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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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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테이슨 경이 감옥의 조명등을 봐 달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씨드가 끊겨 버려서 테이슨 경은 왕성으로 가셨고, 전 씨드가 돌아오길 기다리다가 습격당해서 기절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그때 플로레스라가 조력자의 도움으로 탈옥했다더군요.”

“흠…….”

납득할 만한 말이었는지 아니었는지까지는 모르겠으나 힐이나 다른 직원들의 기세는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하지만 웨이의 기세는 더욱 활활 타올랐다.

“웃기지 마! 이 배신자 자식!”

“예?”

그 말만큼은 수긍할 수 없어서 티노는 진심으로 황당해하며 웨이를 바라봤다.

“저야말로 묻고 싶네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테이슨 경한테 못 들었나?”

“네. 정신이 들자마자 바로 나와서요.”

“우리도 아침에 출근하고서야 알았다. 웨이가 그러는데 어제 친위…….”

“친위대가 공방에 쳐들어왔었어! 그리곤 다짜고짜 수색이라면서 온갖 곳을 쑤시고 다녔다! 심지어 무례하게도 시문 님의 작업실까지 헤집었다고!”

웨이가 끼어들어서 악을 쓰듯이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티노를 검지로 대뜸 가리키며 말했다.

“난 다 알아! 네놈 짓이지?!”

“제가 친위대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요?”

티노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친위대가 움직인 것은 그로서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플로레스라 언어로 쪽지를 쓴 것은 티노지만 그것이 표면에 드러날 것이 우려되어 시문의 것이라는 확증은 없다고 못 박아 두지 않았던가? 그것이 친위대를 움직일 만한 증거가 될 수는 없었을 텐데…….

그 전에 테이슨이 정말 그 쪽지를 사람들에게 보여 줬을까? 만약 그 쪽지를 앞세워 공방을 수색한 거라면 힐이나 웨이들이 그에 대한 언급을 했을 것이다. 어디서 주운 것이냐, 왜 그걸 테이슨에게 가져간 것이냐 등등. 그 쪽지에 대한 것은 테이슨 혼자만 알고 넘어간 게 분명하다.

티노는 겉보기엔 성실하게 답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테이슨의 말대로 직접적으로 티노에게 혐의가 갈 만한 단서는 없을 것이다. 직원들의 반응도 이제 막 사건을 알고 혼란해하는 수준이고 날뛰는 건 웨이 하나로 보인다. 그렇다면 웨이만 상대하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티노는 웨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체 왜 저한테 그러는 겁니까?”

“닥쳐! 친위대 앞잡이 새끼가!”

“설마 제가 친위대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식으로 보시는 겁니까?”

티노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웨이를 마주보았다. 그는 여기서 찔끔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무조건 잡아떼야만 한다. 어디까지나 어이없다는 얼굴로, 현재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태도를 취해야만 한다.

“시치미 떼 봤자 소용없어! 나한텐 증거가 있으니까!”

“증거요?”

사람들은 웨이가 주장하는 증거가 무엇인지 아는지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 복잡한 눈으로 티노를 보고 있었다. 이쯤 되자 조금 불안해지긴 했지만 티노는 어디까지나 당당하고 억울해하는 태도를 취했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그는 제법 잘해 내고 있었다.

“자! 이래도 발뺌할 참이냐?!”

웨이는 티노의 얼굴을 향해 뭔가를 집어던졌다. 그것을 얌전히 맞아 줄 이유가 없어 옆으로 한 걸음 물러나 피했다. 티노를 지나 식당 문에 부딪쳐 떨어진 것은 낯익은 갈색 봉투였다. 그것의 주둥이가 벌어져 내용물이 조금 흘러나왔다. 몇 장 안 되는 사진이었다. 티노가 찍은 창고 사진들…….

“…….”

티노는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가 갈색 봉투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바닥에 쏟아진 사진들을 하나씩 모아서 도로 봉투 안에 담았다. 그 차분하고 느긋한 행동과는 달리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다행히 창고 사진은 며칠 전 테이슨에게 보여 주고 태워 버려서 현재는 몇 장 없었다. 그 후에 아르카 일이 터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 창고나 공방을 조사하는 일은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있는 것은 기껏해야 서너 장 정도뿐이다. 게다가 봉투 안엔 아직 꺼내지 않은 듀오 루나의 사진이 섞여 있다. 몇 장 안 되는 창고 사진과 그 외의 다른 사진. 이걸 이용해야만…….

아직 구체적인 변명거리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침묵이 길어져서는 안 되니 우선 입을 열었다.

“친위대에서 고작 수습 기술자에 불과한 제 방까지 수색한 겁니까?”

“그건…….”

웨이는 찔끔한 듯 눈을 굴리다가 곧 뻔뻔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네가 감히 우리 공방을 염탐했다는 거다!”

역시 멋대로 뒤졌군. 티노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자물쇠를 채워 뒀는데 어떻게 연 겁니까?”

“자꾸 말 돌리지 마! 왜 창고 사진을 찍은 거냐니까?!”

“나중에 고향에 가면 친구한테 보여 주려고 찍었습니다. 이 안에 창고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것만 걸고넘어지는 겁니까?”

이걸 고향에 가져가 램이나 아르카에게 보여 줄 일은 죽어도 없겠지만, 그리고 창고 사진이 아닌 것은 딱 한 장밖에 없지만 그래도 티노는 당당했다. 지금은 당당해야 할 때였다.

자신이 한 말의 허점을 웨이가 걸고넘어지기 전에 바로 반격했다.

“이제 답해 주시죠. 왜 제 짐을 뒤진 겁니까? 그것도 자물쇠까지 몰래 따서!”

“그, 그건…….”

웨이는 입술을 깨물다가 이내 전보다 더 당당한 태도로 답했다.

“네놈이 수상해서다! 촌뜨기 주제에 친위대원과 친하다는 게 말이 돼?! 너 촌뜨기인 건 위장이고 실은 친위대원의 사주를 받아서 여기 온 거지? 네가 플로레스라와 병사들의 전투에 휩쓸렸는데도 무사한 것도 수상해! 플로레스라가 갇혀 있는 감옥까지 간 것도 수상하고! 친위대의 감옥은 우리 공방 구역도 아닌데 말이야! 거기다 하필 네가 감옥에 갔을 때 씨드가 끊긴 것도, 그 틈에 플로레스라가 도망친 것도 수상해! 왜 자꾸 너만 그 플로레스라와 엮이는 건데? 너 실은 그놈과도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거 아냐? 그래서 탈출시키려고 수작 부린 거 아니냐고?”

“…….”

……대부분 사실이긴 한데……. 저렇게까지 비약해서 말하면 신빙성이 떨어지지 않나? 오히려 웨이가 입을 열면 열수록 티노에 대한 혐의가 옅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티노는 할 말을 잃고 볼을 긁적였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 대부분이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거나 식탁에 엎드렸다. 그들의 눈에는 그동안 떨어지지 않던 의심의 기색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티노의 변명은 허점이 많았지만 웨이의 기가 막힌 발언 덕에 완벽하게 묻혀 갔다. 웨이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는 혼자서 티노에게 병도 주고 약도 주고 있었다.

“어쨌거나 증거는 확보되었어!”

“만약 이것이 웨이 선배가 말하는 증거라 쳐도 대체 뭘 증명하기 위한 증거인데요?”

티노는 서너 장의 사진을 가지고는 자신이 발견한 수상한 점을 간파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대범하게 물었다. 역시나 그 사진들로 뭔가 그럴싸한 혐의를 떠올릴 수는 없었던 웨이는 ‘그래도 네놈이 수상한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티노에 대한 의심의 빛은 옅어져만 갔다. 이대로만 가면 어영부영 지나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티노가 이 공방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등장한 것은 그때였다.

“무슨 소란입니까?”

이제 저놈 입 좀 틀어막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들로서도 얼굴 보기 힘든 분이 납시셨다.

“시문 님?!”

“여긴 어떻게……!”

“제가 못 올 곳을 왔나요? 제가 여기 있는 것보다 여러분이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것이 더 문제 아닙니까?”

그 말이 맞긴 했다. 지금은 근무시간 중이니까. 하지만 친위대가 이곳을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평상시처럼 일을 할 수 있는 쪽이 더 이상한 것이다. ……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에도 불구하고 시문의 지적을 받으니 이쪽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 버렸다.

시문은 어제의 소란 따윈 없었던 양 평소와 똑같이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이곳에 나온 것 자체가 평소와 달랐다. 역시 공방의 주인으로서 혼란해하고 있는 직원들을 다독이기 위해서 나온 것이…….

“오늘따라 아침식사가 늦군요.”

……아니었구나. 티노는 시문의 식사를 챙기는 것을 깜박했을 라디를 찾아 식당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문 부근에 서 있다가 펄쩍 뛰면서 얼굴을 붉혔다.

“죄송해요! 금방 준비할게요!”

그러면서 부엌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시문은 부드럽지만 감정의 색채가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식당 안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여러분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죠?”

“시문 님, 괜찮으십니까?”

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에 공조하듯 직원들의 얼굴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웨이는 입이 근질거린다는 얼굴로 시문을 열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제 친위대가 공방을 수색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 그랬지요.”

선뜻 긍정한 시문은 오히려 되물었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티노 짓이에요!”

시문의 반응이 성에 차지 않았는지 웨이가 다급한 기색으로 밑도 끝도 없이 나섰다. 그 말에 다들 한숨을 푹 쉬었다.

“저놈이 창고 사진을 몰래 찍고 있었다는 증거를 제가 찾아냈습니다! 뻔하죠! 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추천 받으려고 염탐질을 한 겁니다!”

이쯤 되자 티노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웨이도 어떤 의미에선 대단한 사람이었다. 저렇게까지 사실을 쏙쏙 짚어 내기도 힘들지만, 저렇게까지 설득력 없기도 힘들 것이다.

“티노 군이 사진을요?”

시문의 시선이 티노에게 닿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티노도 살짝 긴장했다. 하지만 시문이 질문을 던진 사람은 티노가 아닌 웨이였다.

“제가 친위대에게 걸리면 안 될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시문 님!”

웨이뿐만 아니라 갑작스런 이야기에 당황하던 직원들 역시 펄쩍 뛰며 부정했다.

“그럼 더 말할 것 없겠군요.”

시문은 싱긋 웃으며 식당 안의 직원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일들 하세요.”

어쩌다 보니 얼렁뚱땅 넘어가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일단락되는가 보다 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근무하는 범위가 달라서 점심식사 때 외에는 얼굴 보기도 힘드니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물론 독이 바싹 오른 웨이가 전보다 부지런하게 시비를 걸어오리란 것은 미루어 짐작이 되었지만, 어차피 매사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이제는 딴 생각에 빠져서 일을 빼먹는 일 없을 거라고 했잖아.”

“…….”

라디는 입을 꾹 다물고 자기 몫의 뱅커에 수레를 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티노의 말 따윈 들리지도 않는다는 태도였다.

“라디?”

살짝 기분이 상한 티노가 강한 어조로 이름을 부르자 라디는 대뜸 티노 쪽으로 몸을 홱 돌리곤 쏘아붙이듯이 물었다.

“왜? 내가 같이 가면 곤란해지는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그럴 게 뭐 있겠어?”

그제야 라디가 무엇 때문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대충 눈치 챈 티노는 일부러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너 승급시험 준비하고 싶어 했잖아?”

“그건 내 일이야.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마음대로 해.”

잔뜩 가시가 돋친 모습에 티노는 더 말을 걸지 않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또래 아이들이 아닌 아르카나 공방 사람들과 어울렸던 그에게 18살 소녀의 감정노선을 따라가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라디는 도로 몸을 홱 돌리곤 수레를 마저 달았다. 그리고 뱅커에 올라타더니 말도 없이 먼저 출발해 버렸다. 이미 수레를 달아 놓고 라디가 작업을 마치길 기다리던 티노는 어깨를 으쓱이곤 라디의 뒤를 따랐다.

자신이 화가 났다는 것을 열심히 드러내고 있는 라디와 함께 원석 수거를 하는 길은 참으로 조용하고 싸늘했다. 티노는 기본적으로 유쾌한 성격이긴 하지만 수다 떠는 것엔 크게 소질이 없었다. 그런데다 쓸데없이 대범한 탓에 라디가 만들어 내는 불편한 분위기에 좌우되지 않아서 구태여 그녀의 기분을 풀어 줄 필요성도 못 느꼈다.

불편하다면 불편하고, 껄끄럽다면 껄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어스듐 교환소 다섯 곳을 돌았다. 라디는 오랜만이라며 아는 척해 오는 교환소 직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상냥하게 답하면서 티노 쪽은 쳐다보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그렇게 피차 말없이 자기 할 일만 하며 공방으로 돌아왔을 때, 또 한 번 일이 터졌다. 수거해 온 원석을 각각의 창고에 쏟아 부은 뒤의 일이었다. 이 이후는 비공식적인 자유시간이기에 티노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세척실 구석의 서랍장에서 교재를 꺼내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디 가는 거야?”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라디가 갑자기 날카롭게 물어 왔다. 질문하는 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대답 못 할 건 없었다.

“공부하러.”

“어디서 하려고?”

“밖의 벤치에서.”

“나도 갈래.”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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