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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황금의 어스듐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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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게임] “그래?”
남자의 음성은 전과 똑같았지만 묘하게도 그가 웃는 것처럼 들렸다. 당한 것 같단 느낌이 든 건 두통이 잦아든 뒤였다.
“폭탄은 포기하지. 대신 네가 해 줬으면 하는 게 있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난 폭탄에 대한 어떤 것도 말 안 할 거야.”
“당연히 그러겠지.”
티노는 비장하게 말했건만 남자는 싱거울 정도로 쉽게 인정했다.
“네가 가르쳐 주길 바라는 게 아니야. 뭔가를 해 줬으면 하는 거지. 보고 못하겠으면 포기해도 된다.”
“보고 결정하겠어.”
자존심을 긁는 발언이었지만 무기 제작 장인인 램의 손에서 큰 티노는 기밀 유출에 대해서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옹알이를 시작했을 때부터 비밀을 지키는 법을 배워 왔다.
남자는 티노 쪽으로 다가왔다. 그가 모닥불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가 가까워져도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그는 티노 옆에 폭탄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작은 병을 꺼내어 건넸다.
“먹어라.”
“이게 뭔데?”
“약이다.”
병을 건네 준 손으로 티노의 이마를 가리켰다.
“이미 쓴 약으로도 아침이면 나을 테지만, 난 당장 하고 싶거든.”
“약물 과다 복용은 안 좋은 거…….”
“그 정도는 계산하고 준 거다.”
그러면서 남자는 몸을 돌려 모닥불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성인이고 티노는 어린애에다가 부상자다. 무슨 짓을 하려고 했다면 티노가 의식을 잃고 있는 사이에 했을 것이다. 거기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는 티노를 정당하고 공정하게 대해 주고 있었다. 그래서 티노는 의심하지 않고 약을 단숨에 마셨다.
약을 삼키는 순간 붕대 안쪽에서 느껴지던 날카로운 통증이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골이 부서질 것 같던 두통도, 온몸에 난 자잘한 찰과상도 눈에 띄는 속도로 사라지고 아물었다. 고급 약초와 대량의 어스듐을 듬뿍 넣은 최상급 약이 분명했다.
“와! 이거 비싼 거 아냐?”
“내 호기심을 충족할 값으론 충분하다.”
순식간에 멀쩡해진 티노는 남자가 벗겨 놓은 것이 분명한 백팩을 등에 메고 벨트 주머니에 폭탄을 챙겨 넣었다.
티노가 짐을 다 챙기자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남자가 모닥불 위에 모래를 끼얹었기 때문이다. 작은 모닥불이라도 주위를 밝혀 주는 것이 있다가 사라지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길 기다리는데, 남자가 거침없이 다가왔다. 그리곤 한 손으로 티노를 가볍게 들더니 부드럽게 위로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지층 위로 올라 티노가 보았던 교차된 나무를 딛고 다시 한 번 점프하여 단단한 지표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남자의 손에 들린 순간부터 사라진 것 같았던 중력이 땅에 딛는 순간 돌아왔다.
트인 공간에 나왔으나 역시나 주위는 어두웠다. 남자는 이번엔 티노가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려 주었다. 일단 익숙해지자 주변이 밝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히려 곳곳에 가로등이 있는 마을의 밤보다도 환했다.
어째서일까? 별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 본 티노는, 마침내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두 개의 달……!
거대하다! 처음 보는 그 달은 참으로 거대하여 마치 티노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 아니, 빨아들일 것만 같다. 한눈에 담는 것이 힘들 정도인 그 달은 물 빠진 보랏빛으로 은은하면서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그 압도적인 자태 옆에 티노가 지금껏 보아 온 익숙한 달이 더불어 떠 있었다. 세 개로 쪼개어져 간신히 원형을 추측할 수 있는 달. 그것이 작다 생각해 본 적 없으나 압도적으로 큰 달과 함께 있으니 작디작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짓눌리지 않는다. 크기로 차별할 수 없는 두 가지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여 서로를 한층 돋보여 주고 있다.
빌이 보고 온 것이 이것인가! 그래서 그토록 자랑하고 싶어 했던가! 티노는 처음으로 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다.
“감상은 다 끝났나?”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는 티노를 보고 한참을 기다려 준 남자가 결국 티노의 이마를 툭 치며 물었다. 그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던 티노는 아차 하며 그쪽을 돌아봤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것에 놀랐다.
남자는 티노가 만나 본 그 누구보다도 잘생겼다. 단정하게 기른 청보라색 머리는 달빛 아래서 은은하게 빛나 신비롭기까지 했고, 냉랭한 빛이 감도는 군청색 눈동자는 무척 짙었다. 피부는 마을 최고 미인인 레이나 누나보다 훨씬 깨끗하고 희었다. 거기다 빌의 아버지보다도 키가 컸는데 몸집은 훨씬 늘씬했다.
외모로 사람을 차별할 나이는 아직 아니었지만 저 남자가 대단히 불공평한 미모를 지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노블리언에겐 결코 있을 수 없는 길고 뾰족한 귀가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귀, 귀신?!”
티노는 황급히 남자에게서 떨어졌다. 티노가 자란 마을에선 ‘자꾸 울면 귀가 긴 귀신이 와 귀를 잘라 간다.’는 괴담이 전해지고 있다. 흔히 떼쓰며 우는 아이에게 부모가 하는 협박이다. 평소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문제가 달라진다.
티노의 경기를 본 남자는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무례하군, 귀 없는 꼬마.”
그 이상한 호칭이 ‘귀를 잘라 간다.’는 괴담과 맞물려, 티노는 더욱 몸을 사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은 당당하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지금보다 어렸을 때도 울거나 떼쓴 적이 없었던 것이다. 비록 램에게 장인이 되지도, 공방을 잇지도 않겠다고 말해 곧잘 싸우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당한 주장이지 떼를 쓴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난 울지도, 떼쓰지도 않았어!”
“그게 어쨌다는 거냐?”
“너한테 귀 잘릴 이유가 없단 말이야!”
“……아, 그렇군.”
잠시 침묵하던 남자는 혼자서 뭔가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떡이며 작게 혼잣말을 했다.
“그런 괴담은 우리도 몇 개쯤은 있지. ‘귀 없는 귀신이 와서 귀를 잘라 제 머리에 붙인다.’거나…….”
“뭐라고 말하는 거야? 귀, 귀신 말이냐?”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는 기묘한 언어라 티노는 뒤로 더 물러서며 물었다. 그대로 도망치지 않은 것은 어차피 귀신을 상대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다는 이성과 엑시아를 두고 갈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런 티노의 기색을 눈치 챈 남자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겠는, 열등한 귀 따위 관심 없으니까 걱정 말아라.”
그리곤 바위 옆에 세워져 있는 티노의 엑시아 쪽으로 갔다. 그 거리낌 없는 태도에 감화된 듯 티노도 곧 놀람과 공포를 떨쳐 내고 뒤를 쫓았다. 티노는 지나치게 대범한 램을 빼닮은 아이였다.

남자가 찾아간 것은 티노의 엑시아가 아니었다. 그쪽도 흥미롭다는 눈으로 흘낏 봤지만 곧 그 옆에 놓여 있는 커다랗고 악취 나는 물건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곤 그것을 감고 있는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등에 메기 위해 묶어 놓았던 것이었다.
덩달아 옆에 쭈그리고 앉은 티노는 가만히 그것을 살펴보았다. 밤이라 자세한 부분까지 볼 순 없었지만 커다란 기계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커다란 기계의 일부분으로 보였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팔과 비슷했다.
달빛이 워낙 밝아서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자세히 보고 싶어서 휴대용 조명을 꺼내어 켰다. 밧줄을 전부 푼 뒤 티노가 볼 수 있도록 옆으로 물러나 있었던 남자가 뭐라 중얼거렸지만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는 기묘한 언어였다.
“이렇게 밝은데도 조명이 필요하다니. 역시 여러 가지로 열등한 종족이군.”
그가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좋은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아서 슬쩍 째려보았다. 아무리 봐도 긴 귀 외엔 귀신으로 볼 만한 점이 없는 잘생긴 남자였기에 아까의 공포는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티노가 째려보거나 말거나 남자는 시종 냉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덕분에 그에게 흥미가 사라진 티노는 기계 쪽에 조명을 비추고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기계는 피와 살점, 그리고 정체불명의 체액으로 지저분했다. 피는 이미 굳어 있었지만 그리 오래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견고하게 짜여 있고, 재료도 단순한 강철은 아니었다. 가볍게 두드려 보자 둔탁한 철소리가 들렸다. 외갑 자체의 두께가 상당한 듯했다. 굴리며 확인했지만 어디에도 볼트나 용접한 흔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조립된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음새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이다. 그것도 어느 한 부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체가 그랬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진 걸까? 관절 부분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걸 보면 단순히 팔 모양만 한 것이 아니라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든 게 분명한데……. 어떤 기술을 쓰면 저것이 가능할까? 무기 제작 장인인 램의 손에 큰 덕에 기계 병기는 물론 기계형 몬스터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진 티노였지만 이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네가 만든 거야?”
“아니. 몬스터의 팔이다.”
“아……!”
몬스터 중에는 야수의 몸에 기계의 팔이나 다리를 달고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영역 다툼 따위의 싸움으로 신체를 잃은 몬스터들이 어스듐의 힘으로 기계를 몸에 합성시킨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오히려 진화로 봐야 할 것 같다.
“그걸 분해할 수 있나?”
“이걸?”
어떻게 만든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으니 곱게 분해하기는 틀렸다. 아예 외갑을 자르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면 내부가 망가질 것이다. 내부는 외갑을 만드는 데 든 것 이상의 기술이 담겨 있을 것이 분명하다.
티노는 솔직하게 답했다.
“외갑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도 모르겠는데 원형을 보존하며 뜯는 건 무리야. 할아버지라면 할 수 있을지도…….”
“확실히 내가 분해할 수 없는 폭탄을 만든 자라면 이것을 분해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군.”
남자의 음성엔 불쾌감이 옅게 배어 있었다. 왜 그러나 싶어 올려 봤지만 그새 밝은 조명에 익숙해진 눈에는 검은 윤곽만 보였다.
“하지만 됐다. 내 흥밋거리에 남이 손대는 건 싫다.”
“그럼 난 뭐냐?”
티노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남자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남자의 얼굴이 티노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어서 하는 말은 좀 전의, 알아들을 수 없었던 언어였다.
“분해할 수 없는 것이 또 있다는 것에 흥분해서 미처 생각을 못 했군. 어쩔까……?”
티노는 갑자기 소름이 쫙 돋아서 옷 위로 팔을 문질렀다. 별로 추운 것 같지 않은데…… 너무 오래 밖에 있었나? 한 번 부르르 떨다가, 남자가 뭐라 하기 전에 선수 쳤다. 만약 그가 자존심보다 실리를 택해서 램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여러 면에서 티노가 곤란해진다.
“말해 두지만, 아까 분명 못하겠으면 포기해도 된다고 했다? 난 할아버지한테 물어봐 주지 않을 거니까 부탁할 생각은 하지도 마! 소개시켜 달란 말도 하지 말고!”
“…….”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남자는 그 말에 움찔하더니 티노를 내려다봤다. 티노는 그 모습에 ‘역시 부탁할 생각이었구나!’라고 속단했다. 남자가 물었다.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절대 안 돼! 만약 내가 이걸 할아버지한테 가져가 부탁하면 공부가 부족하네 어쩌네 하면서 붙들어 놓고 공부를 강요할 거란 말이지!”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공부를 시키면 싫긴 하겠군.”
“그것만이 아니야! 할아버지는 자꾸 내가 자기 뒤를 이어야 한다고 강요한단 말이야! 내가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더 심해져. 난 지금도 충분히 힘들다고!”
“네 할아버지는 장인이라고 했지? 그런 사람에게 후계자 수업을 받는 건 좋은 기회가 아닌가?”
“내가 기계공학 쪽으로 나갈 생각이 요만큼이라도 있다면 그러겠지.”
티노는 엄지와 집게를 붙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모으며 입술을 삐쭉였다. 그런 그에게 질문을 던지는 남자의 모습은 기분 탓인지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신승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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