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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아만전사 카르고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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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카르고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자 테일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을까? 무기도 없으니 말이야. 레나르로 가는 길에 드문 확률로 리퍼가 출현한다는 보고를 받았어. 일전에도 리퍼의 습격으로 수송마차에 타고 있던 병사 다섯 명과 아만족 두 명이 죽었는데 말이야.”

“뭐 어쩔 수 없잖아. 이곳에는 더 이상 수송마차가 오지 않으니 어쩌겠어? 뭐 리퍼가 나타난다고 해도 다 자기 운이 나쁜 것이겠지만 말이야.”

리퍼는 몸길이만 6미터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몬스터였다. 앞발에 달린 날카로운 낫은 기사의 판금갑옷마저도 갈가리 찢어 버린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말살하려는 본능을 지닌 리퍼는 여행자에겐 악몽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리퍼의 눈에 띄지 않기만을 기원해야겠지.”

불안한 눈초리로 아만족이 사라진 길을 힐끔 쳐다본 레논이 관문 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울려 퍼졌다.

키르르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흉측하게 생긴 괴수가 고개를 흙바닥에 처박았다. 길게 빼문 혀와 빛이 꺼진 눈이 괴수의 생명이 다했음을 알려 주었다. 뒤이어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두두둑.

괴수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관문의 경비병 레논과 테일러가 언급한 바로 그 괴수 리퍼는 이제 생명이 사라진 시신이 되어 맥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리퍼의 굵직한 목을 휘감은 팔뚝을 푼 카르고가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다행히 몸은 그럭저럭 만든 것 같군.”

그의 앞에는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리퍼의 낫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관문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카르고는 리퍼 한 마리의 급습을 받았다.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접근해서 달려들어 희생자의 몸을 난도질하는 것이 리퍼의 습격 패턴이다. 그러나 카르고는 이미 리퍼가 접근하는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 전사의 감각은 일반적인 아만족보다 수십 배 가까이 뛰어났다.

키야아악!

급습하는 리퍼의 낫을 종이 한 장 간격으로 슬쩍 피해 낸 카르고가 큼지막한 손으로 낫을 움켜쥐어 부러뜨려 버렸다. 그리고 고통에 발버둥치는 리퍼의 목을 우람한 팔뚝으로 휘감고 힘을 주자 모든 상황이 끝이 났다. 여행자에게 공포의 대상인 리퍼가 차디찬 시신이 되어 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순간이었다.

숙련된 전사라도 쉽사리 당해 낼 수 있다고 장담하기 힘든 몬스터가 바로 리퍼였다. 그런 몬스터를 순식간에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카르고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세 조각으로 부서진 리퍼의 낫을 세심하게 살펴보던 카르고가 미련 없이 그것을 던져 버렸다.

“무기로 쓰기에는 힘들 것 같군.”

리퍼의 시체에 가까이 다가가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독을 품은 마수란 사실을 증명하는 현상이었다.

“먹지도 못할 것 같고……. 헛힘만 쓴 것인가?”

쓴웃음을 지은 카르고가 리퍼의 시체를 집어 들어 길 아래로 집어던져 버렸다. 체격이 서너 배에 달하는 마수의 몸을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들어 올려 던진 것이다.

“시장하군. 먹을 수 있는 녀석을 잡아야겠어.”

손에 묻은 리퍼의 피를 털어 낸 카르고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제2장
아케니아 혈족의 마지막 전사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연신 불똥을 튀기는 모닥불 사이로 네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얼굴에 칼자국이 이리저리 새겨진 험상궂은 인상의 덩치 둘과 가녀린 체구의 여인이었다. 눈매가 가느다란 여인의 얼굴에서는 한기가 풀풀 피어났다. 비교적 곱상한 얼굴을 가진 젊은 청년의 등에는 활이 메어져 있었다. 모닥불 위에는 큼지막한 고깃덩이가 기름을 뚝뚝 떨어뜨리며 구워지고 있었다.
“노루를 잡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로군. 오늘도 비린내 나는 마수의 고기를 먹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말이야.”

눈 아래로 칼자국이 새겨진 전사 하나가 고기를 쭉 찢어 입으로 가져갔다. 어깨를 보호하는 견갑과 팔뚝을 뒤덮은 금속 갑옷이 맞부딪혀 절그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미하엘. 그나저나 저 계집아이에게도 뭘 먹여야 하지 않을까? 어제부터 굶겼는데 말이야.”

그 말에 미하엘이라고 불린 전사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보는 방향에는 누군가가 나무둥치에 묶여 있었다. 열여섯이나 일곱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였는데 희디흰 피부와 찬란한 금발이 인상적이었다. 눈에 확 띄는 미모를 지닌 소녀는 마법사들이 흔히 입는 푸른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읍, 읍.”

큰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도무지 알아들을 순 없었다. 미하엘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버려 둬. 우리 먹을 것도 모자라. 어차피 마법을 걸어 기억을 지우면 배가 고프다는 사실까지 인지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야.”

“흠. 그런데 말이야, 미하엘.”

먼저 말을 건 전사가 묘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이왕 팔아넘길 계집인데 살짝 맛 좀 보면 안 될까?”

그 말에 미하엘이 상대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멍청한 소릴 하는군, 발락. 상품에 흠집이 나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몰라?”

“그, 그렇긴 하지만…….”

“넌 아직까지 멀었어. 진정한 노예 사냥꾼이 되려면 상품을 상품답게 보는 눈을 길러야 해. 대금을 받기만 하면 레나르에서 원하는 대로 술과 계집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상품가치를 떨어뜨려야겠어?”

“아, 알겠다, 미하엘.”

발락이 풀죽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볼일을 보려는 듯 그가 수풀 사이로 사라지자 여인이 재빨리 미하엘에게 다가갔다.

“상품에 눈독을 들이다니 어처구니없는 녀석이로군. 저 녀석을 괜히 합류시킨 것 아닐까?”

“내버려 둬. 그래도 실력 하나는 확실한 녀석이니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미하엘과 여인 도미니크는 대표적인 무법자인 노예 사냥꾼이었다. 필드를 다니며 풋내기 모험가들과 흔히 보기 힘든 희귀 종족을 붙잡아 노예로 팔아넘기는 것이 그들의 주 수입원이었다.

발락은 불과 얼마 전 합류한 신출내기였다. 나름대로 필드에서 잔뼈가 굵은 전사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풋내기로만 보였다.

미하엘이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나저나 걱정이로군. 과연 얼음 산맥에 아만족이 남아 있을까?”

“뭐, 아직까지 철수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관리하는 녀석 몇 명 정도는 남아 있겠지. 그런데 궁금하군. 일전에 보긴 했지만 험상궂기만 한 아만족을 잡아 달라는 의뢰가 들어올 줄은 몰랐어. 덩치만 당당한 허풍선이를 도대체 어디다 써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그 말에 미하엘이 씩 웃었다.

“네가 아직 아만족의 진가를 모르는군. 아만족은 건장한 인간 남자의 몇 배나 일을 해내는 타고난 일꾼이야. 온순해서 말도 잘 듣는 데다 특히 광석 채굴에 재능을 타고났어. 이번 의뢰주도 우연히 아만족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려서 개인 광산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의뢰한 것이지.”

“그런가? 어쨌거나 우리야 의뢰받은 대로 잡아 주면 그만이니 뭐 상관할 것은 없지.”

“둘에서 다섯 정도를 원하더군. 꽤 많은 보수를 약속했으니 의뢰를 마치고 나면 주머니가 두둑해질 거야. 저 계집애는 일종의 부수입이지.”

미하엘이 빙글빙글 웃으며 나무에 묶여 있는 소녀를 쳐다보았다. 이제 고함을 지를 힘도 사라졌는지 소녀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소녀는 바로 어제 우연히 맞닥뜨린 파티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나름대로 필드에서 잔뼈가 굵은 전사가 인솔하는 파티로서 전사 하나에 궁수 두 명, 그리고 마법사와 사제 하나가 포함된 파티였다. 필드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파티라고 볼 수 있었다.

아룬 대륙의 필드는 매우 위험하다. 흉포한 몬스터와 마수가 곳곳에서 출몰하기 때문에 혼자서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안전한 도시나 마을에서 모여 살았고 외출할 경우에는 꼭 무리를 지어서 이동했다.

상인이나 여행자들은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스무 명 이상이 모여서 이동한다. 또한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들을 대거 대동해야만 몬스터의 습격을 방지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없다.

그것은 필드를 제 집 안방처럼 누비는 모험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룬 대륙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체구가 크고 힘이 좋다. 게다가 전신에 갑옷과 같은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쓴 몬스터들이 부지기수이다. 때문에 최전방에 서서 몬스터를 붙잡을 전사와 후방에서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 궁수나 마법사, 그리고 상처 입은 전사를 치료할 사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역할이 확실하게 구분된 파티를 구성해야만 필드에서 버틸 수 있는 법이다.

미하엘의 관점에서 어제 맞닥뜨린 파티는 어디 한 군데 나무랄 데 없는 구성이었다. 특별히 강한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 한 충분히 필드의 위험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몬스터에 한정된 경우였다. 미하엘 일행 정도의 악명 높은 노예 사냥꾼을 감당하기에 파티의 힘은 너무도 미약했다.

파티의 구성을 면밀히 살핀 미하엘은 기습을 결정했다. 목표는 파티원들이 가진 장비와 주머니 속의 돈, 그리고 가장 후미에서 따라가는 어리디어린 마법사였다. 언뜻 보기에도 풋내기임이 분명한 마법사는 상당한 미모를 지닌 소녀였다. 잡아서 기억을 지우면 꽤나 좋은 값에 팔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파티가 전멸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미하엘의 기습에 전사는 몇 합 나누지도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갔다. 화들짝 놀라 활시위를 당기던 궁수 하나는 발락의 단검이 이마에 틀어박히며 주저앉았다. 나머지 궁수 하나도 발락의 검에 의해 금세 생을 마쳤다. 원거리 공격에 능한 궁수는 근접전의 달인인 전사에게 현저히 약한 모습을 보인다. 급히 전사를 치유하려던 사제는(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도미니크의 화염구에 적중되어 산 채로 불타올랐다.

“꺄아아악!”

남은 것은 어찌할 바를 몰라 부들부들 떨어 대는 여자 마법사 하나뿐이었다. 그녀를 포로로 붙잡은 미하엘 일행은 지체 없이 장내를 정리했다. 죽은 전사와 궁수의 장비를 모조리 벗겨 내고 호주머니를 털었다. 등에 메고 가던 배낭 역시 그들의 차지였다. 숯 덩어리가 된 사제에게서 건진 것이라곤 오직 지팡이 하나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동료들이 전멸하는 모습을 본 마법사는 넋이 나가 버렸다. 미하엘이 빙그레 웃으며 묶인 마법사의 볼을 툭툭 건드렸다.

“생각보다 예쁘군. 값을 잘 받을 수 있겠어.”

미하엘 일행은 벌거숭이가 된 시체를 내버려 둔 채 포로를 끌고 급히 이동했다. 남은 시체는 몬스터들이 잘 처리해 줄 터였다. 그렇게 부수입을 거둔 미하엘 일행은 본업을 위해 아만족이 거주한다는 얼음 산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잠시 후 볼일을 본 발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불침번은 네가 서도록. 행여나 상품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우리 일행에 계속 남아 있고 싶다면 말이야.”

그 말에 발락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절대 그러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

“믿겠어.”

미하엘은 발락이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노예 사냥꾼이 되고 난 뒤 발락의 수입은 과거와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많아졌다. 예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비싼 술과 아름다운 계집 등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발락이 다른 마음을 먹을 리가 없었다.

김정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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