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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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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왼쪽 집게발과 씨드 단절
[데일리게임]

식사를 받는 순간까지 따라붙던 시선들은 티노가 자리에 앉자마자 숱한 질문들로 변하여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시문 님의 작업실에 들어갔다는 게 사실이야?”

“작업실은 어땠어?”

“시문 님이 작업 중이던 작품도 봤냐?”

“시문 님은 평소에 뭘 하고 계시든?”

“시문 님이 뭘 시키신 거야?”

“설마 네게 기술을 가르쳐 주시는 건 아니겠지? 넌 이쪽 방면으론 관심이 없잖아?”

“왜 하필 너냐? 가장 신참인데!”

질문들이 끝없이 쏟아지는 탓에 오히려 하나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힐이 손뼉을 짝짝 쳐서 주위를 진정시켰다.

“조용, 조용! 뭘 물어보는지 하나도 모르겠잖아!”

“그러니까 말이에요.”

티노가 끼어들어 추임새를 놔 주었다. 힐은 씨익 웃으며 자신이 했던 질문을 은근슬쩍 꺼냈다.

“시문 님의 작업실은 어떻게 생겼든?”

“……그냥 평범…….”

티노는 어디선가 버섯이 피고 있을 게 분명한 시문의 작업실을 떠올리며 저들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최대한 미화시키려 애썼다. 그런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게 너저분하죠.”

이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미화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예술가는 원래 그런 법이지!”

“게다가 시문 님의 작업실은 수습 기술자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잖아? 따로 조수나 시종을 두지도 않으시니까 당연하겠지.”

“맞아. 시문 님은 원래부터가 털털하고 대범하신 분이라서 까다롭거나 깐깐하게 구는 일이 없잖아?”

“게다가 원래 작품에 몰입하는 예술가들은 주변엔 무심한 법이니까.”

“산만한 작업실이야말로 훌륭한 예술가라는 반증인 거야!”

“그럼! 그럼!”

시문의 작업실 꼬락서니를 똑똑히 보았던 티노로서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비록 비밀 작업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긴 했지만 그건 애초에 원석을 제외하면 잡동사니가 쌓일 일이 없는 곳이라 그런 거다. 그렇지만 굳이 끼어들어서 만인의 적이 될 필요는 없기에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대신 번뜩 묘안이 떠올라, 혼잣말처럼 정보를 흘렸다.

“덕분에 전 한 달은 족히 청소하게 생겼다고요.”

“청소?”

“뭐야? 시문 님 작업실을 청소하고 있었던 거냐?”

사람들은 조금은 안심한 것도 같고, 조금은 맥이 빠진 것도 같은 얼굴로 티노를 보았다. 막상 티노가 뭔가 대단한 것을 하고 있었다면 대단히 열 받아 했을 거면서 말이다.

티노는 일부러 태연하게 그러면서도 조금 지친 듯한 모습을 만들어 냈다.

“그럼 제가 거기서 뭘 하겠어요?”

“그건 그렇다만…….”

“사방에서 굴러다니는 쓰레기며 잡동사니를 분리하는 데만도 며칠은 걸릴 판이에요.”

“그럼 시문 님은 뭘 하고 계시고?”

“작업대에서 뭘 그렸다 지웠다 버렸다 하시던데요. 그냥 바닥에 던져 버리셔서 청소하는 사람 기운 빠지게 하시더라니까요.”

저들이 듣기에 좋아할 법한 모습을 만들어 주자 역시나 금방 두 눈을 반짝인다.

“그게 예술가라는 거다!”

“장인의 작업실을 구경하는 것조차 일생에 다시없을 영광인 거다! 운 좋은 줄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청소하도록 해.”

“예. 그러지요, 뭐.”

티노는 별로 공감은 못 한다는 태도로 답했다. 시문이 진짜로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흥미야 차고 넘쳤지만 저들이 아는 시문의 작업은 원석 가공이니까. 그리고 티노는 원석 가공 쪽으론 취미가 없는 친위대 지망생이니까.

기껏 시문의 작업실에 들어가서 한다는 것이 청소라고 하자 사람들은 흥미를 잃은 듯 식사를 시작했다. 저러다가도 틈틈이 시문의 작업실에 대해 물어볼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웨이가 심술궂은 목소리로 물어 왔다.

“설마 오후에도 청소하는 건 아니겠지?”

왜 아니겠는가? 티노는 조금은 고소한 심정으로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정리하는 데만도 며칠이 걸릴 판이라니까요? 시문 님이 당분간 청소만 하라고 하셨어요. 깔끔한 작업실에서 작업하면 기분 전환이 될 거라 생각하시나 보더라고요.”

“하기야 우리도 작업이 잘 안 되면 괜히 주변 정리를 하곤 하니까.”

“사실 시문 님 요즘 슬럼프이신 것 같긴 했어. 왕실에 진상해야 하는 작품 외에는 거의 못 만드셨잖아?”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또 자기들끼리 떠들며 시문을 잔뜩 미화시키곤 티노에게 거듭 당부했다.

“티노, 네 임무가 막중하다.”

“그래. 한층 책임감을 갖고 일하도록 해.”

“……하하…….”

……그래 봐야 청소 아닌가? 애초에 저런 반응을 기대하고 한 말이긴 했지만 정말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답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라 씩씩하게 대답했다.

“예! 열심히 할게요!”

그리하여 결국 원석 수거도 웨이의 몫이 되었다. 이제 웨이의 좋은 날은 다 간 셈이다.

티노가 공방에 온 이후로 가장 시끌벅적했던 점심식사를 마치고 늘 교재를 보던 벤치에 길게 누웠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햇살이 따스해서 기분 좋았다. 머릿속에는 시문의 비밀 작업실에서 보았던 기계가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궁금해 죽겠다. 대체 어떤 작동 원리인 걸까? 씨드를 압축해서 뭐에 쓰려는 걸까? 저 기계의 설계도면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 누가 만든 걸까? 각 공방에 따로 제작을 의뢰해서 조립한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입단속을 시켰어도 업계에 소문이 퍼졌을 텐데. 설마 제작 후에 죽인 건 아니겠지?

……아니야. 저 정도를 만들어 낸 사람이라면 분명 장인일 텐데, 전쟁 중에 장인은 왕족에 버금가는 보호대상이었어. 그 당시 실종된 사람도 죽은 사람도 없었고. 아, 궁금해.

낮잠을 자는 양 누워서 오만 잡생각을 하던 티노의 귀에 점심시간 종료벨이 들려왔다. 벌떡 일어나서 세척실 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위치에서 시문의 작업실로 가려면 세척실을 지나는 것이 가장 빨랐다.

세척실 구석에 있는 서랍장이 눈에 밟혔지만 애써 외면하고 지나갔다. 어스듐을 최대치로 활성화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까 테이슨이 가져다 준 교재를 들고 가면 좋을 텐데……. 지금은 주변 이목이 있으니 사람들이 티노가 시문의 작업실에 가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때쯤에 가져다 놔야 안전할 것이다.

“음……?”

티노는 자신을 쫓아오는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라디였다.

“시문 님의 작업실에 가는 거야.”

티노로서는 라디가 근래 들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들었기에 행선지를 밝힌 것에 불과했다. 때문에 라디가 발끈하며 자신을 노려보는 것이 이해가 안 됐다. 막말로 티노가 여자도 아니고, 시문에게 특별히 가르침을 받는 것도 아니고 단지 청소를 하는 것뿐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저렇게 질투에 휩싸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째서 친위대의 지시를 받아 자신을 염탐하는 널 곁에 두는 거지?”

“근거 없는 소리하지 말아 줘. 기분 나쁘니까.”

티노는 오히려 불쾌하다는 얼굴로 뻔뻔하게 말했다. 여태 시치미 뗐는데 이제 와 인정할 수는 없었다.

“청소라면 나도 할 수 있어. 근데 왜 너인 거야?”

“그야 나도 모르지.”

이유라면 너무 잘 알지만 알려 줄 수는 없지……라는 본심은 감쪽같이 숨겼다.

“이해할 수 없어. 왜 하필 너인 거야? 차라리 웨이 선배가 낫겠어. 그래도 웨이 선배는 수습 기술자 경력이 가장 기니까.”

“……그게 썩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티노는 시큰둥하게, 그러면서도 냉정하게 반박했다. 그는 웨이에게만은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벗어던지기로 한 지 오래였다.

그러는 동안 시문의 작업실로 통하는 철문 앞에 도착했다. 라디는 그때까지도 티노의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티노는 시문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무심히 벨을 눌렀다.

잠시 뒤 시문이 나왔다. 그는 티노 뒤에 서 있는 라디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라디 양? 그릇을 받으러 온 겁니까?”

보통은 다음 식사를 가져올 때 받아 갔었기에 시문은 현재 빈손이었다. 라디는 고개를 홱홱 가로젓고는 늘어뜨린 두 손을 꼬옥 깍지 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뺨은 붉게 달아올랐다.

“저…….”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겁니까?”

시문의 부드러운 음성에 용기를 낸 듯 라디는 갑자기 티노를 밀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어찌 보면 애원하는 듯도 하고, 어찌 보면 도전하는 듯도 한 태도였다.

“청소라면 제가 더 잘할 수 있어요!”

“…….”

시문의 시선이 티노에게 잠깐 닿았다 떨어졌다. 티노가 사람들에게 뭐라 둘러댔는지 바로 알아챈 듯했다. 그렇다면 알아서 말을 맞추겠지, 티노는 느긋하게 생각했다.

“아니요. 티노 군이 더 적격입니다.”

“어째서요?”

라디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에는 여전히 애원과 도전심이 애매하게 섞여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문의 얼굴에 그려져 있는 미소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티노 군은 원석 가공에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요. 옆에 있어도 작업할 때 부담이 없거든요.”

“……!”

확실히 그 점에 있어서는 라디가 티노보다 미달되긴 했다. 그녀는 시문의 작품에 감화되어 이곳에 들어온 사람이니까.

라디는 대번에 시무룩해져서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시문은 늘 그랬듯이, 부드럽지만 온기 없는 목소리로 확인사살을 날렸다.

“그럼 이야기는 끝난 거죠?”

“……예.”

라디는 애처롭게 몸을 돌렸다. 그리곤 티노를 원망으로 점철된 눈으로 보다가 달려가 버렸다.

어째서 날 원망하는 건데? 티노로서는 어이가 없고 억울한 일이었지만 18세 소녀의 복잡한 마음을 그가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냥 그런가 보다 넘어가는 수밖에.

시문은 산뜻한 얼굴로 티노를 칭찬했다.

“제법 괜찮은 핑계였습니다.”

“뭘요.”

“……다시 접근해 올지도 모르겠군요.”

“예?”

시문이 작게 중얼거린 혼잣말을 놓쳐 다시 물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싱긋 웃기만 했다.

“아닙니다. 들어가죠.”

티노가 시문의 작업실에서 청소부(?)로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웨이의 깜짝 방문은 딱 멈췄다. 아무래도 티노가 시문과 종일 같이 있는 것이 영 불안한 모양이었다.

라디는 원래부터 남자 숙소에는 들어오지 못했기에 저녁시간만은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시문의 일을 도우면서 자유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은 상황이라, 이 짧은 여유가 얼마나 달콤한지 몰랐다.

티노는 이 저녁시간의 대부분을 테이슨이 준 교재를 읽으며 보냈다. 라디의 감시망이 영 느슨해지지 않은 탓에 아직도 시문의 작업실에 교재를 가지고 가지 못했다. 가뜩이나 시문의 청소부로 선택(?)된 것이 티노라는 것에 분개하고 있는데 교재를 들고 가는 걸 보면 뭐라 할지 훤했다. 그 덕분에 티노가 이해불가의 예법 따위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이 저녁시간뿐이었다.

톡톡.

“……?!”

티노는 거의 반사적으로 베개 밑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시문을 염탐하면서부터 잠잘 때만 그곳에 넣어 두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소리는 창 밖에서 들려왔다. 안 좋은 목적으로 온 침입자라면 창을 두들길 리 없다는 이성적인 생각과는 별개로 창밖을 보는 눈초리는 매서웠다. 하지만 곧 경계를 풀고 냉큼 창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테이슨 경?”

“쉿!”

테이슨은 검지를 입 앞에 잠시 댔다가 옆으로 비켜서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리고 티노가 옆으로 두 걸음 물러나자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부드럽게 들어왔다. 그 커다란 몸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데도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티노가 냉큼 창문을 닫자, 테이슨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무사했구나.”

“예?”

“웨이와 라디가 원석 수거를 하는 걸 보고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했다.”

“아……!”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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