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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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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소속이라니?”

사관학교 입학에 대해 국가가 발행한 책자를 꼼꼼히 읽고 준비했었음에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책자에 써져 있는 바에 의하면 사관학교 입학 조건은 왕과 왕가에 대한 충성, 무예에 대한 자질, 명예를 아는 품성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소속’에 대한 건 없었다.

그러니 티노의 질문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으나 갈색머리 소년은 과장되게 놀라는 척하며 되물었다.

“여기에 입학할 거라면서 그것도 몰라?”

“내가 본 책자엔 그런 말은 없었어.”

“뭘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 사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딱 넷뿐이다. 자질이 뛰어난 귀족 신분의 사람, 기부금을 낼 수 있는 부유한 사람, 친위대원을 부모로 둔 사람, 그리고 귀족이나 친위대원의 정당한 이유가 있는 추천을 받은 사람. 넌 그중 어느 쪽인데?”

티노는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셋 중 키가 제일 큰 소년은 갈색머리와 마찬가지로 비웃음이 가득한 거만한 얼굴로 티노를 보고 있었고, 피부가 유독 하얀 소녀는 저걸 왜 상대해 주고 있냐는 짜증 어린 얼굴로 갈색머리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과 태도를 보건대 갈색머리가 티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기부금이라니? 수업료를 내야 한다는 거야?”

“아니. 책자를 봤다면서? 사관학교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몇몇 학생들이 모교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기부를 하는 것뿐이야.”

한심할 정도로 수준 낮은 말장난이지만 갈색머리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정말로 현실이 그 모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그 기부금 액수는? 설마 자율적일 리는 없고?”

“자율적이긴 하지. 최하 천만 골드가 아니면 안 받지만. 그것도 반년에 한 번씩.”

갈색머리 소년은 두 손을 극적으로 모으며 동정과 연민을 보내는 척했다.

“딱 보아하니 안내 책자만 보고 무작정 수도에 온 촌뜨기 같은데, 여비 떨어지기 전에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수도 물가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으니까.”

“괜찮아. 사관학교는 기숙사제니까.”

티노가 여태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양, 순진한 척 답하자 갈색머리 소년이 어이없다는 듯 허허, 웃었다.

“기초 군사 훈련을 빠르게 통과해서 자신감이 하늘에 뻗쳤나 본데, 일반인한테는 대단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우리에겐 별거 아니야. 우린 걸음마를 뗀 순간부터…….”

“데커! 쓸데없는 짓 그만해! 더 하고 싶으면 난 먼저 들어가겠어.”

뒤에서 짜증 어린 얼굴로 둘을 보지도 않고 있던 소녀가 낮지만 날카로운 음성으로 끼어들었다.

“아……!”

갈색머리 소년, 데커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소녀를 보더니 곧 익살스럽게 두 팔을 양쪽으로 펼치며 희극적으로 말했다.

“오, 에레나!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해서 미안하게 됐어! 날 버리진 말아 줘!”

에레나라 불린 소녀는 데커의 말을 무시하고 티노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너 같은 자는 들어올 수 없어.”

“같은 입학 희망자한테 그런 소리 들었다고 돌아갈 거라 생각하냐? 신경 끄고 갈 길 가.”

“마음대로.”

에레나는 티노에게 시선을 거뒀다. 말과 태도는 데커와 달랐지만 그 바탕엔 그와 마찬가지로 티노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 깔려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티노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신경을 껐다.

정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무슨 소란이지?”

“……!”

“……!”

티노는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화들짝 뒤를 돌아보았다. 티노를 보느라 자연스럽게 정문 쪽을 보고 있던 데커들은 그보다 더 놀랐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해도 상대가 코앞에 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그들이 어수룩해서라기보다는 상대가 강한 것이다. 거기다 변명하자면 승용물을 타지 않고 조용히 걸어 온 탓도 있고.

그러다 티노를 제외한 이들은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변명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선택받은 자, 나라가 인정한 강한 무력을 가진 자, 고결한 지식과 교양과 품위가 있는 자, 왕과 왕가를 위한 자. 상대는 바로 친위대원이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데커들은 일제히 뱅커에서 뛰어내려 인사했다. 티노를 볼 때의 거만한 빛은 완전히 사라지고 동경과 흠모의 감정이 넘실거렸다. 내내 차가웠던 에레나마저도 아닌 척했지만 얼굴이 희미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거짓은 없어 보였다.

같은 ‘선택받은 자’에게는 저런 태도라는 건가? 티노는 데커들을 삐딱하게 보다가 신경 끄고 친위대원을 바라봤다. 그 역시도 친위대를 동경해 온 소년! 그 친위대원을 코앞에서 보게 됐는데 데커들이야 알 바 아니었다.

소란스럽던 사관학교 정문을 평정한(?) 친위대원은 큰 키에 두툼한 근육의 위협적인 체격을 가진 남자였지만 온화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티노들을 보는 눈은 엄격하거나 딱딱하지 않았다. 목소리도 낮고 부드러웠다.

“사관학생인가?”

“입학 희망자입니다!”

“오, 그래?”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데커들을 훑어보던 시선이 티노에게까지 닿았다. 과연 저 눈빛이 어떻게 변할까? 데커들에게 충분히 불쾌한 대우를 받았던 티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확실히 친위대원은 티노를 보고 조금 놀란 눈을 했다. 그 기색을 눈치 챈 데커들이 예의 비웃음을 띠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친위대원은 웃음 한 조각도 비추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안타깝다는 듯이 티노를 바라보았다.

“너도 입학 희망자냐?”

“네. 성인이 되자마자 바로 왔어요. 어려서부터 꿈이었거든요.”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게 밝혀 왔던 꿈이다. 예상 밖의 지저분한 현실을 알게 되었다 해서, 나아가 상대가 친위대원이라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입학시험에 대해 알려 주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소란을 떨어 죄송합니다.”

거만하고 유치하지만 멍청하지는 않은 데커가 친위대원의 얼굴에 떠오른 동정을 읽고 은근슬쩍 자신의 행동을 미화시켰다. 그 옆에서 키 큰 소년은 킥, 하고 웃었다. 이놈은 좀 멍청한 것 같았다. 에리카는 티노에 관련된 화제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친위대원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데커의 말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친위대원은 데커를 향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 번 끄떡여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데커는 흥분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기뻐했다. 그러다 친위대원이 곧장 티노를 돌아보며 말을 걸자 금세 실망해서 티노를 질투와 분노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잠깐 나와 이야기하지 않겠니?”

“저요?”

“그래. 잠깐이면 된다.”

친위대원은 티노의 어깨 위에 큰 손을 얹으며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그러면서 남겨진 세 사람을 돌아보고 말했다.

“너희는 먼저 들어가 봐라. 무운을 빌어 주마.”

“감사합니다!”

세 사람은 들뜬 얼굴로 다시 예를 갖췄다. 오늘 숱하게 들은 말이지만 상대가 친위대원이니만큼 더 특별했다.

“난 테이슨이다. 넌?”

“티노요.”

“좋은 이름이구나.”

사관학교 근처의 공원까지 걸어 온 뒤에야 입을 뗀 테이슨은 저편에 있는 가판대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목마르지 않니?”

“조금요.”

“여기서 기다려라. 금방 오마.”

티노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테이슨이 가판대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딱히 달리는 것도, 빨리 걷는 것도 아닌데 금방 도착해서 뭔가를 가리키며 주문을 한다.

테이슨은 첫인상 그대로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 좀 전에 그가 데커들에게 ‘먼저’ 들어가라 한 것은 티노를 배려해서 한 말이었으니까. 믿고 싶지는 않지만 데커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관학교를 나와서 친위대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 테이슨이 그걸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마치 티노가 자신과 이야기만 끝내면 데커들과 마찬가지로 입학시험을 보러 갈 것인 양 말한 것이다.

아마 램은 사관학교의 입학조건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노련하고 현명한 어른이고, 국가가 인정한 무기 제작 장인으로서 외부와 잦은 교류를 했으니까. 그런데도 티노에게 알려 주지 않은 것은 어린 손자의 동심을 지켜 주기 위해서……는 절대 아니리라 확신한다.

램은 위험물을 치워 주는 보호자가 아니라 위험물에 대해 제대로 알려 줘서 스스로 피하거나 치울 수 있게 하는 보호자다. 들어 봐야 포기할 티노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구태여 말하지 않은 걸 거다. 거기다 기어이 티노가 수도에 가 버렸을 때 한 방 먹여 주려는 의도도 섞여 있을 거고.

그래도 수도에 온 첫 날에 친위대원을 만났다는 건 퍽 고무적인 일이다. 거기다 그 친위대원이 성격이 좋기까지 하다니! 만약 데커 같은 성격의 친위대원을 만났다면…….

티노는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부르르 떨듯이 가로저었다. 그러는 동안 테이슨이 갔던 속도보다도 빠르게 돌아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종이컵을 내밀었다. 안엔 짙은 갈색의 코코아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자!”

“감사합니다.”

돌아다닐 때는 몰랐는데 가만히 있다 보니 조금 추워졌다. 한 모금 마시자 따뜻한 것이 몸 안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레나센시아엔 언제 왔니?”

“오늘요.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사관학교에 입학하려고 온 모양이구나?”

티노는 말없이 코코아를 홀짝였다.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수도에 오자마자 사관학교에 달려 왔다면 빤한 것 아닌가? 그러자 테이슨의 기색이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개인적으론 납득할 수 없지만……. 사관학교는…….”

“알아요. 아까 들었어요.”

“그래…….”

테이슨은 쓴 웃음을 지었다.

“미안하구나.”

“테이슨 경이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입학 안내 책자만 믿었던 제가 바보지요.”

촌뜨기는 촌뜨기였던 모양이라며 티노는 가볍게 웃었다. 그것이 테이슨은 의아했던 모양이다.

“실망하지 않았니?”

“실망이야 했지요.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어요.”

집요하지 않으면 기계공학 따윈 시작도 못 한다. 티노의 경우 스승과 환경이 좋은 덕을 많이 봤지만 티노 자신의 집요함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티노는 램의 뒤를 이어 무기 제작 장인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지 기계를 만지는 것 자체는 좋아했다.

테이슨은 티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목소리를 은밀히 낮췄다.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줄까?”

“……?”

의아한 눈으로 테이슨을 올려다보자 그는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은 사관학교를 통하지 않고 친위대원이 되셨어. 선배님은 일반 시민이었고, 돈도 많지 않았고, 심지어 수도 태생도 아니었지.”

“진짜요?! 어떻게요?!”

티노가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일수록 테이슨은 목소리를 은밀하게 낮췄다.

“국왕 전하께서 직접 추천하셨거든.”

“우와! 무슨 공을 세웠는데요?!”

“선배님이 세운 공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어. 그중에는 기밀에 속하는 것들도 있고. 친위대 입단 추천을 받아 낸 가장 결정적인 공은 전하의 목숨을 구한 거였어. 그때는 일반 시민이었는데 말이야.”

“우와!”

테이슨은 연신 감탄을 내뱉는 티노를 미소 지은 얼굴로 보다가 문득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예민하게 알아챈 티노가 의아해하며 눈을 껌벅이자 피식 웃었다.

“엑서디움 전쟁에서 전사하지만 않았더라면 현 친위대 대장은 선배님이 되셨을 거야. 당시 대장님이 전사해 버린 상황이었거든. 모두가 안타까워했지. 내게도 몹시 잘해 주셨는데…….”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나 봐요.”

“대단했지.”

“아쉽다.”

티노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사관학교를 통하지 않고 친위대가 된 남자……. 귀족도, 부자도 아닌데다 부모님도 안 계시는 티노에겐 앞으로 살 길의 이정표나 마찬가지다.

티노의 속내를 읽은 테이슨은 웃음을 터뜨렸다.

“드문 일이지만 일반 시민 중에서 사관학교 졸업자에 준하는 실력을 가진 자를 뽑는 경우도 있어.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다. 결코 쉽진 않지만 말이야.”

그리고 티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긴 뒤 손을 거뒀다.

“사실은 차비 보태서 고향으로 돌려보내려 했는데……. 널 보니 선배님이 생각나는구나.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해 보고 싶은 대로 실컷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감사합니다.”

“사관학교 입학을 염두에 두고 왔다면 지낼 곳을 알아보진 않았겠구나? 수도의 물가는 높아. 엑서디움 전쟁 이후론 거의 폭주한 상태라고 할 수 있어. 돈은 있는 거니?”

“며칠 묵을 만큼은 있어요. 아, 하긴 물가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모르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수도의 물가가 높은 것까지 감안해서 모으긴 했지만요.”

그러면서도 전혀 불안해하지 않고 태평하게 코코아를 홀짝이는 티노를 테이슨은 신기해했다.

“수도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거니?”

“아뇨.”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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