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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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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라디의 망가진 공구
[데일리게임]

시문의 부름에 티노는 흠칫했다. 부주의하게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해 버렸다. 도둑 회로를 티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시문에게 들켜 봐야 좋을 것이 없는데! 그런데 시문은 지극히 여상스럽게 물을 뿐이었다. ……못 들은 걸까?

“공간이 얼마나 생긴 것 같습니까?”

“별로 없어요. 금방 다시 차 버릴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시문은 다시 어스듐 영상을 보며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씨드를 쑤셔 넣을 공간이 얼마나 생겼는지 알아보려는 거겠지.

“흠……. 예상보다 빠르게 결과가 나오겠군요.”

몇 년을 연구해 온 결과물을 곧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인데도 어째서인지 시문의 말투는 지극히 평이했다. 아르카는 늘 ‘완전한 분해’에 실패하면서도 실험체만 손에 들어오면 생기와 활기가 넘쳐흐르는데 말이다.

“기대되지 않으세요?”

“기대됩니다.”

시문은 좀 전과 다를 바 없는 어조로 답하며 액정을 도로 내렸다.

“통 안의 어스듐을 확인하고 있으세요.”

“예!”

다시 왼쪽 집게발이 벌어져 세 개의 뿔을 드러냈고 오른쪽 원통에는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티노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아까 씨드가 꽉 찬 상태였을 때 말이에요.”

“예?”

“어스듐이 막 떨리던데 바로 주입을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아, 그거요. 그렇지 않아도 제일 처음 씨드가 꽉 찼을 때 궁금해서 해 봤었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티노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 한 번 채우는 데 소모됐을 어스듐의 양을 생각하면 단순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대가가 너무 크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연구 전체를 생각하면 가장 효율적인 타이밍에서 실험한 것이겠지.

시문의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폭파됐습니다. 억지로 주입시킨 탓인지 씨드도 전부 사라져 버렸죠.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항상 지켜봐야겠네요.”

“그렇죠.”

그 뒤는 요 며칠간 해 온 것과 똑같은 작업이 이어졌다.

점심식사 시간, 티노는 별 의미 없는 말투로 물었다.

“요즘도 씨드가 끊기는 일이 자주 있어요?”

티노와 같은 식탁에 앉아 있던 직원들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그럼! 지긋지긋하게 자주 끊겨.”

“요즘 들어선 하루걸러 하루야.”

“어제는 두 번이나 끊겼다고 하더라고.”

“왕성의 씨드까지 끊겼는데도 손 놓고 있는 작자들에게 뭘 기대하겠어?”

그에 대한 화제는 특별할 것이 없어 직원들의 대화는 곧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티노는 더 말 거는 일 없이 때때로 예의상 추임새를 넣어 가면서 식사를 계속했다.

지난 며칠 동안 수도의 일부 구역의 씨드를 끊기게 하는 주범인 게 확실한 ‘압축 작업’을 벌써 여섯 번이나 했다. 그동안 수도의 씨드가 끊겼던 주기를 생각해 보면 분명 그 간격이 심하게 짧아져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어스듐의 내부가 포화상태에 이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억지로 압력을 가하여 만들어 낼 공간조차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오후, 반나절 만에 두 번이나 압축 작업을 했다. 아직도 무슨 목적으로 하는 연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 완성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저들끼리 떠들던 직원 중 한 명이 티노에게 말을 걸었다.

“청소는 할 만하냐?”

“버려도,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어요.”

티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처음 청소를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오전에는 청소로 시간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치운 표조차 나지 않았다. 어느 의미에선 대단했다. 다른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언젠가 라디가 미심쩍어하며 한 말과 같았다.

“그런데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 작업실 안에 소각로와 연결되어 있는 통로가 있더라고요. 우선 태울 수 있는 쓰레기만 치우고 있어요. 그것조차도 반의, 반의, 반도 못 치운 것 같아요.”

“그래? 그래도 소각로가 작업실 안에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수시로 쓰레기를 치우러 들락거려야 했을 거 아니냐?”

“맞아. 그만한 게 어디냐?”

“예, 예.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티노는 무감동하게 대답했다. 언제 어디서든 시문의 행동을 미화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직원들과의 대화에도 이젠 태연히 응할 수 있었다.

그때 식당 문이 벌컥 열리며 웨이가 들어왔다. 그는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빠르게 들어서면서 소리를 질렀다.

“생사람 잡지 말라니까?!”

“전 다 안다고요! 웨이 선배 말고 그럴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선배 말곤 없잖아요?!”

그 뒤를 바싹 쫓아 들어온 사람은 라디였다. 그녀는 웨이를 따라잡기 위해 달리다시피 걷느라 조금 숨이 차 있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비겁해요! 겁나셨던 거죠? 제가 먼저……!”

“저 자식이 그랬을 수도 있지.”

웨이는 라디의 말을 싹둑 자르며 티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진심으로 티노를 의심해서라기보다는 라디의 말을 자르는 것이 목적으로 여겨지는 언행이었다.

“……?”

조용히 식사를 하던 티노는 무슨 일인가 하고 그들 쪽을 봤다. 웨이가 가리키는 대로 시선을 돌렸던 라디는 티노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바로 했다. 그리고 의외로 공정하게 항의했다. 여전히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티노가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왜 없어?”

“티노는 선배와는 달리 승……!”

웨이는 이번에도 라디의 말을 자르며 능청스럽게, 그리고 비겁하게 말했다.

“네가 요즘 티노한테 하는 짓을 생각해 봐. 식사도 안 만들어 주지, 말 걸어도 무시하지, 뭘 하든 일일이 참견하고 감시하려 들지. 어쩌다 말을 해도 항상 시비조였잖아. 저놈이 너한테 악감정을 품고 있을 게 당연하잖아?”

라디보다 더 신나서 나댔던 것은 자기면서 그건 쏙 빼놓고 라디만 못된 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니라서 라디는 발을 동동 구르며 씩씩거릴 뿐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점심때 외에는 얼굴 볼 일이 거의 없는 다른 직원들이 웨이의 말에 티노와 라디를 번갈아 보았다. 둘이 근래 들어 같이 앉아 식사하는 일이 없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둘 사이의 불화를 눈치 채지는 못했던 것이다.

티노는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별일 아니에요. 그냥 애들 싸움이죠, 뭐. 어른이 끼어들면 모양새가 웃겨지는.”

그 모양새가 웃겨진 어른은 물론 웨이였다. 그 말을 가장 잘 이해한 것은 웨이였지만 다른 직원들도 대충은 알아듣고 웃음을 참는 얼굴로 웨이를 흘낏 보았다. 그리곤 라디에게 달래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는 거냐?”

티노와 싸운 이유를 묻는 것인지, 웨이와 싸운 이유를 묻는 것인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질문에 라디는 입술만 꼭 깨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두 눈엔 눈물이 가득했다.

“라디?”

직원들이 한층 조심스럽게 부르자 괜히 웨이가 끼어들었다.

“글쎄, 자기가 실수한 걸 저한테 떠넘기려 들지 뭡니까? 뭐, 실수인지 다른 놈이 한 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같은 방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절 범인 취급하면서 두 눈을 희번덕 뜨고 달려드는데 아주 무섭더라니까요? 휴, 시문 님이 그 모습을 못 봐서 다행이죠. 섬뜩할 지경이었으니…….”

라디는 결국 흑,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뛰쳐나가 버렸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웨이를 힐난 어린 시선으로 보았다. 웨이는 어깨를 움츠렸다가 곧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저도 억울합니다! 툭하면 시비에, 참견에, 무슨 일만 있으면 절 걸고넘어지는데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요! 아주 답답해 미친단 말입니다!”

그리곤 웨이도 씩씩거리며 나가 버렸다. 사건을 일으킨 두 사람이 전부 나가 버리자 사람들은 티노를 돌아보았다. 뭐 아는 거 있냐는 의미였지만 그런 게 있을 턱이 없는 티노는 어깨만 한 번 으쓱이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라디는 청소하러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쩐 일인지 힐을 비롯한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혼자서 청소하는 티노가 이상하지도 않은지 여상스럽게 인사를 건네 왔다.

“여, 티노! 청소하는 거냐?”

“혼자 하느라 힘들겠지만 오늘 하루만 네가 참아 줘라.”

“웨이와 라디는 어디 있는 거야? 식당? 숙소?”

티노는 어리둥절해져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일찍 어쩐 일들이세요?”

“그야 후배들 응원차 왔지.”

“응원요?”

직원들은 의아해하는 티노를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보다가 이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 몰랐구나?”

“하하! 아무리 관심이 없대도 이런 날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그래, 그래! 웨이와 라디가 섭섭해하겠다!”

“그게 무슨……?”

설령 티노가 둘에 관련된 어떤 사건을 모른다 쳐도, 그 둘에게는 섭섭해할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과 그 둘 사이의 불화를 떠벌리고 다닐 생각이 없었기에 얼떨떨해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물었다. 그러자 한 직원이 티노의 등을 팡팡 치고 지나갔다.

“오늘이 바로 수습 기술자의 승급시험이 있는 날이잖아!”

“아……!”

티노는 깜박하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 양 반응했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승급시험 날짜 따윈 모르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까지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날짜는 묻지도 듣지도 않았던 것이다.

‘라디가 안 나온 게 그래서였구나.’

지금쯤 긴장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입으로는 경험을 쌓기 위해 응시하는 거라곤 했지만 사실은 진심으로 합격을 노리는 것이 훤히 보였으니까.

“역시 식당에 있으려나?”

“그러겠지? 라디가 시험 날이라고 시문 님의 식사를 빼먹을 리 없으니까.”

응원부대들은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리고 식당 쪽으로 우르르 가 버렸다. 남겨진 티노는 하던 청소를 마저 하기 시작했다. 바닥을 대걸레로 닦고, 기계를 기름걸레로 닦은 뒤에 대걸레는 깨끗한 물에 빨아서 밖의 벽에 기대어 놓고 기름걸레는 잘 개어서 두던 곳에 넣었다. 그 다음에 식당으로 갔다. 근래 들어 대단히 껄끄러워진 두 사람을 응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식당 안의 광경은 티노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직원들은 한쪽에서 웨이와 이야기 중이었고 라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음식 냄새가 나질 않는 걸 보면 시문의 식사를 만들지도 않은 듯했다.

티노가 들어오자 직원들이 손짓해서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들 옆에 서 있던 웨이가 순간 불쾌한 얼굴을 했지만 곧 히죽 웃어 보였다. 그것에 오히려 티노 쪽이 불쾌해지려 했다.

“청소 끝낸 거냐?”

“예. 라디는요?”

“그게 말이다…….”

직원들은 한숨을 푹 쉬었다.

“휴. 그래, 너도 알고 있어야 신경을 써 줄 테지.”

“라디는 이번 시험에 안 나간다고 하는구나.”

“왜요?”

야심차게 준비하던 라디를 알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까지는 우리도 모르겠다만……. 숙소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더라. 너무 늦어져서 나랑 웨이가 같이 찾아갔었는데 문도 안 열고 안에서 내버려 두라고 소리치더라고.”

힐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손이라도 다친 걸까?”

“어제부터 상태가 이상하긴 했는데…….”

직원들이 걱정 어린 말을 한마디씩 꺼냈다.

“자자! 지금부터 시험 치러 가야 할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라디는 아직 어리니까, 이번 시험을 놓쳤다고 풀 죽을 것 없어.”

가장 연장자인 힐이 손뼉을 짝짝 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그만 출발하자. 가는 길에 간단하게 식사하자고. 입장은 입장시간에 할 수 있지만 미리 근처에 가 있는 게 마음 편하니까.”

“힐 선배님이 내시는 겁니까?”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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