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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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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문블레이드가 손가락마디만한 조약돌을 주워 노인에게 건냈다. 노인은 돌멩이를 두 손 사이에 넣더니 합합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번쩍, 빛이 나며 돌멩이는 투명한 수정덩이 같은 것으로 변했다.

“허허, 이걸 받게나.”

반짝거리는 돌멩이를 내게 넘겼고, 나는 순순히 그의 손에서 따듯한 돌을 받아쥐었다.

돌멩이는 이미 평범한 조약돌이 아니었다. 은근한 힘이 돌멩이에서 느껴졌다. 흡사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손을 잡아끄는 것 처럼, 돌멩이를 쥔 손이 일정한 방향으로 힘을 받는다.

“길찾기의 마법이네. 허허, 엘리제를 도와준다니 내 특별히 힘을 쓴 것일세.”

뭐야 이 노인네는? 나의 이러한 눈빛에 변명이라도 하듯 노인이 말한다.

“이 세계에서 나만큼 나이를 먹으면 한가지 재주정도는 몸에 익히게 된다네. 허허허.”

어차피 게임속 세상이다. 아마도 길을 물으면 이런식으로 가르쳐주는 모양이었다. 복잡한 생각을 지우며 나는 노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문블레이드도 노인장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다.

길찾기 마법을 따라 도착한 곳은 분수광장에서 5분거리쯤 되는 곳이었다. 게임상의 시간으로 실제 얼마가 걸렸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정보 창을 열어보니 이제 겨우 게임을 접속한지 3분이 흘렀을 뿐이다. 체감으로는 한시간 가까이 흐른 듯 한데…… 현실과는 시간감각 자체가 틀린 모양이었다.

“저긴가보다.”

문기, 아니 문블레이드가 손가락질을 한다. 마차가 다닐만큼 큰 길을 사이에 두고 5층짜리의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입구에는 단정한 제복차림의 남자들이 주변의 마차들을 호객하고 있었다.

건물안에 마차를 댈 수 있는 곳까지 있는지 안팎으로 마차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그 건물의 이름은 로드밀런 마트였다.

“뭐야 완전히 마트잖아.”

나의 투덜거리는 말에 문블레이드가 웃는다.

“하하, 이거 진짜 웃낀다. 몇 년전부터 계속 신문에 나오는 얘기잖아. 대형마트들 때문에 소형 점포들이 문닫고 있다고.”

나는 문블레이드의 말을 들으며 대형마트 건너편을 보았다. 안으로 이어진 골목이 보이고, 그 앞에 3번가 시장 이라는 현판이 허름하게 걸려있었다.

“저쪽인가보네. 아무튼 먼저 퀘스트부터 받으러 가자.”

문블레이드를 끌고 골목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손안의 끌림과도 같은 감각이 사라졌다. 손바닥을 펴 보니 길안내 마법은 평범한 돌멩이로 변해있었다.

“진짜 신기하지 않냐?”

문블레이드도 그 점을 눈치챘는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시장골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장거리 답게 그 안에는 정말 많은 상점이 있었다. 그 중, 무기나 방어구 같은 모험가들을 위한 장비를 파는곳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밖에 진열된 물품들을 언뜻 살펴보니 목검에 12롬이라는 가격표가 적혀있었다. 그 옆에 있는 번쩍거리는 도끼에는 1로스 23롬 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로스와 롬이 이곳의 화폐단위인 모양이었다.

“100롬이 1로스인모양이네. 땡전한푼 없으니 저게 얼마나 큰 돈인지 알수가 없네.”

내 말에 문블레이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꽃집의 일을 해 보면 알게 되겠지. 근데 이만큼 현실적인걸 보면 가격도 대충 정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현실에서 목도가 만원 좀 넘으니까, 1롬이 1000원 아니야?”

그럴듯하다. 그럼 요즘 고등학생 알바 시급이 대강 5천원쯤 하니까, 2시간 반 정도 일하면 목검 정도는 살만 하겠다.

시장은 전반적으로 축 처진 분위기였다. 내가 무기상 앞에서 기웃거리는데도 주인은 콧털을 뽑고 있을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노인이 말한데로 저 앞에 있는 대형 마트 때문에 상인들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모양이었다.

엘리제의 꽃집은 상점가에서도 상당히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십자로 교차된 길을 한번 지나자 저 멀리 엘리제 꽃집 이라는 현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기야, 저긴가보다.”

“문블레이드라니까.”

“알았어, 문블레이드.”

꽃집 앞은 바구니 같은 것이 여럿 놓여있었다. 하지만 바구니는 대부분 텅 비어있었고, 몇송이 안되는 장미와 이름모를 꽃들, 화분 몇 개가 상점을 장식한 전부였다. 그나마 키크고 잎무성한 관상수 두그루가 없었더라면 꽃집인지 아닌지 구분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어서오세요, 손님. 꽃을 사러 오셨나요?”

빨간 머리를 좌우로 딴 주근깨 투성이의 소녀가 우리를 맞이했다. 노인의 말을 듣고 어릴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리보다 나이가 많을 듯 보였다. 열아홉이나 스물쯤?

“아니 꽃을 사러 온건 아니고…….”

“한번 구경해 보세요. 장미와 프레지아 두종류 뿐이지만 향기가 매우 좋답니다.”

아마도 엘리제일 그녀는 내 말을 끊으며 호객에 열심히다.

“혹시 집들이 선물을 찾으시나요? 그럼 이쪽의 허브 화분은 어떠신가요?”

“잠깐만요.”

끝이 없을 듯 하여 손을 내밀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네?”

“분수광장의 알림판에 사람을 구한다고 써 놓으셨죠?”

“아? 아, 네.”

“그것 때문에 왔어요.”

나의 말에 엘리제는 방긋 미소를 띄웠다.

“정말이신가요?!”

고개를 끄덕끄덕. 엘리제는 내 손을 덥썩 움켜잡았다.

“정말 감사드려요.”

“자, 잠깐…… 우선 보상품을 보고…….”

그녀의 설레발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급격히 엘리제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역시 다른 모험가들과 같으시군요. 제 얘기를 듣는다면 아마 당신도 거절할거에요.”

아마 우리들 말고도 이 퀘스트를 하러 온 사람들이 또 있는 모양이었다.

“보시다시피 저희 상점가는 손님이 거의 없어요. 저도 겨우겨우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랍니다. 돈이라거나, 드릴 물건이 아무것도 없어요.”

뭐야, 그럼 공짜로 해달라고? 돈한푼 없어 노숙자처럼 신전에서 자야 할 판에…….

나의 그런 생각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엘리제는 한층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말씀인데…….”

기죽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한다.

“이곳에서 팔만한 꽃을 구해오신다면 제가 꽃잎 쿠키를 만들어 드릴께요. 제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제법 맛이 있답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고개를 돌려 문블레이드를 보았다.

“할래 말래?”

내 물음에 문블레이드가 즉답한다.

“하지 뭐. 불쌍하잖아. 게다가 좀있으면 배고플거 같아. 벌써 뱃속이 텅 빈 느낌인데?”

문블레이드의 말을 듣고나니 나도 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자세히 살펴보니 공복도라는 칸이 존재했다. 반으로 줄어있다. 저게 0까지 떨어지면 뱃속이 꾸르륵 거리기라도 할 듯 했다.

무림비혈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능력치지만, 종종 배고픔을 게임속에 구현한 게임들이 있었다. 배가 고프면 체력이 떨어진다거나 다른 능력치가 줄어드는 패널티를 받게 된다.

오늘은 첫날 플레이다. 어차피 게임의 분위기를 읽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제대로된 보상품을 주는 퀘스트야 나중에 해도 될 일이니 일단 한번 해 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했다.

“알았어요. 한번 해보죠 뭐.”

나의 대답에 엘리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의 기뻐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에 미소가 걸렸다.

엘리제는 부산스럽게 몇가지 물건을 챙겨 나에게 주었다. 두 손으로 간신히 쥘 만한 크기의 통과 꽃대를 자를 전지가위 따위가 그것이었다. 문블레이드도 그녀에게서 똑같은 물품을 건내받았다.

“두 분은 모험가이시니 모험가의 주머니를 가지고 계실거에요. 들고 다니기 불편하다면 그곳에 넣으셔도 돼요.”

그녀가 말한 모험가의 주머니는 지금 내 허리에 감겨있는 작은 가방을 말하는 듯 했다. 가방의 뚜껑을 열어보니 시커먼 암흑이 눈에 보였다. 슬쩍 전지가위를 가방의 입구에 놓으니 블랙홀처럼 가위를 흡수했다.

“이런식인가?”

나는 이어 입구보다 큰 꽃을 담을 통을 가방에 밀어넣었다. 그것 역시 깨끗하게 가방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내가 하는 태를 보던 문블레이드가 똑같이 따라했다. 그녀가 호들갑을 떤다.

“와, 와! 완전히 신기하네. 이 가방은 뭐냐? 현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야 있음 편하지.”

나는 말을 하며 장비품 창을 열었다. 소지품 텝에 눈을 가져가니 가방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세로 20칸정도의 가방안에 꽃을 담을 통이 네칸, 가위가 2칸, 모종삽이 2칸씩을 각기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인벤토리 칸이 작네. 나중에 돈으로 확장하는 식인가?”

또 다시 뭔소리를 하냐는듯한 문블레이드의 눈빛에 나는 설명을 붙였다.

“인벤토리 칸은 소지할수 있는 소지품의 양 같은거야.”

“아아, 이거 말인가?”

문블레이드도 소지품을 살펴보는 모양이었다.

“아마 나중에 돈을 들여서 더 크게 만들 수 있을거야. 그럼 일단 꽃을 캐러 가자.”

엘리제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꽃은 어디서 따와야 하는거에요?”

“아아, 상점가의 입구가 있는 큰 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쭉 나가면 성의 동문이 있어요. 그 밖 아무곳에서나 꽃을 따오시면 되요. 너무 작은 꽃은 팔리지 않으니까 적당히 알이 굵은 것으로 따와주세요. 줄기는 아까 드린 꽃을 담을 통의 길이만큼 잘라 주시면 돼요.”

그녀가 말을 마치는 순간 내 머리속에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퀘스트 수락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메뉴창에서 퀘스트 목록이라는 텝을 열어보니 ‘꽃을 구해 주세요’라는 이름이 있었다.

퀘스트 이름으로 시선을 주자 퀘스트의 내용이 쭉 펼쳐졌다. 거기에는 엘리제와 했던 이야기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럼 갔다올게요.”

엘리제에게 이렇게 말한 후 문블레이드를 끌고 다시 시장통 밖으로 나갔다.

2

“경치 조오타!”

멀리 숲이 빙 둘러쳐있는 롬로스의 동문 밖은 문블레이드의 감상 그대로였다. 숲 뒤편의 나지막한 둔덕은 연녹색으로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은 짙은 풀냄새로 싱그러웠다.

따끈한 햇살에 나른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어디 주저앉아 낮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든다. 문득 내 몸이 지금 자고있을 거라는걸 떠올렸고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성문 앞 해자(垓字)위로 놓여진 다리를 따라 걸으니 성 동문의 치안대 초소가 눈에 들어왔다. 단단한 가죽갑옷을 걸친 병사들이 곁눈질로 우리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상관인 듯 보이는 검을 찬 남자가 우리를 가로 막는다.

“보아하니 초보 모험가인 듯 한데, 성 밖으로 나가려 하는 것이냐?”

보자마자 반말이냐? 나이는 서른살 훌쩍 넘어 보이지만…… 엔피씨 주제에.

“그리 멀리 나가지는 말거라. 요즘 이 근방에 식인 늑대들이 출몰하고 있다.”

그는 이 한마디를 하고는 할 이야기를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려 성 밖을 바라보았다.

나도 문블레이드도 병사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성 밖의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1레벨이라지만 그래도 둘인데 늑대 한 마리를 무서워 할 이유는 없을 듯 했다.

얼마간 숲 안으로 들어가니 드문 드문 풀들이 길게 자란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꽃의 군락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모험자용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전지가위를 머리속으로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손에 쥐어졌다.

가까운 곳에 있는 망울진 꽃의 줄기를 손으로 잡았다. 그림으로 그린듯한, 꽃잎이 펼쳐진 특징없는 꽃이었다.

“그 꽃을 가져가게?”

문블레이드가 묻는다.

“어, 왜?”

“별로 안이쁘잖아. 이왕 돕기로 한거 이쁜걸로 가져가자.”

“어차피 이 근방 꽃들 다 이렇잖아.”

“다른데 가 보면 되지.”

문블레이드는 이렇게 말하며 당당하게 숲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꺾으려던 꽃에서 손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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