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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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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피부의 질감은 나무 그대로였는데 흡사 살아있는 듯 근육의 움직임마저 느껴졌다.

멍청하게 서 있는 나무인형을 때리는 것 보다는 재미있겠지.

기수식인 삼체식을 열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나무인형이 두 팔을 뻗어 나를 안아쥐려 한다.

두 손을 가슴 앞에 십자로 꼬고, 서로의 탄력을 이용해 뻗는다. 왼쪽 팔로 목각인형의 손을 밀치고 오른 주먹을 인형의 인후에 찔러넣었다. 오행권중 포권(砲拳)이다.

빠악―

뭔가 단단히 깨지는 소리가 나며 인형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주먹 끝에 제법 묵직한 느낌이 든다. 오래간만에 마음껏 주먹을 내지르고 나니 가슴의 답답한게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다리를 45도 왼쪽앞으로 내딛고 뒷발을 당겼다. 화생토(火生土)! 포권은 횡권(橫拳)을 낳는다.

첫 일격에 스턴상태가 되었는지 목각인형은 동작이 둔해졌다. 오른주먹을 휘둘러 인형의 관자놀이에 꽂았다. 또 한번 경쾌한 타격감이 울리고 인형의 목이 돌아가는게 보였다.

뒤뚱거리며 물러나는 목각인형을 쫓으며 마지막으로 붕권(崩拳)꽂아넣었다. 단순하면서도 호쾌한 일격이 마음에 들어 특별히 애착을 갖고 수련해왔다.

현실에서 한큐라는 별명을 낳아준 일권이다. 뭐, 애들 싸움이긴 하지만.

장사부도 붕권만큼은 얼마만큼 경지에 이른 것 같다며 칭찬하곤 했다.

뒷발을 앞발에 붙이는 근보는 몸을 전진시킨다. 거의 같은 타이밍으로 허리를 틀며 좌권을 내뻗는다. 주먹을 지른다는 느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허리와 어깨의 힘을 주먹으로 전달한다는 기분이다.

몸 전체가 하나의 근육덩이가 되어 거기서 생겨난 힘을 주먹 끝에 집중하는 것이다.

붕권이 틀어밖힌 곳은 특별한 약점도 뭣도 아니었다. 그저 목각인형의 몸통, 등부분이다. 하지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인형의 몸이 앞으로 튕겨나갔다. 무릎을 꿇고는 꼴사납게 두 손을 바닥에 짚었다.

목각인형의 몸에 흐르던 미미한 빛들이 서서히 사그러들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일어나더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에 창이 하나 떠올랐다.

―누적 공격력 120의 공격입니다. 근력에 따라 데미지가 증가하게 됩니다. 지금의 동작을 스킬로 저장하시겠습니까?

샹그릴라 세계로 들어와 처음으로 스킬이라는 말을 보았다. 지금까지 듣기로는 스킬을 다른 엔피씨에게 배운다고 했는데, 이런식으로 도시안에 있는 수련장에서 스킬을 만들어내는 시스템도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스킬로 저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몸에 완전히 베어있는 동작들이다.

‘아니오’를 선택하니 또 한번 두 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말 스킬화 시키지 않겠습니까?

―‘예’를 선택하실 경우 같은 동작에 스킬화 여부를 묻지 않습니다. 자세한 것은 옵션창의 스킬 항목을 선택하여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예를 선택했다.

시스템적인 부분을 해결하고 나니 거벨룽이 내게 말을 걸었다.

“한가닥 재주는 있군 그래. 자네가 골탕을 먹도록 자네 보다 2레벨 높게 인형을 조작해 두었는데…….”

―욜 숲의 엘프들과 사이가 조금 좋아졌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인 테스트였는데, 팩션과 관련된 퀘스트였던 모양이다. 뭐 2레벨 높아봤자 3레벨인데, 못잡을게 뭐있을까?

“앞으로도 이곳에서 수련을 하고 싶다면 원하는 모습의 수련인형 앞에 서서 ‘케히 히비야 움트’라고 말하면 되네.”

“알겠습니다.”

단어장을 열어 그가 말해준 단어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엘모아 님의 신전을 안내해 주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거벨룽을 따라 숲 안 깊은곳으로 향했다.

3

숲은 살아있었다.

자연은 살아있다 따위의 무슨 자연보호단체에서 뱉을만한 문구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있었다.

살다살다 나무가 말을 걸고 인사하는 꼴을 보자니 웃음만 나온다. 늙수구레 주름 가득한 졸참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말을건다.

“덴드로움과 덴드로아 들이지. 나무의 전사들일세.”

그때, 한그루의 전나무가 뿌리를 들어 내 발을 감쌌다. 채찍같은 긴 뿌리가 나를 공중으로 들어올렸고, 나는 공중에 데롱데롱 매달렸다.

엘프 거벨룽이 대뜸 소리를 친다.

“숲의 동맹자여, 멈추게. 그들은 엘모아 님의 사자이자 우리 엘프들의 손님이네.”

전나무가 나를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인간은 나무를 베고 숲을 태운다.”

목소리가 투박한 것을 보니 숫나무 덴드로움인 모양이었다.

“그대들의 원한은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참아주게.”

내 발목을 옭죄었던 뿌리가 풀린다.

“엘프는 우리의 동맹자. 엘프의 요청에 따르겠다.”

“고맙네.”

참나무의 눈이 감기고, 다시 나무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흙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거벨룽이 변명조로 말한다.

“덴드로이드 클랜은 인간을 싫어하지. 이 숲을 무사히 돌아다니고 싶다면 그들과 먼저 친해져야 할 것일세.”

덴드로이드 클랜과 친해지기 위한 팩션 퀘스트 같은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1레벨인 내가 할만한 것은 아닐게 뻔했기에 기억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엘모아 님의 신전이 바로 저 너머에 있네.”

거벨룽은 숲 저편으로 손짓을 했다. 울창한 삼림 틈사이로 거뭇한 돌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보았던 남미의 정글속 피라미드가 그곳에 있었다. 마야던가 잉카던가? 아즈텍인가? 아무튼 늘 헷깔리는 그 세 남미 토착민족의 국가중 하나가 세웠다는 신전이었다.

10년전쯤에 나왔던 재난영화의 소재도 그들이 한 예언에서 따왔었다.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나 뭐라나? 그 영화는 명절때마다 텔레비젼에서 지겹도록 재방송 해주고 있다.

현무암 느낌의 피라미드에는 녹색의 넝쿨식물들이 어지럽게 자라고 있었다. 피라미드 중앙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오르며 거벨룽이 말한다.

“엘모아 님은 자비로운 분이시네. 우리 위대한 엘프들은 물론 사악한 땅속의 짐승, 하늘의 괴수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샹그릴라에 살수있도록 안배하셨지.”

피라미드의 위에는 세사람의 어깨폭쯤 되는 출입구가 있었다. 그 앞에서 서른쯤 되어보이는 여자가 우리 두 사람을 맞이했다.

“숲의 전사여, 엘모아 님의 신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페투 사제님께 인사드립니다. 엘모아 님께서 보낸 이계인과 함께 왔습니다. 부디 숲을 어지럽히는 것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녀가 이 신전을 지키는 사람인 모양이다. 나는 이페투라는 여사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여신께서는 모두에게 공평하십니다.”

“아, 예…….”

이페투의 말이 이어졌다.

“어떻게 초보 모험자께서 이곳 욜 숲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엘모아 님을 모시는 자로서 신전은 당신께 가능한의 편의를 제공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여사제는 신전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검은색조의 신전 겉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예전 롬로스의 신전과 비슷하게 우윳빛으로 가득했다. 연둣빛의 넝쿨이 내부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면 다를까?

“상처를 입으셨을 경우에는 엘모아 여신님의 성수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처음 나를 안내해 간 곳은 신전 벽을 따라 흘러나오는 성수 샘이었다. 아마 롬로스의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병에 담긴 판매가격까지 같으니 말이다.

“휴식을 취하고 싶으실때에도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욜 숲에서 만약 의식을 잃으시거나 한다면 숲의 전사들이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어디까지나 당신이 초보 모험자일때만 제공되는 서비스임을 염두해 주십시오.”

게임을 시작한지 꽤 시간이 흐르고 나서 안 일이지만 초보모험자는 5렙까지를 이야기한다.

“알겠습니다.”

사실 샹그릴라에 있어 레벨 시스템은 능력치를 상승시켜주기보다는 일종의 통행증 같은 것이었다. 레벨 차이가 현격한 몬스터를 잡을수 없도록 명중률을 조정함으로서 저렙에 고렙지역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사실상 능력치의 상승은 레벨업보다는 각 능력을 계속 사용함으로서 스테이터스 경험치를 누적시켜 올리는 시스템을 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능력을 쓰다보면 레벨이 오르는게 당연했고, 결국 능력과 레벨은 어느정도 비례하고 있었다.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이페투가 묻는다.

“아, 혹시 근처에 제가 레벨을 올릴만한 사냥터는 있습니까?”

이페투는 고개를 저었다.

“욜 숲은 초보모험가들이 올만한 곳은 아닙니다.”

역시나. GM을 부르던지 해서 좀 더 난이도 낮은 곳으로 옮겨야했다. 버그 때문에 생긴 번개를 맞고 이곳에 떨어진 것이니 말이다.

“가까운 곳에 델스라는 인간들의 도시가 있습니다. 남쪽으로 30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지요. 그곳이라면 초보자들도 적응을 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원하신다면 욜 숲의 경계지점까지 당신을 안내해 드릴수 있습니다.”

아마도 엘프 전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가는 것을 말하는 듯 했다.

게임상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끽해야 3040킬로미터다. 숲길이라는걸 감안하면 그보다 적으면 적지 더 많이 가지는 못할 것이다. 먹을것도 없고 돈도 없는 지금상태에서 열흘넘게 걷는것만으로 시간을 낭비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니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GM한번 부르면 될 일 아닌가? 그게 안된다면 그때가서 부탁하던지 해야겠다.

“엘모어 님께서 당신을 보살펴 주실 겁니다.”

여사제 이페투는 두 손을 모으며 내게 말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여사제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눈꺼플이니 옷의 찰랑거림 따위가 흡사 얼어붙기라도 한 듯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거벨룽을 보니 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뿐 아니라 사원을 감싸고 있던 넝쿨들도 바람에 살랑거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를 제외하고 이 공간의 모든 것이 멈춘 것이다.

“또 버근가?”

중얼거리며 나는 몇걸음 앞으로 걸어보았다. 구시대 게임들에서 종종 발생했다는 랙(lag) 현상 같은 느낌이었다.

상용화가 내일 모레인데 문제 많구만. 투덜거리며 나는 신전 저편에서 모두를 굽어살피고 있는 여신 엘모아의 조각상 곁으로 다가갔다.

“안녕?”

그때 누군가의 인사말이 들렸다.

“안녕?”

내게 대답이 없자 다시 말을 건다. 눈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말을 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안녕?”

“누구……?”

“나? 엘베로사.”

“엘베로사? 그게 누군데?”

“엘베로사가 엘베로사야.”

약간 어린듯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어쩌면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소프라노 톤의 남자아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름을 봐서는 소녀일 가능성이 높았다.

“너, 한규지?”

“어, 맞아.”

“맞구나. 꺄르륵.”

무구한 웃음에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나는 엘베로사.”

“너도 샹그릴라 속 엔피씨야?”

“엔피씨가 뭔데?”

“그, 그러니까 그냥 이런애들 같은거.”

막상 답하기가 애매해 나는 손가락질로 이페투와 거벨룽을 가리켰다.

“아니야. 나, 틀려.”

“그럼…… 플레이어야?”

“플레이어는 뭐야?”

“나 같은 사람 말이야. 현실에 몸이 있는…….”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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