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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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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집에 돌아온 한규는 먼저 청소를 했다. 지난 한달간 아르바이트 핑계로 게으름을 피운 덕에 집안에는 구석구석 먼지가 뽀얬다.

청소를 하던 도중 한규는 한 장소에서 멍하게 멈춰섰다. 형과 찍은 사진을 담은 액자였다. 걸레로 조심스럽게 액자의 틀을 닦았다. 그 곳에서 형은 어설프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여간 사진을 그렇게 못찍으니 선자리 하나 안들어왔던거 아냐.”

한규는 먼지를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코끝이 찡했다. 별것도 아닌것에 가슴이 아려온다.

자꾸 약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었다. 그때, 딩동 하는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나야, 매영이.”

“어, 매영이 누나?”

한규는 서둘러 문고리를 비틀었다. 문을 여니 정장 차림의 은매영이 홀로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성철이 아직 안온거야?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성철이 형? 아니. 뭐야 둘이 같이 오기로 한거였어? 그럴거면 전화라도 하고 오지. 나 집에 없었으면 어쩔뻔 했어?”

“응? 난 또 성철이가 얘기한줄 알았는데. 아무튼 들어갈게.”

매영의 말에 한규가 뒤로 물러나 들어올 곳을 마련해 주었다. 구두를 대충 벗은 매영의 발에는 코나간 스타킹이 누에고치처럼 긴 실을 뽑아냈다.

“아이씨, 또 나갔네. 이 구두 가져다 버리던지 해야지.”

“뭔 구두탓이야. 누나가 너무 터프해서 그렇지.”

“한규 너…….”

도끼눈을 뜨며 매영이는 한규의 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청소중이었던거야?”

“응? 어.”

“이리 줘. 누나가 도와줄게.”

“됐어. 나중에 천천히 하지 뭐. 저기 아무데나 앉아서 기다려. 음료수라도 가져다 줄테니까.”

“되긴 뭐가 돼. 이 누님은 청소기를 돌릴테니 너는 걸레질을 하거라.”

한규의 대답도 듣기전에 매영이는 부엌으로 이어진 수납장을 열어 청소기를 꺼냈다. 한상, 성철, 매영 이 동갑네기 삼총사의 인연은 벌써 10년이 넘었다. 성철이가 고등학생일 때 다른 학교와 동아리 교류로 처음 말을 텄으니 꼭 13년째다.

“한달동안 알바했다면서?”

청소기소리에 묻힐까 언성높인 매영의 물음에 한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주 새까맣게 탔네.”

“그야 밖에서 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여간 고생이다. 있다 성철이 오면 얘기하겠지만, 너 일같은거는 하지 말고 학교에 전념 해.”

한규의 손이 멈춘다.

“무슨 말이야?”

“한상이 동생은 내 동생이기도 해. 성철이한테도 마찬가지고. 걔나 나나 못버는 편은 아니니까, 생활비 정도는 대줄게.”

한규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됐어. 거기까지 안해도 돼.”

“싫어, 할꺼야.”

“누나…….”

“너 나랑 말싸움 해서 이긴적 있어?”

국내 최대 규모의 인터넷 잡지사 기자다. 말빨로 누가 이길수 있을까?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나중에 커서 이 누님께 효도하면 되잖아.”

그때, 또 한번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청소기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매영이 현관으로 달려갔다.

“성철이야?”

“응? 애기 벌써왔어?”

“아까와서 청소중이야.”

매영이 문을 열어주고 성철이 등장한다.

“그리고 애기라고 한번만 더하면 죽탱날아간다고 그랬지?”

“아, 우리도 좀 연인 분위기좀 내보자. 성철아, 매영아, 이게 뭐냐?”

“연인은 얼어죽을.”

매영의 매서운 눈에 성철은 어깨를 움추렸다. 어쩌다 저런 ‘사나이’를 사랑하게 되서는. 랄까, 분명 고백하기 전에는 안저랬던 것 같다.

“너도 빨리와서 청소나 해.”

“응? 아, 알았어.”

양복 자켓을 벗으며 성철이 한규에게 인사를 한다.

“여, 철공소 사장님한테 들었다. 일 잘한다고,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계속 할 생각 있으면 말하라더라.”

“그때 봐서요. 아무튼 고마워요. 덕분에 몇 달치 생활비는 벌었어요.”

“뭘 임마. 한상이 동생은 내 동생이야.”

매영과 똑같은 소리에 한규는 왜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배달 온 탕수육과 짜장면을 앞에 두고 성철이 말문을 열었다.

“한규야. 매영이랑 상의해 봤는데, 일단 네 고등학교 학비랑 생활비는 우리가 내 줄게. 고등학교 등록금이야 너같은 경우에는 체육특기로 면제지만, 용돈같은것도 필요할 것 아냐.”

매영이가 단무지를 똑 끊으며 끼어들었다.

“아까 잠깐 이야기 했어.”

“아, 그래?”

한규는 성철과 매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개를 꾸벅 숙인다.

“더 거절하는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까 감사히 받을게요.”

성철이 미소를 짓는다.

“그래, 잘 생각했다. 조만간 이사도 갈 것 아니야? 한상이가 집도 새로 샀다면서.”

한규가 고개를 젓는다.

“그건…… 사정말씀드려서 계약을 없던걸로 해 두었어요. 저 혼자 큰 집에 살 필요도 없는데다가, 집을 살 돈으로 하고 싶은게 있어서요.”

“음? 왜?”

“뭐가 하고 싶은건데?”

두 사람의 물음에 한규가 말했다.

“형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요.”

“아!”

성철이 탄성을 냈다.

“뇌사자의 경우에는 재가치료 하는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드는 비용이랑, 제가 계속 형을 돌볼수는 없으니까 간병인도 고용하고 하려고요. 어디까지나 형 돈이니까, 형을 위해서만 쓸 생각이에요. 문기한테 빌린 병원비도 갚아야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성철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괜찮겠다. 너도 한상이가 늘 집에 있으면 덜 외로울테고.”

매영이도 찬성을 하고 나선다.

“그래. 그건 나도 동감이야. 필요한 절차는 내가 좀 알아볼게.”

“감사합니다.”

한규가 또 한번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때 성철이 등뒤에 놓여있는 샹그릴라를 손가락질한다.

“그러고보니 저거…….”

“네?”

“진짜 어마어마하게 잘나가는 모양이더라. 그 얘기 들을때마다 어찌나 속이 쓰린지. 한상이가 깨어있었으면…….”

“할 수 없죠.”

힘없는 한규의 말에 성철이 물었다.

“호열이도 완전히 빠져 산다는 것 같던데. 혹시 너도 하고있어?”

한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제 다시 시작했지만…….”

한규의 입가에 자그맣게 미소가 걸린다.

“그래도 저걸 하고 있으면 형이랑 같이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 따지고보면 형의 아이 같은 녀석이잖아요.”

성철이 입을 다문다. 매영이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게임일 뿐이지만요.”

어색한 침묵을 깨려 한규가 한마디 하고는 짜장면 한젓가락을 입에 넣고 후르륵 들여마셨다.

한규의 집을 등지며 성철과 매영이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멀리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불쌍한 놈.”

성철의 말에 팔짱을 끼고있던 매영이 그의 어깨에 기댔다. 그러다 문득 한마디 한다.

“그런데 정말 사고였을까?”

“응?”

“생각해 봐. 그 뒤로 있던 일들. 전 지하철 노선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후로 선로 추락사고라고는 일년에 한건 날까 말까였잖아.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우연인데, 한상이가 사고를 당한 그날 밤, 회사가 합병되었다니 어딘가 께름직한 부분이 있어.”

“억지해석이야.”

성철은 한마디로 매영의 말을 일축했다. 그리고는 말을 더한다.

“사건 조사내용을 읽어봤는데, 그건 그냥 사고였어.”

“그건 나도 알지만…….”

“한상이가 저렇게 된건 마음아프지만…….”

“하지만 생각해 봐. 만약 한상이가 깨어있었다면 샹그릴라를 간단히 손에 넣을수 있었을까? 우리쪽 정보통 이야기인데, 샹그릴라는 한상이 말고는 손댈수 없는 부분들이 한둘이 아니래. 인수해 간 주에스 크로스사의 엘아힘 엔터테인먼트의 엔지니어들도 그것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 모양이야. 한상이가 만약 살아서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야…… 만약에 처음부터 샹그릴라가 목적이였다면 한상이가 없는편이 편했겠지. 하지만 고작 게임하나 때문에 누가 그렇게까지 할까?”

“고작이 아니야, 고작이. 샹그릴라는 일반에 공개된지 겨우 두달이지만 벌써 사회현상이라고까지 부르고 있어.”

하지만 여전히 성철은 매영의 음모론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건 알고 있지만, CCTV에도 찍혀있었어. 한상이가 혼자 스크린도어에 기댔다가, 스크린도어의 오작동으로 혼자 떨어진거야. 매영아, 한상이가 저렇게 된 것이 안타깝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우선 지금 생각해야 할 것은 혼자가 된 한규잖아? 네가 만약 그런 이야기를 한규에게 하기라도 해 봐. 어떨 것 같아?”

매영은 성철의 말에 입을 닫았다.

한규는 사고후 한달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간신히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 보였다. 음모로 형이 죽었느니 하는 확인되지도 않은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어간다면?

매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성철이가 매영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혹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거나 하면 이야기 해 줄게.”

“꼭이다.”

“약속.”

성철이 내민 새끼손가락에 매영의 손가락이 얽힌다.

2

성철이 형과 매영이 누나가 집을 떠나고 나서 한규는 하던 집정리를 마저 했다. 그나마 사람이 있어 떠들때는 못느꼈는데, 홀로 있는 집이라는건 쓸쓸했다.

아직 형의 방에는 들어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깔끔한 성격이었던만큼 먼지만 털어내고 쓸면 끝일테지만…… 무얼 보고 눈물이 터져나올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거실과 부엌, 한규 자신의 방까지 청소를 마치고 나니 9시를 훌쩍 넘겨있었다. 텔레비젼을 켜 보았다. 평소 즐겨보던 게임채널이 흘러나온다.

―오늘은 샹그릴라의 직업별 공략 코너입니다. 먼저 그로얀 제국의 검사로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해설을 위해 모셨습니다. 샹그릴라 한국서버, 최고렙 검사이시죠. 김병석씨입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샹그릴라 한국서버에서 두 번째로 레벨이 높으시다고 들었어요.

―네, 어제 22레벨 찍고 왔습니다.

―와, 겨우 한달만인데요. 듣자하니 클로즈 베타때는 원할한 테스팅을 위해 좀 더 레벨을 올리기 쉽게 만들어 놓았던 거라던데요? 어떠신가요? 오픈베타의 렙업 느낌이?

―확실히 경험치 테이블이 늘어났어요. 게다가 플레이 하는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퀘스트 진행이 좀 힘든편이죠.

―아! 그렇겠군요.

멍한눈으로 한규가 텔레비젼의 화면을 훑는다. 그러다 전원스위치를 눌러 다시 검은 화면으로 되돌려 놓고는 샹그릴라의 조작기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잠들면 새벽 여섯시 정도까지는 플레이가 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하루에 그만큼은 이 공허한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형이 만든 게임 속에서 모험을 즐길수 있다.

처음 느꼈던 샹그릴라 라는 게임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현실에서 도망치듯 게임안으로 들어갔다.

나른해지고, 잠에 빠졌다.

샹그릴라의 푸른 숲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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