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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6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혜나가 살고 있는 곳은 버스로 30분 거리였다. 안양 평촌에 있는 제법 큰 병원이다. 시계는 아직 여섯시가 조금 못되었다. 아직 면회 가능한 시간이다.

접수처에서 면회를 신청하고, 한규는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어차피 평소에도 시계역할밖에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꺼야했다.

“성한규 님. 접수처로 와 주십시오―”

접수의 여간호사가 한규를 호명했다.

“네, 넷.”

잠시 다른생각에 빠져있던 한규가 큰 목소리로 답한다. 시선의 주목에 머리를 긁적이며 면회증을 받아 목에 걸었다.

혜나가 있는곳은 4층의 중환자입원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몹시 외진 곳이었다. 몇 개의 복도를 구비돌아 흡사 호텔의 문과도 같은 호화로운 장소에 도달했다. 밟고있는 복도의 질감까지도 다른 듯 느껴지는 개인 입원실의 명패에 ‘이혜나’라는 이름이 외롭게 적혀있다.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는 보통의 병원용 침대 두 개를 붙여놓은 만큼 커다랬다. 하지만 푹신한 양모매트라거나 거위털 베개따위로 장식된 고급스러운 침대는 아니었다. 전자장비와 알수 없는 전선, 튜브따위를 설치하기 위해 그만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방안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있던 간호사가 한규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너구나.”

못해도 한 주에 한번은 면회를 오는 처지였기에 간호사도 한규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수영이 누나.”

“또 혜나 보러 온거야? 지극정성이네.”

한규는 수영이라는 간호사의 말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뭘요.”

“다음에 올때는 꽃이라도 사와. 어차피 향기도 못맡겠지만…… 저런 몸이라도 혜나는 여자잖아.”

수영의 손끝으로 혜나의 모습이 보였다.

열 세 살이나 되었을까? 많이 쳐도 중 1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한규는 텔레비젼에 나오는 어떤 연예인들보다 그녀가 더 아름답게 보였다. 실제로 그녀가 이대로 너다섯만 더 나이를 먹는다면 한규의 감상이 뭇 남성의 감성으로 확대되는데 무리가 없을 듯 했다.

감겨있는 눈에 풍성하게 자라있는 속눈썹, 핏기없이 하이얀 피부에 오똑한 콧날까지. 한국인 아버지와 유럽게의 어머니를 양친으로 둔 그녀는 동화에나 나올법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 병치레로 살짝 탈색된 갈색 머리칼은 햇빛의 색 그대로였다. 정말이지 어느 한부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다.

“벌써 12년째라지? 혜나가 여기에 있는 것도.”

수영이 한숨섞어 말을 뱉었다.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수영이 몸을 돌려 혜나를 정면으로 보았다.

“참 운명도 얄궂지. 세계적인 기업 펜트라의 전기전자 부문 사장 이태준과 파리 오페라좌 수석 발레리나 출신의 어머니 에반젤의 딸로 태어나서는…… 미모 지성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자라다가 열 세 살때 걸린 독감으로 이상태라니. 그대로 자랐더라면 지금쯤 연예인 못지않은 주목을 받으며 살고 있었을텐데.”

한규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혜나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올해로 스물 다섯 살이었다. 병에걸려 전신불수가 된 후로 성장하지 않아 열 세 살의 외모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모는 아직 아이가 죽은게 아니라며 이렇게 생명유지장치를 연결해 두고 있지만, 어디 저게 살아있는거니?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오감이 다 닫혀있는데. 뇌만 살아있다니, 죽는 그날까지 꿈만 꾸라는거야?”

혜나의 전담간호사로 벌써 3년이나 근무를 해와서인지 수영의 혜나에 대한 마음은 남달랐다.

수영이 한규의 어깨를 탁 쳤다.

“그래도 너나 너희 형 같은 친구가 생긴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너희들마저 없었다면 혜나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증거따위는 말 그대로 글자로만 남았을테니까.”

한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형 한상이를 떠올려 보았다.

한상이 샹그릴라, 정확히는 수면중 온라인 게임이라는 제 4세대 게임기를 개발하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혜나때문이었다.

꿈에서나마 세상을 살아가기를…….

처음 동생 한규에게 샹그릴라를 설명하면서 한상이 한 말이었다.

샹그릴라.

그 게임에는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한규는 형 못지 않게 샹그릴라의 완성을 보고싶었다. 혜나 누나와 만날 수 있을테니까. 이야기 하고, 함께 모험을 떠날수도 있을테니까.

“그 두부속에 발을 집어 넣는 듯한 감촉만 어떻게 해주면…….”

한규의 중얼거리는 말에 수영이 고개를 갸웃한다.

집에 돌아온 한규를 맞이한 것은 형 한상이었다.

“어, 일찍왔네?”

한규의 형은 지금 앞치마에 머리수건을 두르고 걸레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서와.”

“벌써 일이 끝난거야?”

한규의 물음에 한상이 고개를 젓는다.

“아냐.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왔다가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

“놔둬. 청소는 내가 할테니까.”

한상이 웃는다.

“그 말 이번주에만 다섯 번째 듣는다.”

한규는 할말이 없어 얼굴만 붉혔다.

“너는 네 생활에나 전념 해.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는 이 형이 뒷바라지 해줄테니까.”

“그래도…….”

한규는 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수가 없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있냐는 말이 있지만, 한규가 볼 때 형은 정말 완벽한 사람이었다. 집안일이면 집안일, 사회인으로서의 몫까지 어느 하나 서투른곳이 없었다.

한규는 겉옷을 벗어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샹그릴라 콘솔의 등받이에 걸쳐두고는 형의 걸레를 뺏았다.

“내가 할테니까 형은 잠시라도 쉬어.”

“괜찮다니까.”

“내가 안괜찮아.”

한상을 대신해 한규가 걸레질을 한다. 한상이는 한규의 그런 모습을 보며 빙긋 미소지었다.

“그나저나 어디갔다 오는거야?”

“혜나 누나네.”

“…… 잘 있냐?”

“뭐 그렇지.”

잠시 형제사이의 대화가 끊겼다. 한규는 걸레질에 집중하느라 입을 닫았고, 한상이는 정신을 다른데 빼앗겼다. 그 짧막한 침묵을 거둔 것은 한상이었다.

“아참, 그래서 어땠냐?”

“응? 뭔소리야 갑자기.”

“샹그릴라 말이야.”

“아아…….”

한규는 더러워진 걸레를 뒤집어 접으며 잠시 쭈그려 앉았다. 형을 올려다 보며 한마디 한다.

“무슨 대답을 듣길 바라는거야? 형은 역시 천재야. 대단해. 정말 현실 처럼 느껴져. 뭐 그런거?”

한상이 콧등을 긁적인다.

“그게…… 왜 갑자기 말에 가시가 밖혀있냐?”

“너무 대단해서 해줄 말이 없어서 그래.”

“하하, 그렇지? 내가 만들었지만 참 신기하다니까.”

“그래도 조작기의 느낌은 영 아니라니까. 어떻게좀 해 봐.”

한규의 말에 한상이 어깨를 으쓱한다.

“어쩔 수 없어. 전해질의 젤이 아니고서는 동작에서 심박, 체온까지 모두 체크하는게 힘들어. 게다가 그게 기분나쁘다는 사람 너밖에 없어.”

“몰라, 기분 나쁜건 나쁜거야.”

한규는 다시 걸레질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웃음으로 바라보던 한상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챙겨둔 짐을 들고 나온다.

그 사이 한규는 거실의 걸레질을 끝냈다.

“뭐야, 벌써 나가는거야?”

“응? 그렇지 뭐. 지금 마지막 조정중이야. 한창 바쁠때라고.”

“건강 잘 챙겨.”

뚱한 목소리를 내는 한규의 어깨를 한상이 툭 두들긴다.

“오케이.”

다시 한상이 밖으로 나갔다. 한규는 형이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반사적으로 거실에 있는 샹그릴라 콘솔로 시선을 옮겼다. 그것이 한규 자신과 형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한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제2장 A Whole new World

1

스포츠 머리에 날카로운 눈빛의 고등학교 2학년생. 석문기는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아직 대한민국 평균 신장은 175가 못된다. 하지만 체감으로는 180쯤 되는 듯 했다. 그렇기에 평균 살짝 윗줄의 문기도 키에서만큼은 불만이 컸다.

마른것도, 살찐것도 아닌 몸이지만, 거둬올린 교복아래로 드러낸 팔뚝만큼은 강철만큼 단단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복싱이니 합기도 같은 운동을 한 덕분이다. 운동시간만 하루 평균 5시간.

하지만 결코 스포츠맨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학교 옥상으로 튀어올라가 교복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담배를 꺼내문다.

“라이타, 라이타.”

앞 뒤 주머니를 뒤져 500원짜리 일회용 라이터를 꺼냈다. 칙칙 소리를 내며 불을 붙이고 서둘러 담배끝을 꼬슬린다.

“후아! 이제야 살겠네.”

옥상에는 조문기 이외에도 몇몇 학생들이 더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시선을 피하며 조문기의 일탈을 못본척 했다.

그때, 뚜벅뚜벅 소리가 나며 또 한명이 옥상에 등장했다.

교복일색의 학교에 양복차림의 남자. 더 볼것도 없이 학교의 교사였다. 막 담배에 불을 붙인 문기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다. 그런데…….

흡사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듯, 문기의 행동을 무시하며 다른 학생들을 휘 돌아본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양 그대로 몸을 돌려 아래로 내려간다.

다른 학생들도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교사가 담배를 피는 학생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없는 이 광경이 말이다.

문기도 문기 나름 신경쓰지 않았다. 까르페디엠― 이 순간을 즐길 뿐이었다.

그 순간, 옥상 계단실 위에서 한줄기 목소리가 들린다.

“옥상, 금연이다.”

문기가 고개를 들어올린다. 저수탱크만 보일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문기는 계단실 위로 이어진 철사다리로 기어올랐다. 계단실의 천장 위로 몸이 반쯤 올라가자 거기가 제집인양 누워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한큐! 너 학교 왔었냐?”

“금연이라니까.”

한규의 말에 문기는 쳇, 혀를 차며 담배를 부벼껐다. 오르던 사다리를 마저 올라 한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요새 담배값이 얼만줄은 알아? 한까치에 300원이야, 300원. 아직 반도 안피웠는데…… 이런 장초 버리면 하느님이 노하신다.”

“그럼 뒀다가 나중에 피우던지.”

“한번 불끄고 나면 탄내 배서 맛떨어져!”

문기의 말에 한규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여간 이래서 운동하는 애들은…….”

끝내 아깝다는 듯 손에 들고있던 꽁초를 아무렇게나 던지며 문기가 한규를 내려보았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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