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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아만전사 카르고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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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그러나 조잡한 목궁의 시위는 부쩍 불어난 두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다.

“아얏.”

시위에 맞아 부어오른 이마를 문지르며 두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정도라면 예전에는 감히 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강력한 활도 충분히 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정은 포르나와 세실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선 세실리아는 마나량과 마나에 대한 통제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순수한 마나량만 따지면 족히 3클래스의 마법사와 맞먹을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포르나 역시 치유 능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 모두가 카누바라크의 몸에서 흘러나온 신력 덕분이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들의 귓전으로 굵직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자, 친구들. 이젠 전리품을 확인할 시간이다. 어디 카누바라크의 레어에 보물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그 말에 셋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수백 년 동안 무수한 모험가들을 집어삼킨 카누바라크의 레어라면 전리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 * *

카누바라크는 그들을 배신하지 않았다. 죽은 카누바라크의 레어 깊숙한 곳에는 전리품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뛰어난 모험가로 구성된 일급 파티를 수도 없이 집어삼킨 카누바라크였다. 그런 만큼 레어의 전리품 속에서는 명품 무기가 다수 발견되어 그들을 기쁘게 했다. 그중에서도 고풍스럽게 생긴 활을 집어 든 두카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 이것 봐! 하이엘프들이 쓰는 복합궁이야. 세상에! 표면에 도금까지 되어 있어.”

두카가 자기의 키와 맞먹는 활을 들고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옆에서는 세실리아가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는 로브를 들고 감탄하고 있었다.

“죽여주는 로브로군. 모든 종류의 마법저항 주문이 영구적으로 걸려 있어. 물리저항 주문까지 걸려 있는 로브는 처음 봐.”

파티원들은 연신 감탄사를 터뜨리며 전리품을 날랐다. 카누바라크의 뱃속에서 소화되어 버린 모험가들이 남긴 장비는 그들이 지금껏 구경조차 해 보지 못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활을 들고 고민하던 두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봐, 카르고. 이 활 내가 가지면 안 될까? 갖고 싶어 미치겠어.”

카르고는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쓸 만한 것이 있으면 챙기도록 해.”

그 말에 파티원들은 정신없이 장비를 챙겼다. 희생자들의 피와 살점이 묻어 있었지만 레나르의 마법 길드로 가서 수선하면 충분히 쓸 수 있을 터였다.

세실리아와 포르나 역시 로브와 장신구 등을 한 벌씩 챙겼다.

“당장 입지는 못하겠어요, 언니. 깨끗이 빨아야 할 것 같아요. 우선 입고 있는 로브 위에 뒤집어쓰고 다닐래요.”

“흠. 이것은 하이엘프 사제가 입었던 로브 같군. 내 체형에는 맞지 않으니 새로 재봉해서 입어야겠어.”

마음에 드는 장비를 한 벌씩 챙긴 파티원들이 희희낙락하며 전리품을 레어 밖으로 옮겼다. 전리품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한 명당 족히 대여섯 번씩은 들락날락해야 했다. 그러나 카르고는 단 하나의 장비도 챙기지 않았다.

“카르고도 하나 골라 봐요. 방패와 갑옷이 망가졌잖아요?”

“나는 카누바라크의 껍질로 갑옷을 만들어 입을 거야. 스트라비 님이 만들어 주신다고 하셨거든.”

“그래도 이렇게 장비가 많은데…….”

카르고가 빙그레 웃으며 허리에 찬 칼리아스를 툭 건드렸다.

“난 이것으로 충분해. 쓸수록 마음에 드는 무기야.”

결국 카누바라크의 레어에 쌓여 있던 보물이 모조리 수레 위에 실렸다. 하도 많았기 때문에 두카가 나무를 잘라 수레 하나를 더 만들어야 했다. 카누바라크의 시체까지 실으려면 한 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몰살당한 세아트의 파티가 남긴 말은 모두 열한 필이었다. 여섯 마리의 말이 매인 큰 수레에는 오칸의 소굴로부터 얻은 것들과 함께 카누바라크의 레어에서 건진 전리품이 실렸다. 그리고 두카가 즉석에서 만든 작은 수레에는 카누바라크의 시체가 여러 조각으로 토막 쳐진 채 실렸다. 큰 수레는 두카가 몰기로 했고 작은 수레는 세실리아와 포르나가 함께 올라탔다. 카르고는 성질이 사납고 거칠어서 수레에 묶이는 것을 끝까지 거부하는 카르미나 고원산 말 위에 올라탔다.

두카가 한껏 신이 난 음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럼 레나르를 향해 출바알!”

두카의 수레를 선두로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두카로부터 수레 모는 법을 전수받은 포르나와 세실리아의 마차가 그 뒤를 따랐다. 카르고는 말에 올라탄 채 그들을 호위했다.

돌아가는 길은 비교적 순탄했다. 멀리서 감지되는 몬스터는 카르고가 기세를 발산해서 모조리 쫓아 버렸다. 그러나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는 모험가 파티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은 같은 모험가들이었다. 반나절가량 이동한 그들은 사냥을 나선 것으로 보이는 모험가 파티와 조우했다. 말을 타고 다가오던 여섯 명가량의 모험가들이 수레 위에 실린 카누바라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 카누바라크?”

“세, 세상에! 카누바라크를 사냥하다니 놀라워.”

그 말에 두카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의 내 모습을 고향에 사는 엘린 아가씨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미치겠군.’

세실리아와 포르나 역시 카누바라크의 레어에서 습득한 로브를 입은 채 가슴을 쭉 폈다. 그 모습을 보던 모험가들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카누바라크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동료를 많이 잃었나 보군요.”

그들이 슬며시 눈빛을 교환하며 수레를 포위하려 했다. 허풍선이 아만족을 포함한 네 명을 감쪽같이 처리하면 수레 두 대 분의 전리품은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 된다. 엄청난 가치를 가진 전리품에 이어 카누바라크를 처치했다는 명성까지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기미를 알아차린 카르고의 입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놈들이 우릴 공격하려 하는군.”

눈치 빠른 두카도 모험가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옆에 놓아둔 활을 집어 든 두카가 싸늘한 눈빛을 던졌다.

“미안하지만 우리 파티는 원래부터 네 명이었어. 카누바라크를 잡는 과정에서 한 명도 죽지 않았지. 확인시켜 줄까?”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카르고가 말에서 뛰어내렸다.

촤촹.

허리춤의 도끼를 뽑아 든 카르고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히히힝.

기세를 정면으로 받은 말이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 쳤다. 리더로 보이는 전사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다.

‘이, 이런…….’

말을 달래던 전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제법 실력이 있는 전사였으므로 카르고가 뿜어낸 기세를 용케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민하던 전사가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었다.

“뭐, 뭐지?”

신호를 본 동료들이 깜짝 놀라 포위망을 풀었다. 전사의 손짓은 작전의 중지를 알리는 수신호였다. 이어 전사가 손을 좍 펴서 흔들자 그들이 일제히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건틀릿을 착용한 손에 땀이 흥건히 배어나는 것을 느낀 전사가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하오. 카누바라크를 자세히 보고 싶어 그랬던 거요. 사냥에 성공한 것을 축하드리오. 모두 길을 비켜 드리도록 하자.”

전사가 망설임 없이 고삐를 잡아채 말을 길옆으로 이동시켰다. 전사의 동료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함께 물러났다.

카르고는 그때서야 무기를 바닥으로 늘어뜨렸다. 그러나 그의 예리한 시선은 선두의 전사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두카가 싱글거리며 말을 걸었다.

“왜? 한번 덤벼 보지 그랬어? 안 그래도 수레가 무거워 말을 더 구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장비를 실을 공간도 충분하고…….”

“아, 아니오. 우리에겐 그럴 생각이 전혀 없소. 그럼 이만.”

전사가 급히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푸르르.

투레질소리와 함께 그의 말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전사의 동료들이 급히 뒤를 따랐다. 하나같이 마차를 향해 아쉬운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이 흙먼지를 휘날리며 사라지고 나서야 카르고가 무기를 거두며 말 위에 올라탔다.

“몬스터를 겁주는 기법이 인간에게도 통하는군. 알아차린 녀석이 단 하나라서 문제지만 말이야.”

“아무튼 카르고는 대단해.”

그렇게 해서 도적으로 변할 뻔한 모험가들을 쫓아 버린 다음 수레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자리를 벗어나자 전사에게 일행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왜 그랬어, 필립?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면 전리품이 고스란히 우리 것이 될 텐데.”

“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잖아? 단숨에 없애 버릴 수 있었다고…….”

필립이라 불린 전사가 착잡한 심정으로 동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멍청한 소릴 하는군. 아마 그 포포리 궁수의 말이 맞았을 거야.”

그 말에 동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소리야? 놈들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다고?”

필립이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동료들의 말을 부정했다.

“아냐. 덤볐으면 우린 모두 죽었어. 그들은 틀림없이 우리가 타고 있던 말들을 수레에 묶은 다음 장비를 챙겨 떠났을 거야. 시체만 남겨 두고 말이야.”

그 말에 동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사실이야?”

전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녀석들은 모르지만 그 아만족은 우리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강자가 확실해. 조금 전에 내가 무슨 느낌을 받은 줄 알아?”

“무슨 느낌을 받았는데?”

“마치 막강한 보스 몬스터 앞에 홀로 내팽개쳐진 느낌을 받았어. 내 등을 만져 봐. 식은땀으로 인해 등이 흠뻑 젖어 버렸어. 두려움으로 인해 아직까지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모르긴 몰라도 전리품을 노리고 덤볐다면 우린 모두 죽었어. 내 명성을 걸고 장담할 수도 있어.”

그 말에 모험가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그들의 리더인 필립은 근방에 널리 이름을 떨친 우수한 전사였으며 파티에서 가장 강한 실력자였다. 그가 이토록 겁을 집어먹을 정도라면 그냥 물러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 허풍선이 아만족 중에 그토록 강한 전사가 있다니 말이야.”

“같은 인간 전사들도 능력이 천차만별이잖아. 추정해 보건대 아만족 중에서 가장 강한 전사가 아닐까 생각해.”

“후……. 아만족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겠군.”

허탈한 듯 한마디씩 내뱉던 모험가들이 사냥터를 향해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오래 살려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카르고 일행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사냥을 나선 모험가 파티와 조우했다.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카르고가 포스를 발산해서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카르고가 내뿜는 기세를 접한 모험가들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거미처럼 몸을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수준이 높은 파티일수록 카르고의 기세에 얼어붙는 모험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카르고의 기세를 감지하지 못하는 자들로만 구성된 파티도 있었다.

다섯 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파티 하나가 카르고의 경고를 무시하고 덤벼들었다. 카르고의 기세를 감지할 정도의 실력자가 없었던 것이 그들에겐 악운이었다. 쉽게 말해 풋내기들로 구성된 파티가 전리품에 눈이 멀어 덤벼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카르고의 장벽을 넘어설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

카르고는 달려드는 도적 지망생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워 버렸다. 다섯 명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어지간하면 죽이지 마세요.”

세실리아의 천사 같은 마음씨로 인해 그들은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카르고는 칼리아스의 평평한 뒷면으로 도적으로 변모한 모험가들의 머리통을 후려갈겨 기절시켰다. 의식을 잃은 모험가들은 말과 장비를 모조리 빼앗기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녀석들이로군. 감히 카르고에게 덤비다니 말이야.”

두카가 늘어진 모험가들의 갑옷을 벗기며 싱글벙글 웃었다. 세실리아가 그들의 무기를 수거해 수레에 실으며 덧붙였다.

“말을 기증해 준 점은 고맙군요. 안 그래도 수레가 무거워 말들이 힘들어했는데 말이에요.”

그들은 모험가들로부터 빼앗은 말 다섯 마리 중 두 마리를 작은 수레에 묶었다. 남은 세 마리는 긴 줄을 이용해 수레의 뒤에 동여맸고, 말 등에는 의식불명이 된 채 꽁꽁 묶인 도적 지망생 다섯이 올려졌다. 처리가 끝나자 수레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수레 대열은 이후로도 많은 모험가 파티와 마주쳤다. 대부분의 파티들은 카르고의 경고를 파악하고 조용히 길을 비켜 주었다. 그러나 일확천금을 노리고 덤벼드는 파티도 종종 있었다. 하나같이 카르고의 경고를 알아먹지도 못하는 풋내기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운명은 한결같았다.

레나르로 이동할수록 인사불성이 된 도적 지망생들을 등에 얹고 수레를 뒤따르는 말의 수가 늘어만 갔다.

김정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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