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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마스터] 2화

카르마 마스터 표지
카르마 마스터 표지
[데일리게임]

“하여간! 좀 세상일에도 관심 좀 가져! 그놈의 4세대 온라인 게임인지 뭔지 개발에만 매달리지 말고! 어떻게 게임에 대한 건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면서 바로 어제 한 이야기도 까먹냐?”

한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그…….”

한규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우내오존과 정사 양파의 고수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만렙까지 얻는 스테이터스 전부를 회피에 몰아 밖은 덕에 몇 대 맞지 않았지만.

그마나 맞은 몇 대도 별로 아프지 않다. 회피 스킬은 방어력에도 영향을 준다. 금강부동신공(金剛不動神功)은 데미지를 90퍼센트까지 줄여준다. 한참동안 형과 티격태격하며 두들겨 맞기만 했는데도 피가 반 이상 남아있다.

“형이나 얼렁 출근하지 그래? 요즘 일곱 시 출근에 열한시 퇴근 아냐. 말 그대로 세븐일레븐. 차라리 회사에 침낭이라도 가져가지 그래? 출퇴근시간이나 아끼게.”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 한규가 투덜거린다.

“니놈 밥 차려주는 것만 아니면 진작 그랬을 거다.”

몸을 돌리던 한상이 동생의 투정을 받았다.

“애두 아닌데…… 형 몸이나 신경 쓰셔.”

“그래도 명색이 체육특기생인데 식빵쪼가리만으로 어디 버티겠냐?”

한상의 대답에 한규는 입을 다물었다. 열두 살 많은 형이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를 리 없다. 벌써 열여덟이나 먹었으니까.

대답 없는 동생의 뒤통수에 한상이 말한다.

“밥 차려 놓을 테니까 적당히 하고 먹어. 나는 출근준비나 해야겠다.”

“어, 엉.”

한규는 대답을 하며 캐릭터를 가까운 마을로 전송시켰다. 형의 배웅을 위해서였다.

친척하나 없이 형제 단 둘뿐이다. 나이 차이가 많아 형이라기보다는 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형이 현관문 쪽으로 나서며 크로스백을 어깨에 걸었다.

“아참, 부탁이 좀 있는데…….”

“응? 무슨?”

“있다 시간 날 때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게임 테스트 좀 해 줘.”

한상의 말에 한규는 대뜸 얼굴을 찡그렸다.

“또?”

“또는 무슨. 전에 잠깐 접속해 봐 놓구서…….”

“그거 좀 기분 나쁘단 말야. 미끈거리고 물컹거리고.”

“그거야 잠깐이잖아. 잠드는데 까지 10초도 안 걸리니까.”

“그래도…….”

한상이 한규의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내 책상에 있는 USB를 콘솔의 포트에 꽂고 시작하면 돼. 부탁한다.”

볼멘소리로 한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근데 이번에도 들어가면 방하나 달랑 있는 건 아니겠지?”

“물론. 세계는 거의 다 완성되었어. 이제 곧 크로즈 베타도 시작할거고. 그냥 순수하게 일반 게이머의 감상이 듣고 싶어서 부탁하는 거야.”

“뭐 잠깐 해 볼게.”

“땡큐다.”

한상이 구두를 접어신고 앞꿈치를 바닥에 탕탕 두들겼다. 한규는 현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열다섯 평 아파트의 현관에서 형을 내보냈다. 잔뜩 구겨진 폴로 티셔츠 등판을 보며 한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애인이나 만들 것이지…….

현관문을 닫고, 형규는 거실로 눈을 돌렸다.

형이 개발하고 있는 4세대 게임의 콘솔이 눈에 들어왔다. 안마의자 크기의 커다란 게임기 본체에 수많은 전선들이 얽혀있다.

뇌파를 컨트롤 해 흡사 꿈꾸는 것처럼 플레이할 수 있다. 게임을 하는 동안 몸은 수면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수면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없단다. 말 그대로 꿈의 게임이다.

한규는 한참이나 게임기를 바라보았다. 옆면에 장식체로 적혀있는 샹그릴라(Shangril―A)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관이 무협이라면 좀 더 재밌게 했겠지만…….”

한규는 자그마한 불만을 투덜거리곤 다시 컴퓨터로 돌아갔다.

마우스를 건드리니 자리비움 표시가 사라졌다. 그 동안 깎였던 체력이 많이 차 있었다. 채팅창에 귓말표시가 깜빡거린다.

―‘전부한큐’님! 님! 님!

전부한큐는 한규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현실에서의 별명도 한큐였다.

‘님!’으로 도배되어있는 챗창을 보니 말을 건지 꽤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어 ‘장삼뿡’님, 오랜만이네요.

―아! 잠수 풀렸네요. 어떻게 된 거에요? 공성전 하다가 갑자기 마을로 돌아가고…… 다행히 사인곡(巳人谷)을 뺏기지는 않았지만 이런식으로 하시면 용병비 못드려요!

―아, 죄송요. 갑자기 일이 있어서…… 이번 용병비는 안받을께요.

―하하, 할 수 없죠. 저두 캐릭 지우고 다시키울까봐요. 한큐님 캐릭터 볼때마다 부럽다니까요.

―하하핫, 아마 지겨울꺼에요. 스킬없이는 20레벨 아래의 요물들이나 상대하고 있어야 하니 레벨 진짜 안올라요.

―그래두요…… 한큐님 캐릭터는 진짜 사기잖아요.

―히히 절대고수라고 불러주시오.

―우리편만 아니면 GM(운영자)한테 신고했을꺼에요.

―하하하.

장삼뿡과 이야기를 하며 한규는 예전일을 떠올렸다.

사실 한규가 무슨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전부한큐’캐릭터를 키운 것은 아니었다. 원래 컴맹이었던데다가 처음 해보는 게임이고, 또 게임을 잘하는 친구도 없었기에 ‘스킬’을 배우는 방법을 몰랐다.

레벨이 오를때마다 뭐가 껌뻑거려 눌러보니 스테이터스 창이 떴다. 민첩성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줄창 그것만 찍어댔다. 절대고수 ‘전부한큐’는 우연에 우연이 거듭되어 태어난 캐릭터에 불과했다.

총 100레벨중 50레벨 넘어서야 스킬이니 스테이터스니 하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인터넷을 뒤진다거나 해서도 아니고, 형을 통해서였다. 게임의 감상을 묻는 형에게, “뭐가 이렇게 어려워?”라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몇마디 대화가 오갔는데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 알고 보니 순전히 한규 자신의 잘못이었다.

형 한상이 한규를 놀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한규는 그 일로 앙심을 품고 오기를 부려 키우던 대로 100레벨까지 캐릭터를 키워냈다.

―그런데 그 소식들으셨어요?

한규의 상념을 방해하며 장삼뿡이 다시 말을 건다.

―네? 뭐요?

―무림비혈사 3.0패치가 곧 있을거래요. 그동안 막혀있던 천외4경(天外四景)중 하나가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무저옥경(無低獄景)이라던데. 무공이 높은 자들을 가두는 감옥이래요.

―오! 그거 대단한데요?

―전대 고수들이 엔피씨 몬스터로 나올 예정이래요. 만렙도 파티가 아니면 힘들다던데…… 덜덜덜.

―하하, 그거 기대되네요.

―여유있으시네요. 하긴 한큐님이면 혼자서 털수 있을지도요.

―모르죠 그야.

몇 마디 더 새로운 업그레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장삼뿡은 사냥을 핑계로 대화를 멈추었다.

한규도 아침을 먹을 겸 잠시 게임을 껐다. 벌써 15년 넘게 주부노릇을 한 사람답게 형 한상의 아침상은 훌륭했다. 된장찌개에 밑반찬 세 개지만 하나같이 맛있었다.

아침을 먹은 후, 한규는 한상이 나가며 한 말을 떠올렸다. 샹그릴라를 플레이 해 보고 감상을 말해달라는. USB를 가지러 형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 깔끔한 성격이건만, 책과 노트 따위가 책상에 잔뜩 펼쳐져 있었다.

“또 밤 샜구만…….”

한마디 툭 하고 한규는 USB를 손안에 챙겼다. 그리고 한규는 샹그릴라로 다가가 콘솔박스에 USB를 꽂아 넣었다. 이것으로 준비는 끝이다.

적당히 푹신한 의자에 몸을 앉혔다. 옆에 있는 걸이에는 헬맷과 장갑이 걸려있었다. 소파 아래에 있는 장화 같은 발걸이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사실 한규는 샹그릴라를 한번 플레이 해 본 적이 있었다. 집 한 채, 그 안을 돌아다닌 것뿐이었지만. 하지만 한번 해 본 후로는 다시는 접속하지 않았다.

게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저 장화와 헬멧, 장갑이 기분 나빠서였다.

한규는 의자에 달려있는 장화 한쪽에 발을 슬쩍 들이밀었다. 묵이나 젤리 같은 멀컹하고 차가운 것에 손을 집어넣는 느낌이었다. 여름에 해변에서 해파리를 밟을 때의 감각과도 비슷했다.

“으…….”

두 발을 모두 게임기 안에 밀어 넣은 후, 헬맷을 썼다. 우윳빛의 아이실드가 시야를 가득 매웠다. 두 손을 넣기 전까지 게임은 작동하지 않는다.

역시 물컹, 부들거리는 장갑 안에 손을 넣었다. 우윳빛의 아이실드가 투명하게 바뀌는가 싶더니 타이틀 로고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조용한 음악이 귓전을 간질인다. 순간 온 몸이 나른해졌고, 한규의 의식이 잠으로 급격히 빠져들었다.

그러기를 잠시, 한규는 눈 한 번 깜빡 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세계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시야 아래쪽 대화상자에 문자가 떠오른다.

―A010001님 샹그릴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

한규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샹그릴라 세계 안에는 오래전 개발 초기단계에 잠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방안을 몇 걸음 거닐어 본 것이 다였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단지 세계가 넓어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감각의 폭발?

정말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들판이나 저 멀리 높이 솟아있는 산의 느낌은 현실 그대로였다. 판타지 세계라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풍경이 현실처럼 눈앞에 펼쳐지다보니 그것만으로도 정신을 빼앗길 정도였다.

시각만이 아니었다. 비가 내린 후의 숲 안과도 같은 풀내음이 코 속에 가득했다. 한숨을 들여 마시자 폐부가 시원해질 정도로 맑은 공기가 느껴진다.

풀벌레의 울음소리, 새의 지저귐. 청각 역시 완벽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피부에 닿는 공기의 느낌까지 현실과 완전히 같았다.

그 수많은 감각들이 오감을 통해 전달되었다. 한규는 샹그릴라가 꿈속에서 즐기는 게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현실 그 이상의 현실.

이 감각만으로도 한규는 샹그릴라의 대단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형은 하여간…….”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시야 아래쪽의 대화창에 글이 떠올랐다.

―한규, 접속했구나. 나 한상이야.

“어, 형?”

―한규야. 한규 맞지?

“응, 맞아.”

―한규…….

한규는 입으로 답하고 한상이 채팅으로 말을 거는 상황이 잠시 계속되었다. 한상이 뭔가를 깨달은 듯 한규에게 채팅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참, 아직 조작법은 모르지. 게임 안에서는 채팅을 할 일이 없겠지만 지금은 좀 특별케이스니까…… 채팅창에 시선을 두고, 내 말에 답한다고 생각해 봐. 채팅창이 활성화 될거야.

―으응, 이렇게?

―그래. 그렇게. 이제 들린다.

―그나저나 여기…….

―대단하지?

한상의 말에 한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상혁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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