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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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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정찬을 즐기는 도중에도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게임 내용 소개가 계속되었다. 코스식 요리였기에 각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 질문, 답변 시간이 충분했다.

“그럼 지금 샹그릴라 세계에서는 그로얀 왕국과 케세린 공국이 전쟁중이란 말씀이신데, 공성전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그냥 설정만 있는 것입니까?”

한 게이머의 질문에 기획팀 직원이 대답을 했다.

“당연히 공성전이 존재합니다. 우선 양 국가 사이에는 ‘거인의 허벅지뼈’라는 좁은 땅과 켈드리안 산맥이라는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전쟁은 양국중 어느 한쪽이 수도를 빼앗기면 끝이 나는 형식인데, 거인의 허벅지뼈를 통한다면 간단하게 상대편 수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인의 허벅지뼈에는 이름 그대로 거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공략이 쉽지 않지요.”

“성은 어떻게 뺏을수 있습니까?”

“일반 전쟁과 비슷합니다. 우선 엔피씨로 이루어진 군대가 있고, 용병단, 즉 각 국가군에서 플레이중인 플레이어들의 무리가 있습니다. 성에는 성을 마법으로 지켜주는 포인트들이 존재하는데, 모든 포인트를 점령하게 되면 성의 깃발이 바뀝니다. 그 상태에서 일정 시간이 경과한다면 성을 완전히 점령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 기획자에 이어 다른 기획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화면의 슬라이드를 넘겨 성의 점령 포인트를 한차례 보여주고는 깃발의 모습을 띄웠다.

“이것이 깃발인데요. 성을 빼앗기게 되면 빼앗긴 나라 측에 ‘성주의 깃발’이라는 아이템이 생겨납니다. 보통 수성전에서 가장 공훈이 높은 파티가 습득하게 되는데, 가능한 빨리 가까운 아군 성으로 깃발을 날라야 합니다. 그럼 그 성에 영주가 망명상태로 살아남을수 있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영주의 지위를 박탈당하지요. 반면 성을 빼앗을 측은 ‘1등공신의 서’라는 아이템을 얻게 됩니다. 명예를 높일수 있는 아이템으로 역시 가까운 영주에게 가져가게 되면 명예수치가 올라갑니다. 그렇게 계속 명예를 높이면 신분이 올라가게 되지요. 플레이어 여러분이 빼앗은 성의 영주가 되는 일도 있습니다.”

기획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영주가 되면 사설 용병단을 창단할수도 있고, 성에서 세금을 거둘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영주가 되는 방법으로는 개척이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아직 개발하지 못한 땅이 있는데, 그곳의 몬스터들을 몰아내고 일정 조건을 채운다면 영지를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작은 규모의 성에서 시작하게 되니, 그런식으로 영토를 키우는데에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요.”

다시 슬라이드의 화면을 지도로 옮겼다.

“왕성을 빼앗기게 되면 자동적으로 켈드리안 산맥안 잃어버린 숲에 망명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숲의 원주민’이란 종족과 동맹을 맺게 되고, 엔피씨들의 사기치도 높아집니다. 그때부터는 양 국가간의 전투가 아닌, 메일스트롬 너머의 신세계와의 전쟁이라는 시즌2 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부분은 아직 기획단계라 뭐라 대답해 드릴것이 없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그로얀 왕국은 중세 유럽 느낌의 왕국이었다. 반면 케세린 공화국은 얼마간 과학이 발전한, 굳이 현실과 비교하자면 18세기 무렵의 분위기를 풍겼다. 어디까지나 배경의 컨셉이 그렇다는 것이지, 문명수준은 종류가 틀릴뿐 거의 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양 국가군의 세력비를 맞추기 위한 사기(Morale)시스템이라거나, 플레이어끼리 자유롭게 퀘스트를 생성하고 또, 보상을 정할 수 있는 UMQ시스템등등, 게임의 문외한인 문기에게는 거의 외계어의 나열이었고, 한규조차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나 정말 저런거 할수 있는거냐?”

하는 문기의 물음에 한규는 쓴웃음을 지었다.

“막상 해보면 저렇게까지 복잡하지는 않을거야. 저건 어디까지나 설정이 그렇다는 얘기니까.”

“게임도 쉬운건 아니구나. 저런걸 만든 네 형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하하, 그야 뭐…….”

한규는 문기의 말에 대꾸하며 눈앞에 놓인 음식을 먹는데 집중했다. 샹그릴라의 세계관에는 사실 그다지 관심 없었다. 한규가 샹그릴라에서 기대하는 것은 혜나를 만나 이야기 할수 있다는 것 뿐이었으니까.

혜나는 아마 한규를 알지 못할 것이다. 8년동안 얼굴을 마주했지만, 그녀는 세상 어느것도 인식할수 없으니까.

한규도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성격도, 어떤 말투, 표정을 쓰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때, 기획자의 입에서 한규의 관심을 끌만한 말이 나왔다.

“그로얀의 국왕은, 여왕입니다만, 실제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프로필은 비밀에 부쳐져 있습니다만, 단순한 엔피씨가 아닌 전신마비 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면회는 극히 제한된 사람에게만 허용할 예정입니다. 이를테면 고위 귀족들이나 왕국에 큰 일을 해결한 모험가 정도만이 국왕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규는 눈쌀을 찌푸렸다. 기획자의 말데로라면 혜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샹그릴라 세계에서 일정이상 명성을 쌓아야 한다. 즉, 가끔 접속해 그녀를 만나고 로그아웃 한다, 라는 방법이 소용 없는 것이다.

한규는 이 부분을 형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생각했다.

한시간 반 가량의 정찬 간담회도 어느새 끝이 났다. 한규와 문기는 JK소프트측에서 제공한 선물들을 쇼핑백으로 하나 가득 챙겨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한달 후에 시작한다고?”

돌아가는 길에 문기가 묻는다.

“그렇다나봐? 6월 27일이라던가? 근데 그때 클로즈 베타 시작이니까 게임 시작하려면 멀었어.”

“클로즈 베타가 뭐냐?”

“게임회사에서 접속할 사람들을 정하는거야. 아무나 할 수는 없고.”

“그럼 너네 형한테 부탁하면 되겠네.”

“간담회 내내 지루해하더니 할 맘은 있나보네?”

한규의 말에 문기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한번 하기로 정했으니까 해야지. 나중에 재미없어 그만두더라도.”

“알았어. 형에게 말 해 둘게.”

눈깜짝 할 사이에 한달이 흐르고, 어느덧 샹그릴라의 클로즈 베타가 시작되었다.

한규의 형 한상은 문기의 것까지 클로즈 베타 이용권을 마련해 주었다. 문기는 곧바로 샹그릴라에 접속할수 있는 기계를 구입했다.

방과 후, 오후 6시에 그로얀 왕국의 수도 롬로스 광장에서 만나기로 한 후, 두 사람은 각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간단한 집안일을 마치고 곧바로 샹그릴라에 접속을 시도했다.

물컹거리는 기계들을 손과 발, 머리에 뒤집어 썼다. 부드러운 음악이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편안하게 소파에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감각에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깜빡 잠에 빠졌다. 다시 눈을 떴을때 눈앞을 가득 매운 것은 새하얀 신전이었다.

―뇌파 확인되었습니다. 성한규님, 샹그릴라의 세계에 어서 오십시오.―

감미로운 목소리가 속삭이듯 말을 건다.

―아직 생성된 캐릭터가 없습니다. 지금 등록하시겠습니까?―

한규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파르스름한 빛의 구슬이 둥둥 떠있는 모습만이 이미지되었다. 예전에 형의 권유로 잠시 플레이했던 캐릭터는 클로즈베타와 동시에 삭제된 모양이었다.

귓속의 목소리에 한규는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아직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흡사 텔레파시를 주고 받는 듯한 느낌으로 대화를 했다.

―먼저 원하는 성별과 겉모습을 상상하여 주십시오.―

한규는 현실속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인물을 상상했다. 아무리 게임속이라지만 굳이 다른 모습을 만들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다만 머리칼의 길이를 조금 더 길게하고, 눈을 좀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캐릭터의 외형에 만족하십니까?―

게임속 목소리가 묻는다. 한규는 자신이 상상한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게임이었기에 현실의 자신보다는 조금 더 미형으로 구현되었다. 그것도 그것 나름데로 마음에 들었기에 한규는 또 한번 긍정을 떠올렸다.

―패턴검색중입니다. 똑같은 외형의 인물이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현 캐릭터의 외형으로 확정하시겠습니까?―

또 한번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파란 빛의 구슬로 떠다니던 한규의 자아가 캐릭터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시각, 청각, 후각 오감들이 또렷해지고, 온통 하얗기만 하던 신전의 빛깔도 제 색깔을 찾았다.

한규는 고풍스러운 대리석으로 치장된 신전의 한 가운데에 두 발을 딛고 섰다.

“환영합니다, 이세계의 방문자 님.”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거기엔 핏기없이 하얀 피부의 여인이

넝쿨 감긴 의자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샹그릴라에서 쓰실 이름을 정하지 않으셨군요. 제가 무어라 부르면 될까요?”

“한큐라고 불러요.”

“한큐…… 이 세계의 어느분도 당신과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큐라는 이름이야 말로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한큐 님, 다시한번 샹그릴라로 와 주신것에 환영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이름을 말해도 잘 어울린다고 할거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생각하는 것’과 ‘말 하는 것’이 처음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상대는, 생긴걸로 봐서 여신 같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저는 샹그릴라 제 1계를 다스리고 있는 여신 엘모아입니다. 제가 한큐님을 샹그릴라 세계로 초대한 것은 이제 곧 있을 제 1계를 둘로 나눈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종결시켜 주셨으면 하는 바램에서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신이란다. 엘모아가 내게 샹그릴라의 배경설명이기도 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몇 달전에 한번 샹그릴라 세계에 접속해 보았을때도 느꼈지만, 현실감이라는 점에서 만큼은 어떤 게임도 따라올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무리 정밀한 그래픽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머릿속 이미지만큼 자세할 수는 없다.

“한큐 님. 비록 제가 한큐 님을 이곳으로 모셔왔지만, 한큐 님의 자유의지까지 제 마음데로 할 수는 없습니다. 한큐 님 께서는 두 인간의 나라중 어느곳으로 가고 싶으십니까? 원하신다면 그로얀 왕국과 케세린 공화국에 대하여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됐어요. 전 그로얀 왕국으로 갈거에요.”

그로얀과 케세린 두 나라가 어떤 곳인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한큐는 그로얀 왕국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한큐 님, 부디 둘로 나뉜 샹그릴라의 인간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해 주세요. 길잡이 요정 페이가 한큐 님을 그로얀 왕국으로 안내해 드릴것입니다.”

여신 엘모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몸이 붕 허공으로 떠올랐다. 주먹만한 빛덩이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그때였다. 자세히 보니 날개달린 요정이 산만한 몸짓으로 날고 있다.

그 요정이 남긴 빛의 길을 따라 내 몸이 비행을 시작한다. 별무리 가득한 검은 하늘에서 저 멀리 펼쳐진 바다까지, 그리고 그 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섬을 향해서.

섬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가 그곳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시야 한가득을 채우더니 이내 지평선을 이루기 시작한다.

“저곳에 샹그릴라의 제 1계랍니다. 한큐 님.”

요정이 내 귓가로 다가와 속삭인다.

“한큐 님이 모험을 하게 될 곳이지요. 정말 그로얀 왕국으로 가시렵니까? 다시 한번 선택할 기회를 드릴게요.”

“그로얀으로 가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요정과 더불어 나는 바다위를 날았다. 발밑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들이 눈에 띄었다.

“저곳이 메일스트롬, 대소용돌이랍니다. 샹그릴라 2세계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저도 그곳에는 가본적이 없답니다.”

요정 페이가 설명한다. 제작진도 안가봤을텐데 뭐,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만끽했다.

해안절벽을 넘어 삼각주에 접어들었다. 침엽수림이 빼곡히 들어찬 강을 따라 페이는 더 북쪽으로 나를 끌고갔다.

어느 순간, 저 멀리서 커다란 성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저곳이 그로얀의 수도 롬로스에요. 혹시 다른 도시에 정착하고 싶으시다면 지금 말씀해 주세요.”

“아니, 롬로스에서 시작할래.”

문기와 롬로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의 대답에 요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층 빠른 속도로 날기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롬로스 성이 바로 코앞이었다. 높은 성벽과 철통같은 경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성의 점령포인트가 될 예정인 깃발달린 첨탑들이 성벽을 따라 드문드문 솟아있었다.

갈색 지붕의 건물들이 성안에 즐비하다. 낮게는 3층에서 5층에 이르는 수많은 건물들 사이로 사람들이 보인다. 천진난만 뛰노는 아이들로부터 흥정에 열심인 아주머니들까지, 엔피씨라기보다는 정말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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