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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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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요새는 별로 배우는것도 없어. 석수동에 대형마켓 들어온후로 매출이 팍 떨어졌다고, 매일같이 증권에 빠져지내니까. 그것도 벌었다가 잃었다가 난리도 아닌 모양이던데.”

한규가 죽을 입에 밀어넣으며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사모님한테 이혼당하는거 아닌가 몰라?”

“하하, 설마.”

“설마가 아니라니까. 하여간 돈버는데는 소질없는 사람이야. 장사부님도, 우리 형처럼…….”

한규가 다시 형을 보며 한숨을 쉰다.

“아무튼 너네 형, 오늘부터 일반병동으로 옮긴데. 아버지에게 말해서 1인실은 마련해 두었는데…….”

“한달에 얼마쯤 드냐?”

문기가 고개를 젓는다.

“아서라. 돈얘기는 관두자.”

“말해 봐.”

한규의 말에 문기가 머리를 굴렸다. 사실 문기도 정확히 얼마가 드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글쎄, 의료보험도 있고 하니까…… 아버지 말로는 한달에 5, 60만원쯤 지불하는 것 같던데?”

한규의 성격상 그 돈을 갚겠다고 할게 뻔했기에 문기는 한규가 갚을수 있을 정도의 돈을 불렀다. 하지만 그것도 많았던 모양이다. 한규가 한숨을 내쉰다.

“당분간은 신세를 져야겠구나. 학교 그만둬야겠다.”

“야, 그러지 마. 돈이야 나중에 갚아도 되잖아.”

문기가 오히려 당황한다. 한규는 그런 문기를 보며 무언가 왈칵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지금은 그런생각 하지 말고, 너부터 좀 추스려라.”

한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죽을 한숟깔 꾹꾹 눌러 떠 입안에 넣었다.

형은 아직 죽지 않았다.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수염도 자라고, 생리활동도 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죽었을리 없다.

“문기야, 잠깐 집에좀 갔다오자.”

다 먹은 죽그릇을 정리하고 한규가 몸을 일으킨다. 문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 괜찮겠냐?”

“갈아입을 옷도 있어야 하고. 벌써 나흘째 세수도 안했잖아.”

문기가 웃으며 한규의 말에 대꾸했다.

“아 더러운새끼. 어쩐지 냄새나더라.”

“미친.”

문기와 함께 한규는 오래간만에 병실을 나섰다. 평생 이곳에서 살아가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던게 고작 나흘전이었건만, 지금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기분이 몸안 가득했다.

형은 죽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이 병실을 나간 그 순간.

한상의 뇌파를 기록하고 있던 오실로스코프의 그래프가 요동을 쳤다. 하지만 환자의 급변에 울리도록 설계된 비상벨은 조용했다.

심전도가 불규칙하다. 호흡, 맥박, 혈압 어느 하나도 정상이 아니었다.

누워있던 한상의 몸이 미미하게 떨렸다. 뉴론을 타고 1과 0의 신호들이 날뛴다. 반쯤 오그라든 손 끝에 파르스름한 방전까지 일었다.

방안을 비추던 CCTV는 1분전의 영상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한규와 문기가 떠난 후, 아무도 없는 평온하던 병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한상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나 둘, 한상의 몸에 연결된 기계장치들이 정상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맥박이 72를 가리키고, 혈압은 130/92로 돌아왔다. 뇌파, 호흡 모든 것이 뇌사자의 상태를 완벽히 표현하고 있다.

조금전의 이상작동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듯, 기계들이 시치미를 뗀다.

무언가 웃는것만 같았다.

들리지 않는 가녀린 여자아이의 웃음이 병실안을 멤돈다.

속옷을 대충 걸치고 샤워수건으로 허리를 둘러친 한규가 욕실밖으로 나왔다.집안은 형의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나간 그때 그대로였다. 거실의 샹그릴라 기계에 걸터앉아 텔리비젼의 채널을 돌리던 문기와 눈이 마주쳤다.

“몸좋다고 자랑하냐?”

문기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한규는 부엌으로 갔다. 500밀리는 될듯한 컵에 우유를 한잔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집안 곳곳에 형의 온기가 느껴진다. 냉장고안의 음식들을 깔끔하게 정돈해 놓은 것은 형의 솜씨다. 총각 주제에 가끔 아침방송의 주부 노하우를 메모까지 하던 형이다.

거실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갔다. 샤워타월을 내던지고 청바지를 입었다. 라운드 티까지 입고 나니 은은한 섬유유연제 내음이 베어나왔다.

형이 빨아둔 옷이다.

“다시 병원에 갈거냐?”

방문으로 나오는 한규에게 문기가 묻는다.

“아니, 일단은 성철이형한테. 고맙단 인사도 제대로 못했으니까.”

“하긴.”

한규는 문기와 함께 집을 나섰다.

임대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앞에 에드벌룬이 눈에 들어왔다.

―샹그릴라 오픈베타 7월 26일! ―

―엘아힘 엔터테인먼트 ―

한규는 광고현수막이 눈에 거슬렸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든 게임인데…….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국제자본인지 뭔지가 새치기를 했다.

하지만 샹그릴라라는 게임이 밉지만은 않았다. 그건 형의 아이와도 같은 게임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는 조카와도 마찬가지였다.

복잡한 마음이다.

“샹그릴라라…….”

“음?”

문기가 한규의 혼잣말에 대꾸한다.

“아, 아니. 샹그릴라는 천국 같은거지?”

“그렇달까, 티벳쪽에 실제 있는 장소라던데? 어떤 소설가가 이상향으로 묘사하면서 유토피아랑 비슷한 뜻으로 쓰기 시작했다더라.”

입을 다문 한규의 옆모습을 문기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5장 다시 이상향으로…….

1

형 한상이 식물인간이 된지도 벌써 한달이 흘렀다.

8월 말. 아직도 덥다.

한규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군포역 근처의 철공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공업용 자석을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철가루가 든 포대라거나 녹여 굳힌 쇳덩이 따위를 나르는게 대부분이었다.

성철이 형에게 부탁해 얻어낸 일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중 관리직을 제외하고 한국인은 한규뿐이었다.

일이 고된만큼 보상은 좋은편이었다. 일당으로 9만원. 편의점 알바가 시급 5천원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큰 돈이었다.

“한규학생, 이거 하나 들고 하지?”

1팀장 강씨아저씨가 한규에게 손짓을 한다. 전부 외국인 노동자라 적당한 대화상대가 없어서인지 강씨 아저씨는 한규에게 말도걸고 하며 친근하게 대해왔다.

“여기서 일하는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지?”

차가운 보리차한잔에 누룽지 뿌스러기를 내밀며 쉰을 훌쩍넘긴 강씨아저씨가 묻는다.

“예.”

“어린 친구가 용캐도 한달을 버텼구만 그래. 아직 고등학생이라 개학을 한다고?”

“개학은 벌써 했죠. 더 이상 빠지기도 그래서…… 이 일을 소개시켜준 성철이 형이랑 약속했거든요. 학교는 계속 다니기로. 병원에 있는 형도 그렇게 말했었고.”

“장하구만 그래. 그럼, 고등학교는 나와야지. 것두 않구 세상 어찌살아가겠누?”

강씨아저씨가 주름 켜켜히 기름떼가 침착해 시커멓게 변한 손으로 누룽지를 한조각 떼어 한규에게 주었다. 설탕을 쳐서 구워내서인지 달큰한게 맛이 좋다.

“그러고보니 자네도 게임을 하고 그러나?”

“네?”

“온라인 게임인가 하는거 말여.”

강씨아저씨가 반으로 접힌 신문을 앞으로 내밀었다. 지하철역에서 공짜로 나누어주는 서브웨이AM이라는 신문이었다. 온라인 게임에 대한 기사가 1면으로 실려있었다.

“내 아들녀석도 어찌나 게임기를 사달라고 졸라대던지, 45만원이나 하는걸 사줬지 뭔가. 그걸 사주면 낮에는 게임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나 뭐라나? 꿈꾸면서 하는 게임이라고.”

쓴웃음이 베어나왔다. 샹그릴라 이야기이다.

“근데 그거 정말 꿈꾸면서 하는게 맞나? 뭐 그런 게임기가 다 있다나?”

“네, 맞아요. 하루에 여덟시간만 딱 할수 있어서, 다른 게임을 안한다면 공부에 지장도 크지 않을겁니다.”

“그런가? 것 참 신기하구만 그래.”

따지고보면 이 55살 먹은 아저씨도 90년대 중후반 1세대 온라인 게임 정도는 접해봤을테다. 그때 고작 서른 밖에 먹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서 벗어나 지내서인지 IT쪽에 대해서는 문맹이나 다름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참말로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벌수 있나?”

다시 신문을 내밀며 강씨 아저씨가 말한다. 타이틀보다 작은 글씨로 써있는 기사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샹그릴라, 현거래 누적액 최고치 갱신하다.

+7 카타나 150만원에 거래중 ―

역시나 현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임안의 아이템 같은걸 현실에서 돈받고 팔고 그러는거에요. 그런데 크게 기대는 마세요. 특별히 작업장 같은걸 돌리지 않고는 용돈거리도 안돼요.”

“그런가? 난 또 자식이 아얘 그길로 취직을 하지는 않을까 기대했더니만. 왜 프로게이머인가 하는것도 있지 않나? 취직이 어렵기는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데…….”

강씨아저씨가 작업장을 빙 둘러본다.

“하긴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이런 힘든일은 다들 안하려고 드니…….”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하세요. 프로게이머도 쉬운일은 아니니.”

“그건 그래. 그놈 성적가지고는 서울안 대학 보내기도 힘들거 같기는 한데…… 에휴, 지 소원대로 게임기도 사주고 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길 바라는수밖에 없지.”

저녁무렵, 한규는 일당을 받아쥐고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뭐 그리 사람이 많은지 가뜩이나 고된 일로 지친 몸이 지하철을 내릴쯤엔 파김치가 되었다.

8년전쯤 뉴타운이다 뭐다 크게 재개발 공사를 한 후 관악역 주변의 풍경도 많이 변했다. 관악역 자체도 민자역사로 제법 그럴듯하게 다시 지었다.

한규의 집은 관악역에서 걸어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소형 임대아파트였다. 월세 30만원에 열 다섯평이나 될까 말까한 곳이지만 주변환경은 좋은 편이었다.

도로를 따라 걸으며 한규는 낮에 강씨 아저씨와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샹그릴라도 무림비혈사도 손을 뗀지 한달이 넘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들어오자마자 쇳가루니 기름으로 범벅된 몸을 씻었다. 비누로 빡빡 씻어내도 인밖힌 쇳가루는 잘 지질 않는다. 한참이나 그렇게 목욕을 한 후 한규는 컴퓨터 앞에 자리를 틀었다.

아이디랑 비밀번호까지 낯설정도다. 무림비혈사는 변치 않은 모습을 한규를 맞아주었다.

단 한가지 변한게 있다면 서버가 휑하다는 것.

한규는 네 자리수 가득하던 서버의 동접자 수가 100대로 줄어있는 모습에 황당한 기분까지 들었다. 어떻게 한참 잘 나가던 게임이 한달만에 문닫을 지경까지 왔을까?

친구 목록을 살펴보니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다. 다들 최종 접속일까지 보름 이상이다.

썰렁하기 이를데 없는 서버안을 누비며 몬스터를 몇마리 사냥하고 나니 금새 흥미를 잃었다. MMORPG는 사람이 득실거려야 할 맛이 나는 법이다.

무림비혈사에서 빠져나온 한규는 바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메인 페이지로 설정해 둔 포탈의 뉴스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샹그릴라 가입자 950만! 게임계 통일하나?―

한규는 그 뉴스에 쓴웃음을 지었다. 문득 요즘들어 힘없이 웃는 일이 잦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털어 기분을 정리하며 뉴스의 본문을 클릭했다.

―세달 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중에 전격 공개된 게임 샹그릴라는 도중 수석 개발자의 사망사고와 게임회사의 인수합병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내달 1일 드디어 상용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등록된 아이디의 숫자는 954만 2320개로 뇌파 인식을 통해 중복가입을 배제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가입자 수 역시 이와 같을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신드롬이라고까지 할수 있는 샹그릴라 열풍에 대해 집중 분석해 보려 한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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