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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9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문직을 맡고 있는 뇌의학 교수가 한상을 대신해 마이크를 들었다.

“사실 꿈을 유도하는 시도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계속 되어왔습니다. 꿈은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스트레스들중 뇌내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이라는 학설이 상당히 주목을 받아온 것도 사실입니다. …….”

교수 답게 그는 여러 이론들을 쭉 나열하는 것으로 서두를 꺼냈다. 꿈의 메커니즘과 꿈과 수면, 그리고 건강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샹그릴라 팀이 개발한 꿈 유도 시스템은 그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되고 또 완성된 것입니다. 평소 자신의 수면시간 만큼 게임을 즐기는 것 정도로는 결코 몸에 해가 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일정이상, 예를 들면 며칠동안 쉬지 않고 게임을 즐기거나 한다면 문제가 생길 여지는 있습니다.”

“며칠이라는게 구체적으로 어느정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기자의 부연질문에 교수가 답했다.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해 본적이 없습니다. 뇌라는 것은 섬세한 기관으로 곧바로 생명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면병에 대한 여러 임상사례들을 참고로 해 볼 때 72시간, 즉 사흘동안 계속해 잠을 자는 것은 자칫하면 수면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증세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 게임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 뇌의 특성입니다.”

팀장 한상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차후 협의할 내용이지만 저희는 하루의 한계 플레이 시간을 정할 예정입니다. 예를들어 8시간으로 한계를 정한다면 그 뇌파를 가진 사람이 8시간 이상 플레이를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습니다. 여러 계정을 이용해 하루에 열여섯시간 이상씩 플레이를 하는 다른 게임들에 비하면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이 적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을 했던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다른 기자가 질문권을 가져갔다.

“VV게임잡지의 기자 최호철입니다. 저도 평소 MMORPG게임을 즐겨하는 유저로서 샹그릴라에 거는 기대가 큰데요.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게임 내적으로도 새로운 시스템이 많을 것이라 발표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을 꼽고 싶으십니까?”

마이크를 들고있던 한상이 곧바로 대답했다.

“가장 먼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샹그릴라야 말로 수많은 첨단 IT기술의 집합체라는 것입니다. 샹그릴라는 각 나라에 오직 하나의 서버로만 운영될 예정입니다.”

한상의 대답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회의장에 퍼졌다.

“하나의 서버라니요? 최대 동접자 수를 얼마로 예상하고 계십니까?”

“그야 저희도 모르지요. 하지만 몇 명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샹그릴라의 세계는 넓습니다. 게임내 캐릭터가 통상적인 걸음걸이로 걷는다면 첫 세계, 즉 제 1계의 안을 일주하는데에도 몇 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북쪽의 왕국 그로얀은 지구상의 러시아와 면적이 비슷하니까요.”

“지금까지 많은 게임들이 넓은 세계를 장점으로 내세웠던 적이 있습니다만, 사실상 플레이를 할 때에는 이동의 불편함만을 야기시킬뿐이었습니다. 결국 점점 빠른 교통수단과 텔레포트 따위를 이용해 게임내 이동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말에 한상이 답했다.

“그로얀 왕국에는 엔피씨가 1억 명 가량 있습니다. 이것으로 대답이 되겠습니까?”

이어 홍보팀장이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샹그릴라는 여러모로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단지 숫자만 키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결국 인생의 1/3은 잠을 잘 수밖에 없습니다. 잠을 위한 시간을 단지 생존을 위해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으로 만든다. 그것이 샹그릴라의 진짜 컨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이버 월드의 구축 말씀이십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들 수십명이 동시에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질문을 하던 기자가 선수를 쳐 다시 말을 받았다.

“종종 리얼리티 높은 세계관을 컨셉으로 내건 게임들이 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생산직은 지루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다들 전투 클래스 중심으로 플레이를 하게 되고 결국 게임 내 경제 활성화에 실패하기 일수였습니다. 샹그릴라도 세계의 구축에 매달리다가 그러한 류의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까?”

기획팀장이 마이크를 들어 답했다.

“그 점을 해결한 것이 바로 꿈입니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굉장히 무서운 꿈을 꾸어 땀에 흠뻑 젖어 깨어나 꿈을 반추해 보았을 때, 꿈의 내용이라는게 여남은살의 어린아이들도 무서워 하지 않을, 유치하기 이를데 없는 것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사실 우리 교수님께서 더 잘 설명해 주실수 있으시겠지만, 사람은 꿈을 꿀 때 감정 그 자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최면과도 비슷한데요, 간단히 예를 들자면 기쁜 내용의 꿈을 꾸기 때문에 기쁜게 아니라, 기쁨이라는 감정 자체를 꿈꾸는 것입니다. 샹그릴라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생산직의 사람들은 물론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단순 생산활동을 계속하는 동안 ‘노동의 기쁨’이라는 감정을 뇌에 피드백 해주게 됩니다. 물론 그리 강렬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지루함을 덜어줄 청량제 역할은 해 주게 될 것입니다.”

다른 기자가 발언권을 얻었다.

“그건 일종의 뇌내마약과도 같은 역할을 할것 같은데, 의존증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 없겠습니까? 세계가 현실적이면 현실적일수록 그에 비해 덜 자극적인 현실세계에는 흥미가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상이 그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그건 다른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중독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샹그릴라는 오히려 다른 게임에 비해 의존률이 적을 것입니다. 예전에 한번 언론사쪽에 발표한 적이 있는 내용의 반복이 되겠습니다만, 샹그릴라의 로그아웃 시스템에는 의존증을 막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수 있으시겠습니까?”

“그건 시스템 내부의 비밀입니다. 조금전 저희 기획팀장께서 말씀하신 수면중 최면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으로 발언권을 가져간 것은 젊은 여기자였다.

“넷라이프의 문화부 기자 은매영입니다.”

기자들의 이야기에 막 지루함을 느끼던 한규는 눕혔던 몸을 반쯤 일으켰다.

“매영이 누나?”

그녀는 다름아닌 한상이의 고등학교 친구 조성철의 여자친구였다.

“팀장이신 성한상씨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로서 먼저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영씨.”

한상이 웃으며 매영의 인사를 받았다.

“그럼 질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발표하신 내용중에 전신마비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재활프로그램으로서도 유효할 것이란 부분이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한상이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긴장한 모양이다. 한규는 형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 한규도 덩달아 어깨가 딱딱해졌다.

“샹그릴라는 이미 몇차례 발표드렸듯,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뇌의 신경신호만 있으면 됩니다. 물론 손과 발의 신경까지 있다면 좀 더 정밀한 플레이가 가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장치들입니다. 즉, 전신마비 등으로 침대에서 꼼짝할수 없는 사람들도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상이 한템포 쉬었다 말을 이었다.

“그들은 분명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극히 제한적인 경험만으로 남은 여생을 살아가야 하지요. 일부는 심지어 감각까지 잃어버리고, 뇌만 깨어있는채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원자들에 한하게 되겠지만, 그런 분들께 샹그릴라라는 가상세계에서 살아갈수 있는 권리를 드릴 생각입니다. 그들은 일반 게임플레이어들과는 달리 건강에 해가 없는한도내의 일일 플레이 시간을 보장해 드리며, 좋은 게임 환경을 제공할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게임내의 높은 귀족 NPC나, 그런 류의 캐릭터를 조작할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입니다.”

“원한다면, 그 가족들이 게임안에서 그들과 만나 대화하고 함께 모험을 하는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을 향해 의학 자문을 맡고있는 교수가 말을 했다.

“이것이 의학적으로나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파장을 불러들일지는 여러분들도 충분히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게임 외적인 시스템, 세계관, 게임내 시스템등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무림혈비록’에서 시도되었던 ‘약점 시스템’이 강화된 전투방식에서 그로얀 왕국과 케세린 공화국의 전쟁같은 이야기들. 시즌1, 즉 제 1계 종언의 열쇠를 품고있는 대소용돌이―메일스트롬―에 대한 설정까지.

쉬는 시간을 포함해 2시간 동안 이어진 기자 간담회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1부 순서가 끝이 났다.

한규는 옆에서 코를 골고있는 문기를 툭 쳐서 깨웠다. 아무래도 혁신적으로 새로운 시도였기에 게임 내적인 이야기보다는 외적인 것이 많았고, 한규와 문기 같은 사람들에게는 지루하기 짝이없는 간담회였다.

“끝났냐?”

“아직. 이제 1부가 끝났어. 제공하는 식사를 마친 후, 각 부문별로 나누어 2차 간담회에 들어갈거야.”

“각 부문별로?”

“기자단끼리, 파워블로거끼리, 헤비 게이머끼리 이런식으로 나누는거야. 우리는 헤비 게이머들이랑 같이 밥을 먹게 될거야.”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준비를 하는 한규와 문기 곁에는 열띤 토론을 펼치는 게이머들의 무리가 있었다. 제법 온라인게임을 즐겼던 한규도 이해하기 힘든 언어들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별세계의 이야기들이었다.

3층의 정찬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던 중, 복도에서 한규와 문기는 걸음을 딱 멈춰섰다. 한명의 소녀 때문이었다.

동그란 플라스틱 테 안경을 낀 그녀는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한규와 문기 앞을 걷고 있었다.

문기가 손가락질로 그녀의 뒷통수를 가리켰다. 한규도 그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기가 그녀의 어깨를 툭 친다.

그녀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하지만 문기와 한규를 흘끗 보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야!”

문기가 그녀를 불러세운다.

“우리 못알아보겠냐?”

다시 돌아서는 그녀에게 문기가 말을 건다.

“바로 어제였잖아. 어제 아침에, 기억 안나?”

문기의 물음에 단발머리의 그 소녀가 탁하고 쏘아붙였다.

“고맙다는 말은 안해. 보답을 받고싶으면 맘대로 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니까.”

문기는 소녀의 말에 눈쌀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날카롭던 눈매가 무섭게 변했다.

한규가 문기의 어깨를 살짝 당겼다. 진정하라는 의미에서였다.

“할 말 없으면 난 갈게.”

도끼눈을 풀며 문기가 한숨을 내쉰다.

“관 두자.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애랑 무슨 얘기를 할까.”

그런 문기를 무시하며 몇걸음 걷던 그녀가 몸을 돌렸다.

“깡패짓이나 하고 게임따위에 시간을 보내는 당신이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너!”

문기가 발끈해 걸음을 내딛고, 한규가 강하게 그의 어깨를 당겼다.

“그냥 내버려 둬.”

그 사이 단발머리의 소녀는 쪼르르 달려 도망쳐 모습을 감춘 후였다. 씩씩거리던 문기가 분하다는 듯 다리를 쿵 굴렸다.

“호박같은게!”

“귀엽구만 뭐.”

한규가 여유작작 한마디 한다.

“한규 너…….”

“우리동네 애가 아닌가? 감히 태평기업의 아드님 석문기 님께 저런 말을 하다니. 히히.”

그 사이 문기도 성질이 한풀 꺾였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 참 황당해서…….”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깡패라는 말은 그리 틀리진 않았지만.”

“하여간 꼬여가지고. 누가 뭐래나? 불러 세운것만으로 저렇게까지 성질을 내냐.”

“그나저나 아까 그 명찰은 파워블로거쪽 명찰인데…… 중학생이 이런데 초대받을 정도면 보통은 아닌 모양이야.”

한규의 말에 문기는 고개를 설레질쳤다.

“몰라 신경 끌래. 에잇, 기분 잡쳤다. 빨리 가서 밥이나 먹자.”

성큼 걷는 문기를 한규가 쫓는다.

4

한규와 문기가 속한 파워 게이머 그룹은 식사를 하며 간담회를 이어갔다. JK소프트쪽 직원은 기획, 프로그램팀의 직원들이 각기 두명씩 끼어있었다. 아무래도 형 한상이는 가장 중요한 기자쪽 정찬 간담회에 참석한 모양이었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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