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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21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뉴스를 읽으며 한규는 새삼 형을 떠올렸다. 전부 형이 이룬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칭송은 전부 형이 받아야 마땅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형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지금 병원에 누워있다.

씁쓸했다.

술에 취해 실족한것이니 누굴 탓할까?

회사가 다른곳에 넘어가버려 산업재해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열 여덟살먹은 자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병원비조차 댈 수 없다.

나라에서 얼마간 돈이 나오고는 있지만 형이 이룬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억울했다. 형의 인생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울컥하는 것이 치솟았지만 분출할 대상이 없었다. 누굴 탓하고 원망할까? 운이없었을 뿐인걸…….

신을 원망하자니 존재감이 너무나 희박했다.

한규는 고개를 돌려 방 밖을 보았다. 한달이나 전원조차 뽑힌채 방치된 샹그릴라의 플레이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곤 무언가에 홀린 듯 그쪽으로 다가갔다.

저곳에서…….

형이 만든 저 안에서 무언가를 할수 있지는 않을까?

아니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막연하나마, 그런 기분이 들었다.

손발을 조작기에 넣고 헬멧을 썼다.

온수에 몸을 담근것처럼 몸이 나른해진다. 하얀 빛속으로 빨려들아가는듯한 기분과 함께 어느사이엔가 평온한 잠에 빠져들었다.

2

“다시 돌아오셨군요.”

여신이 나를 반긴다.

“한큐님, 샹그릴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 몸을 살펴보았다. 한달전까지 플레이하던 한큐의 몸 그대로였다.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마치며 다른 능력치는 모두 초기화 되지만, 외형과 캐릭터 이름, 사람들과의 팩션 만큼은 유지할수 있다고 했다.

“시공의 불안정으로 세계를 원래대로 돌려야 했지만 한큐님은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샹그릴라 세계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히 한큐님께는 아래 세상에서 활동하실 때 쓰실 이름과 겉모습을 정할수 있는 권리를 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갈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길잡이 요정 페이가 한큐님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페이와 이야기 해 주세요.”

일전 보았던 우주의 풍경, 그리고 샹그릴라 세계의 전경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길잡이 요정 페이도 여전했다. 내게 진영을 묻고, 원하는 시작 포인트를 결정하게 해 주었다.

진영은 그로얀 왕국.

하지만 시작포인트는 잠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굳이 롬로스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었다.

내 결정을 기다리며 페이는 나와 함께 그로얀 왕국을 일주하기 시작했다. 칼날같이 솟아난 산맥, 사막 위, 호수 따위를 지나며 각각의 이름을 이야기 해 준다.

국경지대를 택할까? 적들과 싸워 명성치를 빠르게 올릴수 있을 것이다. 대신 몬스터를 사냥해 레벨을 올리는 작업은 느려질테다. 1레벨 캐릭터가 전장에서 무슨 힘을 발휘할까?

산맥 동쪽의 사막지대? 아니면 수도 근처?

이것저곳을 따져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문득 문기를 생각해 보았다. 그 뒤로도 샹그릴라를 계속 하고 있다고 했다. 수도 롬로스 근처에 있을 듯 했다. 3번가 상점거리에 애착을 갖고 있었으니.

하지만 나는 문기, 문블레이드와는 다른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차이가 너무 벌어져있다. 그것을 채울 때 까지는 함께 다녀봤자 문블레이드의 방해가 될 뿐이다.

그 순간.

페이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이건 뭔가요?”

페이의 말은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먹장구름이 드리웠다.

눈 깜짝할사이에 번개가 내려쳐 내 몸을 휘감았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내 몸이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겁먹고 달아나는 페이의 모습이 의식을 잃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나같이 긴 귀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엘프…….”

짧으나마 가지고있던 지식속에 눈앞의 종족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들어있었다.

“오, 젊은이 정신이 드나?”

늙수구레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가 치고 자네가 떨어져 내려와 깜짝 놀랐네. 혹시 자네 이세계의 사람인가? 엘모아 님의 축복을 받았다는…….”

“여긴 어디입니까?”

나는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물었다. 허리를 드는것만으로도 몸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여기는 벨프스 산맥 북쪽의 욜 숲이라네. 인간들은 요정의 숲이라고 부르고 있지.”

“욜 숲…….”

그러고보니 샹그릴라 설정집에서 본 것 같았다. 그로얀 왕국은 인간과 엘프의 연합왕국이었고, 케세린 공화국은 역시 인간과 드워프의 왕국이었다. 욜 숲은 엘프들의 고향이자, 인간에 동화되기를 거부한 엘프 순혈주의자들이 자치구를 이루어 살아가는 장소였다. 하프엘프는 발을 들여놓을수 없으며, 숲 깊은 곳은 욜의 주민 외에는 접근 금지이다.

“촌장님, 저 자는 인간입니다. 이 신성한 장소에서 쫓아내야 합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엘프가 노인에게 말한다.

“엘모아를 모시는 자로서 어찌 그분의 뜻에 거역하려 하느냐? 비록 그의 겉모습이 인간과 같지만 어디까지나 이세계의 존재이다. 신께서 그를 이곳으로 인도하였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일은 아니다.”

“촌장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저는 따를 뿐입니다.”

젊은 엘프는 촌장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눈빛과 태도에 불만이 가득 들어차있다.

“이계인이여, 이름이 무엇인가?”

“한큐입니다.”

“한큐…… 나는 욜숲의 마을, 미드 포레스트의 촌장인 이위페라고 한다. 이 자는 마을의 젊은 전사로 자네를 이곳까지 데려온것도 바로 그이지. 거벨룽이 그의 이름일세.”

나는 거벨룽이라는 엘프에게 고개를 꾸벅숙였다.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엘모아 님의 가르침에 따른 것 뿐이다.”

대꾸가 쌀쌀맞다. 새삼 샹그릴라라는 세계에 놀랐다. 1억명이나 되는 엔피씨들이 정말 이렇게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걸까?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딥뻴마에롱입니다.”

말이 안되는 소리다. 이 말에 엔피씨일 촌장 이위페와 거벨룽이 서로를 쳐다본다.

“그건 무슨 말인가?”

촌장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외계어입니다.”

“아, 그런가? 뜻이 뭐지?”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입니다.”

“오, 그렇구만. 이세계에서는 참 이상한 말을 쓰고 있군 그래.”

장난을 친게 멍청하게 느껴질정도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보니 1레벨로 돌아온 자신의 능력치가 보였다.

그때, 나는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가지고있는 소지품의 무게가 제법 된다. 곧바로 모험가 가방 안을 살펴보았다.

“어…….”

두 자루의 검이다.

먼저 하나에 시선을 주었다. 무기 곁으로 설명창이 떠오른다.

―샹그릴라 클로즈 베타 참여 감사의 검―

이름 참 길다.

―공격력 2 무게 1.5킬로그램―

―클로즈 베타 테스팅에 참가해주신 분들게 감사의 뜻을 담아 선물해 드립니다. 기념으로 간직해주세요.―

그냥 클로즈 베타 테스터들에게 나누어 주는 무기인 듯 했다. 하필이면 검이냐? 나는 주먹이 좋은데. 차라리 가죽장갑 같은거라도 주지.

이어 두 번째 검으로 눈을 주었다. 하지만 옆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감정이 되지 않은 무기도 ―알 수 없는 검― 따위의 문구는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상하다는 생각에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이름을 알지 못하다보니 잡고 꺼낼수가 없었다.

페이와 함께 날아올 때 번개를 맞은것도 그렇고, 무슨 버그인 모양이었다. 괜히 인벤토리만 세칸 잃어버린 셈이다. 나중에 GM에게 신고해야겠다.

“그런데 한큐, 자네는 이곳 욜 숲에 어떤 용건이 있나?”

“네? 아…….”

용건이 있을리 없다. 아니, 올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올 수 없는 곳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나갈 마음은 없었다.

“그게 그러니까…….”

딱히 뭔가 떠오르는게 없다. 뭘 아는게 있어야 말이지.

“저도 모르게 떨어진거라. 엘모아 님만 알고 계시겠죠.”

괜한 소리로 미움받느니 솔직한게 낫다.

“그런가? 그럼 우선 마을 안을 돌아보게나. 여신께서 자네의 길을 인도해 주시겠지.”

촌장 이위페가 이렇게 말하며 거벨룽에게 말한다.

“자네가 구해온 셈이니 그 책무를 다하게나. 한큐에게 이 마을을 안내해 주게.”

거벨룽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이위페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이어 촌장은 내 몸에 회복마법을 걸어주었다. 한결 몸이 가뿐해지며 욱씬거리던 느낌이 사라졌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내게 거벨룽이 무뚝뚝하게 말한다.

“따라오게.”

엘프들의 마을, 미드포레스트는 이름 그대로 욜 숲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곁가지 없이 곧게 자란 숲들 중간중간에 나무로 지은 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가끔 넋놓고 걷다가 나무집 사이에 이어진 흔들다리 난간에 턱하고 걸릴때는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아래를 보면 추락사 한 시체가 즐비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구조다.

“우리 엘프들은 긍지높은 전사들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거벨룽이 설명을 시작한다.

“우리 미드포레스트는 그 중에서도 만물의 신 엘모아 님을 모시는 신전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마을이지. 전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민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벨룽과 함께 걷는 도중 몇몇 엘프들과 마주쳤다. 전사라는 주제에 왜 저리 헐벗고 다니는지. 게임세계라는게 비키니가 풀플레이트보다 방어력이 높은 정신나간 곳이긴 하지만 정작 현실처럼 눈앞에서 보자니…….

매우 바람직하다.

“뭘 그렇게 한눈을 파는건가? 우리 부족의 여전사들에게 파렴치한 짓을 하려한다면 비록 신의 사자라 하더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거벨룽이 내 눈을 가리며 얼굴을 불쑥 내민다. 동시에 예의 그 창이 떠오른다.

―이 게임은 12세 이상…….

“이쪽으로 와라.”

거벨룽이 안내한 곳은 엘리베이터였다. 마법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번쩍번쩍하는 돌들이 곳곳에 밖힌, 위가 좁은 새장모양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거벨룽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너른 공터가 나왔다. 잔디 느낌의 푹신한 풀이 깔린 운동장에 사람이나 신화속에 나올법한 괴물 모양의 조각상들이 즐비해 있었다. 하나같이 약점부분에 푹신한 천을 달아 놓은 것으로 보아 수련용 목각인형 같은 것이었다.

“이곳이 우리 전사들의 수련장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간 모양의 인형앞에 섰다.

“한번 시험해 보겠는가?”

“아, 예.”

“작동시켜 주도록 하겠다.”

거벨룽이 알수 없는 언어로 무어라 지껄인다. 그러자 목각인형이 눈을 번쩍 뜨고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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