는 것처럼, 저렇게 압축하고 주입하기를 반복하면 치유력이 높아지기야 하겠지만…….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티노의 의문을 읽은 양 시문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처음에는’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예?”

티노가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시문은 가장 긴 스틱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천장 전체에 빛이 들어오면서 눈이 아프도록 주위가 환해졌다. 그리고 이 작업을 할 때면 늘 그랬듯이 강한 압력에 휘말려 옷 등이 거칠게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티노는 여느 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어스듐 내부의 씨드가 압축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한 씨드가 강한 압력에 의해 조밀하게 뭉치고, 뭉치는 과정은 언제 보아도 경이로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씨드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다. 이제는 개별적인 모습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겹치고, 겹친 씨드들이 갑자기 활발하게 진동하게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서로 들러붙기 시작했다.

단지 너무 많이 겹쳐져서 특유의 문양을 구별할 수 없었던 전과는 달랐다. 비눗방울이 서로서로 뭉쳐서 하나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씨드들은 본래의 형태를 잃고 서로 뭉쳐서 하나가 되어 갔다. 그 속도는 외부에서 강제로 압력을 주어서 압축시켰을 때보다도 빨랐고,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하게 부푼 물방울이 터지듯이 씨드 전체가 하나가 되어서 그 기이한 반응이 멈췄을 때 티노는 작업실이 한 톤 어두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집게발 끝에서 쏘아지는 어마어마한 황금빛도, 천장 전체에서 뿜어지는 기계의 환한 빛도 전부 그대로인데도.

우우웅…….

기계가 모두 멈췄을 때, 시문도 티노와 같은 것을 느낀 듯 침묵했다. 둘의 시선은 똑같이 원뿔 위에 고요히 존재하는 어스듐에 꽂혀 있었다. 더 이상 황금빛으로 빛나지 않는 그것을. 작업실 전체를 환히 밝히던 빛은 물론 일반 어스듐이 뿜어내는 희미한 빛조차 사라진 그것을.

그저 황금색만을 가진 그것은 어스듐으로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작업과정을 눈앞에서 보지 못했다면 그것을 어스듐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황금 덩어리라 생각해 버렸을 것이다.

“황금의 어스듐…….”

티노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초라하고 존재감 없는 형태지만 티노도 시문도 알 수 있었다. 실험이 끝났다! 완성되었다!

정확한 목적도, 효능도 모르지만 티노는 경이감에 찬 눈으로 광채를 잃은 어스듐을 바라보았다. 그런 티노의 귀에 시문의 무게감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금의 어스듐이라……. 괜찮은 이름이군요. 이제부터 그렇게 부르도록 하죠.”

“그렇게 대충 지어도 돼요? 생각해 둔 이름 없어요?”

“없습니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요.”

“자신의 연구 작업에 너무 애정이 없는 거 아닌가요?”

“후후.”

시문은 무슨 의미인지 모를 웃음을 옅게 흘렸다. 고작 며칠 가담했을 뿐인 티노조차 감동하고 있건만 시문은 여느 때와 똑같았다. 그래서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시문은 조작키를 누르자 다물렸던 왼쪽 집게발이 천천히 벌어지며 세 개의 뿔을 드러냈다. 이어서 또 다른 조작키를 눌렀다. 그동안 본 것이 있어서 대충 눈에 익은 조작법이었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시문 님……?”

설마, 설마 했건만 역시나 원통 안에 푸르스름한 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원통 안의 어스듐이 도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티노는 결국 언성을 높였다. 그가 시문에게서 얻은 최소한의 정보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저 작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문 님?! 뭐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폭파되겠죠.”

시문은 담담하게 웃으며 티노가 차마 잇지 못한 말을 알아서 매듭지었다. 그리고 사다리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세요.”

“……네?”

“마침 오늘 비상스위치를 알려 줘서 다행이네요. 먼저 올라가세요.”

“그게 무슨……?”

상황은 일목요연했지만 받아들이길 거부하던 머릿속이 간신히 삐걱삐걱 움직였다.

“설마 파괴할 생각이신 겁니까?”

“예.”

시문의 답은 너무 간결하고 쌈박했고, 음성이나 어조는 너무 평이했다. 그래서 더욱 와 닿지가 않았던 티노는 세 개의 뿔에 황금빛이 고이기 시작하자 다급히 물었다.

“완성품의 기능을 시험도 안 해 보고 파괴할 생각이라고요?”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요.”

“그럼 대체 왜 만드신 거예요?”

그것도 그토록 많은 시간과 정성과 자본과 어스듐을 들여서! 이렇게 허망하게 파괴할 거라면 왜 그런 헛고생에 돈지랄에 범법행위를 한 것이냔 말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필요했습니다.”

“이젠 필요 없어졌고요?”

“예.”

황당해하는 티노와는 상관없이 시문은 태연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그 모습에서, 이것이 충동적으로 벌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작정해 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도중에 필요 없어졌다면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었잖아요?”

“어스듐의 파장을 연구하고 그것을 뽑아내기 위한 기계 설계까지는 어떻게든 제 선에서 해결했습니다만 그 기계를 제작하고 이 작업실을 만드는 데는 힘이 부쳤습니다. 거기에 대량의 어스듐을 정기적으로 몰래 들이기 위해서는 조력자들이 많이 필요했지요.”

세 개의 뿔에 고인 황금빛이 마침내 황금의 어스듐에 쏘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하나로 완성된 황금의 어스듐은 바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시문의 어조가 빨라진 것 같았다.

“다른 귀족들이 개입되면서 함부로 손을 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손을 떼면 다른 누군가가 제 뒤를 이어서 이것을 만들겠지요. 전쟁까지 발생시킨, 고갈되어 가는 어스듐을 몇몇 ‘선택받은 자’를 위해 무의미하게 낭비해 가면서.”

“그게 무슨……?”

치유력을 극대화시킨 어스듐이 어째서 몇몇 ‘선택받은 자’에게만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외상뿐만 아니라 내상 및 질병에도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약이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텐데?

“황금의 어스듐은 말이죠, 티노 군.”

시문은 점점 떨림이 격해지는 황금의 어스듐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피식 웃었다. 씁쓸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싸늘하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한 복잡한 그 웃음의 밑바닥엔 한없이 시린 허무함이 깔려 있었다.

“이를테면 만병통치약 같은 겁니다. 외상에도 내상에도 질병에도 즉각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거기에 적어도 백 년 정도는 사용할 수 있는…….”

“……!”

“뭐, 시험해 보진 않았으니 ‘이론상’이라고 해 두죠.”

그러면서 시문은 시린 웃음을 흘렸다.

티노는 시문이 앞서 말한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황금의 어스듐 하나를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어스듐이 소모되었는지 상상도 안 된다. 하지만 귀족들은 ‘자기 몫’의 황금의 어스듐을 가지기 위해 아무 거리낌 없이 어스듐을 써 댈 것이다. 바로 그것을 위해 시문을 지원해 왔을 것이고, 직접적으로 돕지 않더라도 방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시문의 연구를 보호해 왔을 테니까. 어스듐의 고갈 때문에 플로레스라와 전쟁까지 치렀으면서도.

머리로는 백번 납득하고도 남았지만 가슴으로는 역시나 아까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창조자인 시문이 그리 결정한 것을.

그러는 동안 황금의 어스듐 외부에 황금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줄곧 그것만을 바라보던 시문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자, 어서 나가세요.”

“왜요? 완성품의 최후를 혼자 감상이라도 하고 싶……?”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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