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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16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한규의 등교길은 언제나처럼 한산했다.

특히 문기와 만나는 이 골목은 앞 뒤 모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서안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이다.

“오우 한큐!”

“문기냐?”

“큭큭, 이제는 현실에서도 문블레이드라고 불리고 싶다.”

내일이 방학식이지만, 문기는 여전히 자켓차림이다. 속은 반팔의 하복으로 바꾸어 입었지만.

“변태 놈. 여캐가 뭐냐 여캐가.”

“아직도 그 소리냐? 말했잖아, 게임속 캐릭터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키우는 아이 같은거라고. 나는 딸이 좋다.”

“그나저나 용캐도 하고 있다. 금방 때려칠줄 알았는데.”

“뭔소리야? 얘기했잖아, 샹그릴라 세계에서 최고가 될거라고. 게다가 재밌던데, 게임. 왜 애들이 전부 게임에 미쳐 사는지 알거 같다.”

“하여간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문기가 한규의 어깨를 툭 친다.

“누가 들으면 너는 꽤 오래 한줄 알겠다. 이제 겨우 게임 시작한지 반년됐으면서.”

게임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어느덧 교문이 보이는 장소에까지 향했다.

“그나저나 벌써 현거래가 시작된 모양이더라. 클로즈 베타인데도…….”

한규의 말에 문기가 되묻는다.

“현거래? 그게 뭐야?”

“게임 속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고 파는거야.”

“아아! 그게 뭐?”

“아니, 지금이야 불법이 아니지만, 한때는 문제가 많이 됐었거든. 옛날얘기야.”

“그런가? 아, 그럼 우리 무기도 팔 수 있는거냐?”

“곰 허벅지뼈검이랑 늑대발톱 찡밖은 가죽장갑을 누가 돈주고 사냐?”

문기는 수긍못하겠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게 어때서? 얼마나 쓸만한데.”

“하여간 너 때문에 내 렙도 안오르잖아. 애가 현실에서는 안그런게 게임속에서는 왜그렇게 잔정이 많아? 빨리 3번가 상점거리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야, 푸줏간 주인집 아저씨가 불쌍하지도 않아? 신선한 고기가 없어서 장사가 안된다잖아. 꽃집 엘리제도 우리 없으면 팔 꽃이 없고. 어떻게 아무도 안도와주냐? 불쌍하지도 않나?”

문기의 말에 한큐가 한숨을 내쉬며 답한다.

“그야 서버에서 우리 레벨이 제일 낮으니까. 다들 성밖 먼곳에 캠프를 차리고 사냥하고 있어. 요새 성 안에 플레이어 캐릭터 돌아다니는거 봤냐? 생산직 캐릭터들 빼고.”

“그런가? 아무튼, 그래도 계속 도와줘야지.”

“알았다. 어차피 크로즈 베타니까.”

한규는 끝없는 논쟁을 일단 정리했다. 사실 혜나와 만나는 일만 아니면 한규도 그리 급하게 레벨을 올릴 마음은 없었다. 샹그릴라의 세계는 단순히 전투를 하거나 좀 더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그런 것 이외의 즐거움이 무궁무진했다.

“어이, 한큐.”

그때, 누군가 한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등교길에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를 정도로 간이 큰 학생은 학교에는 없었다. 상대는 학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둘 모두 얼굴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 성철이 형.”

바로 안양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으로 있는 조성철이었다. 한규의 형, 한상이의 친구기도 한 그가 등교길에서 한규를 기다리고 있다.

한규는 눈을 돌려 문기를 보았다. 너 또 누구 줘팼냐? 하는 눈빛이었다.

“아냐. 그리고 나는 나이가 나이라 폭력팀으로 불려가.”

그러고보니 문기는 이제 성인이었다. 한규는 이렇게 생각하며 성철 곁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에요?”

“아, 그게…… 문기도 오랜만이네.”

“안녕하세요?”

“그래, 그나저나 너희 둘, 유이라고 아냐?”

성철의 물음에 한규와 문기는 고개를 저었다.

“유이요?”

“가수 유이?”

“아니. 근처 XX여중에 다니고 있는데, 단발머리에 귀엽게 생긴 애야. 성이 유씨고, 이름이 외자로 이. 중국계인데…….”

한규와 문기는 그의 설명에 동시에 한 여자애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 애 이름에서 문기와 한규의 이름이 나올 이유는 전혀 없었다. 우연히 두 번 만난게 전부였으니까.

“모르겠는데요?”

한규의 물음에 성철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둘다 지금 따라와라. 어차피 내일 방학식이니 오늘 굳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지?”

한규가 대뜸 대거리한다.

“와, 저 경찰 하는 소리좀 봐. 학생이 땡땡이를 칠 때 계도해야 할 여성청소년 계장이라는 사람이.”

“중요한 일이라 그래. 아무튼 점심 쏠게. 문기도 같이좀 와줘.”

“알았어요. 뭐 가는거야 상관없는데…… 근데 우리 둘 다 요즘엔 얌전했는데요? 게임에 빠져지내느라.”

문기의 변명조 말에 성철이 고개를 젓는다.

“아, 나쁜거 아냐. 그냥 좀 확인할게 있어서 그런거야.”

성철이 몰고 온 SUV를 타고 한규와 문기는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앞의 전경이 경례를 올리는 모습을 뒤로하고, 주차장 한귀퉁이에 적당히 차를 댄 후, 성철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폭력팀 경찰들이 미소로 한규를 맞이했다.

“어, 장풍한규네. 석사장댁 문기씨도 왔구만.”

“둘이 아침부터 또 무슨 일을 저지른거야?”

한규가 얼굴이 벌개져 대꾸했다.

“아니거든요? 게다가 일은 뭔 일이요? 얌전히 지내는 사람에게…….”

“크큭, 그래도 장풍은 자제해 줘. 아직 우리나라는 사이킥 수사대가 없으니까. 사람을 때리지도 않고 죽이면 체포를 할 수가 없거든.”

“아 놔, 그만하라니까요!”

놀리는 말에는 문기까지 쿡쿡거렸다. 장풍사건이야 문기도 익히 알고 있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성철을 따라 여성청소년계로 들어간 한규와 문기는 익숙한 얼굴에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정말 그 여자아이였다.

“정말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성철이가 그 여자 앞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을 이었다.

“용산쪽에서 절도사건을 일으켰는데 주소지가 이쪽이라 여기로 이송하게 됐어. 아직 열 여섯밖에 안됐고, 훔친 물건도 별 것 아니고 해서 정상참작하려고 하는데, 이거 보호자가 있어야 말이지. 저 애 소지품에 흥신소 명함이 나와 그쪽 애들한테 연락을 했는데, 문기 도련님이 보호하는 애라서 건드릴수 없다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하더라고. 그래서 물어봤더니 너희 둘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

소녀, 유이는 문기와 한규에게는 눈하나 주지 않고 성철에게 말했다.

“얼굴이랑 이름을 알고 있다고 했지 언제 아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아무튼 빨리 내보내 줘요. 겨우 랜 선 하나 훔쳤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사람이나…….”

“임마, 돌멩이 하나라도 절도는 절도야.”

“잠깐 쓰고 돌려주려고 했어요.”

“주인에게 말도 않고 잠깐쓰는게 어딨어? 게다가, 너 그것 말고도 문제 많아.”

성철은 이렇게 말하며 한규쪽을 바라보았다.

“글쎄 가지고 있던 노트북 안에 깔려있는 해킹프로그램이 한둘이 아냐. 한규 너도 전에 만났던 호열이 있지? 최호열. 그 녀석에게 조사해보라고 노트북을 들려 보냈다.”

“이건 명백히 사생활 침해에요!”

단호히 말하는 그녀에게 성철이 한마디 한다.

“해킹 로그 기록에 범죄흔적이 남아있으면 그냥은 안끝날줄 알아.”

한규가 성철에게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부른거에요?”

“아? 아…… 혹시 아는 사이라고 하니, 어떤애인지 좀 궁금해서. 우리 서에서도 이 아이가 사용하는 해킹 프로그램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아는 사람이 호열이 하나 정도야. 상당히 전문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얘긴데…… 뭐 나야 워낙 컴퓨터랑은 안친하니 그렇다 쳐도 말이지.”

한규가 고개를 젓는다.

“저도 문기도 얘 잘 몰라요. 그냥 전에 건달같은 애들한테 끌려갈뻔 한 거 구해준 것 뿐이니. 그리고 형 게임 기자간담회에 참석했을때도 얼굴한번 본게 다고요.”

“아, 그러냐?”

조금 실망했다는듯한 성철의 말에 문기가 말을 보탰다.

“그러고보니 아버지가 빚 때문에 쫓겨다닌다고 했던거 같은데요.”

“아? 유일평씨 말이냐? 그런 모양이더라. 중국인이던데, 취직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망했다나? 그때 좀 빚을 진 모양이야.”

“경찰이 피의자 사생활을 제 3자에게 함부로 발설하면 안되는거 아녜요?”

유이가 성철에게 톡 쏘는 말투로 말했다.

“제3자가 아니라 주요참고인이야.”

성철은 그녀의 말에 이렇게 답하고는 한규를 보았다.

“아무튼, 해킹 프로그램쪽에 문제가 없으면 일단 풀어줄 생각인데, 너희들이 얘좀 학교에 데려다 줘라. 요즘 아주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에? 왜요?”

“점심 사준다니까.”

“하여간…….”

이어 성철이 유이에게 말했다.

“얘들이랑 친구로 보고하고 풀어줄 거니까 너도 그렇게 알고있어. 원래는 보호자를 불러서 돌려보내야 하는데 너는 가족이라고는 아버지 한명이고 그 사람이 올 수 없는 상태니까. 다행히 얘들이랑 아는 사이래고, 한규나 문기 둘다 우리 경찰서에서는 인상 나쁘지 않은 애들이야.”

“깡패 아들에 그 친구가 무슨…….”

발끈하는 한규보다 한발 앞서 성철이 말한다.

“그런 애들 아니야.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별로 모난짓 않고 잘 지내고 있어.”

문이 열리며 호열이 등장한다. 손에는 전원이 꺼진 노트북이 들려있었다.

“계장님. 아, 한규 왔구나.”

“안녕하세요, 호열이 형.”

“그쪽은…… 그 문기라는 사람이냐?”

문기가 호열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최호열이라고 합니다.”

“석문기입니다.”

호열은 곧바로 한규앞에 섰다. 그리고는 엄지를 추켜세우며 소리를 친다.

“너희 형은 진짜 천재다!”

“네, 네?”

어안이 벙벙한 한규에게 호열이 따따다 말을 쏘아댔다.

“샹그릴라는 진짜 게임역사상 획을 글 게임이야. 사촌에 5촌 조카까지 동원해서 클로즈 베타를 넣었어. 지금 하고 있지. 크, 정말 왜 8시간 제한을 걸어둔거야? 그게 아니라면 지금도 샹그릴라에 살고 있을텐데.”

성철이 호열의 뒤통수에 한마디 툭 던진다.

“너같은 놈들 때문에 시간제한을 걸어둔거야. 아무튼 그노무 샹그릴라 때문에 우리랑 사이버 수사쪽 직원들이 잠을 못자 잠을. 빨리 와서 보고나 해.”

“아, 예 계장님. 이거…… 그런데, 일단 하드에 남아있는 로그기록에서는 범죄의 흔적은 없어요. 그렇달까, 제가 손댈만한 수준이 아닌데요, 이거. 정확히는 세계에서 이 프로그램 능숙히 다룰만한 사람이 몇 안될거에요. 정말 얘가 쓰던 프로그램이에요?”

성철은 호열의 말에 눈쌀을 찌푸렸다. 저 컴퓨터광이 저런식으로 말할 정도라니.

이어 성철이 유이를 본다. 동그란 안경을 낀 귀여운 여자아이가 세계적인 해커? 무슨 텔레비젼 드라마도 아니고 말아 안되는 얘기였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 오리지날인데요? 누가 프로그래밍한건지도 모르겠어요.”

“아빠꺼에요.”

유이가 호열의 말에 답했다. 성철이 반문한다.

“응? 유일평씨? 아, 하긴 무슨 네트워크 회사라고 했지, 근무하던데가.”

그제야 납득간다는 듯 성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그 말을 하지 그랬냐? 이 노트북 네 아버지가 쓰던거구나. 하긴 요즘여자애들이 쓰는건 이거보다 훨씬 예쁘게 생겼지. 직업상 쓰던 프로그램인가보구나.”

그의 말대로 핸드백에 쏙 들어가는 넷북이 대세인 지금, 유이의 노트북은 15인치의 대형이었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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