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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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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티노는 눈을 껌벅이며 가볍게 살펴보던 어스듐 라인을 다시 자세히 뜯어보았다. 시문이 그런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자신이 알아차린 것을 시문에게 말하는 것이 현명한 건지 모른 척하는 것이 현명한 건지를 계산하다가 후자 쪽에 손을 들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저 어스듐 라인은 티노에게 있어 친근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 그것을 연구하며 이용하기까지 했으니 당연했다.

시문의 기계 장치에 씨드를 공급하는 어스듐 라인. 시문이 저런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외부에, 친위대에 들키지 않게 한 어스듐 라인. 그것은 바로 수도 전역에 깔려 있는 도둑 회로였던 것이다!

갑자기 친밀감이 치솟았다. 그 덕분에 아르카를 탈출시킬 방안을 떠올렸고, 그 덕분에 테이슨과 엘리를 따돌릴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결국 아르카가 탈출하지 않았던가! 고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간신히 눌러 삼켰다. 말해 봐야 이해할 리 없고, 이해하면 더 곤란했다.

시문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좀 전보다 몇 십 배는 강렬한 호기심이 머릿속을 빼곡 채웠다. 몇 년 동안이나 수도의 일부를 간헐적으로 씨드 단절 상태로 만들고, 며칠 전에는 기어이 수도 전체를 어둠에 묻었을 정도의 연구인 것이다!

어제는 대충 흘렸던 시문의 말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어느 쪽이든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란 말이. 그렇다면 티노가 예전에 수도 전체의 씨드가 끊겼을 때 짐작했던 대로 이 실험이 막바지에 달한 것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머지않아 결과가 나올 터! 그때쯤이면 티노도 이 연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자연히 알게 되겠지.

태어나면서부터 기계공학에 몸을 담고 유년시절을 친구와 더불어 연구에 쏟아 왔던 티노의 가슴은 기대로 두근거렸다. 친위대에서 경계하고 있는 사람의 연구라는 것도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끝까지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씨드가 있는 어스듐은 내면에 연한 황금빛의 문양이 패턴을 이루어 떠올라 있다. 선명하거나 뚜렷하진 않지만 육안으로 대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 문양은 어스듐을 사용할수록 옅어지고 사라지는데, 그게 모두 사라진 어스듐이 바로 원석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 문양을 씨드라 칭하기도 한다. 정식으로 정해진 용어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어스듐이 활성화되면 될수록 그 문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점점 강해진다. 그러다 일정 밝기에 다다르면 거기서 멈추는데, 그때가 바로 어스듐이 최대치로 활성화된 시점이다.

티노는 일반 사람들은 육안으로 보기 힘든 희미한 문양을 알아보는 눈썰미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그 희미한 문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강도까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세척기 안에서 활성화되어 가고 있는 어스듐 정도는 집중해서 볼 필요도 없었다. 저렇게나 밝고 뚜렷하니까.

때문에 티노는 세척기 안의 어스듐을 무료하게 지켜보다가 긴장감이 결여된 목소리로 시문에게 물었다.

“그동안은 혼자서 모든 작업을 다 하셨던 거예요?”

“사람의 손이 필요한 일은 그랬지요.”

“이 작업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계획 및 준비는 전쟁 전부터 진행되었고, 본격적으로 이곳을 만들고 작업을 시작한 것은 전쟁 직후였죠. 당시는 지금보다 더 혼잡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변 이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티노도 시기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으나 확인차 물어본 거였다. 수도의 씨드가 간헐적으로 끊기게 된 것이 전쟁 직후라고 했으니까. 당시 이곳을 지을 때 도둑 회로를 깔아서 이쪽으로 이었겠지.

“그럼 7년째 이 일을 하시는 거네요?”

“예. 벌써 그렇게 됐군요.”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시문은 왼쪽 집게발 쪽에 서서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보석 감정기와 비슷하게 생긴 작은 금속 원통을 한쪽 눈에 대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무언가를 살펴보고 있었다. 티노도 분위기를 봐서 나중에 저게 뭔지 살펴볼 참이었다.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죠?”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중심으로 원뿔을 한 바퀴 돌면서 다각도에서 그 물체를 살펴보던 시문이 고개를 돌려 티노를 바라보았다. 티노를 수상하게 여기거나 의심하는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티노 역시 뻔한 거 아니냐는 태도로 답했다.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어느 쪽이든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아…….”

시문은 어제의 일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한 번 끄떡이고 다시 그 빛나는 물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티노는 솔직하게 톡 까놓고 물었다.

“그건 뭐예요?”

“맞혀 보십시오.”

그리곤 티노가 바로 일어나려 들자 세척기를 가리켰다.

“그거부터 끝내 놓은 뒤에.”

“넵!”

때마침 하나둘씩 최대치까지 활성화된 어스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티노는 나무통과 그물채를 들고 계단을 올라가 안을 휘저어 원하는 상태가 된 어스듐을 건져 내었다.

시문은 티노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건져 낸 어스듐은 왼쪽 통에 넣으세요. 상단 뚜껑을 보면 버튼이 있습니다.”

“예.”

티노는 더 이상 건져 낼 만한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그물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왼쪽 통의 금속 뚜껑을 살펴보았다. 단순히 뚜껑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역시도 복잡한 기계 장비 중 하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운데에 독특한 형태의 홈이 파여 있었지만 그것이 버튼으로 보이진 않았다. 쭉 훑어보니 뚜껑의 양쪽 끝에 버튼이 하나씩 있었다.

“끝에 있는 두 개 맞나요?”

“맞습니다.”

버튼을 둘 다 누르자 부드러운 소리가 나면서 뚜껑이 위로 올라갔다. 한 뼘이 채 안 되는 높이만 올라가더니, 천천히 옆으로 밀려났다. 뚜껑이 열리면서 드러난 통의 두께는 티노의 허벅지보다도 두꺼웠다. 그 안에 건져 낸 어스듐을 쏟아 붓고 도로 몸을 돌려 세척기 안을 보았다. 그새 몇 개가 더 최대치로 활성화되어 있었다. 다시 건져서 왼쪽 통에 붓기를 몇 차례 반복하자 세척기 안이 텅 비었다.

“다 부었어요.”

“뚜껑을 닫으세요. 버튼을 다시 누르면 됩니다.”

티노는 뚜껑을 닫은 뒤 물었다.

“세척기에 어스듐을 또 부을까요?”

“그러세요.”

티노가 계단을 내려와 어스듐 무더기로 걸어가는 동안 시문은 조작대 앞으로 갔다. 그 모습에 티노는 전보다 빠르게 어스듐을 담아 세척기 안에 부었다. 그리고 급히 계단 아래로 내려와 원석으로 만들어진 원통을 바라보았다. 시문이 만지는 조작대도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오른쪽 집게발이 내려오더니 원통 뚜껑에 파고들었다. 보아하니 뚜껑에 있는 홈에 장착된 것 같았다. 곧 우우웅, 하고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더니 푸르스름한 빛이 원통 위에서부터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원통 안에 빛이 전부 깔렸을 때 바닥에 쏟아 놓은 어스듐이 허공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티노는 하나라도 놓칠까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았다. 원통 안에 떠오른 어스듐들은 마치 진공 속에 있는 것처럼 아주 서서히 부유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켜보고 있었을까? 워낙 집중을 하고 있어서 시간을 그다지 의식하진 못했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

티노는 원통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봤다. 시문은 그런 티노의 반응을 즐기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씨드가……?”

티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움찔하며 시문을 돌아봤다.

“씨드가 사라지고 있어요.”

“정답입니다.”

시문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싱긋 지어 보였다.

“그럼 여기 씨드는……?”

질문하다가 혼자서 답을 찾아낸 티노는 왼쪽 집게발 쪽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조용했던 왼쪽 집게발 부분이 오른쪽과 마찬가지로 우우웅, 하고 묵직한 기계음을 내고 있었다. 막 티노가 왼쪽 집게발 앞에 도착했을 때 벌어진 집게발 사이에 자리한 세 개의 뿔에 은은한 황금빛이 물방울처럼 서서히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핏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빛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앞으로 쏘아졌다. 원뿔 위에 놓여 있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향해서.

가까이서 보고 나서 알았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언가……. 그것은 바로 어스듐이었다! 그 어스듐을 황금빛으로 강렬하게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씨드였던 것이다!

씨드가 있는 어스듐은 원래 연한 황금빛 문양으로 인해 은은하게 빛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건 그 광채의 수준이 달랐다. 수십, 수백…… 아니, 수백만 이상의 씨드가 겹치고,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진 광채!

티노의 주먹만 한 저 어스듐 안에 도대체 몇 개…… 아니, 몇 톤이나 되는 어스듐들의 씨드가 압축된 것일까? 지금도 티노가 지켜보는 가운데 저 빛나는 어스듐 안에 또 다른 씨드가 떠오르고 있다. 이미 이 어스듐의 내부에는 다른 씨드가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별로 없었다. 시문은 그 빈자리마저 전부 채워 넣으려는 것일까?

‘이래서 곧 결론이 난다고 한 건가?’

티노는 자신이 지켜보는 동안에 계속해서 씨드가 그려지고 있는 황금빛 어스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단순히 어스듐에 씨드를 압축한다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피를 줄이는 것? 하지만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기계를 작동하기 위해서 소모되었던 어스듐의 양을 생각하면 지나칠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시문이 말했다.

“저쪽 어스듐을 지켜보세요. 그리고 그 안의 씨드가 완전히 사라지면 말하세요. 그게 티노 군이 할 일입니다.”

“……아…….”

티노는 생각에 잠겨 있던 얼굴 그대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어스듐과 시문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원통 안에 떠 있는 어스듐을 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알겠습니다!”

달려가서 어스듐을 보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대체 왜 저런 일을 하는 걸까? ……도 물론 몹시 궁금하지만 그보다는 무슨 원리로 움직여서 어떤 작동을 거쳐서 저런 것이 가능한지가 조금 더 많이 궁금했다.

물어보면 가르쳐 주려나? ……물론 아니겠지. 지나치게 대범한 램조차도 기밀유지가 얼마나 철저했던가! 아, 해체해 보고 싶어라……. 아르카에게 너무 물들었나?

티노는 잡생각이 동동 떠다니는 머리를 휘휘 저어 정리하고 집중해서 원통 안의 어스듐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안 것은 라디가 식사를 배달하러 왔을 때였다. 철문 옆에 있는 벨은 이곳 지하에 연결되어 있었다. 막 두 번째 작업을 마친 참이었던 티노는 기지개를 쭉 펴고 일어났다.

“저도 밥 먹고 와야겠네요. 한 시간 뒤에 봬요.”

“그러세요.”

수습 기술자도 점심시간만큼은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한 시간이 주어진다. 이 작업이, 정확히는 기계가 작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연장근무를 할 생각은 없었다. 시문도 그런 건 바라지 않은 듯했다.

기계 조작을 끝내고 황금빛 어스듐을 다시 살펴보고 있던 시문은 예의 감정용 기구를 옆에 내려놓았다. 이곳의 도구들은 절대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고 했다.

이번엔 시문이 먼저 사다리를 올라갔다. 그리고 뚜껑을 열기 전에 사다리가 박힌 벽 맞은편으로 상체를 기울여 뭔가를 보았다. 그 다음에야 뚜껑을 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서랍장 무게만큼의 힘이 드는지 육중한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나갈 때가 더 힘들겠어요.”

“저한테는 비슷비슷합니다.”

“저 혼자 출입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겠는데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빛이 비치는 구멍 위로 시문이 훌쩍 올라갔다. 티노는 완전히 올라가기 전에 시문이 보았던 곳을 살펴보았다. 거기엔 가로로 길쭉한 렌즈가 박혀 있었다. 시문처럼 상체를 빼서 눈을 대 보자 시문의 작업실이 보였다.

‘아하! 이런 거였구나.’

“뭐 하십니까?”

“가요!”

호기심을 해결한 티노는 성큼 위로 올라갔다.

시문은 아침에 먹은 쟁반을 챙겨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문을 열자, 평소보다 몇 배는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라디가 보였다. 시문은 점심이 담긴 쟁반을 받고, 가지고 온 쟁반을 넘겼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라디 양.”

“뭘요.”

라디는 쭈뼛쭈뼛하게 대답하며 티노 쪽을 잔뜩 경계 어린 눈으로 흘낏 바라봤다. 티노는 시문을 지나쳐 문 밖으로 나오며 짧게 인사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시문은 고개만 한 번 끄떡이곤 라디에게 말했다.

“라디 양도 가서 점심 먹도록 해요.”

“예! 시문 님도요!”

티노가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 얼굴색이 조금은 나아진 라디는 싹싹하게 답하며 꾸벅 인사했다. 아마도 티노가 시문과 식사까지 같이 하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했던 모양이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동안 라디는 몇 번이고 입을 열었다가 닫고, 열었다가 닫았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지만 티노를 향한 적대감에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한쪽은 태평하고 한쪽은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로 식당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마자 티노는 바로 한숨을 삼켜야 했다. 식당 안에 있는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티노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시문의 작업실 방문에 대해 관심이 넘쳐 나는 사람은 라디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웨이의 시선이 가장 강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호기심보다는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티노가 빠져서 예전처럼 웨이가 라디와 함께 원석 세척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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