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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11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그러는 사이 요정은 나를 롬로스 성의 중앙 분수대 앞으로 데려갔다. 날아오는 동안 무게가 느껴지지 않던 내 몸이 점차 무거워지며 분수대 광장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제 할 일은 이것으로 끝이네요. 페이가 일을 잘 했노라고, 엘모아님께 말씀드려 주세요.”

페이라는 요정은 내 몸을 두어번 멤돌더니 하늘 저편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분수대 광장에 발디딘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상이 형이 말한데로, 예전에 접속했던 샹그릴라와는 완전히 틀렸다. 겨우 캐릭터를 만들어 첫 마을에 도착했을 뿐인데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거리의 풍경에서, 시장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에 이르기까지 게임에 접속한게 아니라 정말 다른 세계에 온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문기를 찾는것까지 뒤로한채 나는 우선 내 상태를 살펴보았다. 마을의 여느 사람들이 입고 있는 거친 질감의 바지와 웃옷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장비 창을 열어보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흡사 3차원 TV와 같은 느낌의 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먼저 눈을 웃옷으로 향했다. 몇줄의 글자가 떠오른다.

―평민의 셔츠 : 방어력은 거의 없다. 몸을 가리는 용도로 쓰일 뿐이다.

!경고!이것을 벗고 돌아다닐 경우 치안대의 제지를 받을 수 있다.

이어서 바지를 보니 셔츠와 거의 비슷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평민의 바지 : 방어력은 바라지 말라. 평민의 셔츠와 같다.

!경고!이것을 벗고 돌아다닐 경우 치안대의 제지를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각팬티와 비슷한 모습의 속옷을 보았다.

―평민의 속옷 : 벗을수 없으니 기대하지 마시오.

아이템의 설명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올랐다.

―이 게임은 12세 이상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하긴, 벗을수 있으면 18금 게임이 되었겠지?

그것 외에는 돈도 하다못해 기본적으로 제공될법 한 회복약 따위도 전혀 없었다. 무기는 바랄바도 아니다.

장비들을 살피고 나니 이번에는 능력치들이 궁금했다. 눈앞에 스테이터스 창을 띄웠다.

한큐 레벨 1

직업 없음, 직업레벨 0

작위 평민, 명성치 0

여기까지만 봐서도 한심할 지경이다. 문득 무림비혈사가 그리웠다. 서버에서 알아주는 캐릭터 전부한큐의 스테이터스가 특히.

명성치로 눈을 가져갔다. 보조설명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왕국에 공헌을 하거나, 엔피씨가 부탁하는 퀘스트를 완료할때마다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범죄를 저지르면 깎이게 되며 명성치가 0이하가 될 때에는 범죄자로서 수배될수 있다.

그밖에도 스테이터스 창에는 근력, 정밀함, 민첩성, 인내력, 지력, 매력 등의 능력치들과 체력, 마법력과도 같은 수치들도 표시되어 있었다. 아무리 현실같은 세계라지만 게임은 게임이다. 저러한 수치들을 객관화 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 샹그릴라 세계에 대한 감이 없었기에 나는 지금 나와있는 숫자들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대부분 1의 행진이기에 굳이 신경쓸 필요도 없었지만.

바로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 혹시 한큐냐?”

어지럽게 열려있던 창을 닫으며 나는 주위를 살폈다. 분수대 바로 앞에 새까만 머리칼을 발목까지 치렁하게 기른 소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말을 건 사람이 여자였기에 나는 먼저 그녀를 살펴보았다.

동그란 눈에 자그마한 입술, 완벽한 팔등신의 그녀는 나와 비슷한 나이쯤으로 보였다. 물론 실제나이로 말이다.

그녀 역시 이제 막 접속한 듯 평민의 옷차림이었다. 린넨 특유의 노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그녀가 나를 향해 싱긋 웃는다.

“한큐 맞구나?”

그녀가 다시 말을 건다. 다른 게임과는 달리 머리위에 이름이 떠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을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누구…….”

“짜식, 원래 얼굴이랑 비슷한 얼굴로 했구나. 이 형님은 아름다운 여자로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전되고 보니 누군지 알만했다.

“너…… 설마 문기냐?”

“문블레이드라고 불러라. 크크.”

“미친! 웬 여캐야?”

“왜? 이쁘잖아. 너는 이름 뭐야? 설마 성한규로 한건 아니겠지?”

“한큐다. 문블레이드가 뭐냐? 차라리 세일X문이라 그래라.”

나는 문기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예쁘지 않냐 하면 아니다. 누가 게임 아니랄까봐 그녀의 모습은 현실의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답다. 문제는 속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인명수첩인지 하는게 갱신되었다는데 뭐냐 도대체?”

멍한 정신을 수습하며 나는 문기가 말한 인명수첩을 펼쳐보았다. 인명수첩은 플레이어와 엔피씨로 나뉘어 있었다. 플레이어 수첩을 펼쳐보니 문블레이드 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아무래도 게임에서 알게된 사람들의 정보를 담아두는 곳인 모양이다.

“친구목록 같은데? 내 이름 적혀있지 않냐? 플레이어 카테고리에.”

“어? 어. 있다, 한큐.”

“그 밑에다 나라고 표시나 해 둬. 나도 그럴테니까.”

말을 하며 나는 수첩에 ‘변태문기’라고 추가로 적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

수첩을 주머니에 꾸겨넣으며 문기, 아니 문블레이드가 묻는다. 하지만 나도 딱히 샹그릴라에 대해서는 아는바가 없었다.

“야, 너도 돈 한푼도 없지?”

“응? 어, 없어. 장비창에서 보는거지?”

“맞아. 일단 돈이 있어야 무기라도 사고 할거 아니야.”

“나는 검사 할거다.”

“니 맘데로 하세요.”

문블레이드의 말에 대충 답하고는 주변을 살폈다. 분수 광장 근처에 서있는 알림판 같은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저기로 가보자. 도시 사람들이랑 얘기도 해보고 하다보면 돈을 벌 방법도 떠오르겠지.”

문기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함께 알림판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3장 꽃집의 아가씨

1

예상했던대로 알림판은 퀘스트를 모아놓은 장소였다. 수십장은 될듯한 광고 전단지 같은 것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하나 하나 살펴보니 대부분 사건의 의뢰서들이었다.

“와, 이게 뭐야?”

문블레이드가 한 장의 의뢰서에 손가락질을 한다.

“성 밖의 농민들을 괴롭히는 늑대들의 우두머리를 처단해 주세요? 5인이상, 권장레벨 3? 한큐야 이게 뭔소리냐? 동문 치안대장 호레이소.”

“말 그대로야. 동문에서 치안대장일을 하고있는 호레이소라는 놈이 주는 퀘스트인거지. 5명 이상 모여야 할만하고, 레벨 3은 되야 된다는거야.”

“우리는 레벨 몇인데?”

“능력치 창 안봤냐? 이제 막 시작했으니 1이지 뭐.”

“그럼 못하겠네?”

“아마 그럴거다.”

문블레이드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나는 우리가 할만한 퀘스트를 물색해봤다. ‘꽃을 구해 주세요.’퀘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권장레벨 1에 혼자서도 할수 있는 퀘스트였다.

너무 쉬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처음 하는 게임이니 무리할 것 없었다. ‘3번가 2번지 엘리제 꽃집‘ 이라는 문구를 머리에 기억한 후, 문기에게 말했다.

“일단 이 퀘부터 하러 가자.”

“퀘가 뭐야?”

“퀘스트 약어야. 너 진짜 게임은 완전 모르는구나.”

“그야 당연하지. 나 처음이라니까.”

문블레이드가 허리에 팔을 얹으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들이민다. 주먹날릴뻔 했다. 형에게 유저가 성별 결정은 못하게 막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나저나 3번가 2번지라고는 해도 어디가 어딘지 알 방법이 없었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저기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귀부인차림의 여자였다.

“평민이 감히 귀족에게 함부로 말을 걸다니! 치안대!”

다짜고짜 그녀가 경비를 부르는 통에 나는 당황해 뒷걸음질을 쳤다. 그 꼴을 지켜보던 문블레이드가 고개를 갸웃한다.

“너 무슨 짓을 한거야? 저 여자 지금 짭새부르는거지?”

“아니 아무것도 안했어. 너도 봤잖아.”

그러는 사이 그 귀부인이 손수건으로 코를 막으며 가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뭐야 저건?”

욕이 반쯤 튀어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정말 치안대에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한 노인이 점잖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젊은이들, 롬로스에는 초행길인 모양이구만. 욕봤네 그랴.”

나와 문블레이드가 동시에 노인을 바라보았다.

“귀족에게 말을 건다고 정말로 잡혀가거나 하지는 않으니 걱정 말게나. 롬로스의 귀족들은 대부분 좋은 분들인데 가끔 그녀처럼 괴퍅한 사람이 있으니 조심하는게 좋을걸세.”

“아, 예…….”

나에 이어 문블레이드가 노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귀족이 될수 있어요? 어디 더러워서 평민으로 살겠나…….”

“음? 허, 꿈이 큰 아가씨로구만. 허허.”

노인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그러고보니 둘 다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닌 모양인데…… 혹시 여신의 축복을 받은 이계인들이신가?”

문블레이드가 노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엘모아인가 하는 여신이 이리로 보냈죠.”

“오! 그렇구만! 그렇다면 귀족이 되는것도 꿈은 아닐걸세. 작위를 얻기위해서는 먼저 왕국에 공을 세워야 하네. 먼 남쪽 케세린 공화국의 적군을 죽인다거나, 왕국의 신민들을 괴롭히는 괴물을 사냥하는것도 좋을걸세. 허나, 지금 아가씨나 여기 젊은이의 행색을 봐서는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으니, 우선은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는게 좋을 것 같네.”

노인의 말에 나는 순간 욱하는 기분이들었다.

여신이라는게 기껏 뭘 해달라니 어쩌니 살살거리는 말을 해놓고는 돈한푼 안쥐어주고 도시에 툭 던져놨다. 이런 평민 노인네까지 무시를 한다.

노인의 말이 이어진다.

“살아간다는건 전부 돈이 드네. 자는것에서 먹는 것 입는것까지 어느 하나 공짜가 없지. 하지만 자네들은 여신께서 이 땅에 초청한 사람들일세. 여신의 신전으로 가보게. 주린배를 면하게 해주고 쉴곳을 내어줄 테니까.”

여신의 신전, 듣자니 처음 게임을 플레이하는 초보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편리를 제공하는 곳인가 보다. 기억해 두고는 노인에게 꽃집의 위치를 물었다.

“그런데 노인장, 3번가 2번지에 있는 엘리제 꽃집에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아, 엘리제 그 어린아이가 운영하는 꽃집 말이구나. 거기라면 잘 알고 있지. 그 아이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그네들이 운영하던 꽃집을 이어받았지. 허나 요즘 건너편에 들어선 대형 마트에 손님을 다 빼앗겨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거기뿐 아니라 3번가 재래시장이 다 죽어가고 있는 중이야.”

묘하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완전히 현실에 있는 것 같은 감각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자니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 아이를 도와주게나.”

“그러니까 어디에 있냐고요?”

나의 재촉에 노인장이 허허 하며 허리를 펴고 먼곳을 바라본다.

“재촉한다고 길이 나오더냐?”

“아 놔, 영감님!”

“잠시 기다리게나.”

등을 탁탁 두들기더니 노인이 손을 내민다.

“허리가 아파서 그러니 바닥에서 돌멩이 하나 주워주지 않겠나?”

“네?”

내가 되묻는 사이 문블레이드가 허리를 굽혀 바닥을 살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녀의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고 있었다.

“자요.”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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