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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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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비슷한 숲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숲에 가려있긴 해도 아직 성벽이 눈에 보였다. 이 정도 거리라면 그리 무서운 괴물들은 나오지 않을 듯 했다.

그래도 게임 초보인 문기에게 말을 해 둘 필요가 있다.

“숲 안으로 너무 들어가지 않는게 좋아. 보통 멀리 갈수록 강한 몬스터가 나오니까. 우리 레벨에는 약한 괴물이라도 걸리면 죽기 딱이다.”

문득 죽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죽을 경우 일정량의 패널티가 존재했다. 현실감을 장기로 내세운 샹그릴라에서는 어떨까? 혹시 많이 아프거나 한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조금 들었다.

“오케이. 하지만 뭐, 뭐가 나오든 때려잡으면 될거 아냐. 너랑 내가 같이 있는데 누구한테 맞기라도 하겠냐?”

“여긴 게임이야. 우린 1레벨 캐릭터일 뿐이고.”

막상 말을 하면서도 전투가 어떤 느낌일지 전혀 감을 잡을수 없었다. 주먹을 꾹 쥐어보았다. 현실과 느낌이 거의 비슷해 여기서 싸운다 해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거 어때?”

내 상념을 깨며 문블레이드가 한 무리의 꽃에 손짓을 한다.

“어 괜찮은데?”

문블레이드가 발견한 것은 장미같기도 하고 튤립같기도 한 한무더기의 꽃이었다. 아까 내가 꺾으려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은 느낌이었다.

“이쯤 되야 꽃이라 할수 있지.”

문블레이드가 자랑스럽게 팔짱을 낀다. 강조된 그녀의 가슴라인에 또 한번 짜증이 치민다.

나는 대답없이 꽃대를 하나 잘랐다. 가방에서 꺼낸 꽃 보관통에 조심스래 꽃을 밀어넣었다. 그러자 통 옆면에 자그맣게 램프가 하나 켜졌다.

자세히 보니 4개의 불꺼진 램프가 더 눈에 띄었다. 꽃 다섯 송이를 담을수 있는 통인 듯 했다.

문블레이드도 적당한 꽃무더미를 찾아 채집을 시작했다. 어차피 한 사람당 다섯송이의 꽃만 모으면 됐기에 우리 두 사람은 금새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다시 가위와 통을 가방에 넣었다. 바로 그때였다.

아우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다.

성 밖 병사 놈들, 저주라도 내린거냐?

회색과 갈색이 섞인 털을 가진 늑대가 정면에 서서 우리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다. 크기는 시베리안허스키만 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 아래로 날카로운 이빨이 그르렁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문블레이드는 겁을 먹은 눈치가 아니다. 물론 나도였다. 늑대라고 해봤자 조금 큰 개일 뿐이다. 턱주둥이를 발로 한 대 걷어차면 깨갱하고 물러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블레이드가 앞으로 나서 늑대의 턱을 올려찼다. 현실이었다면 늑대는 단번에 깨갱하며 꼬리를 말고 도망칠 것이다.

“어라?”

문블레이드가 황당하다는듯한 소리를 낸다. 늑대는 번개같은 몸놀림으로 문블레이드의 발길질을 피했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뒷발로 땅을 차 반격을 하고 나섰다.

옆에 있던 내가 다시 늑대의 옆구리에 발길질을 넣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느낌이 발에 전해져왔다. 하지만 늑대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듯 뒤로 조금 물러서기만 할 뿐이었다.

“이거…… 좀 위험할거 같은데?”

내 말에 문블레이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 게임세계라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냐?”

“몰라. 일단 약점부터 찾자. 개새끼의 약점이 어디냐?”

“길바닥의 개들이야 그냥 한 대 걷어차면 쫄아서 도망치기 바쁜데 약점이 어딘지 내가 어떻게 아냐?”

“것두 그렇네.”

이렇게 답하며 나는 늑대의 눈을 쳐다보았다. 은갈색의 눈동자의 늑대는 내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아오, 저게 눈도 안피하네.”

다짜고짜 앞으로 달려 늑대의 아구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재빨리 피하는 녀석의 목에 팔을 걸고 목을 졸랐다. 살아있는 짐승인 이상 울대는 약하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늑대는 네 다리로 버티고 서서 내 팔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을 쳤다.

“문기야! 아니 문블레이드! 거기 짱돌 줏어서 이새끼 머리통 내려 쳐!”

“어? 오케이!”

내 말에 문블레이드는 근처에 떨어져있던 주먹만한 돌을 주워올렸다. 그 순간 늑대가 크게 몸부림치며 내 옆구리를 발톱으로 긁었다. 둔탁한, 흡사 누가 꼬집는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문블레이드가 돌맹이로 늑대의 머리를 내려쳤다. 현실이라면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드러났을테지만, 12세 이상 플레이라는 게임등급에 걸맞게 그런 연출은 없었다. 다만 늑대가 고통스럽게 깨갱거리고 피가 주르륵 흘러나올 뿐이었다.

나는 조르고 있던 팔에 힘을 더 주었다. 늑대가 계속 앞발로 내 몸을 할퀴어 댄다. 문블레이드의 짱돌질은 예술이다.

퍽퍽―

몇대나 내려치니 점차 늑대의 반항이 약해져갔다. 몸을 부르르 떨더니 더 이상 내 몸을 할퀴지도 않았다.

축 늘어진 늑대의 머리통에 아직도 문블레이드는 돌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 그만해라. 이새끼 죽었나보다.”

내 말에 그제야 문블레이드가 손을 멈춘다.

“아, 이 개새끼. 더럽게 즐기네.”

늑대의 목을 졸랐던 팔을 풀며 투덜거렸다. 그 말에 문기가 히히 웃는다.

늑대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나는 먼저 따끔거리는 옆구리를 살펴보았다. 온통 피갑칠이다.

“와 이게 뭐냐.”

나는 먼저 능력치 창을 열어보았다. 체력치가 절반이나 깎여있었다. 흐르는 피에 맞추어 아직도 천천히 줄어드는 중이다.

“출혈상탠가보다. 이거 어쩌냐 붕대도 없는데…….”

내 말에 문블레이드가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와, 진짜 아프겠다. 괜찮냐? 안뒤진게 이상하다.”

“어? 그냥 누가 살짝살짝 꼬집는거 같아. 그나저나 나 피나와. 빨리 지혈좀 해봐.”

“응? 어떻게?”

내 눈에 문블레이드가 입고있는 치렁한 치마가 들어왔다.

“치맛단이라고 찢어봐.”

내 말에 문블레이드는 과장섞어 몸을 비비꼬았다.

“어머, 왜이러세요. 엉큼하게.”

뭔가 머리속에서 불끈한다. 엉큼이 아니라 울컥이다.

“나 죽고나서 관끌고 성에 들어가고 싶냐?”

“낄낄, 기다려봐.”

문블레이드가 치마 아랫단을 북 찢어 붕대를 만들었다. 내 옆구리에 칭칭 동여매니 정말 거짓말같이 출혈이 줄어들었다. 5초에 1씩 떨어지던 체력도 점차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휴, 살았다. 이게 뭔꼴이냐? 초보자용 옷은 다 찢어먹고…….”

“크큭, 그러게 무식하게 늑대의 목을 끌어안는 놈이 어디있냐?”

“누구덕분에 이 늑대를 잡았는데 그래?”

말을 하며 나는 다시 능력치 창을 살펴보았다. 경험치는 눈꼽만치 올라있었다. 늑대의 레벨이 생각보다 낮았던건지, 아니면 오히려 터무니 없이 높았는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외에도 근력, 민첩도, 정확도 같은 능력치 아래의 경험치가 찔끔 올랐다.

“잡아도 별거 없구만. 쩝.”

말을 하며 나는 늑대의 주검 주위를 살폈다. 무림비혈사처럼 보상품이 곁에 떨어져있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특별히 뭐가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거 어떻게 하지? 마을로 끌고 갈까?”

나의 말에 문블레이드가 고개를 갸웃한다.

“뭐하러? 끓여먹게?”

“미친놈. 그게 아니라 어디다 팔아치워야 할거 아니야. 가죽도 달려있고 하니까 돈좀 받을수 있지 않을까?”

“어? 이런걸 팔수도 있냐?”

“그야 당연하지. 아무튼 이 형님은 다쳐서 아프니까 니가 좀 끌고가라.”

내 말을 듣자마자 문블레이드가 몸을 비비꼰다.

“너, 연약한 여자에게 이따위 소리하면 죽는다.”

문블레이드가 혀를 차며 늑대의 꼬리를 움켜쥐었다.

“눈치는 빨라가지고.”

“캭!”

문블레이드는 낑낑대며 늑대를 끌기 시작했다. 도중 힘들어 죽겠다는 말에 나도 같이 꼬리를 잡았고, 우리는 오래잖아 다시 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늑대꼬리를 붙잡고 질질 끌어대는 우리를 가장 먼저 막아선 것은 동문 밖에 있던 병사들이었다.

“잠깐 멈춰라!”

“뭐야?”

가뜩이나 옆구리에 구멍나 아파 죽겠는데 막아서는 병사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너 말고 이쪽의 여자.”

병사 둘이 문블레이드를 에워싼다.

“나? 왜?”

병사중 하나가 무릎을 꿇더니 품에서 자를 꺼낸다. 그리고는 문블레이드의 무릎 위쪽에 자의 한쪽 끝을 가져갔다.

그 사이 다른 병사가 문블레이드에게 말했다.

“고의로 치마를 손상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지나치게 짧은 치마는 국법에 위반된다.”

“29센티미터. 아슬아슬하게 통과다. 앞으로 주의하도록.”

황당한 상황에 문블레이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이것들이 사람 다친거는 눈에 안들어오냐? 붕대만들라고 찢어서 썼다 왜?”

엔피씨를 상대로 화를내는게 멍청하게 느껴졌지만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다.

“불가피한 상황일지라도 법은 법이다.”

“그럼 방어구 상점에서 파는 비키니 갑옷은 뭐냐고?”

“그건 바지로 등록되어 있다.”

“이…….”

터져나오려는 쌍욕을 참았다. 뒷통수가 띵하다. 그때, 이 병사들의 상관인듯한 검을 찬 남자가 다가왔다.

“경비병들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감옥에 가게 된다. 잘 모르고 한 일이니 용서해 주겠다. 어서 성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라.”

참자, 참아야지 어쩌겠냐?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간신히 추스리며 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건 현실적인건지 아닌건지…… 하긴 우리나라도 치마길이를 법으로 정해놓은 괴상한 시대가 있었다고 하니 꼭 비현실적인건 아니지만.

그때 눈앞에 한줄의 문구가 떠오른다.

―샹그릴라는 12세 이상…….

그거 때문이냐?

형한테 꼭 따져야겠다, 하는 생각을 속으로 삭이며 문블레이드와 나는 롬로스 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3

늑대의 주검을 끌고 가는 탓에 도중 성안 사람들의 시선을 유난히도 느껴야했다. 깔보는 듯한 눈으로 귀엣말을 주고받는 귀족들의 모습에 다시한번 발끈했지만 묵묵히 퀘스트 완료 장소인 3번가 상점거리로 걸어갔다.

늑대를 끄는 한쌍의 남녀는 상점가에서도 대인기(!)였다. 얼굴이 화끈거릴정도로 쪽팔렸지만, 늑대를 길에 버릴수도 없는 일이었다. 너무 커서 허리의 모험가용 가방에 넣을수도 없으니 이렇게 끌고가는 수밖에 없다.

엘리제의 가계에 도착하니 그녀가 반가운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

“정말 꽃을 구해 오셨나 보군요!”

그녀의 환호성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꽃을 담은 통을 꺼내 돌려주었다.

엘리제는 나와 문블레이드에게서 받은 꽃통을 열어 바구니에 뒤집었다. 모두 열 송이의 탐스러운 꽃이 바구니에 겹쳐 쌓인다.

“이건 야생튤립이잖아요! 숲의 꽤 깊은곳에 가야 있는 꽃인데……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어여쁜 꽃을 가져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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