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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19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그보다 정말 무슨 꿍꿍이입니까? 도대체 뭘 만드는거에요? 한두해가 아니거든요? 그 서버안의 유령같은 존재.”

제동의 물음에 한상은 손가락을 들어 입을 막았다.

“쉿, 나중에 말해줄게.”

“나한테도 비밀입니까?”

“일단은.”

“혹시 그녀의 실종과 관계있는 일입니까?”

제동의 나즈막한 물음에 한상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어느정도는 있어. 하지만 나쁜일은 아니야. 아무튼 조금만 더 기다려줘.”

제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록 네 살 어린 상관이지만 가볍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기다리라니 기다릴 수밖에.

“자자! 오늘의 회식은 이만하죠. 다들 취했으니 일은 무리고, 일찍일찍 집에들 돌아갑시다!”

한상이 자리에 일어나 외친다. 일찍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열시 반을 훌쩍 넘겼다.

“차 있는 사람들, 운전 못하게 동료들이 좀 챙겨주시고, 내일들 다시 봅시다. 내일 출근은 특별히 12시로 합니다!”

개발자들의 입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내일이 토요일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휴일이라는건 그리 중요한게 아니었다. 반나절이나마 휴식을 취할수 있다는게, 늦잠을 잘수 있다는 것이 마냥 기쁠뿐이었다.

합정역 인근의 고깃집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사방으로 흩어진다. 일부는 6호선 지하철에, 2호선 지하철에 혹은 버스, 택시에 각기 나뉘어 몸을 실었다.

한상은 안양으로 이어진 1호선을 타기위해 우선 2호선에 올라탔다. 다섯명 가량의 직원들과 함께였다.

신도림역, 정말 인파(人波)라는 말이 과장아닌 그 복잡한 역사를 지나 수원행 열차 앞에 섰다. 집에 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긴장이 풀려 술기운이 확 올랐다. 조금 어질한 기분도 들어 플랫폼의 스크린도어에 몸을 살짝 기댔다.

“엘베로사…… 세상은 그녀를 받아들여 줄까?”

취기섞인 한마디 말을 뱉었다. 평소라면 혼자였겠지만, 갈 곳이 있다며 같이 1호선 플랫폼까지 따라온 팀원 하나가 한상의 곁에서 되묻는다.

“네? 엘베로사가 뭐에요?”

“아아, 뭘까? 나도 그건 모르겠어. 그녀는 뭐지?”

“여자에요?”

“남자인가?”

“제가 어떻게 압니까?”

“하하, 나도 몰라.”

취하긴 취했나보다. 한상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열차가 들어온다. 그 순간, 아직 열리지 말아야 할 스크린도어가 열린다.

“어? 이게…….”

한상이 당황한다. 곁에 서 있던 동료도 깜짝 놀라 한상을 부축하려했다.

굉음, 빠앙―하는 기적소리.

따르릉―따르릉―비켜나세요…….

익숙한 동요가 도플러 효과로 일그러졌다. 한상의 팔을 잡았던 동료의 손아귀에 힘이 빠진다. 그리고…….

―오늘 저녁 11시 5분경, 신도림역 수원행 열차 플랫폼에서 30세의 남자가 실족해 철로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구간은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어는데, 스크린도어의 기계고장으로 문이 열리며 그곳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추락을 했습니다. CCTV의 화면을 보시면 일행이 당황하며 그를 붙잡으려 하는 모습이 찍혀있습니다.

경찰은 신도림역 역사 스크린 도어를 관리하는 직원들과 열차의 운전자를 오늘 소환할 예정인데요, 당시 그 남자가 몹시 취해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과 스크린도어에 과도하게 몸을 기댄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다음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얼마전 ‘샹그릴라’라는 게임을 발표해 전 세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JK소프트웨어를 기억하십니까? IT업계는 물론 의료계까지 그야말로 JK소프트웨어는 뜨거운 감자였는데요. 1시간 전쯤 JK소프트웨어의 사장 김병한씨가 경영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속보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물밑에서 이뤄어와진 적대적인 M&A때문으로 밝혀져 더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김대만기자.

―한편 JK소프트웨어를 인수한 주에스 크로스사는 전형적인 다국적 자본인데요. 석유, 철 등의 자원산업은 물론 항공 우주산업에까지 손을 대고 있다고 합니다. JK소프트웨어의 김병한 사장은 지분의 51퍼센트를 주에스 크로스 사에게 빼앗긴 탓에 회사는 물론 회사가 자체보유하고 있는 특허권까지 모두 놓칠 위기에 처해져있습니다. 게다가 ‘샹그릴라’의 수석 팀장 성한상씨의 사고 소식이 더해져…….

4

얄궂은 얘기다.

한규는 의자에 앉아 병원 침상에 몸을 기댔다.

금요일날 자기가 퇴근한적이 몇이나 된다고 굳이 그날 퇴근을 한 건가? 그냥 회사 책상에나 앉아있지…….

7월말의 하늘은 맑기가 드물다.

짙은 먹색 구름을 한규는 멍한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뇌사에 빠진 형을 등지고 있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잃어버린 전부를 계속 보았다가는 미쳐버릴테니까.

병실의 문이 열린다. 인기척이 들리고 의자끄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자신과 나란히 누군가가 앉는다. 알 것 같았다. 문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규도 말하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무겁던 하늘이 결국 뇌전을 토해냈다.

“형은…….”

“응?”

“정말 요령없는 사람이었어. 3배 오른 연봉이 7천이래. 동접자 수십만의 히트게임을 개발해놓고는 1년에 3천만원도 못벌고 있던거야. 이전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게임제작사였던 회사의 직원은 초봉이 3천만원을 넘는다던데.”

“한상이 형은 꿈을 쫓던 사람이니까.”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대. 연봉 2억을 제시했다나? 무림비혈사 2를 제작하는 조건으로. 하지만 형은 샹그릴라를 만들고 싶어서 이곳에 남아있었대.”

“결국 완성했잖아. 너희 형은 천재야.”

한규가 힘없이 웃는다.

“천재야. 세계 최고의 게임디자이너야.”

“작년에 처음 너네 형 봤을 때…… 처음에는 깡마르고 비실비실해서 정말 너희 형 맞나 싶었지. 대기형을 빼고 내가 싸워서 진게 한큐 니가 처음이었으니까. 너희 형도 너 못지 않은 괴물일줄 알았거든.”

“형은 싸움이라고는…… 얼마전에는 동네 중학생 애들한테도 삥뜯기고 집에 들어왔으니까.”

“기억 나. 그때 나랑 같이 양아치 새끼들 꽤나 조지고 다녔잖아. 복수한다고.”

“히히, 그랬지…….”

힘없는 한규의 웃음이 병실에 메아리친다.

“나한테는 아버지나 마찬가지야. 형은.”

문기가 가슴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병실이라 불을 붙일수는 없지만 마른풀내 나는 필터를 빨았다.

“문기야, 고맙다.”

“뭐가?”

“병원비도 그렇고…….”

“시껍마. 한상이 형은 나한테 친형이나 마찬가지야.”

한규가 문기의 입에서 담배를 빼 자신의 입에 물었다. 필줄도 모르는 담배지만 한번 물어보고싶었다.

“비…… 쏟아지겠다.”

마른번개에 한규가 중얼거린다.

“그러겠네.”

깨어나지 않는 한상을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입원할 때 왔던 조성철은 점심시간에 다시 한번 한상을 찾아와서는 오후근무도 집어치우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성철의 여자친구이자 두 사람의 고등학교때무터 친구인 은매영도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다. 묵묵히 울기만하는 그녀를 보기 힘들어 한규는 여전히 하늘바라기를 하는 중이다.

직장 동료들은 점점히 찾아왔다. JK소프트웨어가 인수합병 당한 탓에 분위기가 한층 흉흉한 모양이다. 평소 유난히 한상을 따랐던 직원들은 친형제가 죽은것처럼 난리를 피웠다.

그래도 한규는 하늘을 보았다.

쏟아질 듯, 낮게 드리워 번개만 내리꽂는 하늘이 무슨 원수라도 되는 듯 노려본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벌써 저녁이야.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먹었다며?”

매영이 따듯한 손으로 한규의 어깨를 두들긴다. 고개젓는 한규의 팔을 잡아채 성철이가 끌고간다. 문기도 거들었다.

“놔.”

한사코 한규는 버텼다. 사나운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본다. 매영이 움찔하고, 문기마저 쫄아 팔을 놓았다. 그때 성철이 한규의 뺨을 후려친다.

“정신차려, 이 새끼야. 너까지 죽을거냐?”

“죽긴 누가 죽어? 형은 아직 안죽었어!”

맥이 뛰고 호흡기가 숨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하루종일 이러고 있어? 처먹어야 살거 아냐?”

한규가 고개를 푹 숙인다.

“가자 밥먹으러.”

성철의 한층 누그러든 말에 한규의 다리에 힘이 빠졌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문기가 한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를 당겨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게했다. 한규라면…… 보여주기 싫어할게 뻔했다.

한규가 손을 뻗어 문기의 옷을 움켜쥔다. 참으려고 이를 악물고 눈을 꾹 닫았지만 결국 포기했다. 문기가 가려주고 있으니까 아무도 보지 못하겠지…….

숨을 삼키고 삼키며 한규는 울음을 터트렸다.

샹그릴라 오픈 베타 테스팅 3일을 남겨놓은 날 저녁이 서서히 저물어간다.

한상은 벌써 나흘째 뇌사상태에 빠져있었다. 찾아오는 의사나 간호사의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병문안 오는 사람의 숫자도 그에 비례하여 줄었다.

한규는 이제 간신히 형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평온한 표정으로 잠든 형을 보자면 문득문득 얄밉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죽 사왔다.”

문기의 등장이다.

“벌써 갔다왔냐?”

며칠동안 문기는 한규의 곁을 지켜주었다. 어차피 방학이라 신경쓸일도 없었다.

“형이 특별히 인심써서 전복송이죽으로 사왔다.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문기의 말에 한규가 힘없이 웃는다. 평소라면 뭐라 맞대거리를 할텐데, 힘없는 한규의 모습에 문기는 어깨의 바람이 쓱 빠지는 기분이었다.

부시럭대며 죽그릇을 꺼내는 한규를 보며 문기가 억지로 기분전환용 말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샹그릴라, 그대로 오픈베타 시작할 모양이던데? 내일이래. 저 앞 편의점에도 광고가 장난이 아니더라.”

“그래?”

“나 계속 할거야. 너도 할거지? 약속했잖아 니가 키워주기로.”

문기의 말에 한규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요즘 너 잘 못자잖아. 차라리 샹그릴라를 하면 수면시간 만큼은 꼭 지킬수 있으니까…….”

최면으로 수면을 유도하는 게임이니 만큼 플레이를 하는 시간만큼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규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뭐 너 편할데로 해라. 그럼 내가 먼저 키워서 너 밀어주면 되겠다.”

수다쟁이가 된 듯 문기가 떠들어댄다.

“그러고보니 어제 왔던 슈퍼집 장씨아저씨, 네 우슈 스승님 맞지? 한눈에도 고수의 느낌이 팍팍 오던데?”

“그야 아마 너희 형도 장사부님이랑 싸우면 어떻게 될지 모를걸?”

처음으로 한규가 문기의 말에 대꾸를 했다.

“정말 그럴지도. 형과 마주설때랑 느낌이 비슷했으니까. 어쩌면 그 이상? 그런 사람한테 벌써 12년째 우슈를 배웠으니…….”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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